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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10/22  한민족신문
내 가슴에 “한글의 씨앗”을 심어놓은 딱지

2026 제27회 KBS한민족체험수기 공모 수상작

 

 

60년대의 시골은 너무나도 가난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넉넉하지 않았고 아이들이 가지고 놀 장난감은 더욱 귀했다. 그러나 가난이 아이들의 마음속 꿈까지 빼앗아가지는 못했다.

 

흙먼지가 날리는 마당에는 언제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었고 그 먼지 속에서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신나게 동심을 키우면서 딱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딱지치기는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건강한 운동이 되였고 학습의 길을 열어주는 넓은 자연의 교실이였고 재부의 꿈을 키워주는 우리 민족의 전통 민속놀이였다.

 

딱지는 어린 시절, 내가 가질 수 있었던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다. 딱지를 많이 가진 아이는 부자였고 딱지를 잃은 아이는 하루 종일 속이 상해있었다. 딱지를 만들 종이조차 귀하던 그 시절, 다행히 우리 집 장롱 속에는 종이가 많이 들어있었다. 할아버지가 남겨놓으신 귀중한 책들이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굴도, 목소리도, 손길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나에게 너무나도 큰 선물을 남겨놓으셨다는 것만은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집 장롱 속에는 질 좋은 종이에 붓글씨가 정갈하게 적힌 수많은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러나 당시 어린 내 눈에는 그것이 귀한 유산인지 아님, 할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보물인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책들을 마구 찢어서 딱지를 만들었다. 친구들이 내 딱지를 부러워할 때면 그냥 어깨가 으쓱해졌다. 종이가 두껍고 질이 좋아 딱지를 접으면 다른 아이들의 것보다 단단하고 잘 뒤집혀 지지도 않아 남들이 쉽게 앗아가지도 못했다. 그때의 나에게는 책보다 딱지가 더 소중했다. 할아버지의 책이 흙먼지 속에서 구겨지고 밟히고 닳아져 사라지는 동안에도 나는 그것이 얼마나 귀한 보물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60년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나는 그 일을 떠올리면서 가슴이 쓰려남을 알게 되였다. 그 책들이 아직까지 남아있었다면 얼마나 귀중한 자료가 되었을까? 할아버지가 직접 쓰신 글이었다면 그 안에는 어떤 생각과 삶의 흔적이 담겨 있었을까? 그리고 나에게 왜 잘 간직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유언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은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 책은 이미 사라졌다. 딱지가 되어 아이들의 손에서 뒤집히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마침내 흔적도 없이 세월 속으로 흩어졌다.

 

그런데 그때 할아버지가 남겨놓았던 그 책들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한글을 알게 하였고 한글을 지켜갈 수 있도록 격려하기도 했다. 비록 책은 사라졌지만 그 책 속의 한글은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찢어진 책의 조각들이 내 가슴에 한글이라는 씨앗을 심어놓았다.

 

나는 딱지를 치고 돌아와 밤이면 늘 낮에 따온 딱지를 하나씩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열 개씩 묶고 스무 개씩 묶으며 숫자를 익혔다. 그것이 나의 첫 수학 공부였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딱지에 찍힌 글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글자는 무엇일까?”

 

궁금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라 글자에 대한 개념은 없지만 그래도 글자를 알고 싶었다. 아니, 한글을 배우고 싶었다. 그때는 시골에 전기도 없는 시기라 등잔불 아래에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어머니에게 졸라대기 시작했다.

 

“엄마, 이 글자는 뭐야?”

 

어머니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졸음을 참아가면서도 어린 아이의 꿈을 깨지 않으려고 하나씩 글자를 알려주셨다. 나는 신기한 마음에 밤 가는 줄도 모르고 묻고 또 물었다...

 

”엄마, 이 글자는 어떻게 읽어? 또 무슨 뜻이야?“

 

그때로부터 딱지는 나에게 더 이상 놀이가 아니라 작은 교과서가 되었다. 낮에는 딱지를 치고 밤에는 딱지를 세어보면서 수학공부를 했고 또 딱지를 풀어서 펼쳐놓고 한글을 익혔다. 딱지를 많이 따온 날에는 공부할 글자도 많아졌다. 나는 어린 시절, 학교도 가기 전이라 책을 살 필요도 없었고 책을 살 돈도 없었지만 할아버지가 남겨놓은 책과 딱지를 통해 한글을 만났고 또 한글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였다.

 

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한글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다. 책을 읽는 일이 즐겁기만 했다. 한번 책을 잡으면 쉽게 놓지 못했다. 책 속에는 내가 가보지 못한 넓은 세상이 있었고 만나보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진귀한 보물들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했던 동심에는 새로운 꿈의 삶이 있었다.

 

그래서 시간만 있으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여름이면 다락방에 올라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었다. 이렇게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는 장편소설만 네 권이나 읽었다.

 

또 책을 읽고 나면 친구들에게 책속의 재미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주위에는 늘 아이들이 많이 따라다녔다.

 

어린 시절, 나는 시골 학교에 다니다 보니 가끔 학교에서는 산에 올라가 약초를 캐는 일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아이들은 늘 내 곁에 모여들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줄거야?”

