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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6/26  민성
[장편소설] 졸혼(16)

23. 붕괴
          

문걸은 머리가 뜨끈뜨끈해지며 새까만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 붕 하늘로 날려올라갔다. “사랑”이 아프게 박힌 소나무껍질이 타버리며 신음소리를 낸다. 리지의 방선이 “사랑”을 거머쥐고 블랙홀에 휘감기고 분신쇄골이 돼 절망의 대문을 두드린다.

 

절망의 소낙비가 간사한 웃음을 머금고 희망의 푸르른 언덕을 스믈스믈 파먹으며 이발에 끼운 허위를 뱉어낸다. 망아산이 통채로 마구 꺼져들어가며 숫총각소나무와 숫처녀들의 팔을 마구 비틀어 실망스런 한줄기 연기로 타래쳐오르며 푸르른 하늘을  간음한다. 허위가 간사하게 웃으며 잔나무밭에 숨어 요사하게 란무하며 진실을 롱간하고 순박한 나그네를 유혹해 사랑의 블랙홀에 풀러덩 빠지게 한다. 청순을 잃은 대지는 요사한 여우한테 기만당해 풀친 발목을 붙안고 구슬프게 대성통곡친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소리에 뒤이어 세상의 귀가 뻥 뚤리며 세속의 어지러운 소리 다시 희미하게 들린다.
“여보, 죄송해요. 난 더러운 녀자입니다.”
(아니, 영희 목소리?)


눈을 뜨려고 해도 천근무게 돼 뜰 수 없다. 안간힘을 다 써 눈을 살며시 떴다.
저 앞에 영희가 허위에 찬 참사랑 블랙홀에 휘말려들어가면서 손사래를 치고 있지 않는가.
“여보, 난 정호선생한테 정조를 잃은 녀자입니다. 당신이 사랑할만한 녀자 아닙니다.”
분명 영희 목소리다.


“아니, 아니야!”
“저를 잊으세요. 난 당신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녀자입니다.”
“아, 아니야!”


“아버지!”
“아버지, 깨나세요.”
어디선가 귀에 익은 녀자애의 목소리.


문걸의 외까풀눈에 염라전이 희미하게 보였다. 음산한 블랙홀에 돌개바람이 불어쳐 홧홧 달아오른 기와장과 잿빛벽돌을 우당탕퉁탕 날려보낸다. 벌겋게 달아오른 염라전 층계마다 공포가 요사하게 도사리고 앉아 있고 저승사자가 퉁방울눈을 부릅뜨고 쏘아보고 있었다.

 

어떤 저승사자 부릅뜬 퉁방울눈에서 불길을 내뿜었고 어떤 저승사자 눈확에서는 독사가  디룽디룽 매달려 혀를 날름거린다. 매지구름이 우는 하늘에서 불비가 마구 쏟아져 염라전을 어지럽힌다.


이승에서 받은 실련과 파혼의 모든 고통을 훌훌 날려보내고 비명소리, 아우성소리 천지를 진동한다.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라도 이루려고 미련을 가진 유령들이 총망히도 염라전으로 몰려간다. 염라왕은 너무나도 쉽게 유령들을 자기 식구로 먹어버린다. 그것도 미녀유령을 먼저 삼켜 뚱뚱하고 헐럭한 배에 잠재워버리고 놋뚜겅 같은 입짝을 쩝쩝 다신다. 드디여 썩은 악취가 염라전에 물씬 풍긴다.


쩍 아가리를 벌린 염라전 대문 안에 숱한 관작과 백골더미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얼룩반점이 박힌 얼룩독사들이 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푹 꺼져들어간 백골 눈확으로 스르르 기여들어가 대골을 파먹는다. 쥐들이 찍찍거리며 놀라 와르르 도망친다.


저 앞에 개턱처럼 쳐든 조개턱이 보인다. 이 좋은 세상을 두고 웬 일일가?
(아니, 저게 영희 아닌가?)


“여보!”
“영희!”


그러나 영희는 손사래를 쳤다.
“누가 당신 여보인가요?”
“당신은 오누이 엄마 아니고 뭐요?”


