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 산중에 울울창창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산꼭대기는 희뿌옇게 발가벗은 기암절벽들이 험준한 산세를 드러내놓고 경의로운 모습으로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맞아요. 여기가 바로 제가 살고 있는 송림이예요. 우리 소나무선조들이 수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거쳐 이렇게 울창한 숲을 이루었어요. 바람이 불어오면 소나무숲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쏴쏴 소나무파도 松涛소리가 유명한 이곳이 바로 저의 고향이예요.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길섶에 우뚝 솟은 나는 커다란 두 팔을 벌려 불 같은 한낮의 태양을 가리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놓지요. 새끼를 데리고 지나가던 반달곰이 그늘아래에서 더위 식히며 놀다가 소나무껍질에 시원하게 등을 긁고는 떠나가지요. 맛나는 풀을 찾아 다니던 한 무리의 꽃사슴들도 찾아와 더위를 식히고 떠나지요.
“ 참 기특한 소나무네, 이렇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놓으니…”
“ 잘 쉬고 간다오. 고마워! ”
수없이 많은 등산객들이 지나가다 그늘밑에서 다리쉼을 하면서 쉬어가곤 했었다. 오손도손 오가는 길손들의 이야기를 통해 바깥세상의 소식을 들을 수가 있어서 좋았고 배낭을 메고 떠나는 등산객들이 무심코 던지는 칭찬 한마디가 참 좋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등산객들이 찾아와 짐을 풀어놓고 파란 잔디에 앉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 아이구 더워라, 좀 쉬였다가세. 영객송까지 갈라면 아직도 한참이나 더 올라가야 하오.”
“ 말 듣기로 산꼭대기에 있는 영객송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소나무라고 하던데? 나는 그 유명한 영객송을 보려고 10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여기까지 왔수다. 허허허! “
“ 그야 말하면 잔소리지, 절벽사이의 돌틈에서 위태위태하게 자란 영객송은 그 자태 또한 기가 막히게 아름답지뭐! 만나서 반갑다는듯 두팔을 쩍 벌리고있는 모습이 우아하다고 해야 더 알맞을 것이네! ”
발치 아래에서 퍼드러져 쉬였다 가는 등산객들이 하나같이 산꼭대기의 영객송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니 나로서는 기분이 좋을 리가 만무했다. 묵묵히 등산객들을 위해서 비를 막아주고 불 같은 뙈약볕을 막아주었는데 칭찬을 엉뚱한 놈한테 하다니 나의 속은 시꺼멓게 타들어갔지요.
등산객들은 시원하게 다리쉼을 하고는 한눈 주지 않고 곧바로 영객송이 있는 산꼭대기로 향했다. 가파른 산길을 톱아 올라서 끝내 산꼭데기에 도착한 등산객들의 환호소리가 귀가 거슬리게 들려오고 영객송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 유명한 화가도 영객송을 화폭에 담으려고 이 험난한 산길을 걸어왔었다.
시기심의 작간이라고 할까 자존심이 몹시 상한 나는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 아들아,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보이니? ”
“ 어머니, 나는 등산객들을 위해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었지만 그들은 나에게 추호의 관심도 없어요… 왜 사람들은 키가 크고 웅장한 나를 본체만체하고 저 벼랑끝의 돌틈에 자란 보잘것없는 영객송을 그렇게 흠모하고 사랑하는지요? 너무나도 분하단 말이예요...흑흑흑 ”
어머니의 따뜻한 위로에 결국 참았던 울분을 터뜨리고 말았다.
“ 아들아, 사람들이 왜 영객송을 그렇게 사랑하는지 생각을 해보았니? ”
울다말고 나는 눈물이 글썽해서 어머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 사람들은 온실에서만 자란 화초보다는 곤경속에서 모든 풍파를 겪고 억척같이 살아남은 영객송의 강인함에 감명을 받아서 그렇게 사랑을 하고 존경을 하는 것이야! ”
어머니는 아슬한 벼랑 끝에 의젓한 자태를 뽐내며 오가는 등산객을 맞이하는 영객송을 자애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 아들아, 어머니가 저 영객송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마. 잘 듣거라 ”
어머니는 비장한 마음으로 아들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 잘 듣거라 사랑하는 아들아, 저 산꼭대기에 만인의 추종과 사랑을 받고 있는 영객송은 바로 너의 형님이란다. 한날한시에 이 엄마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너와 같은 핏줄이란다. ”
잔잔히 이야기를 하던 어머니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였고 두눈에서는 무엇인가 반짝이였다.
“ 아마 수십년전의 일일 것이다. 그날도 산기슭에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있었지, 이 때가 바로 우리 소나무들이 솔방울을 터뜨리고 씨앗을 날려보내며 번식하는 좋은 계절인 것이야, 어머니도 가슴 속에 꼭 품었던 소중한 너희들을 바람에 태워 훨훨 멀리로 날려 보냈었지.”
“ 잘 가거라 사랑하는 내 새끼들아! ”
“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의 그 따스한 품을 잊지 않을게요”
“ 어머니 걱정 말아요! 어디에 가서든지 꼭 잘 살게요”
무수한 씨앗 형제들이 따사로운 어머니의 품을 떠나 하늘 공중으로 훨훨 날아갔었다.
