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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03/14  한민족신문
아버지를 그리며

요즘따라 꿈결에 자주 아버지를 뵙는다. 아마 며칠후면 어버지생신이라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을 헤아려주신것같다. 꿈결에 아버지는 마당을 쓸고 계셨다. 구부정한 허리에 색바랜 남색 조끼를 입으시고 백발을 날리시는 아버지 웬지 애처로와 보인다. 그런데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 한번 들지 않는다. 왜서일가?

 

사람들은 아버지를 산이라 부른다. 아마 산처럼 듬직하고 변함없는 그 자태 때문인것같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왜 기타부타 말씀 한마디 건네주질 않을가? 꿈에서도 몹시 노여운가?

 

나의 아버지는 애주가였다. 20여년전 북망산을 선택하신 아버지를 떠올리면 미안한 생각부터 앞서는 마음 주체할길 없다.

 

슬하에 아홉살년상인 두 딸애을 두신 아버지는 막내 딸인 나에게 각별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십리길을 걸어 다니는 내가 아까와 나를 이십리 떨어진 언니집에서 공부하게 했다.

 

주말이 돌아오면 아버지는 하던 일 그만두시고 어김없이 역전까지 나오셔서 마중하셨다.

 

“공부 힘들지 않아.”

“배는 곯지 않아.”

“친구들과는 잘 보내?”

 

자상하신 아버지를 그땐 귀찮다고 머리를 흔들기도 했다. 예전에 시골엔 정거장이 따로 없었기에 차역전과 100메터거리도 안되는 우리집에서는 기적소리를 듣고 달려나가도 능히 탈수 있었던것이다. 집에서 기다려도 되는데 아버지는 우리들의 만류를 들으실 분이 아니셨기에 나는 시름 푹 놓고 집에서 기다렸고 한번도 차를 놓지지 않았다.

 

매년 봄만 되면 어머니께선 아버지 닥달에 못이겨 꼭꼭 영양보충으로 닭곰을 해주셨다. 전날에 불궜던 찹쌀에 대추랑 꿀을 넣고 반나절이나 푹 고아낸 구수하고 향긋한 닭곰은 별맛이였다. 배를 두드리며 먹는 나를 허허 웃으시면서 바라보시던 아버지셨다.

 

고중3학년 왕청에서 다닐 때였다. 교통이 불편했던 당시 집으로 돌아가자면 큰 기차, 작은 기차 하면서 차를 기다려서 갈아타고 다녀야 했다.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께서 왕청으로 날 찾아오셨다.

 

“웬 일이세요?”

“전각루학교서 민반교원 한명을 모집하는데 네가 하면 어떨가?”

“아버지, 무슨 소리하세요?  생각못해봣는데요.”

“무슨 일이나 하면서 경험이 생기고 마음만 있으면 된다.”

 

이십리를 달려 천교령까지 와서 기차를 갈아타고 40리나 달려오신 아버지께 미안했고 죄송스러웠지만 나는 아버지권고에 넘어갈리 없었다. 몹시 상심하신 아버지는 한숨을 지으시더니 그길로 다시 저녁기차타러 가셨다. 저벅저벅 걸어가시는 아버지 뒤모습을 보니 측은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당년 아버지 뒤를 따라나섰다면 부모님도 덜 고생했을거고 한해라도 아버지, 어머니랑 더 같이 살았을텐데 그 때 일은 참 후회막급이다.

 

그러다가 민사반시험에 합격되자 아버지는 그렇게도 기뻐하시며 십리길을 걸어 향파출소에 가서 호구를 떼왔고 얼른 사범학교에 가져가라고 재촉하셨다.

 

이렇게 나는 아버지 응원속에서 교원의 꿈을 무르익혀갔고 30년이란 시간 시골교단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힘들고 지칠 때 포기하고 주저앉고싶을 때 당년 아버지께서 그렇게도 기뻐하시고 그렇게도 자랑스러워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재충전하고 다시 일어선다.

 

아낌없이 주시기만 하셨던 아버지셨기에 지금 내 마음이 더 아픈것 같다. 한해한해 세월이 흘러 어느덧 아버지께서 하늘나라에 가신지 20년이 훌쩍 넘는다. 하지만 아버지를 떠올리면 미안하고 그립고 마음이 찢어진다.

/함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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