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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9/12/04  박재남
장 보 고 전 기 관

 

산. 바다. 호수를 에워싸고 구성하였다면 그런곳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일것이다. 산동성 위해시 석도관리구에 위치하여있는 봉황호신구가 바로 이런 지리적 위치에 있다.바다로는 2900메터의 국제해수옥장이 있고 바다역으로 골프장, 부두, 해상공원, 그리고 4성급적산호텔, 천명을 용납할수있는 술집 등이 있으며 호수로는 3000무의 봉황호가 있고 그곳에는 오락중심,고기잡이 구락부 수상락원 등이 있으며 산으로는 국가AAAA급 적산풍경구가 있다. 이 풍경구에 바로 장보고전기관이 있다.

 

장보고전기관은  부지면적은 1.3만평방키로메터이며 5개 전시청으로 되였으며 무려 5000만원을 투자하였고1년이란 시간을 거쳐 완공되였다.

 

제1전시청:  大唐追梦

 

서  언:

중한양국은 지정학적위치와 경제문화적특징을 배경으로 유구한 세월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당나라시대는 중한양국간우호교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로 신라인 장보고는 이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이에 장보고의 생애와 중한양국의 유구한 역사 및 찬란한 문화를 재현하기 위해 중국적산그룹유한회사가 많은 자금을 투자하여 총다섯개의 전시실을 갖춘  장보고전기관을 건립하였다.

 

장보고의 간력:

장보고(서기790년—841년)는 신라(지금의 한국)인으로 당 헌종 원화 2년경(서기 807년) 무녕군에 입대하여 원화14년(서기819년) 무녕군소장이 되였고 당 목종 장경 4년경(서기 824년) 적산법화원을 건립하였다. 당 문종 태화 2년(흥덕왕 3년, 828년) 신라로 돌아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대사로 임명되여 해적을 소탕하고 노비매매를 근절시켜 한,중,일 무역로를 열었으며  한민족의 영웅,평화의 사자,해상무역왕으로 추앙받고 있다.

 

무  역  왕 래:

당나라와 신라는 무역이 빈번하여 양국을 왕래하는 신라 상인이 많았다.이들 신라상인을 통해 당으로부터 비단, 차, 서적, 수공예품 등을 신라로 수출되였고 신라의 특산물 고예품 등이 당에 대량으로 수입되였다.이러한 교류를 통해 당나라의 정치경제 문화 풍속 등은 신라에 수많은 영향을 주었다.

 

입  당  배  경:

8세기말 신라는 귀족지간의 투쟁이 격렬하였으며 조정이 견건하지 못하고 세는 높았으며 자연재해는 빈번하여 정치와 경제는 점차 쇠태되였으며 백성들의 원성만 높았다.하여 대량의 신라인은 당나라로 이동하였고 동시에 당나라는 安史子乱을 격고 전국의 형세는 정치가 대립되는 시기에 처하여 있어 정치적으로 대량의 병역을 수요하였다 이런 사회정치적배경에서  장보고는 친구 정년과 같이 새로운 인생의 길을 개척하고자 당나라로 왔다.

 

당문화가 신라에 준 영향:

신라는 통일후 당나라의 문화를 광범위하게 수용하여 8세기중엽에는 행정조직을 개편하고 율령제를 받아들이는 등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였고 848년 한 해에만 신라로 귀국하는 유학생이 1만여명에 이를 정도의 많은 사람이 당에 유학하였다.또한 한자의 음과 훈을 풀어서 만든 이 두문의 사용으로  신라의 문화가더욱 발전하게 되였다.

 

제2전시청: 武宁从军

 

무녕군 간력:

당나라 후기는 각지에 발호한 번진들이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조세납부를 거부하는 등 중앙정부를 저항하던 시기이다.서주는 남쪽으로 변하와 인접하고 용교를 장악하고 있어 강회(장강과 회수)일대 조운의 중요한 요충지로서 조정에서는 많은 군사를 파견하여 이곳을 지키게 하였다.무녕군은 원래 서사호절도사라고 불렀으나 805년 무녕군으로 개명하고 서,숙,호,사 등 4주를 관할했다.815년에 당시 산동일대를 장악하고 평로치청절도사 이사도가 수차례 이곳 서주를 침범하였으나 무녕군에 의해 모두 격퇴되였다.

 

무녕군 종군:

당시 등주,양주 등지는 유명한 무역항구로서 수많은 신라인들이 이곳에 머물렀다.이들 신

라인 중 상당수가 무녕군에 입대하여 이기의 반란진압에 참가하였으며 장보고와 정년 또한 신라인 무

역상단을 따라 입당하여 무녕군에 입대한것으로 여겨진다.