“ 모두가 그렇게 엄마의 품을 훌훌 떠나갔지만 너만은 이 엄마가 외로울까봐 멀리로 가지 않고 바로 엄마 곁에 자리잡아 싹 틔우고 이렇게 어엿한 소나무로 장성한 것이네!”
어머니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자애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차, 이것을 어쩌면 좋아요?!
바람타고 훨훨 날려가던 형님이 불행하게도 산꼭대기 벼랑끝의 돌틈사이로 떨어지고 말았지요.
형님이 떨어진 곳은 아주 척박한 곳이였지요.
싹을 틔울 비옥한 흙도 없었고 충분한 수분도 없는 그런 악렬한 환경이였지요.
“ 어머니, 어쩌면 좋아요? 여기에 발딛일 틈도 없어요,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예요!”
곤경에 처한 형님은 어쩔바를 몰라 울상이 되여 산아래에 있는 어머니를 향해 애타게 구원을 청했지요.
“ 사랑하는 아들아, 마음을 굳게 먹고 악착같이 살아 남아야 하느니라. 이 엄마가 여기에서 응원을 해주마! 꼭 이겨내야 하느니라! ”
이렇게 형님은 아슬한 벼랑끝에서 아침 이슬을 받아 먹으며 간신히 싹을 틔우고 뿌리를 돌틈사이로 깊숙이 박으며 악착같이 살아 남았었다.
“ 참 장하구나! 아들아 ”
이렇게 형님은 어머니의 고무와 격려하에 척박한 벼랑 끝에서 위태롭게 자리를 잡고 작은 소나무로 자라났지요. 영양실조로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고 갸나린 모습으로 벼랑 끝에서 허우적거리는 아들을 보자니 어머니의 가슴속이 연탄처럼 까맣게 타 들어갔지요.
그러던 어느 하루였지요.
온화하던 하늘이 갑자기 바람이 휘몰아치고 소낙비를 억수로 쏟아부었지요. 산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빗바람은 연약한 영객송을 사정없이 흔들어 댔고 의지할 곳이 없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아 위태했지요
“ 어머니, 여기 산꼭대기에 바람이 너무나 커요! 뿌리가 얕아 막 날려 갈 것만 같아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흑흑!”
“ 정신을 바짝 차리거라 아들아, 이럴수록 침착해야 하느니라! 뿌리로 돌 틈새를 꽉 붙잡거라 그리고 몸을 바위에 바짝 붙이거라 그러면 좀 나을것이야…악을 쓰고 버텨야만 살아 남을수 있느니라! ”
광풍속에 해메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직 휘몰아치는 빗바람이 조금이라도 작아지기만을 멈추기만을 간절히 기도할 뿐이였다.
끝내 악몽 같은 폭풍이 잠잠해지고 소낙비도 그쳤다.
비온 뒤의 하늘은 더없이 높고 푸르렀고 청신한 공기는 답답한 가슴을 확 틔여주었다. 저 멀리 산꼭대기에는 무지개가 아름다게 걸려 있었다.
여기저기에서는 산새들의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들려오고 풀숲에서는 베장이와 찌러르기의 울음소리가 귀맛좋게 들려왔다.
아들이 있는 절벽에는 아직도 조용하였다. 어머니는 걱정어린 눈빛으로 벼랑 우를 바라보며 애타게 불렀다.
“사랑하는 아들아, 괜찮니?”
벼랑 끝은 너무나도 조용하였다.
“ 사랑하는 아들아, 대답을 해보거라! 이렇게 엄마가 애타게 찾고 있잖아!…”
“ 엄마, 저 여기 있어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들소나무가 돌틈사이로 얼굴을 삐꼼 내밀고 어머니를 보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 어머니, 저 잘했지요? 어머니 말씀대로 돌틈을 단단히 부여잡고 몸을 바위에 바짝 붙이고 빗바람과 싸워 이겼어요.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호호호 ”
“ 어이구 살아 있었구나, 참으로 장하구나 내 아들아! 이 애미는 굳게 믿는다. 앞으로 더 큰 고난이 닥쳐와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
어머니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쉬면서 아들을 격려해주었다.
“ 너의 형님은 악렬한 환경에서도 남을 탓하지 않고 그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적응하면서 이렇게 당당히 살아남았었지! 어머니로서도 영객송의 강인한 생명력에 심심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네! ”
“ 영객송의 불굴의 의지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였고 지금까지도 뭇사람들이 찬양하고 추앙하기 때문에 험난하고 먼길을 마다하고 이렇게 영객송을 찾아오고 있단다!”
영객송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가소로운 나의 행실에 한없이 부끄러워났으며 만인의 사랑을 받는 자랑스러운 형님이 있다는 것이 가슴이 뿌듯하였다.
나는 눈물이 글썽해서 불모의 바위틈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 어엿한 자태를 뽐내는 영객송을 높이높이 바라보았다.
/리한택
http://www.hmzxinwen.com/news/28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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