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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6/15  민성
[장편소설] 졸혼 (10)

17. 안개 속 자매

주방에서 정호가 밥을 짓느라고 덜커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더러운 놈, 누굴 또 얼리려고? 흥!)


순정은 온밤 뜬눈으로 새웠다. 해가 서너발 떠서야 간신히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눈이 퉁퉁 붓기잖았겠는가. 이제껏 위선자한테 속히워 산 것 때문에 속이 여간 쓰려나지 않았다.


그녀는 세면실에 들어가 대충 세수를 하고 옷장부터 들췄다. 옷장에는 백화점 진렬장을 방불케 명품옷들이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학생시절에 정호가 영희한테 원피스를 사줬다고 그녀가 야단쳤다. 그러자 정호는 진짜 그녀에게 “천개, 만개 사주겠다.”던 약속대로 한평생 숱한 명품 옷을 사주었던 것이다.


순정은 백화상점 매장 진렬장 같은 옷궤를 열고 숱한 옷을 와락와락 헤치다가 슬그머니 성이 꼭두까지 치밀었다. 명품옷들은 거개가 정호가 어디를 유람가거나 그녀를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사준 것이었다. 그러나숱한 화려한 옷을 보는 순간 그 옷들은 정호한테 얼리운 자기를 비웃는 상 싶었다.


(이 숱한 옷은 저 놈이 바람 피우고 나를 얼리려고 사준 것일 수도 있어. 그럼 이 숱한 옷은 몽땅 저 놈이 바깥에서 바람 피운 사기기념품이아닌가.)
순정은 발길질로 옷을 마구 걷어찼다. 옷장에서 옷을 와락와락 꺼내 구들에 훌훌 줴뿌렸다.


“아니, 왜 이러오?”
정호가 앞치마 바람에 옷방에 뛰여들어왔다.
“마음에 안 드오? 우리 사랑하는 황후님, 오늘명품옷 사줄게.”
순정은 번대머리만 봐도 메스꺼웠다.
“그래, 어제 바람 피운게 오늘 옷을 또 사줘야지.”


이전에도 그랬다. 정호는 전날 밤에 바깥에서 아가씨들과 질탕하게 놀고는 이튿날에 꼭 순정한테 백화상점에 데리고 가서 명품옷이나 명품빽을 사주고 얼리군 했다.


그러나 오늘은 수가 잘 들지 않았다. 번대머리는 우먹한 실눈으로 가슴츠레 쏘아보다가 헤벌쭉거렸다.
“무슨 소리? 증거도 없이 의심하지 마오. 아침부터 재수 없이. 흥!”
“지하주차장에서 영희하구 뭘 했니? 당장 리혼하자.”


“허허. 영희를 집에다 데려다 주고서도. 이건 좋은 일 하고 의심받네. 정말 억울하다.”
순정은 번대머리 멱살을 틀어쥐고 고함쳤다.
“로실히 말해. 어제 지하주차장에서 영희를 재꼈지?”


“무슨 소리오? 영희 뭐랍데?”
“이걸 봐, 탄로날가 봐 무섭지?”


번대머리는 버릇처럼 이마에 흘러내린 몇가닥 밖에 없는 머리카락을 뒤로 훌 빗어넘겼다.
“리혼하더라도 내 성의를 다해 손수 지어놓은 아침밥이나 먹고 가기오. 최후의 만찬은 아니지만.”
“흥! 누가 너하고 밥 먹는다 해.”


정호는 아무 옷이나 주어입고 문을 나서는 순정을 붙잡았다.
“황후님, 어디로 가오?”
순정은 정호의 손을 활 뿌리쳤다.


“이걸 놔! 어디로 가든 상관은? 넌 바람둥이, 사기군이야. 배신장야! 한평생 날 입으론 '황후님', '황후님' 하면서 날 속이고 얼리고 사기쳤어. 이젠 꼬리를 단단히 밟힌줄 알아라! 내 입이 터지면 넌 중혼죄, 탐관오리 죄로 지옥살이 할줄 알아라!”


정호는 억울한 척하며 입을 딱 벌렸다.
“아니, 이건, 진짜 생사람 잡는구나."
순정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겁을 줘야 했다.


"내가 탐관이면 넌? 내 준 돈으로 숱한 금은장신구와 명품패션으로 온 몸을 번쩍번쩍나게 장식했잖아. 우린 한 배를 탄 황제와 황후야. 알만해? 내 감옥에 가면 너도 편하진 못할 거야. ”
순정은 홱 돌아서며 쌍까풀눈을 부릅뜨고 번대머리를 무섭게 쏘아보았다.


“탄백해! 영희하구 몇번 살았는가?!”
정호는 주먹으로 옷장을 툭툭 쳤다.
“이거 절말, 버선목이라고 번져 보이겠는가.”
“당장 리혼하자.”


