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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6/23  민성
[장편소설] 졸혼(14)

21. 맑지만 않은 하늘

 

문걸은 화실을 부동산중개소에 맡기고 세집을 맡고 나갔다. 만금은 세집에 따라가기 미안해 나가려고 했다.

 

“어째? 다른 집에 가자고 그러오?”

 

“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부담될가봐.”

 

“괜찮소. 난 교수급설계사니깐. 보모 로임 쯤은 아무 것도 아니오. 만금이 없으면 하루도 살 거 같지 못하오. 다른 불편 없으면 계속 도와주오.”

 

“감사합니다.”

 

만금은 눈물까지 글썽해 대답했다.

 

문걸은 통 큰 제안을 했다.

 

“아예, 세집을 따로 잡지 말고 애들을 데려오오. 이 세집을 보오. 130평방에 침실이 세개나 있소. 제 애들을 데리고 한칸 차지하고 살고 내 미녀로봇과 함께 한칸 차지하고 나머지 한칸은 화실로 쓰면 되오. 객실은 공용으로 하고. 애들을 데리고 들어오오.”

 

“그래도 어찌?”

“괜찮소. 그럼 저도 세집 돈이라도 남고 량쪽을 돌볼 필요없잖소?”

“그렇긴 하지만요. 미안해서 어찌…”

 

만금은 옆에 서 있는 지예의 눈치를 살폈다.

“미안하긴? 우린 한 집 식구나 다름없는데.”

 

눈치 약삭바른 지예도 동을 달았다.

“그래요. 이모 덕분에 저희들도 아빠를 시름놓고 상해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계속 아빠를 보살펴주십시오.’

 

미녀로봇 아사꼬도 끼여들었다.

“그래요. 밥은 만금이 하고 잠자리나 심부름은 제가 맡고. 호호호.”

“야메(그만)!”

 

문걸은 떠나가려는 만금을 오빠처럼 관심해 끝내 안심시켰다.

이때 핸드폰이 급촉하게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보니 영희한테서 화상통화메시지가 오지 않았겠는가.

 

화면에 눈물이 글썽한 영희 초췌한 얼굴이 나타났다. 그런데 눈물을 닦다가 그만 머리에 썼던 하얀 모자가 훌렁 벗겨졌다. 그 바람에 머리털이 다 빠진 까까머리 홀랑 나타났다. 영희는 황급히 모자를 되썼다. 그러나 팅팅 붓긴 시든 얼굴은 감출 수 없었다.

 

춘희의사의 말에 의하면 방사선치료를 했기에 영희는 머리털이 싹 빠지고 팅팅 붓겼다고 했다. 방사선치료나 화학치료를 하면서 영희는 아프고 구토가 심하고 설사를 자주 해 그 고통은 마지막고생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방사선치료나 화학치료로 인해 백혈구가 너무 많이 죽어갔다. 하여 자칫 백혈병에 걸릴 수도 있었다.

 

영희는 눈에 정기도 없어 보였고 초췌하였다.

문걸은 울먹거리며 위안했다.

 

“여보, 못쓸 병에 걸려 얼마나 고생하오?”

“괜찮아요. 여보, 당신 관심 고맙습니다. 지예한테서 다 들었습니다. 당신 위안받고 이젠 죽어도 눈을 감을 것 같습니다.”

 

“난 당신한테 해준게 하나도 없소. 당신은 어느 하루 편안한 날도 없이 살았소. 쓸데없는 의심을 하면서 고통을 많이 주어 죄송하오.”

 

“그런 말 마세요. 저는 이제 조만간에 저세상에 가야 할 사림인데요. 절대 화실을 팔지 마세요. 늘그막에 집도 없이 어떻게 산다고 그럽니까? 우린 젊어서 얼마나 집고생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오. 당신을 구할수만 있다면 집이겠소? 아까울게 하나도 없소.”

“저는 당신이 그렇게 아까워 할 녀자 아닌데요. 치료비 때문에 걱정하는 거 같은데요. 걱정 마세요. 우리 살던 집을 팔면 됩니다.”

 

“아니오. 그 집 팔고 저는 늘그막에 집 없이 어떻게 살겠소? 우리 한뉘 살면서 남긴게 그것 밖에 없는데.”

“미안해요. 저는 당신한테 해준게 없고 미안한 일 가득해요.”

“천만에 말씀. 내 미안한 일 더 많소. 쓸데 없이 저를 의심하면서 속을 태우게 했잖소? 다신 그런 일 없을게오.”