“헛소리. 난 근본 오누이를 낳은 적도 없소. 그게 순정의 아들딸인데요.”
“뭐라고? 당신이 걔들을 낳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문걸은 손을 뻗쳐 영희 팔소매를 잡으려고 했다.


“가지 마오. 왜 이리 총망히 염라전에 들어가오?”
“난 이승에서 낯을 쳐들고 살 수 없게 됐어요.”


“누구 눈치 보고 사오? 당신은 내 안해요. 이건 사실이오.”
“누가 당신 안핸가요? 난 두 남자의 안해인데요.”


“정호?”
“그래요.”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번대머리가 불쑥 나타났다.
영희가 어떻게 돼 저승사자들이 든 담가에 실려 홧홧 달아오른 염라전 층계로 올라가고 있었다.
정호가 뒤따라 달려나갔다.


“날 두고 어디로 가오?”
“따라오지 마세요. 당신과 나는 이젠 연이 끝났어요.”
그때 정호가 두 팔을 벌리고 추격해나갔다.


“영희! 갈 때는 가더라도 그 풍만한 젖가슴만은 두고 가라. 그 풍만한 젖가슴 없인 난 못살아.”
“아니, 정호, 이놈새끼!”


문걸이 정호 멱살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정호는 문걸을 활 밀어버리고 품 속에서 비수를 빼들고 저승사자들을 찔러눕혔다. 그는 담가에 달려들어 풍만한 영희 가슴을 마구 헤쳤다.


영희가 일어나 정호 번대머리에 뛰여올라가 바레무를 춘다. 그녀가 호수가 백조처럼 두 날개를 파닥이며 발끝으로 모둠발질하다가도 흰 외다리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번대머리 위에서 바레무를 춘다.


영희가 바레무를 추다가 그만 번대머리에서 쭉 미끌어 떨어진다. 정호가 영희를 훌 받아안고 가슴을 활짝 헤치고 마구 만지고 핥는 것이 아닌가.


“이놈새끼!”
문걸이 정호한테 덮쳐나갔다.
영희는 반항하기는 고사하고 가슴을 벌려대며 해쭉 웃었다.


“여보!”
문걸은 정호를 주먹으로 쳐눕히고 영희 길다란 다리를 덥석 잡았다.
“가지 마오!”
영희 야들야들한 허연 허벅다리 쑥 빠졌다.


영희는 가슴과 다리 한짝을 각각 정호와 문걸한테 내주고 한줄기 연기로 타오르며 휙- 바람타고 염라전으로 날아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염라전에서는 별스레 귀신들의 웃음소리, 환호소리 요란했다.
“우리 염라전에 미녀 왔어!”


“하하하!”
“여보!”


문걸은 손을 뻗쳐 영희를 잡으려는듯이 휘두르며 목메여 고함친다.
“영희! 날 데리고 가오!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재혼 저승에 가서라도 이루기오.”
“아버지, 깨나십시오.’
남자애의 목소리.


(누군가?)
귀에 익은 목소리인데. 염라전에는 남자애도 녀자애도 보이지 않는다. 손에는 영희의 야들야들한 허벅다리가 쥐여져 있지 않겠는가.
“이건 뭐야? 다리만 내줘?”


“아빠, 어서 깨나세요.”
귀에 익은 녀자애 목소리.
“아버지, 아들 군철입니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문걸은 애써 눈을 살며시 떴다.


온통 새하얗다. 새하얀 옷들이 다가온다.
“깨났군요.”
새하안 옷이 다가와 손으로 눈까풀을 뒤집어본다.
“이젠 소생했습니다.”


“아버지, 살아났습니다. 으흐흑, 흑흑흑.”
지예의 울음소리 아닌가.
그는 외까풀눈을 디룩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 여긴…?”
“아빠, 병원 구급실입니다.’


사실 문걸은 뜻밖의 사실 진상, 내막을 알고 망아산 수림에서 실신해 쓰러졌다. 군철과 지예가 황급히 120구급차를 불러 병원 구급실에 호송했던 것이다.