“리혼하자면 못할 거 같애? 난 약속 지켰다. 애도 낳지 못하는 어애를 한뉘 데리고 산게 머저리지.”
“가만 보니, 날 사랑한게 아니구나. 아빠 지위를 보고 정치결혼한 거지?”
“우리 충주 최씨 씨를 말렸잖았느냐? 잔소리 말라. 애를 낳지 못하는 죄 무슨 죄인지 알아?”


“뭐라고?”
“칠거지악이야.”
“생전 듣다 처음 듣는 죄목이로군요.”


“고대로부터 말하는 7가지 죄악 가운데서 애를 낳지 못하는 죄는 젤 큰 죄악이야.”
“한뉘 널 하느님 모시듯 했건만 죄만 지었구나. 아이구, 내 팔자야, 내 인생아!”
순정은 구들바닥에 펄렁 물앉아 구들바닥을 치면서 대성통곡쳤다.


“한뉘 널 하느님 모시듯 했건만 죄만 지었구나. 아이구, 내 팔자야, 내 인생아!”
그녀는 눈물범벅이 된 쌍까풀눈으로 정호를 치켜보며 넉두리를 했다.


“애를 낳지 못한게 다 내 혼자 탓인가? 네놈 그게 너무 커서 몇번이나 자궁까지 터져 놓았는가! 수술실에 가서 기워맸으니 그렇지 죽었을 거야. 몇번이나 궁외임신시켜놨는가. 제 재간 없어 바깥에 붙여놓아 그렇지.”
정호는 살기등등해 콧방귀까지 뀌었다.


사실 순정의 말처럼 궁외임신을 수술한 후 다신 임신되지 않았다. 중약으로 궁외임신한 걸 없앨 때에는 온 몸에 자주색반점이 무섭게 돋았다.
그때 일을 생학하면 순정은 악이 딱딱 났다.


“지금 와서 애를 낳지 못한게 다 내 죄라고? 무슨 칠거지악?
순정은 눈물을 씻으며 행악질했다.


“당장 리혼하자!”
정호는 살기등등해 콧방귀까지 뀌었다.
“리혼하겠으면 하자. 네 없으면 녀자 없을 거 같아? 흥! 너보다 퍽 젊은 미녀를 얻어 애를 한드럼 팡팡 낳으면서 알콩달콩 살테야.”


순정은 악이 치받쳤다.
“지금 날 기를 채워 주는가?”


그녀는 너무 분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대성통곡쳤다.


“너와 약혼하기 전 점쟁이가 널 녀자복이 있다더라. 네놈 이마에 난 짐을 보고 널 바람 피울 남자라더라. 난 그래도 선생님이라고 믿고 이날 이때까지 살았다. 선생님이라고 어린 나이에 네놈 색마한테 얼리워 산게 한이다. 억울하다. 아이고, 울 아버지, 저 놈 보세요. 어떤 놈인가. 어쩜 저런 놈 소박치 간파 못하고 한뉘 얼리워 살게 놔뒀습니까? 아이고, 원통해라.”


순정은 문을 박차고 바깥에 나왔다. 뒤에서 뭘 집어던지는 소리 났다.
왈가당 뎅그랑.


순정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주차장에 들어갔다. 순간 전날 밤에 년놈들이 희희닥거리던 소리가 들리는 상 싶어 한없이 괴로웠다.


“저 년놈들이 내 모르게 암암리에 질탕하게 놀아댔잖았을까? 암캐 꼬리를 치지 않았으면 어떻게 수캐 접어든단 말인가?”


순정은 슬그머니 영희가 괘씸해났다.


“영희야, 어쩜 마지막까지 라이벌이 되니? 자매간에 계속 질투하고 경쟁하기 싫어 난 문화관에 가구. 아버지하구 말해 널 시가무단에 보내주지 않았니? 그 덕분에 넌 무대에 올라 인기무용수로 보름달처럼 떠오르지 않았니?”


그녀는 차고에서 차를 몰고 YB 병원 종양과로 달려갔다. 영희를 문안할 겸 안개 속 같은 어제 일부터 모든 걸 따지고 싶었다.


(정호, 그 놈새끼, 항상 제 덕분에 영희 가무단에 갔다면서 영희 은인으로 자처하며 으시댔지. 괘씸한 놈, 모르지. 은혜를 베푸는 척하며 영희를 나꿔챘는지 알 턱이 뭔가?)
빽-
그녀는 오디차를 큰길 옆에 급정거했다.


(리혼하기 전에 저금카드와 금은악세서리를 몽땅 감추자. 그 놈 색마를 쫄딱 벗겨 알거지로 만들어 내쫓아야지. 색마놈이 먼저 손 써 어느 갈보년한테 가져다 주면 어쩌지?)
그러나 인차 생각을 바꿨다.