 

“아닙니다. 암에 걸린 당신과 리혼하자고 한게 죄송해요. 제가 이렇게 암에 걸리고 보니 당신한테 죄지은게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습니다.”

 

“내 본능적인 욕구를 이기지 못해 당신을 원망한게 잘못이었소. 애들을 당신한테 다 맡겨놓고 훌 온게 죄송하오. 당신 애들을 혼자 보느라고 너무 고생해 병에 걸린 거 같소.”

“그게 어찌 다 당신 잘못이겠습니까? 애들도 자기 애를 스스로 키워야 하는데. 지금 애들은 부모한테 맡긴 것도 잘못입니다.”

 

곁에서 듣던 지예도 머리를 숙였다.

 

“어머니, 다 오빠하구 내 잘못입니다. 이젠 내 리혼하구 애를 떼버리고 나왔으니깐. 내 애는 근심할 필요없습니다.”

 

“리혼? 얘야,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 리혼해 속이 싹 타는데 네까지 리혼하겠니? 제발 리혼하지 말라.”

 

“몇십년 살던 부모도 리혼하는데 우리 이제 산지 몇해라고 그럽니까? 그놈 새끼하고는 살지 못하겠습니다. 엄마, 내 근심하지 말고 병치료를 잘 하세요.”

"얘야, 그런 말 말라."

 

문걸은 지예를 보고 정색했다.

"금방 엄마와 아빠 주고 받는 말을 못 들었니? 지금 보면 우린 서로 사랑하면서도 마음에 없는 가짜리혼을 한 거야. 서로를 배려해서 어떻게 상대방을 자유롭게 살게 하겠는가 해서 말이야."

 

지예는 놀라운 눈길로 아빠와 핸드폰을 번갈아 보았다.

 

핸드폰에서 엄마는 엄숙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리혼 수속은 했지만 사실 마음 속으로는 리혼하지 않았다. 우린 그저 잠시 갈라져서 졸혼을 겪었을뿐이야. 이젠 모든 것이 결론이 날 거야."

문걸도 진심으로 말했다.

 

“맞소. 이제 래세가 있다면 난 또 당신과 결혼할 거요."

영희도 희죽이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런 말을 나직이 했다.

"전 당신과 재혼할 자격이 없는 녀자예요."

 

"당신은 충분히 자격 있소. 나에게 오누이를 낳아준 위대한 조선족 어머니, 사랑스런 안해요."

 

문걸은 영희를 보고 진심으로 말했다.

"애들도 제 살 길을 찾아가겠지. 근심하지 말고 신심을 가지고 병치료나 잘 하오. 날 보오. 혈번을 보고 장암과 코로나에 걸렸지만 이렇게 살아남지 않았소. 당신도 코로나 치료됐는데 치료신심 가지오. 이제 암증만 이기면 되오. 지금 의료과학기술이 발전해서 치료되오. 꼭 신심을 가지오. 황선희박사나 김춘희 박사가 지금 세계 최첨단의료기술인 줄기세포와 클론복제기술까지 동원해 당신 암병을 치료한다오. 고까짓 병은 꼭 나을게요.”

 

“고맙습니다. 난 내 병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조만간에 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량심을 속이곤 살아도 무의미하지요. 당신, 미안해요. 해준 게 없이 미안한 일만 가득합니다. 흐흐흑, 흐흑흑.”

영희는 눈물을 흘리며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만하세요. 오래 통화하면 환자한테 좋지 않습니다.”

의사가 통화를 제지시켰다.

 

“여보! 여보!”

문걸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지예도 눈물을 훔쳤다.

문걸은 영희를 더는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숫총각과 숫처녀를 불태운 후 영희 숫처녀 아니잖는가 의심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었던가. 만나기만 하면 영희를 보고 누구와 먼저 그랬는가 탄백하라고 족따지군 했다. 얼마나 눈물을 흘리게 했는지 모른다. 세월이 흐르면서 문걸은 그 의혹을 잊어버렸댔다.

 

그런데 황혼기에, 그것도 리혼한 후 순정의 귀띰으로 해 또 그 의혹이 새삼스레 수면으로 떠오랐다. 그러나 그는 영희와 함께 한 30여년 삶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가 허위에 휘감겨 한뉘 눈이 멀어 살았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다 죽어가는 영희를 더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영희는 절대 그런 녀자 아니야. 순정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정호는 마우스(입)섹스를 즐겼으니까. 충분히 영희 보고 “빨아달라.” 했을 수도 있다. 만약 미적지근한 일이 있다고 해도 나하구 영희 둘 다 피해자야. 절대 영희를 의심하지 말아야지.)