춘희박사는 정신을 잃은 문걸을 진찰해보고 살짝 뇌출혈이 와서 졸도했다고 진단했다. 황선희박사의 회진도 역시 춘희박사와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


두 박사의사의 지도아래 구급실 의료일군들의 주밀한 구급치료를 받아 문걸은 일주일만에 소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걸은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정경에 몸까지 부들부들 떨었다.
번대머리, 우멍눈, 헤벌쭉가리는 두터운 입술…


“앗! 정호!”
문걸은 손을 뻗쳐 멱살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팔이 천근 무게 되는 것 같아 좀처럼 들 수 없었다.
“아버지, 군철입니다.”
군철이 문걸의 손을 잡았다.


“군, 군철?”
“예, 오빠입니다.”
“오, 오빠? 넌 오, 오빠 없어.”
“난 아버지 아들 군철입니다.”
“아, 아니야. 넌, 넌, 넌, … 아니야.”


문걸은 아마 군철을 보고 정호로 오해한 것 같았다. 아니면, 군철을 자기 아들이 아니라 정호의 아들이라고 말하려는 상 싶었다.


문걸은 또다시 까물어쳤다. 한많은 눈확에서 눈물이 절망을 타고 슬피 울며 두르르 굴러내렸다. 눈초리에서는 너무나도 서러운 이슬이 맺혀 파르르 떠는 눈까풀과 함께 그네를 뛰고 있었다.


“아버지!”
“아빠!”
군철과 지예는 문걸의 량손을 잡고 울며 고함쳤다.
“그만하오. 환자를 쉬게 하세요.”
춘희박사가 오누이를 말렸다.


황혼은 벌겋게 락조로 타오르며 창문 안에 벌건 얼굴을 들이밀고 기웃거렸다.
문걸의 병상 옆에는 두 녀인이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춘희박사와 지예였다.


춘희는 안해를 잃은 문걸이 한없이 불쌍했다. 이전에 그녀는 문걸과 자꾸 리혼하려 했다는 영희를 아니꼽게 보아왔댔다. 심지어 건뜩 쳐든 조개턱마저 보기 싫어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문걸이 아주 불쌍한 남자라고 여겼다. 이번에 안해를 잃은 문걸이 입원하자 그녀는 전보다도 더 살뜰히 보살폈다.


“물, 물…”
“예. 아빠.”


지예는 황급히 컵에 따뜻한 물을 따라 왔다.


춘희가 문걸을 안아 일으키고 숟가락으로 물을 퍼 입에 가져갔다. 문걸은 한술한술 물을 받아 삼켰다.
이윽고 문걸은 외까눈을 가슴츠레 뜨고 디룩거렸다.
그는 춘희를 보자 벌떡 일어나 와락 끌어안았다.


“영희!”
“아니, 춘흰데요.”
“춘희?”
“네, 의사 춘희 기억나요?”
“아니, 영희야!”


문걸은 병상을 두리번거렸다.
“난 영희 다리 차례졌어. 정호 그놈새끼 영희 젖가슴이 풍만하다고 가져갔어. 그놈새끼를 놔두지 않겠어.”
지예가 아버지를 껴안았다.


“아빠, 딸 지예 기억나죠?”
“아니야, 영희야!”


문걸은 정신이 이상했다. 너무나도 큰 충격에 정신이 완전히 붕괴됐다.
“아빠- 으흐흑, 흑흑흑.”


문걸은 지예의 대성통곡도 뒤로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일어나 서성거렸다. 그는 춘희를 보고 중얼거렸다.
“영희, 정호새끼한테서 당신 젖가슴도 찾아오고. 다리도 제자리에 맞추고. 야장간에 가야겠어.”
그는 병실을 두리번거리다가 주춤 멈춰섰다.


“금방 정호새끼 여기 있더니 어데 갔어?”
그는 분명 군철을 정호로 오해했던 것이다.