(아직 영희하구 산 증거를 잡기 전에 경거망동하지 말자. 영희하구 먼저 모든 걸 알아본 후 손 써도 늦지 않아.)
그녀는 착잡한 생각에 잠긴 채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핸드폰을 꺼내 보안일군한테 건강증명단과 통행증을 확인받은 후 주원처 병실에 들어갔다.


간호원한테 물어서 영희가 입원한 병실을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그녀는 영희를 보면 단단히 따지려고 들었다. 하지만 정작 사형선고를 받고 시들어가는 영희, 초췌한 녀동생의 길죽한 얼굴을 보는 순간, 격분한 감정은 봄눈이 녹듯 사르르 사그러들었다.


(한 핏줄을 타고난 자매 돼서 이럴가? 칼로 베도 상처도 서서히 아물어드는 게 혈육의 감정이 아닌가?)
그는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영희를 부축해 눕히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영희, 어쩜 이런 몹쓸 병에 걸렸니? 흐흐흑, 흑흑.”
영희도 눈물을 흘리며 순정의 손을 꼭 잡고 어깨를 들먹였다.
“근심하지 마오. 언니, 난 애들을 두고 죽을 수 없소.”
순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넌 죽지 않아. 치료신심 가져라. 꼭 살아날 수 있어.”
그때 의사가 들어왔다. 순정이 피뜩 명찰을 보니 과주임 황선희 주임의사라는 글이 박혀 있었다. 영희를 잘 치료해달라고 정호가 황선희 주임의사를 불렀던 것이다.
순정은 의사가 환자를 다 돌아보고 병실에서 나가자 문 밖에 따라 나갔다.
“선생님, 영희 병세 어떤가요?”


황선희의사는 자기 앞에 선 녀자가 정호, 최국장의 안해인줄은 전혀 모르고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물었다.
“환자와 어떻게 되는 분인가요?”
“사촌자매간인데요. 친 형제자매 없다나니 친 자매와 같아요.”


“네-”
황선희 의사는 머리를 끄덕였다.
(정호씨 안해구나. 요렇게 이쁜 안해를 두고 바깥에서 바람 피워?)
황의사는 순정의 처지 측은해났다.


그녀는 순정을 조용히 의사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황선희는 언니 지도를 받고 괘씸한대로 원장을 물어먹지 않고 모든 것을 덮어감추고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고 했다. 그 덕분에 일본까지 류학 가서 의학박사로 됐고 병원에 돌아와 종양과 주임으로 됐다. 그녀는 재간과 능력도 있어과외로 개인 성형미용병원도 차려놓고 기업가남편과 함께 꽤나 부유하게 살고 있었다.


황선희박사는 서류철에서 환자서류를 꺼내 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영희환자 암증세 중해요. 병력을 보면 상해에 있을 때 최초에는 유방암에 걸렸는데요. 유방암 말기에 페와 간, 대장 어데라없이 암바이러스가 퍼졌습니다. 심지어 자궁에까지 암세포가 들어갔습니다. 어제 PCR검사를 했는데요. 결과 나올 겁니다. 상해에서 온 환자와 거리를 두고 주의하세요.”
“아니, 상해에서 올 때 비행장에서 검사하지 않았는가요?”


“검사했지요. 아무리 음성으로 나와도 이번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해요. 비행장 내에서 감염될 수도 있고 하루 새에 잠복했던 코로나바이르서가 뛰쳐 나올 수도 있지요.”
“네-“
순정은 생사선에서 헤매는 영희가 불쌍했다.
“황선생님, 꼭 저의 녀동생을 살려 주세요. 네? 은공을 꼭 갚아드리겠습니다. 저의 남편이 국장입니다. 뭐든 수요되면 부탁하세요. 다 잘해드리겠습니다.”


순정은 손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상품권인데요. 부탁드립니다.”
“이러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의사사무실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황박사는 사양했다.
그녀는 국장의 안해를 다시 찬찬히 뜯어보았다. 진짜 아직도 보름달처럼 아름답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러지 않아도 살릴만 하면 살리지요. 우리도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환자 병세가 너무나도 중해요. 로실히 말씀드리지만요. 이젠 가족에서 환자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좋을 상 싶습니다.”
그 말에 영희는 그만 참던 오열을 터뜨리고 말았다.


“영희야- 이 일 어쩌니? 어쩜 이런 몹쓸 병에 걸릴 때까지 치료하지 않았니? 아무리 손자들 중해도 어쩜 이렇게 아픈줄도 몰랐니? 흐흐흑, 흑흑,”
“이러지 마세요. 환자 심리건강에 나빠요.”