 

무녕군의 두 장군:

장보고는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신라와 서주에서도 능히 당할자가 없을 정도였

으며 정년 또한 수영에 뛰여나 바다를 오십리나 헤염쳐가도 숨이 차지 않았다고 한다.이처럼 두사람이

실력이 뛰여나 용맹하여 무녕군의 중요한 장군이 되였다.

 

무녕군 군중 소장: 

장보고와 정년은 출중한 무예와 용맹성으로 이기의 반란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이후 여러 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이윽고 819년에 이사도의 반란이 평정되자 이공을 인정받아 장보고와 정년은 무녕군소장에 오르게 되였다.

 

 

무녕군을 떠남:

장보고와 정년은 이사도의 반란을 평정한후 각자 뜻하는 바가 있어 정년은 무녕군을 떠나고 장보고는 적산을 중심으로 무역을 종사하며 큰 재부를 모아 적산에 법화원을 세우고 신라인의 구심점으로 삼았다.

제3전시청: 缘定赤山

 

법화원 건립 배경:적산포는 당나라 시대 중요한 무역항구 중 하나로 장보고는 이곳에 해상무역의 근거지를 만들었다.이와 함게 법화원을 건립하여 불교를 통한 민심의 안정을 도모함은 물론 해상무역의 번영을 기원하고 인근에 거주하던 신라인들의 마음의 안식처로 삼았다.

 

참배가 왕성한 법화원:법화원은 본전과 요사체,종각,강경당,식당 등의 부속건물로 이루어졌으며,상주하는 스님이 최대 40여명에 달하였다.겨울에는 법화경을 강독하고 여름에는 금광명경을 강독하였으며 일년내내 경전을 염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또한 강경법회 때에는 참여하는 신도가 250여명에 달하는 등 산동반도일대에  그 영향이 지대했다.

 

명승보배지:

적산은 기이한 돌이 겹겹이 솟아있고 자주빛 구름과 안개가 감돌고 있는 적산명신의 동천복지이다.이곳은 뒤로 산이 우뚝 솟아있고 멀리 앞으로도 산을 맞이하며 법당 중앙으로는 옥수가 흘러 이른바 “앞뒤로 높은 산이 있고 서쪽에서 동으로 물이 흐르며 동쪽은 활짝열려있어 자자손손 왕위에 오르고 대대손손 군왕과 반려한다”는 풍수 보배지이다.이러한 길지에 장보고가 법화원을 건립하여 훗날 대업을 이루게 된것이다.

 

 

적산사찰:

장보고는 법화원을 건립하는동시에 매년 곡식을 500석을 수확할 만큼의 많은 사전을 마련하여 스님 공양과 손님들을 접대하였다.또한 창고를 설치하여 사전에서 수확한 양식 채소를 저장하였다가 사찰의 일상비용으로 사용하였다.매년 한가위(음력 8월 15일)에는 신라인들이 사원에 모두 모여 노래하고 춤을 추며 명절을 즐겁게 보냈다.

 

법화원과 엔닌:

838년에 일본 스님 엔닌 일행이 구법차  입당하여 이곳의 관리와 신라인들 그리고 법화원의 많은 스님들의 도움을 받아 오대산과 장안에서 구법순례를 무사히 마칠수 있었다.엔닌은 적산법화원에 세 차례에 걸쳐 2년9개월의 기간이나 머물렀다.그의 여행기인 입당구법순례행기에는 그때의 사정을 상세히 기록하며 장보고의 은혜에 크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구당신라소:

구당신라소는 재당 신라인들을 관리하는 관청의 이름으로 신라인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곳을 신라촌,신라방, 그들이 머무는 곳을 신라원,또는 신라관이라고 불렀다.엔닌은 입당 구법 기간 중 문등현에서 신라인인 구당신라소의 장영  압아로 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회창 법난:

당 무종 회창연간에 조정은 도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였다.842년--846년 무종은 전국의 사원을 해쳐시켜 스님들을 환속시키고 사원 소유의 재물과 토지등 모든 재산을 관청으로 귀속하라고 명령하였다.이에 따라 적산 법화원도 훼멸당했다.

 

제4전시청: 清海浮沉

 

청해진 창건 및 해적숙청:

장보고의 이름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궁복  궁파로  일본서기 등에서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장보고(张保高)로 기록되여 있다.장보고는 828년 귀국하여 왕에게 해적을 소탕하여 신라노비매매를 근절시킬것을 주청하자 왕은 군사 1만명을 주어 청해진을 설치하고 대사로 임명하였다.장보고는 청해진을 교두보로 해적을 소탕하고 노여무역을 근절시켰으며 조선업과 제조업을 설치하였고 새로운 국제무역항로를 개척하였으며 신라,당,일본을 연결하는 동아세아 의 해상권과 무역권을 장악함으로서 9세기 신라해상활동의 결정기를 이루게 한 해양개척자이며 국제무역인이다.

