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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03/07  소은 김순희
고향이 그리운것은

이 세상 누구나 고향이 그립지 않은 사람이 없을것이다. 그렇다. 그 누가 고고성을 울린 고향이 그립지 않으며 그 누가 자기가 태여나 자라난 고향이 그립지 않으랴. 나도 례외가 아니다.

 

나는 나의 고향을 몹시 사랑한다.
그것은 나의 고향이 나를 키워주고 나에게 살아갈수 있는 지혜를 키워주었기 때문이다.

 

나의 고향은 우아한 건물이 우중충 솟은 도시도 아니고 하늘아래 첫동네 두메산골도 아닌 평범한 평강벌이다.

 

나는 평강벌의 려과를 거치지 않은 생수를 먹으며 자라났고 평강벌의 논밭들을 자연경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수돗물이 아닌 우물을 지계로 메여다 음료수로 했고 오염없는 쑥나물이며 달래며 산속의 도라지나 더덕나물들을 캐여다 반찬으로 먹으며 살아왔다.

 

이렇듯 나는고향의 평범하면서도 아늑한 평강벌에 아지랑이 아물거리는 모양도 한눈에 알아볼수 있을 만큼 화창한 봄날의 그윽한 봄풀향기를 맡으며 살아왔다.

 

봄이면 풀피리 꺽어불며 친구들과 히히~호호~ 노래하며 살던 추억의 고향~그 고향이 그립기만 하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고향의 산과 들은 조각을 거친 인공미가 아니라 순수하고 청순한 자연미가 넘치는 추억의 고향이였다.

 

가을은 풍성한 열매로 평강벌을 가득채운 오곡백과 무르익는 풍년벌이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풍년수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던 수묵화같은 고향이였다.

 

고향의 겨울은 더욱 아름답다.

 

엄동설한의 추위에 마을의 온기를 느끼며 집집마다 문안을 다니며 노닐던 겨울,
감자엿이랑 찰떡이랑 먹으며 인정을 나누며 살던 그 시절의 추억들이 그리워진다.

 

집체농사영농법을 실시하던 시기 남녀로소 논밭에 들어서서 모내기타령을 부르며 모를 내던 기세드높던 평강벌이였다.

 

담배농사한다고 담배모를 옮기던 날 농민아저씨들의 재교육을 받던 옛이야기에 귀기울이던 모방학시간도 우리 소꿉친구들의 좋은 인생체험으로 되였다.

 

사람은 농업생산과 결합하여 농업생산실천속에서 단련받아야 한다는 기치를 높이 받들고 개혁의 길에서 자신을 단련하던 고향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주마등마냥 나의 뇌리를 스친다.

 

마을마다 거리마다 집집마다 4~5남매아이들로 흥성흥성하던 인정미 넘치던 고향이였다.

어느 누가 곤난에 처하면 사면팔방에서 도와나서던 인품좋고 인정많은 고향이였다.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는 생활실천속의 속담도 여실히 증명할수 있는 이웃간의 사랑과 정이 다분히 넘치는 인간관계 비록 부유하지는 않지만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기쁨은 두배되는 삶을 돈독히 할수있는 고향의 친구와 고향의 평민들이 그리워가며 오늘도 이렇게 피력해본다.

 

고향은 지금 시들어가고 있지만 오염이 없고 자연미가 넘치는 그 고향에서 자라던 그 시절의 즐거움과 행복함이 고향인민들에게는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을것이라고... ...


그런 고향이 나는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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