영희는 머리를 끄덕이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 의사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는 영희한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참 복도에서 조용히 어깨를 들먹이다가 병실로 다가갔다.
순정은 영희 손을 꼭 잡고 물었다.


“군철이랑 지혜랑 이렇게 앓는 거 아니? 이럴 때 그래도 와야지.”
영희는 대수로워하지도 않았다.
“걔들이 언제 오겠니? 내 병도 중하지 않은데. 황박사 그러던데 치료하면 인차 낫는다데.”
순정은 영희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응, 그래. 꼭 나을 거야.”
“언니, 울지 마. 난 꼭 살아서 애들을 키울테야.”


“그래. 손자들 자애로운 할머니를 얼마나 보고 싶겠느냐? 넌 손자들 근심하지 말고 푹 쉬면서 병치료나 잘해라.”
“오늘도 방사성치료를 받았다. 진짜 힘든다. 신체 받아당할 거 같잖아.”


“그래도 뻗쳐야 해. 삶의 용기를 가져야 해. 치료신심이 있어야 병도 낫다고 해.”
영희는 그렇게 아프면서도 걀쭉한 얼굴에 인상좋게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지금 약이 좋아서 꼭 치료할 수 있을 거야.”
순정은 눈물을 훔치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꼭 신심을 가져라.”
순정은 한참 위안하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영희 정호의 모든 비밀을 가지고 이 세상을 훌 떠나가버리면 어쩌는가. 정호와 영희가 그런 일 있었는지 알아내야지.)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영희 손을 꼭 잡고 무거운 입을 뗐다.


“영희야, 우린 한 피줄을 타고난 자매야. 우린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친 자매 아니고 뭐야.”
“그렇지. 난 한평생 큰아버지와 언니 신세를 많이 졌지. 형부 신세도 많아.”
그 말에 순정은 대뜸 언성을 높였다.
“형부 그놈새끼 말은 하지도 말라.”


중환자 구급실이기에 옆에 환자가 없어 다행이었다.
“어째 형부하고 다퉜소? 그러지 말아. 날 봐라. 무슨 꼴이 됐는가.”
순정은 단통 소리 질렀다.
“넌 리혼 잘했어.”


“아니, 무슨 말? 리혼하니 보오. 이렇게 앓아도 옆에 밥 타다줄 나그네도 없잖아. 평소엔 남편이 중한줄 몰랐는데 앓을 땐 고독해.”
영희는 그 말을 받아들을 겨를이 없어 단도직입했다.
“한가지 묻자.”
순정의 표정은 자못 엄숙했다.


“뭘?”
순정은 영희를 똑바로 마주 보며 물었다.
“어제 저녁에 정호 비행장에 마중 나갔댔지?”
“응, 그래.”


“아무 일도 없었니?”
순간 영희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얼굴이 백지장처럼 됐다. 뒤이어 귀밑까지 새빨갛게 붉히며 천천히 입을 뗐다.
“없었다.”
“거짓말.”


순정은 뒤로 물러앉으며 영희를 쏘아보았다.
“뭐 어쨌단 말이냐?”


영희도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 날랜 동작을 보면 환자라고 하기도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제대로 다 말해라. 어제 지하차고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 보았다.”
“뭘 그래? 너 정말 의심도 많구나. 앓아 죽어가는 사람 보고 이게 뭐냐?”
영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언니, 오해하지 말라. 형부 그럴리 있니? 그저 마중 나왔다가 언니네 집에 올라가 밥 먹고 가라고 했을뿐이야.”
“그저 그거냐? 밀고 닥치며 아우성소리 나던데?”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형부 오랜만에 만났다고 내 안 올라가겠다 하자 마구 끌고 가려고 했을뿐이야. 만약 형부 못난 짓을 하려고 덤벼들어도 내가 용서할 거 같애?”
그제야 순정은 영희를 와락 끌어안고 가녀린 잔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영희야, 자매지간에 속일게 뭐 있겠느냐?”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정호를 의심하게 된 과정부터 엊저녁에 지하주차장에서 본 일도 쭉 얘기해주었다.
“형부, 이제껏 정말 너한테 치근거리진 않았니?”
영희는 한숨을 호- 내쉬었다. 마음을 좀 열었다. 하나 밖에 없는 언니한테 살짝 속심을 터놓았다. 기왕 언니가 의심하기에 그쯤은 말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언니도 알지만. 정호 선생은 우리 둘을 다 좋아했잖아. 어떻게 말할가? 이렇게 말하면 언니 성내지 말라.”
“솔직이 말해라. 절대 성내지 않으마.”