 

새로운 국왕의 옹립:

해적들을 모두 소탕한후 장보고는 청해진이 지니는 전략적 지위와 군사력 그리고 막대한 재력을 기반으로 신라에서 가장 강대한 지방세력중 하나로 성장했다.838년 상대등 김명이 희강왕을 자살하게 하고 왕위에 올랐다.환란을 피해 청해진에 의탁하고 있던 김우징은 장보고에게 도움을 청하여 “큰자리를 얻으면 너의 여식을 왕비로 삼겠다”고 약조하였다.장보고는 병사 5000명을 정년에게 주어 김명의 군대를 격파했고 김우징은 신무왕으로 등극하였고 장보고는 이공으로 감의군사로 봉하였다.문성왕이 즉위하자 장보고를 진해장군으로 봉하였으며 장복을 하사하였다.

 

번영하는 적산포:

적산포(지금의 석도만)는 당 시대의 중요한 무역항구이며 신라와 해로로 가장 가까와 신라인들이 입당하는 “황금 항로”의 종착지이다.장보고는 이곳을 무역의 중요한 거점과 화물중개 장소로 삼아 중국,한국,일본 삼국 해상무역을 폭넓게 전개했다.

 

청해진의 멸망:

신무왕이 즉위한지 6개월만에 병사하자 그의 아들 문성왕은 장보고의 여식을 왕비로 삼으려고 하였다.그러나 조정의 귀족들이 장보고의 출신이 미천하다 하여 이를 반대하였다.장보고의 강성함을 두려워한 문성왕과 귀족들은 “반란을 도모한다”는 죄명으로 염장을 보내 장보고를 모계하여 살해하고 그의 부하들 또한 모두 죽었다.마침내 851년에는 청해진을 페하였다.

 

제5전시청 源远流长

 

한국의 장보고기념활동:한국에서는 장보고를 기념하기위하여 장보고대사해양경영사연구회가 성립되어 장보고에 관한 기초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여 장보고 관련 연구는 물론 장보고를 소재로 한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을 제작 방영하고 중국과 일본에 장보고 관한 유적지 답사단을 파견하는 등 본격적인 장보고 재조명 평가사업이 추진되여었다.이외에 장보고 함으로 명명된 잠수함이 1993년에 진수되였으며 장보고 기념우표가 발행되였다.그리고 완도군은 1996년부터 매년 장보고축제를 거행하고 있는 등 다행한 기념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장보고전기관의 건립:적산법화원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발굴하고 중,한 민간교류를 증진하기 위해 중국적산그룹유한회사는 장보고전기관을 건립키로하고 2002년10월20일에 시공식을 거행하였으며 전체 면적은 1만3천평방미터로 당나라건축양식에 따라 지어져 2003년 4월에 주요공정이 완료되였다.

 

장보고 기념탑을 건립: 1994년 7월 한민족연합회에서 자금을 모아 적산연화봉 정상에 장보고기념탑을 세우고 김영삼전 대통령이 비명을 썼다. 장보고 기념탑은 적산연화정에 자리잡고 있으며 한국세계 민족연합회 회장 최민자교수가 창도하여세운것으로1994년7월24일낙성식을 거행하였다.탑받침대는 길이 19메터 폭16메터 높이 1.8메터 탑몸 높이는 15메터탑기둥 1X1평방메터 두기둥간의 거리는 0.5메터이다.탑의 설계스타일이 이채를 띤다.두탑기둥은 중국과 한국을 상징하는데 정상을 연결하는것은 두나라의 우정을 상징하며 김영삼 한국 전 대통령이 적은 장보고 기념탑 6개 동글자가 상감하고 있다.두 기둥가운데는 석도홍 천연광택을 내는 대리석 판자로 만든것이다.이탑의 낙성은 중한 양국인민의  우정을 명시하였다.

 

법화원의 중건:법화원이 845년 회창법난에 훼멸된 이후에 1920년대부터 일본이 몇차례의 유적지발굴을 시도하였으나 성과가 없었다,1987년 영성현 관계자들이 엔닌이 저술한 “입당구법순예행기”의 기술에 따라 몇차례의 곡절끝에 적산법화원의 유적지를 고증하여 중국,일본,한국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영성현 인민정부는 1988년 7월에 법화원을 중건하여 1989년 5월1일에 개막식을 거행하였다.

 

중한문화교류와 무역왕래:중국과 한국이 건교이후 위해는 특수한 지리적위치로 한국인들이 중국에투자하는큰 지역으로서 한국인들이 중국에서 상업을하고 유람을 하는 하나의 낙원으로 되였다.하여 한국에서 장보고의 열이 일면서  적산법화원은 한국인들이 그리는 지점으로 부상되였으며 여기에 오셔서 유람과 기도를 드리는 분들이 엄청 많아졌다.하여 적산법화원은 중한양국인민의 우호의 중요한 상징으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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