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길림성 동남부에 위치하여 백두산 푸른 림해를 사이두고 있어 그야말로 산수가 풍부한 살기 좋은 고장이다. 하지만 오늘은 내 고향의 교통수단인 고속도로에 대하여 우선 먼저 소개하려고 한다.
여러분들은 다 알다싶이 요즘들어 인민들의 생활수준이 급속도로 발전해 감에 따라 집집마다 자가용차들이 득실거리는 세월이여서 목적지가 어디든 금방 달려 갈수 있는 교통수단--그 수단이 훌륭하다면 넘나들지 못할 산이 없으며 올라보지 못할 명산이 없는 것 이다.
나는 여행자의 일원으로 장백산 북부지역에 위치한 이도백하를 찾았다.
오전 9시 쯤에 떠나 10시반 쯤이면 곧 도착할수 있는 명승지 이도백하는 반드시 고속도로를 이용해야만 갈수 있는 오늘의 여행일정이다.
화룡시 오명탄광으로 가는 길어구에 들어서면 평평하고 매끌매끌하며 반들반들한 도로가 한눈에 안겨온다.
차바퀴가 사르르 구을러가며 달리는 기분은 무척이나 신이 난다.
길 량켠에는 나무들이 우거지고 안전을 고려하여 만들어 놓은 녹색의 난간들이 울바자처럼 나란히 줄지어져 있어 얼마나 아름답고 정연한지 마음마저 개운한 기분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금방 첫번째 터널에 들어섰다. 천이백미터를 조금 넘어가는 터널이 한눈에 안겨오는데 터널안은 황홀한 등불들이 길을 안내하며 앞을 환히 밝혀준다.
어둠을 뚫고 나와서 이번에는 또 다른 두번째 터널이다. 이천칠백미터를 운행하여 넘어야 하는 터널은 좀 지루한 느낌이다.
계속 달려서 세번째터널에 들어서니 오천미터를 넘어서인지 많이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터널의 우아한 등불이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차들로 하여 터널안은 매양 황홀한 느낌이다.
네번째 터널도 천미터를 좀 넘기지만 훌륭한 도로요충지였다.
이런 터널들이 있었기에 옛날이면 서너시간 달리던 장백산을 요즘은 두 시간남짓하면 도착할수 있는 도로요충지가 생겨나서 많은 백성들의 편리를 도모해준다.
고속도로는 도시화건설에 일정한 발전을 가져다 준다는 표징이기도 하다.
요즘 연길시에 일억에 가까운 많은 손님들이 모여드는 것도 바로 이 도로를 사용하기 때문인것이다.
이렇게 네개 터널을 지나면 곧 이도백화어구에 이르게 되는데 다음은 이도백화 삼림공원풍경구로 들어가 보자.
우리는 천천히 검사짬을 빠져 나와 백두산하의 이도백하에 도착했던 것 이다.
마을어구에 도착하니 삼거리 오거리들로 어디가 들어오던 입구이며 어디가 빠져나가는 출구인지 전혀 감을 잡을수가 없다.
도로 주변에는 소나무며 이름모를 나무들을 심어 녹화를 했는데 하늘을 찌르고 선 미인송들이며 소나무들이며 이깔나무들이며 홍송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서서 여간 아담하고 청신하며 오붓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한 골목을 찾아 차를 세우고 삼림공원을 찾았다.
삼림공원에는 깊지도 넓지도 않은 맑은 물이 조잘조잘 흐르는데 사랑을 속삭이는 쌍쌍의 원앙새들이 유유히 물우를 헤염치며 재롱을 부리고 있다. 어떤 원앙은 숲을 찾아 몸을 숨기며 여간만 분주히 드나들지 않는다.
푸르른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며 선곳에는 약삭빠른 다람쥐들이 소나무우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재롱을 부린다.
땅에는 먹이 사냥에 나선 다람쥐가 오똑 일어서서 두 눈을 굴리며 바지런히 두손으로 먹이 장만에 분주하기도 하다.
삼림공원에는 또 개구리의 동상을 백강으로 만들어 전시한곳도 있었는데 아마 물많은 산지여서인지 개구리를 전시했나 본다.
이외에도 알록달록 발랑개비로 세찬 바람타고 부지런히 회전할수 있는 인공선풍기를 만들어서 삼림공원은 더욱 화려하였다.
자갈로 뚝을 쌓아 동상을 만든 조각도 유난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간간이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비였다.
삼림공원근처에는 온천도 있어 한번쯤은 향수도 누려 볼만한 곳이였다.
예서 한시간 쯤 더 달리면 백두봉에 오를수 있는 고장인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고속도로를 리용하여 삼림공원구경을 끝내고 귀로에 올랐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돌아오는 우리들의 기분은 한결 상쾌하면서도 개운해났다.
우리는 또다시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네개의 길고 짧은 터널을 지나 집으로 향했다. 고향의 변모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더없이 기뻤다.
앞으로 우리는 이 고속도로가 있어서 산수가 좋은 고장을 찾아 갈수가 있어서 더욱 행복한 생활을 누릴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은 마냥 기쁘기만 했다.
/김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