순정은 뭐든 받아들일 모양으로 걸상에 물러나 바로앉아 영희 조개턱과 앵두입만 쳐다보았다.
영희는 정기 없는 눈길로 순정을 힐끔 곁눈질해보고는 머리를 푹 숙였다.
“정호선생은 최초엔 언니나 날 다 사랑했잖고 뭐야? 어떻게 보면 언니하구 날 량손에 쥐고 어느 떡이 더 맛있겠는가 했지.”


순정도 동감이 갔다.
“그래. 그랬지.”
영희는 담을 키워 뒤를 이었다.


“그렇지만 시당위 서기를 하는 큰아버지를 보고 언니를 택했을 수도 있지. 날 문걸한테 소개해주기도 형부는 아쉬웠을 수도 있어. 그러나 형부는 날 다친 적은 없어. 간혹 술 마시면 옛날 말을 했지만 내 몸에 손을 댄 적은 없어.”
영희는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앵두입에 빗장을 찌르고 말았다.


“거짓말! 못된 년, 네 말하지 않으면 모를 거 같애?”
순정은 이렇게 콱 쏴주고 싶었다. 그러나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가까스로 참아냈다.
“얘야, 네 말 믿는다. 내겐 부모와 삼촌 다 돌아가고 친혈육이라고는 이젠 네 밖에 없다. 널 믿지 않으면 이 놈 허위로 꽉 찬 세상에서 누굴 믿고 살겠느냐?”


그녀는 자기 입을 믿기 어려웠다. 용케도 돌려댔다. 자매간의 관계를 위해 선의적인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영희, 용서해라. 중병에 앓는 네한테 못할 말 했구나. 다 내 잘못이야.”
영희도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용서는 무슨 용서까지. 우리 자매지간에 무슨 말인들 못하겠소. 나도 언니한테 미안한 일 많소.”
순정은 영희한테 다가앉으며 보름달얼굴이 대뜸 불그락푸르락해 물었다.
“그래, 언니한테 미안한 일 있어? 이제라도 제대로 말해라. 정호 널 재꼈지? 몇번 재꼈니?”
“아니, 덤벼들어도 내 놔두겠소?”


“그래. 넌 아주 잘했어. 그저 들이대면 안돼. 그 색마, 악마한테우리 자매 몽땅 당하겠니?”
영희는 순정의 손을 꼭 잡고 정색했다.
“세상에 어디 비밀이 있다구. 내 언닐 속이겠니?”
순정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으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영희한테 당했는가고 직방 묻는 것도 우습지. 아무리 믿는 사촌자매라도 그렇지. 그 놈새끼한테 당했더라도 당했다고 말할 머저리 어디 있겠는가.)
순정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격분해났다.


“내 그 놈하구 당장 리혼해야겠다. 쫄딱 벗겨 알거지로 만들어 내쫓지 않는가 봐라.”
영희는 손사래쳤다.
“언니, 리혼은 무슨 리혼이야? 이전엔 내 리혼하겠다고 하니 너네 부부 밥곽을 사고 나서서 말리더니. 이젠 언니 리혼이오? 보오. 내 리혼하고 무슨 꼴이 됐는가. 앓아도 병뒤시중을 할 사람도 없소.”
순정은 성난 나머지 아무 고려도 하지 않고 마구 내뱉었다.
“내 하면 되지.”


“너무 성내지 마오. 성이 가라앉은 후 재삼 생각해보오. 이전에 언니 하던 말이 지금에야 옳다는 게 새삼스레 생각되오. 우리 나이에 리혼은 무슨 리혼이오? 좀 심중하게 생각하는게오.”
순정은 오래 생각해둔 것 같았다.


“나도 쉬어빠진 이 나이에 어진간하면 리혼하자 하겠느냐? 정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색깔이야. 그간 계집년들을 얼마나 재꼈는지도 몰라.”
안개 속 같은 이 시각 그들 자매는 말이 한곬으로 흘러가지 못했다.
영희는 기침을 콜록콜록 깇더니 진심으로 언니한테 권고했다.


“어니, 형부를 너무 의심하지 마오. 글쎄 훌륭한 남편은 아니더라도 좋은 스승 아니오? 우릴 그래도 예술학원에 뽑아다 가무단 무용수로 양성하지 않았소. 최스승님을 모시면서 우린 무용예술이 뭔지 눈을 뜨잖았소?”
“헛소리 작작 해라. 그 놈새끼 누구 덕에 무용교원으로부터 문화국 국장까지 됐는데.”
“언니, 내 말 듣소. 정호선생이 작풍문제 있었다면 어떻게 국장까지 됐겠소? 문제 있으면 진작 감옥에 가지 않았겠소?”
영희가 아무리 말렬도, 말리면 말릴수록 순정은 악이 딱딱 났다.