 

이때면 나는 신나서 읽은 책의 내용을 들려주었고 친구들은 이야기를 듣는 대가로 자신이 캔 약초를 내게 건네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만 그때 한글은 나에게 친구를 만들어주었고 세상을 넓혀주는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

 

나는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학교까지 십여 리 길을 걸어 다니던 시절, 한 여선생님은 늘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셨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할수록 선생님은 나를 더욱 귀엽게 여겨주셨다. 당시 선생님은 연길에서 하향한 지식청년이였었는데 저녁에 선생님이 계신 집체호를 찾아가면 선생님은 자신의 몫이었을지도 모를 커다란 빵을 내 손에 쥐여주셨다.

 

그 시절 빵 하나가 얼마나 귀했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빵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생님의 사랑이었고 할아버지에게서 받지 못한 따뜻한 손길을 대신해준 위로였다. 이후 이사를 가면서 나는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 그 선생님과 헤어진 뒤 다시는 소식을 듣지 못했지만 그날의 빵과 따스하게 잡아두시던 그 손길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소학교 4학년 때 만난 김호철 선생님은 나에게 한글의 기초를 단단히 세워주셨다. 선생님은 매일 칠판에 문법과 맞춤법에 대한 글을 써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공책에 옮겨 적으면서 맞춤법과 문법을 반복해서 익혔다. 당시 학습위원이었던 나는 선생님의 지도로 칠판에 직접 글을 쓰기도 했다.

 

처음에는 글씨가 비뚤비뚤했다. 그러나 매일 쓰고 또 쓰면서 글씨가 달라졌고 문장을 만드는 힘도 생겼다. 그때 나는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하고 끊임없이 연습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선생님은 나에게 한글에 대한 자신감과 책임감을 심어주셨다.

 

성인이 된 뒤 나는 교사의 길을 선택했다. 어린 시절 내가 받았던 한글의 기쁨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글을 읽고, 문장을 쓰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도록 가르쳤다. 처음에는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하던 아이들이 어느 날 문장을 또박또박 읽어낼 때면 가슴이 벅차올랐다. 한글을 가르치는 일은 단순히 글자를 알려주는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힘과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용기를 건네주는 일이었다.

 

교사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나 자신도 끊임없이 공부를 더 해야만 했다. 그래서 글을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신문사와 방송국에 글을 보내는 일도 잊지 않았다. 매번 내가 쓴 글이 신문에 활자로 찍혀 나오고 방송에서 목소리로 전달될 때면 뿌듯함을 느꼈다.

 

또 글쓰기 대회에도 참가했다. 그 결과 전국대회에서 다섯 차례 수상하는 기쁨도 누렸다. 상을 받을 때마다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등잔불 아래에서 어머니를 졸라서 글자를 읽히던 아이, 할아버지의 책을 찢어 딱지를 만들어 신나게 딱지를 치던 아이, 선생님 앞에서 서툰 글씨로 칠판을 채우던 아이가 어느새 글을 써서 상까지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다.

 

“할아버지, 제가 이제 글을 써서 상까지 받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남겨놓으신 책으로 한글을 배워서 말입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할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할아버지가 남겨놓은 책을 통해 한글을 만났고 그 한글을 통해 평생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세월이 흘러 지금 나는 한국에서 살고 있다.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모국에서 생활하면서 기쁨도 컸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우리말과 한글이 외래어와 무분별하게 섞여서 다뤄지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나에게 한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흔적이었고 어머니의 목소리였으며 선생님들의 사랑과 가르침이었다.

 

이후 나는 다시 한글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민족신문을 창간했다. 신문은 나에게 또 하나의 교실이 되였다. 한글을 바르게 사용하고 우리 민족의 문화를 알리고 정책과 사회의 변화를 전하며 재한중국동포들의 삶과 목소리를 기록하게 하였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재한 중국동포들이 낯선 환경 속에서 겪는 어려움과 희망을 세상에 알리고 필요한 정책과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에힘을 쏟았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로 쓰는 일, 보이지 않는 문제를 찾아내는 일,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일은 모두 한글을 통해 이루어졌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한글이라는 한 줄의 실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할아버지의 책에서 시작된 한글, 딱지를 세며 익힌 숫자와 글자, 어머니의 가르침, 선생님들의 사랑과 지도,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전하던 한글, 전국대회에서 다섯 차례 수상하며 확인한 노력의 결과, 그리고 한민족신문을 통해 이어가는 한글과 민족문화의 기록까지...

 

나는 할아버지의 책을 지키지 못했다. 그것은 평생 가슴에 남는 후회가 된다. 그러나 그 책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였다. 책의 종이는 사라졌지만 그 안의 한글은 내 삶 속에 남아 교사가 되었고 글 쓰는 사람이 되었으며 신문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야 나는 알 것만 같다.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가장 큰 선물은 책 자체가 아니었다. 그 책 속에 담긴 한글이었다. 나는 그 선물을 너무나도 늦게 알아보았지만 이제라도 다음 세대에 돌려주고 싶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책을 찢어 딱지를 만들었던 그 손으로 이제는 한글을 쓰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을 통해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 재한 중국동포들의 삶을 온 세상에 전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남겨놓았던 책은 이미 딱지가 되어 두들겨 맞고 밟히고 찢어져 사라졌지만 그 책 속에서 태어난 한글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것은 내가 평생 지켜야 할 빚이며 동시에 가장 자랑스러운 할아버지의 유산이기도 하다.

/전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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