“정호 어데 갔어?”
군철이 자리에 없었다. 지예의 말에 의하면, 금발미녀 애리싸한테서 급한 전화가 왔다고 했다. 상해에 두고 온 막내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했다. 그래서 군철은 문걸이 깨나는 것도 보지 못하고 부랴부랴 상해로 날아갔다고 했다.


(오빠는 이젠 아빠가 제 친아빠 아니라고 간 거야. 아빠하구 엄마 아들이라고 자기를 얼마나 커했는데. 새끼 중하긴 중해. 사선에서 헤매는 아빠를 두고 가버려?)
지예는 속으로 군철을 욕했다.


(내 리혼 잘 했지. 결혼해 뭘 해? 이젠 재혼도 안해. 새끼를 절대 낳지 않아. 새끼 신세 뭐 있어? 금이야 옥이야, 곱게 길러서 대학 보내고 시집장가까지 다 보내구 낑낑거리면서 집까지 해결해 줘도 차례지는게 뭔가? 우리 엄마 아빠 봐. 손자애들까지 기르느라고 아글타글하다가 암에 걸리니 훌 세상뜨지 않았는가? 사람이 사는게 뭘 위해 살아? 원, 손자애들까지 다 키우고나면 제 죽을 나이 되는데. 어머, 세상에, 아빠 엄마 인생 너무 처참하다.  난 절대 부모처럼 못 살아.)


지예는 정신나간 불쌍한 아빠를 달래여 병상에 도로 눕혔다. 딸은 크나큰 정신타격에 모든 것이 붕괴되고 절망블랙홀에 빠진 아빠가 솟아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했다.


또 지지리 암울한 보름이 흘러갔다.
문걸은 악몽에 악몽을 거듭하며 시달리고 있었다.


귀신들이 욱실거리는 염라전인데 이상한 장면이 연출됐다.
정호가 무용강당에서 영희 하얀 허벅다리를 만지지 않겠는가.


“닥쳣!’
문걸이 뛰여들어갔다. 경찰들도 들이닥쳤다. 염라전 저승사자들이 경찰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여긴 신성한 극락세계요. 염라전에 경찰들은 들어가지 못하오.”


저승사자들이 경찰들과 싱갱이질하는데도 정호는 경찰과 문걸을 아랑곳하지도 않고 영희를 훌 들어올려 안고 가슴을 헤치고  마구 빫고  핥아댔다. 뒤이어 치마마저 걷어올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영희는 반항은커녕 해쭉거리며 행복에 겨운 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닥쳣! 날 기를 채워 죽일 예산이야?!”
문걸이 덮쳐들어 무쇠주먹으로 정호 대가리를 쳤다. 정호 대가리가 무용강당에 뚝 떨어져 썩은 박바가지처럼 데굴데굴 굴렀다.


“정호! 이놈새끼!”
문걸은 벌떡 일어나 주먹을 쳐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예가 옆에 앉아 있었다. 악몽이였다.
“이년, 죽어 봐!”


문걸은 주먹을 휙 날려 지예를 쳤다.


“아빠!”
지예는 손으로 날아드는 주먹을 막으며 피했다.
“아빠, 지예입니다. 아빠 딸입니다.”


“뭐라고? 영희가 어떻게 내 딸이냐? 네년은 정호 각시야! 허허허.”
문걸은 미친듯이 허구픈 너털웃음을 웃으며 광기를 부렸다. 춘희의사와 간호원, 만금이 달려들어 말려서야 문걸의 광기는 겨우 내리눌리웠다…


문걸은 영희를 붙잡으려고 귀신들이 아우성치는 염라전에 들어갔다.
(이상해.)


염라전 여기저기에 사람 낯은 보이지도 않고 펄떡펄떡 뛰는 숱한 심장들이 디룽디룽 매달려 있지 않겠는가.
“영희! 어데 있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문걸은 염라전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며 영희를 찾았다.


“참, 불쌍한 영령이구나.”
염라왕이 허연 수염을 쓱쓱 쓰다듬으며 문걸을 내려다 보았다.


“당신 뭐야? 염라전을 잘 관리하라구. 남의 새파란 색시를 벌써 열라전에 데려다 뭘 해? 혹시 당신들 염라전에서도 남의 색시를 간음하려는게 아닌가?”