“정호는 허위로 꼴똑 찬 위선자야. 탐관오리야. 내 입이 터지면 그 놈은 감옥에 가.”
“쉿-”
영희는 식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 놈, 얼마나 많이 얻어먹었는지 아니?”
“형부 아무리 많이 얻어먹었다고 해도 다 언니 가지지 않았소? 언니도 꼬리를 빼지 못하오. 형부한테 련루될 거요.”
순정은 영희 말에 동감이 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순정은 집 보험괴에 쌓인 돈묶음과 버쩍거리는 금은장신구를 떠올리며 입에 빗장을 질러버렸다.
(이젠 부모 있는가? 자식 하나 있는가, 그 놈이 끌어들인 재물 밖에 남은게 뭔가. 그게면 늘그막에 양로는 문제 없어. 아니, 비단으로 올리감고 내리감고 황홀하게 살테야. )


영희는 조개턱을 쳐들고 뭐라고 말하려다가 머리를 숙이며 기침을 쿨룩쿨룩 깇었다. 침을 뱉으니 가래에 피가 섞여나오지 않았겠는가.
“이걸 어쩌니? 의사한테 알리자.”
영희는 기침을 가슴이 터지게 콜록콜록 깇으며 간신히 머리를 끄덕였다.
순정이 벨을 눌렀다.


이때 노크소리와 함께 황박사가 들어왔다. 그녀는 순정의 말을 듣고 쓰레기통에 가서 종이로 닦아버린 피묻은 가래를 보고 황급히 문 밖으로 나갔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뜻밖에도 군철과 지혜가 병실에 들어섰다.
“엄마, 어떻습니까?”


“어머니-“
오누이는 어머니를 끓어안고 어린애들처럼 엉엉 울었다.
그런데 영희를 끌어안고 눈물 흘리는 군철이 순정의 눈에 이상하게 보였다.그녀의 눈에 군철은 딱 정호 젊었을 때 모습으로 안겨오지 않겠는가. 번대머리랑, 우멍한 외까풀눈이랑 얼마나 떼닮았는가.
(아니야, 그럴리야. 내 눈에 콩깍지 낀 거야.)
순정은 기어이 부정하고 싶었다.


지혜를 여겨보니 딱 문걸과 영희를 고루고루 닮지 않았겠는가. 걀죽한 얼굴이라든가, 외까풀눈이라던가. 조개턱이라든가.
(딸은 아버지를 닮는다고 하지 않는가.)
세상은 요지경이요, 귀신이 곡할듯한 비밀도 많았다. 순정과 영희는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고 함께 예술학원에 가서 정호한테서 무용을 배운 자매이자 친구였다. 또 동시에 정호를 두고 사랑의 라이벌이 아니였던가.
(세상에 뭘 믿고 산단 말인가?)


군철은 상해 한 한국 기업에서 과장을 하는데 로임도 두툼히 탔다. 부모 덕분에 상해에 집도 갖추고 고운 자기 민족 색시를 얻어 꽤나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애 둘을 낳은데다가 가정보모를 잘하는 시어머니가 앓아 훌 떠나자 날마다 말썽이 많았다. 부부간에 옥신각신 다투다가 왈가당쟁가당 가정기물까지 메치며 싸우기까지 했다. 색시는 애들을 둘이나 싸지르고서도 리혼하고 애들을 훌 버리고 가버렸다. 지금 애들은 이렇다. 어제까지 좋다가도 오늘 기분 상하고 잘 대해주지 않으면 당장 리혼하고 떠나가버렸다. 웃세대와는 달리 무슨 애고 전통가정관념이고 뭐고 없었다.


군철은 한국 친구 소개로 미국 미스를 집에 데려왔다. 그런데 미국 미스 때문에 또 말썽이 많았다. 동서양 출신 탓이랄가. 생활습관도 다르고 가치관도 달라 갈등이 심했다.


군철은 생사선에서 헤매는 어머니한테 차마 가정이 파탄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는 번대머리에 돋은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어머니를 안아 돌려눕혀준다, 팔과 다리를 주물러준다 하면서 정성을 다했다.
순정은 손수건을 꺼내 조카의 번대머리 이마에 돋은 땀방울을 닦아주다가 더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아니, 글쎄 군철의 두 눈섶 사이 위에도 자그마한 흑기미가 있지 않겠는가.
(정호 이마 흑기미 하고 딱 같지 않는가. 어쩜 이럴 수가?)


순정은 너무나도 놀라 감전이라도 된듯 했다. 그녀는 땀을 닦던 손을 떼고 번대머리 그 이마 기미를 자꾸 들여다보았다.
“이모, 감사합니다.”
“오, 어, 감사는 뭐?”


순정의 놀란 표정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군철은 그런 눈치는 채지 못했다.
“엄마, 아빠 문안하러 왔댔는가요?”
지혜가 어머니 손을 주물러 주면서 물었다.
“와서 뭘 하겠니? 너네 아빠도 중환자인데.”