 

그는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손으로 눈물을 쓱 훔쳤다.

“지예야, 아빠 엄마 리혼하니 얼마나 비극이냐? 그런데 어째 너마저 리혼하니?”

“에이, 말도 마세요. 그놈과는 못 살아요.”

 

“뭣 때문에?”

지예는 말하기조차 입이 쓰디썼다.

“아빠, 알 필요없습니다.”

“리혼이 어디 애들 장난이야?”

 

지예는 전날 아빠 품에 안겨 울던 딸 같잖게 나왔다.

“아빠, 리혼 잘했어요. 서로 마음에 들잖으면 헤여지는게 옳지. 서로 불편하게 살게 뭡니까? 맨날 티각태각 싸우면서. 흥.”

 

문걸은 맥없이 쏘파에 물앉았다. 그는 지예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그렇게 알고 파요?”

 

“아빠하구 말하면 안되니? 너네 오누이 참 답답하다. 군철도 리혼했잖니?”

“오빤 리혼 잘 했어요. 올케는 진짜 황후면 어디 그런 황후 있겠습니까? 올케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이잖고 뭡니까? 공주로 자라서 시집와서도 황후질 하려고 들었지요. 우리 엄마 애 둘이나 키워주는데도 하는 일 뭐 있습니까? 항상 밥투정만하고. 울 엄마 혼자 앓으면서 애 둘 키워줄 때 올케 한게 뭔가요? 애를 낳고는 해놓은게 뭡니까?"

 

"그래도 우리 경주 리씨 집안에 씨를 둘이나 낳아준 위대한 조선족어머니 아니냐?"

 

"또, 또, 또. 아빠 자꾸 춰줬기에 올케는 시집에서도 제 밖에 없는 황후 행세를 했죠. 또 올케네 본가집에서 한게 뭔가요? 애를 한번 봤습니까? 엄마 숨 돌리게 얼마간이라도 바꿔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도 올케 엄마 뭐라는지 알아요?”

“?”

 

“우리 딸이 전주 리씨네 아들 둘이나 배 아프게 낳아줬으면 됐지. 우리까지 고생할게 뭔가? 애들은 당연히 시집에서 키워야지.”

문걸은 답답해 권연을 꺼내 붙였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그런 일 때문에 리혼하니? 애 둘까지 낳아가지고. 훌 떠나가면 애들은 어쩌니? 장차 애 둘이나 달린 군철한테 어느 눈먼 녀자 재혼하자겠니?”

“지금 우리 젊은이들은 그래요. 어제까지 좋았다가 내일 나쁘면 갈라지죠. 무슨 애들이고 뭐고.”

“닥쳣!”

 

문걸은 재떨이로 차탁을 탁 치며 고함쳤다.

“그것도 말이라고 하니? 일시 기분 상한다고 잠 자고 깨나면 밥 먹듯 리혼하면 되니? 고만한 일로 리혼한다면 날마다 리혼해야겠다. 꼭 군철네 무슨 일 있지?”

지혜는 아빠 눈치를 보며 머뭇머뭇하다가 입을 열었다.

 

“오빠, 금발미녀한테 미쳤어요.”

“금발미녀?”

 

“네. 지금 미국 류학생 금발미녀하구 죽자살자 합니다.”

“야, 그놈새끼, 진짜 가문을 망치는구나. 어쩜 애 둘이나 두고 그럴 수 있니? 장차 애들한테 죄짓자고 그래? 이 일을 어쩐담. 애들은 지금 누가 보니?”

문걸은 지예를 쳐다보았다.

 

“보모를 찾았대요. 금발미녀는 자기 난 새끼 아니니깐. 근본 애들에 관심 없습니다.”

“넌 도대체 어째 리혼했니?”

 

“그놈새끼두 오빠처럼 그러루한 일이 있습니다.”

 

“뭐라고? 에이구. 온 집안이 몽땅 리혼이라라니? 이 일을 어쩌느냐?”

문걸은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탁 치며 안절부절 못했다. 그는 속으로 자기가 모범을 잘 못 보여준 것 같아 다시 한번 리혼한 잘못을 가슴아프게 느꼈다. 졸혼하고 혼자 홀가분하게 살려고 했는데 모든 것은 그리 식은 죽 먹기 아니였다. 이렇게 별의별 곡절을 다 겪을 줄은 몰랐다.

 

며칠째 기다려도 화실은 팔리지도 않았다.

