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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03/14  한민족신문
아버지의 유품

회계출신이셨던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섬세하고 꼼꼼할 뿐만아니라 너무 깔끔하여 여자인 나도 두손두발 다 들고 항복할 정도였다. 집안 물건부터 창고 정리에 이르기까지 각을 잡듯이 질서있게  정리정돈 하는건 물론이고 각 물건 보관함마다 내용물이 무엇인지를 다 메모해 놓아 한눈에 척척 알아볼수 있었다.

 

아버지의 딸이니 아버지의 성격이나 성품 취미 습관 모든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고 항상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나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아버지를 몰라도 너무 몰랐음을 깨달았다.

 

그날도 여느때와 다를바없는 평온한 하루였다. 갑자기 고요한 하늘에 천둥번개치듯 예고없이 전해온 아버지 이별의 비보. 온몸은 후들후들 떨리고 눈물이 앞을 가리며...그렇게 난 허둥지둥 아버지 집으로 달려갔다. 도저히 믿을수 없는 현실앞에서 난 넋나간 사람처럼 어쩔바를 몰랐다. 비통한 마음 이루다 말할수 없지만 하냥 울고만 있을수 없었다. 마음은 한없이 비통하지만 그래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후사를 준비했어야 했었다.

 

순간 언젠가 아버지께서 중요한 물건을 담은 함이라면서 보여주던 생각이 났다. 단번에 찾아내서 열어보니 함속 제일 위에는 ‘상시옷’ ‘간력’이라고 쓴 종이장이 놓여있었다.그리고 그 밑에는 차곡차곡 접은 자신이 돌아가실때 입을 한복 한벌 (26년전에 환갑잔치때 입었던 한복)이 있었다.

 

순간 나는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고 그 자리에 엎드려 또 다시 오열하고 말았다. 혹 자신이 언젠가 예고없이 떠나더라도 자녀들이 후사 처리에 당황하지 않도록 평소에 철저한 준비를 해놓으신 아버지의 깊은 배려심. 당신의 안위와 기쁨보다는 자녀들을 향한 애틋한 사랑과 관심. 보고있어도 또 보고싶고 모든걸 주셨음에도 늘 더 주시지 못해 미안해하셨던 아버지. 자녀를 향한 그 사랑이 얼마나 소중하셨으면 마지막 가시는 순간까지도 오직 자녀들 걱정만 하셨을까.

 

그런 아버지를 하늘나라에 보내야 한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고 가슴은 터질듯 아팠다.

 

너무 정신없는 상황이라 다른 유품은 펼쳐볼틈이 없이 직접 준비하신 상시옷을 입혀드리고 마지막으로 본인이 직접 써놓은 간력으로 추도사를 작성하였고....그렇게 사랑하는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렸다.아버지 가시는길에 다른 물품은 다 보내드렸지만 그 귀중한 함만은 고이 간직하고 싶어서 유품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몇일뒤, 집주인이 없는 쓸쓸한 방에서 우리 4형제는 그 함을 다시 열어보았다. 전기세 카드,열공급카드,물세카드,은행카드라고 쓴 메모지가 붙은 작은 비닐주머니속에는 카드와 비용을 낸 영수증과 전화번호가 각각 있었다.그뿐만이아니라 은행카드 비밀번호며 매 카드의 계좌금액 등 상세히 기록한 메모장도 있었다. 생활비는 자녀들이 수시로 드리기에 저축은 많지 않았지만 현금과 저축카드의 돈이 일원차이도 없이 딱 맞아 떨어졌다. 자신이 돌아가신뒤 여러가지 비용을 결제할때 방황해하지 말라고 상세하게 적어놓았던 것이였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했던건 아버지의 장부책과 일기책이였다.장부책에는 수십년간 아버지와 엄마의 생활비 수입 지출 내역이 상세하게 기록된건 물론이고 아들딸과 손군들의 이름 하나하나까지도 기록되여있었다. 그리고 매 이름마다 생활비와 용돈을 보내준 기록이 빠짐없이 적혀있어서 누가 언제 생활비를 얼마를 보냈는지 명절에는 무슨 물건을 보냈는지 한눈에 알아볼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였다. 일기책을 펼쳐보니 몇월몇일 어느 자녀가 전화왔으며 통화내용까지도 상세하게 기록되였다. 특히 십여년간 한국에서 생활하는 큰 아들딸이 더 걱정되고 많이 그리우셨던지 오빠와 언니의 전화 내용은 더 상세히 기록하셨다. 얼마나 자녀들이 그립고 보고싶었을까.....자녀들을 향한 배려심과 사랑이 남달랐던 아버지의 일기책과 장부책를 보면서 우리는 가슴을 치며 후회와 자책의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가실줄 알았더라면 한번이라도 더 찾아뵐걸...이렇게 가실줄 알았더라면 사랑하는 속마음 더 많이 표현할걸...이렇게 그리울줄 알았더라면 사진 한장이라도 더 찍었을걸......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되었다.비록 표현이 서툴고 말수가 적은 아버지셨지만 자녀들을 향한 무긍무진한 사랑과 그리움만큼은 감히 상상조차 할수 없을만큼 깊고 크셨음을 우리는 뒤늦게나마 알았다.

 

그립다. 아버지가 너무 그립다. 아직도 아버지 집문을 열고 들어가면 문앞에서 ‘아이고~사랑하는 우리 셋째 왔구나 허허~’하고 웃으시면서 반겨주실 것 같은데. 그런 아버지가 이젠 내 마음속 별이 되였다. 아버지... 언젠간 다시 만나면 이 말은 꼭 하고싶네요.’ ‘당신은 저희 4남매의 최고의 아버지셨습니다. 다음생에도 저희 아버지가 되여주시고 아버지 딸이 되겠습니다.아버지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보고 싶고 그리울 때마다 난 아버지의 분신같은 유품들을 꺼내보면서 그리움을 달래곤 한다.

/최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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