똑, 똑, 똑.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그때 노크소리에 뒤이어 문걸이 병실에 들어오지 않겠는가.
영희는 대뜸 쌍까풀눈을 살풋이 내리감아버렸다.


“아빠, 오셨습니까?”
지혜가 마중나가 두 손을 맞잡았다. 뒤이어 아빠 손을 잡고 어머니 앞에 다가왔다.
문걸은 순정한테 인사했다.


“처형 왔소?”
“네, 영희 저렇게 앓아서 안됐습니다.”
문걸은 허리를 구부리며 눈 감은 영희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안부터 했다.
“여보, 어떻소? 몹시 아프잖소? 당신 앓는다니 마음이 아프오.”
영희는 딱 감은 눈확에 주르르 뜨거운 눈물을 흘리었다.


“픽, 어머니 불쌍하면 리혼겠습니까? 이젠 그 녀의사하구 약혼했습니까? 우리 집 족보에서 아버지 이름을 영원히 삭제해버렸습니다.”
“오빠, 왜 그래? 아빠도 중환자인데. 위안할 망정. 그게 뭐야? 도리깨아들 같은게.”


“뭐라고?”
군철은 지예한테 우멍눈을 무섭게 부릅떴다.
“저런 것두 아빠라고 하니? 어머니하구 우릴 다 버린 놈이야. 우리 애들 보기 싫어 상해에서 도망쳤어.”
“얘, 무슨 말버릇이냐?”


순정은 군철을 핀잔했다. 그녀는 어째 오늘 따라 군철의 생김새나 거동이나 말이나 자꾸 정호와 비슷하다는 감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문걸을 닮은데 하나도 없어. 문걸은 번대머리 아니야. 이마까지 머리가 덮여 있잖은가. 그러나 군철은 번대머리야. 군철은 정호를 닮아 우멍한 쌍꺼풀눈이야. 헌데 문걸은 외까풀눈이 아닌가.)
순정은 군철이 정호를 닮았다고 생각하기조차 무서웠다.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늘 아래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똑, 똑, 똑.
노크소리에 뒤이어 선희의사와 간호원이 들어와 영희한테 산소호흡기를 달아주었다.


똑, 똑, 똑.
이번엔 누군가 했더니 저게 뭐야? 세상에.
노크소리와 함께 정호가 들어서지 않았겟는가.
황선희의사는 정호를 보자 반색하며 뭐라고 말하더니 슬며시 문 밖으로 나갔다.
정호는 황선희의사를 따라 나가 인사하고나서 병세를 물었다.
황선희의사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병세 썩 좋지 않습니다. 제가 련계해 우리 병원 최고박사들을 다 동원해 최선을 다해 치료해보겠습니다.”
“고맙소. 아떻게 하나 내 처제를 구원해주오.”
황선희의사는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희죽이 웃었다.


“미인안해를 얻었군요. 미칠듯이 행복했겠네.”
황의사는 비웃는듯한 말 한마디 남기고 가버렸다.
정호가 병실에 들어서자 순정은 픽 코웃음쳤다.
“하여간 어데 가나 아는 녀자들이 많기도 많지. 흥!”


그런데 군철은 뜻밖에 정호를 보자 와락 끌어안고 엉엉 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모부! 흐흐흑, 흑흑.”


뜻밖의 사태에 순정이나 영희나 모두 놀랐다. 순정은 심지어 이상한 감이 들었다.
“어머니, 이모부, 보러 왔습니다.”
영희는 눈을 슬며시 뜨더니 간신히 일어나려고 했다. 순정은 못 본척 했다.


정호는 순정을 보고서도 아무 일도 없은듯이 뻔뻔하게 번대머리를 쳐들고 영희한테 다가왔다.
“처제, 아이구, 이렇게 앓아 눕다니? 어제 비행장에서 올 때만 해도 펀펀했는데. 처제, 눈 뜨오. 어서 일어나오. 내 왔소.”
순정은 정호와 군철을 번갈아보았다. 아무리 봐다 너무나도 딱 닮아보여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예도 일어나 이모부를 알은체했다.
“저리 가. 노는 꼴 보기도 싫어.”


순정은 정호를 무섭게 쏘아보며 호령하듯했다. 허위로 꼴똑 채워놓은번대머리를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애들 앞에서 이게 뭐요? 버릇없이.”


정호는 번대머리 이마에 흘러내린 몇대 밖에 안되는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기며 우멍눈을 흘겼다.
그때 영희가 쌍까풀눈을 맥없이 뜨더니 순정을 쳐다보며 간신히 떨리는 입을 뗐다.
“언니, 애들 앞에서 아저씨를 욕하지 마오. 언니넨 화목하게 살아야 하오. 우리 집이 깨진 걸 보기 좋습데?”
순정은 정호를 두둔하는 영희가 슬그머니 얄미웠다.


