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류수같이 흘러 내가 퇴직한지도 어언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퇴직하고 나는 외국에 와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나섰다.
내가 돌보는 환자들중에 "밥 줘"를 웨치는 할머니가 계시는데 이 로인을 돌보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쉴새없이 "밥 줘"를 웨치고 때로는 "이년아, 밥 줘!"하고 소리치기도 한다.하루종일 끝임없이 웨치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치매할머니들을 돌보는 일을 하다보니 자연히 엄마가 그전날 할아버지의 시중을 들던 일들이 주마등마냥 나의 뇌리를 스쳐갔다. 할아버지는 원래 큰아들집에 계셨는데 큰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막내 아들인 나의 아버지께서 모시게 되였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오셨을 때만 해도 아주 점잖고 조용한 분이셨다. 그러나 년세가 들면서 인지능력이 점차 떨어지고 치매증상이 완연히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로망을 부려 이불이며 벽에 변을 발랐는데 엄마는 변이 묻은 옷과 이불을 매번 강가에 가서 씻어야 했다. 한 겨울 엄동설한에도 엄마는 나를 데리고 빨래하러 강변으로 갔다. 얼음을 깨고 차디찬 물속에 손을 폭 담그고 빨래를 하고 나면 얼음장같은 물에 두 손이 퉁퉁 부어올라 감각을 잃기도 했는데 얼어서 빨갛게 된 두 손을 가마목에 녹이면서 고통을 참아가기도 했다.
이런 나날들이 얼마나 지속되였을가
시간이 지날수록 할아버지의 신체상황은 점점 악화되였다. 나중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계시는 할아버지한테 미음을 숟가락끝으로 조금씩 떠서 입에 넣어드려야 했다. 삼키는 기능마저 잃으셨기 때문이다. 인지력 또한 떨어져 자주 헛소리를 하셨는데 이불에 새겨진 다섯아이가 줄넘기를 하는 그림을 보고도 "아이들이 놀러왔구나."하며 웃으셨다. 그 모습이 애처로워 엄마는 일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눈시울을 붉히군 했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찾아 온 고모에게 " 며느리가 밥을 안준다."고 말씀하셨다. 병으로 인한 망언이였는데도 고모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고 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가 굶어 돌아가셨다." 며 넉두리를 늘어놓았다. 그 말을 듣고 워낙 심장이 약한 엄마는 충격에 쓰러졌고 온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엄마는 언제나 흰쌀밥을 할아버지께 드렸고 우리는 옥수수쌀밥을 먹었다. 그런 엄마가 억울한 루명을 쓰게 되였으니 곁에서 지켜보는 내 가슴은 미여지는 것 같았다. 시누이의 주책없는 말 한마디에 엄마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쓰러지셨는데 온몸의 신경이 풀떡거리며 근육이 뻣뻣해졌다. 나는 오촌아저씨의 지시에 따라 12살 어린 나이에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엄마의 몸을 지그시 눌러가며 굳어진 근육을 풀어주려고 애썼다. 아버지를 힐끗 보니 친 누이여서 차마 욕은 못하고 그저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어찌할 바를 몰라 집안에서 서성거렸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그날을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다행히 그 때 엄마가 진정이 되여 위기를 넘겼지만 마음의 상처는 오래도록 깊이깊이 남아있었다. 밤이 되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몹시 괴로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모가 우리 집으로 찾아와 엄마한테 "내가 정말 잘못했어. 무식해서 그런 말을 했네..."라고 사과했다. 엄마는 "지난 일을 다시는 꺼내지 맙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후 엄마는 그 일을 다시는 입 밖에 내지 않으셨다.
내가 간병일을 해보니 이제야 비로소 그 시절 엄마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치매환자들은 늘 없는 말을 지어내고 불가능한 요구를 하며 헛것을 보기도 한다. 그런 환자를 돌보는 일은 육체적으로보다 정신적으로 더 힘들다. 엄마가 그 때 얼마나 힘들었을지 실감하게 된다.
엄마는 가족이 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켰을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엄마는 넓은 마음으로 가족을 감싸며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시댁식구들과 화목하게 지냈다.
아무리 힘들어도 엄마는 늘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폭풍이 지나간 뒤 하늘이 다시 개이듯 우리 집안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그 뒤로 가족사이에 오해와 풍파가 더 이상 없었고 서로를 더 깊이 리해하게 되였다. 돌이켜보면 할아버지의 헛소리 한마디로 엄마는 인생의 풍랑을 겪었지만 그 시련 속에서 가족이 무엇인지, 사람이 갖춰야 할 품격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시린손으로 차가운 세월을 보듬고 살아온 엄마의 인내와 사랑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아픔을 겪은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수 있고 시린 세월을 견뎌낸 사람만이 진정한 온기를 간직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고초와 풍파가 남겨준 소중한 선물이자 대를 이어 전해지는 우리 가족의 가장 빛나는 유산이다.
간병현장에서 환자들의 손을 잡을 때마다 늘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엄마 , 그 때 당신의 손도 이렇게 차가웠겠지요."
환자들이 마실 물을 떠오려고 일어서니 또 "밥 줘, 밥 줘!"하는 할머니의 웨침소리가 병실 전체를 울리며 귀속을 파고든다. 치매환자들을 사랑과 인내로 대하라는 할아버지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로인들의 여생을 참을성있게 잘 보듬어주라는 엄마의 목소리 같기도 하다. 마치 나를 일깨워주기 위해 울리는 경종처럼 들렸다.
/소은 김순희
(2026년 연변녀성 제5기 출간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