“허허허. 네 색시 원래 저런 년이야. 염라전에 와서도 저러는데 뭐가 그리 아까워? 찾아헤맬 가치 있어? ㅋㅋㅋ.”
염라대왕의 손길을 따라 둘러보았다.
(아니, 저게 뭐야?)


글쎄 정호가 지하주차장 관 위에서 영희를 깔고 들어앉아 가슴을 마구 반죽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영희는 반항하기는커녕 관작에 누워서 해쭉해쭉 웃으며 허리를 요리곰실 조리곰실 요동치며 정호한테 아양을 떨고 있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최선생님, 이젠 죽어도 원이 없겠어요.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라도 이룹시다. 우리 결혼식을 시작합시다. 어서 저를 진정한 녀성으로 만들어주세요. 행복한 갈보로 만들어주세요. 나는 당신의 녀자예요.”


문걸은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꽉 목메여 아우성쳤다.
“영희! 여보, 어찌 차마 그럴 수야 있소? 그만두오.”
“호호호. 남의 좋은 일에 작작 삐치세요.”


“그럼 네가 핸드폰에 남긴 유언은 몽땅 거짓말이란 말이냐?”
“내 죽었다고 당신 너무 슬퍼할가봐 걱정됐죠. 정을 떼자고 그런 유언 남겼죠. 좋을대로 생각하세요.”
정호는 문걸을 쏘아보며 꽥 고함쳤다.


“썩 꺼지지 못해?! 여기까지 쫓아와 방애하겠니?”
“정호! 이놈새끼!”
문걸은 고함치며 정호한테 덮쳐나갔다.


“그만하세요. 재수없이 저놈한테 발각됐습니다.”
정호는 괴춤을 춰 입으며 되돌아보고 희죽이 웃기까지 하지 않는가.


“야, 이놈새끼야!”
그런데 영희 또 저게 뭐냐?


“남의 좋은 일에 끼여들긴? 흥! 에잇, 재수 없이 논다. 진짜, 미치겠다.”
“뭐라고? 너희들 원래 좋아했어?”


“좋아하면 어째? 우린 사제간이자 서로 사랑하는 련인인데요.”
“뭐라고? 주둥이를 다물지 못해?”


“왜 그래요. 진실을 말하는데도 잘못인가요? 당신 알기도 전에 최선생님과 전 얼마나 살았는지 압니까? 무용강당에서, 망아산 소나무숲에서, 당신과 처음 그래던 그 신비한 방공굴에서. 호호호.”


“이년, 이게.”
영희는 가슴에 흘러내린 한복고름을 고쳐매며 두덜거리지 않겠는가.
“항상 남의 좋은 일에 재수없이 끼어든단 말이야. 저게 끼어들지 않았더라도 내 최국장한테 시집갔을 수도 있었겠는데. 에이구, 내 팔자야. 그때 하도 나이 어려서 그랬지. 정조 잃어서 겁나 그랬지. 안 그럼 너 같은 떨거지한테 시집갔겠어? 어림도 없어. 어림도.”


“이제야 네 속심의 말 하는구나. 사람은 죽어야 로실해지는구나.”
“무슨 소린가요? 죽은 사람 억울해도 말할 수 있는가요?”


“넌 사람이냐 뭐냐?”
“영희 유령인데요. 호호호. 바보, 당신은 항상 바보.”
“그래. 난 바보야. 정호하구 좋아하는 네년한테 속히워 한뉘평생 산 바보지.”


“바보- 바보- 호호호.”
정호도 합세했다.


“바보 같은게. 남이 좋아하는데 어서 꺼지지 못해!“
“뭐라고? 이 년놈들아, 죽어봐라.”
문걸은 벌떡 일어났다.
   

악몽에 악몽이 거듭되였다.
   

문걸이 한뉘평생 쌓아온 사랑탑이 와그르르 무너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문걸의 정신기둥이 산산히 붕괴됐다. 아니, 여지없이 풍비박산났다…

/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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