“너 대체 이 놈 색마하구 무슨 관계야?”
그녀는 툭 쏴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를 옥물고 억지로 참았다.
“야, 야, 너도 알만큼 알잖니? 저 물건짝이 어떤 놈인가를.”
정호는 창피해 두 말하지 못하고 휑 하니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뒤에서 군철이 흘겨보며 순정의 팔을 잡고 물었다.


“어째, 이모를 괴롭힙디까? 가만놔두는가 봐라. 흥!”
영희가 황급히 군철한테 손사래를 쳤다.
“그만둬! 군철아, 이모부하구 뭐야? 버릇없이. 어른들 일 잘 모르면서 작작 삐쳐라.”
순정은 영희가 얄미웠다. 암환자 아니면 머리끄댕이를 마구 끄당겨놓고 싶었다.
(죽어가는 사람은 다 마음이 약해지고 선량해지는가.)
그러자 좀 용서됐다.


그녀는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 도도거렸다.
“저 위선자하구 당장 리혼하겠다. 함께 못 살아.”
문걸은 말렸다.


“처형, 무슨 일인진 모르겠소만. 어진간한 일이면 그대로 사오. 리혼이란게 어디 그리 쉽소?”
순정은 그 말에 개의치도 않았다.
“허위로 꾸며진 가정을 해 뭘 해요? 저 놈은 위선자입니다. 생원도 이제 오래잖아 진상내막을 다 알게 될 겁니다.”
문걸은 오래 서 있기 불편했다. 그는 영희 앞에 또 허리를 굽히고 정중하게 말했다.


“여보, 미운 정, 고운 정 옥신각신 다투면서 살아왔지만 당신은 내 어려울 때 함께 한 조강지처요. 내 잘못이 있다면 다 널리 량해하고 용서하오. 부디 잘 치료하고 건강을 회복하길 두 손 모아 기도하겠소.”
영희는 그제야 눈을 살며시 떴다.
“여보, 당신은 잘못이 없어요. 저는 잘못이 많은 녀자예요. 용서하세요.”
군철은 눈물을 흘리며 통탄했다.


“어머니, 어머니 무슨 잘 못이 있습니까? 우리 애랑 기르느라고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이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어머니 이렇게 아플 때까지 우리 바쁘다고 어머니를 부려먹은게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지예도 어머니 손을 잡고 통곡했다.
“어머니,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이때 의사들이 들어왔다. 문걸이 여겨보니 그 속에는 놀랍게도 소화내과 주임인 춘희박사도 끼여있지 않겠는가.
“이러지 마세요. 환자를 너무 오래 피곤하게 굴면 치료에 불리해요.”
춘희의사가 말렸다.
문걸이 나가 알은체했다.
“바쁜데 끝내 왔구만. 감사하오.”


“와 봐야죠.”
문걸이 영희 병치료에 도움이 되겠는가 해 렴치를 불구하고 춘희의사한테 자문했던 것이다. 영희는 장에도 암세포가 전파됐기에 소화내과 의사 춘희와 종양과 주임 황선희의사가 회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순정은 들은 말이 있어 춘희의사를 다른 눈길로 흘끔거렸다.


뒤이어 방역복으로 전신무장한 담가대원들과 의사들이 우르르 밀려들어왔다.
“모두 병실에서 나가 대기하십시오.”
군철이 무슨 일인가고 어리둥절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또 병실을 옮깁니까?”


“박영희환자 코로나 확진이 나왔습니다. 여기 가족분들도 몽땅 PCR검사를 해야 됩니다.”


뒤이어 PCR검사를 거쳐 순정과 문걸은 다행히 음성으로 나타나 집에 돌아가 자가격리를 하게 됐다. 그러나 상해에서 날아온 군철과 지예는 재수없이 양성으로 나타나 병원에 격리됐다. 애들을 두고 온 오누이는 속이 타 발을 동동 굴렀다. 하긴 하느님께서 아마 암에 코로나에까지 걸린 어머니 옆에 오누이를 남겨 준 것 같았다. 수캐처럼 싸다니며 미녀들을 쫓아다니던 정호도 어데 가서 걸렸는지 양성으로 나타나 병원에 격리됐다.


순정은 오늘 정호와 군철이, 영희의 거동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아록한 안개 속에 잠기는 것만 같았다.
(영희는 어쩜 정호를 비단보에 싸고 돌가?”


순정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선에서 헤매는 사람은 착하게 변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오록한 안개 속 같아 오리무중에 빠지기만 했다.

/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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