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병원에 발을 붙이고 요양보호사로서의 삶을 살아온 지도 어느덧 1년반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있다.
돌이켜보면 날마다 챗바퀴 돌듯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계절이 어떻게 옷을 갈아입는지 명절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잊은 채 살아왔다.
세월의 흐름마저 잊게 만드는 그 치렬한 현장에서 우리들의 온 신경과 심혈은 오로지 환자들의 보살핌과 회복에만 쏠려 있었다.
병실 안의 시간은 바깥세상과 다르게 흘렀고 우리는 그 조용한 전쟁터 같은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함께 땀 흘리는 동료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말 못 할 사연과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어떤 이는 본인마저 심한 당뇨를 앓고 있으면서도 생계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환자를 돌보았고 어떤 이는 쓰라린 피부병으로 고생하면서도 결코 일선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운 몸을 끌고 타인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현실은 결코 녹녹치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우리에게 삶의 희망을 걸 수 있는 소중한 일터이자 더 나은 래일을 꿈꿀 수 있게 해주는 보람찬 삶의 터전이다.
그렇기에 동료들은 오늘도 밀려오는 피로와 역경을 마다하지 않는다. 저마다 가슴속에 '생존'이라는 절박한 카드를 차갑게 쥐여들고 지친 몸을 일으켜 고단한 인생 렬차에 다시 몸을 싣는 것이다.
그 누가 따뜻한 고향이 그립지 않겠으며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그립지 않겠는가
하지만 낯선 땅 낯선 병실에서 밤낮으로 환자들과 씨름해야 하는 간병사들의 말 못 할 고초를 곁에서 바라볼 때면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
저기 앉아 계신 아저씨만 해도 그렇다. 평소 같으면 아무리 피곤해도 결코 자리에 눕는 법이 없던 강직한 분이였다.
그런데 요즘 들어 기운이 부쩍 빠진 모습으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곤 하신다. 당뇨 합병증으로 엄지발가락에 생긴 염증을 치료하느라 수개월 동안 약을 붙이고 뜯어내며 소독을 반복해 온 세월이 얼마였던가.
제 몸 하나 돌보기 힘든 처지임에도 고향에 있는 동생의 입원비까지 대주어야 하는 그 무거운 어깨를 보면 보는 이들의 마음마저 시려온다.
게다가 담당 환자가 밤새 떼를 쓰며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 날이면 대낮에도 쏟아지는 졸음과 싸우며 눈꺼풀을 집어 뜯다싶이 해야만 겨우 견뎌낼 수 있는 일터였다.
또 어떤 분은 보름에 한 번씩 피부과를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하고 어떤 분은 극심한 관절통과 신경통을 견디지 못해 통증의학과를 제집 안방처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다. 또 어떤 이들은 매일 아침 주먹만큼의 혈당약과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으며 하루를 지탱해 낸다.
이 무정한 세월의 톱니바퀴 속에서 오직 생존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제 자신을 기꺼이 헌신하는 간병사들의 강인함과 끈기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질 수밖에 없다.
타인의 아픔을 받아내며 자신의 아픔은 뒤로 감추어야 하는 이 고단한 로동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묵직하고도 숭고한 헌신이 아닐가 싶다.
언젠가는 우리 조선족 동포들도 이 서러운 타향살이와 고단한 로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따뜻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오늘 밤도 차가운 병원 복도를 밝히는 옅은 불빛 아래서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채 환자의 곁을 지키는 우리들의 지친 등 뒤로 래일의 희망이 조금씩 밝아오기를 소망해 본다.
/소은 김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