 

문걸은 너무 답답해 부동산중개소로 가려고 미녀로봇을 데리고 나갔갔다. 미녀로봇은 기분이 좋은지 문걸의 팔까지 끼고 걸었다.

행인들은 미녀로봇이 어찌나 이쁜지 되돌아볼 지경이었다.

 

문걸과 미녀로봇이 공원 정자 부근에 다가갔을 때였다.

“장훈!”

“멍훈!”

정자에서 누군가 장기 노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가보자.”

“거길 가 뭘 해요? 산보는 안하고?”

 

미녀로봇은 쌍겹눈을 곱게 흘기며 팔을 쥐어당겼다.

“아니야. 난 장기 귀신이야. 조금만 보다가 가자.”

미녀로봇은 별수 없이 따라갔다.

 

문걸은 장기판을 들여 보다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호가 굉팔과 함께 장기를 두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옆에는 오청룡 국장까지 구경군들 속에 퍼더버리고 앉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국장은 글쎄 숱한 사람들 앞에서 소변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심지어 자기 눈 소변을 땅바닥에 엎드려 마구 핥아먹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신병자야!"

숱한 사람들이 오청룡을 손가락질하며 웃었다.

오청룡은 때 덕지덕지한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손에 묻은 오줌을 쪽쪽 빨아먹기까지 했다.

 

(굉팔과 오국장은 감옥에 들어갔다고 소문이 자자하잖았던가. 그런데 어떻게 돼 나왔을가? 아무 죄도 없는 것처럼 정자 아래서 장기를 떵떵 놀고 있지 않는가?)

 

문걸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푸르르게 맑지만은 않았다. 흐리멍텅한 매지구름도 있고 까마귀도 날아다니고 있었다. 공원 정자 꼭대기에 참새가 앉아 재잘거리고 있었다.

문걸은 너무 어이없어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그때 장기를 놀던 정호가 먼저 이쁜 미녀로봇을 보고 이쪽에 눈길을 돌렸다.

“어, 문걸아, 어떻게 돼 여기 왔니?”

“…”

 

정호는 자기 곁에 오라고 손짓했다.

“오라, 여기 앉아 훈수나 좀 해달라. 리경리 어떻게 쎈지 질 거 같아.”

미녀로봇은 문걸의 팔소매를 잡아당겼다.

“다른 데 갑시다.”

“그래. 가자.”

 

문걸이 떠나려 할 때다.

“잠간, 문걸아, 좀 기다려라.”

정호는 장기쪽을 장기판에 왈 내려놓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걸한테 다가왔다.

“잠간 보자. 할 말이 있다.”

“너하구 할 말이 없다.”

 

정호는 문걸의 팔소매를 쥐고 한쪽으로 갔다.

늙은 비술나무 아래 조용한 곳에 가자 정호는 미녀로봇과 문걸을 번갈아보며 입을 뗐다.

“우린 어린 시절부터 몇십년 사귄 친구 아니냐? 날 오해하지 말라. 친구지간에 고만한 일로 헤여지겠니?”

 

문걸은 발칵 성냈다.

“관둬. 오해했단 말이야?”

 

정호는 습관처럼 몇대 안되는 머리카락을 번대머리 뒤로 쓱 빗어넘기면서 자못 정색해 말했다.

 

“난 영희를 좋아한 건 사실이야. 허나 영희를 한번도 다치진 않았어.”

“또, 또, 거짓말.”

정호는 번대머리를 손바닥으로 탁 치며 씨벌였다.

“친구로 저 푸른 하늘에 맹세한다. 절대 거짓말 아니야.”

 

“좋다. 넌 결코 그렇게 의리도 없는 무정한 불량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번 믿으마.”

정호는 시골에 있는 문걸의 외할머니네 마을에서 살았다. 여름방학이나 겨울 방학에나 문걸이 시골 외할머니네 집에 가면 정호와 그림자처럼 딱 붙어 다니며 놀던 짜개바지친구였다. 진짜 친형제처럼 친해진 딱친구였다.

 

그제야 정호는 긴장했던 낯 근육을 좀 풀었다.

“그래. 우린 친구니까.”

 

“전번에 널 오해하고 성 냈는데 량해해라. 절대 속에 넣지 말라.”

정호는 주먹으로 문걸의 가슴을 탁 쳤다.

“그래. 우리 둘이 그럴 사이냐?”

 

정호는 문걸의 어깨를 잡으며 미녀로봇을 슬쩍 눈짓하며 나직이 말했다.

“저 미녀로봇동지를 잠간만 다른데 가 있으라고 해라.”

“어째?”

“너하구 은밀히 할 말이 있다.”

“알았어요. 제가 갈게요.”

 

눈치 빠른 미녀로봇이 스스로 저쪽 앵무새한테로 다가가버렸다. 원래 미녀로봇은 사람의 귀보다 더 청각이 예민했다. 필경 로봇이니까. 최첨단 청각계통을 장착하고 있었으니까. 저쪽 앵무새한테 가서도 이쪽 말이 다 들렸다. ㅎㅎㅎ.

정호는 미녀로봇이 가기 바쁘게 말을 꺼냈다.

 

“난 아마 순정과 리혼해야 할 거 같애. 이전부터 콧개처럼 날 의심하더니 당장 리혼하자고 떠든다. 네 생각엔 어떠냐?”

 

문걸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너네 리혼하겠으면 하고 나하구 무슨 상관이냐? 흥!”

정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믿고 말하는데 그저 그래? 쳇,”

“도대체 뭣 때문에 리혼하자는 거냐?”

 

“순정은 내 영희하구 좋아했다면서 리혼하잔다.”

 

사실 정호는 리혼하자는 말이 나오기를 오래 전부터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차라리 이 기회에 순정과 갈라지고 내놓고 이제껏 숨겨둔 젊은 애인 정희와 함께 소리치며 살고 싶었다. 애들도 한드럼 낳고 깨알이 쏟아지게 살고 싶었다.

 

그보다도 순정이 너무 사치하게 치장하고 눈에 띄게 노는지.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언제든지 꼬리를 밟힐가봐 두려웠다. 이 기회에 순정이란 꼬리를 자르고 싶었다. 리혼하면 순정의 보험궤를 들추지 않을게 아닌가.

 

그러나 정호는 문걸과는 그런 속심을 스리슬쩍 감추고 아닌 보살을 떨었다. 기어이 순정이 먼저 리혼하자고 해 마지못해 리혼하려는 가상을 보였다.

문걸은 정색했다.

 

“한가지 묻자. 영희 상해에서 돌아올 때 일 말이다. 영희를 뭐라고 찌껄였니?”

“야- 너도 또 그 말이냐?”

 

“이실직고해라. 한마디만 거짓말 해봐. 가만 놔두지 않을거야.”

“야, 이건 버선 목이니 번져보이겠니? 무슨 일 있었다고 그러니?”

 

“그날 밤 영희를 너네 지하주차장 차고에 싣고 가서 뭘 했니?”

“또 그거야? 전번에도 말했잖아?”

“어쨌니?”

“야, 억이 막힌다. 한심하다, 한심해. 생사람 잡지 말라.”

정호는 억울한듯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번대머리 위에 머리카락 몇대가 흩날렸다.

 

“순정이 리간도발을 믿지 말라. 그놈 간나새끼, 리혼하게 되니 쌍불을 켜고 잡자고 든다. 내 순정한테 해주지 않은게 뭐냐? 명품으로 올리감고 내리감게 해줬더니 나중엔 날 죽이자고 미쳐날뛴다. 제발 그 간나년 말 듣지도 말라.”

“정 믿지 못하겠으면 영희하구 물어봐라.”

 

“영희하구 리혼했으니깐. 이젠 제대로 말해라.”

“또 이마빼기 얻어터지라고?”

 

“이젠 안 칠게. 다 지나간 일인데. 그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고 싶어. 네가 영희를 순정보다 더 사랑했다잖았니? 이전엔 영희를 다친 적이 없니?”

정호는 한심했다.

 

(자식, 이런 일까지 물어? 환장했구나.)

정호는 우멍한 눈을 떼룩 굴리더니 억울한 상 지었다.

“절대 그런 일 없다. 하늘에 맹세한다. 그런 일 없다고.”

 

문걸은 피씩 웃었다. 도적놈하고 도적질했느냐고 물으면 어느 도적놈이 도적질했다고 하겠는가.

 

그는 저 멀리 정자 아래 장기판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굉팔과는 어떻게 아니?”

 

“아- 리총경리 말이냐? 오국장을 통해 두루 안 친구야. 참 좋은 사람이지.”

“돈 꽤나 있는 모양이던데?”

 

“그래. 광고유한회사 총경리지. 건데 지난해 내부에서 터져서 감옥에 갔댔어.”

“그 옆에 앉은 사람은 오국장 아니냐?”

“그래. 너도 아는 모양이구나. 오국장은 내 가시아버지한테 다리를 놔서 제발시킨 경제통이야.”

 

“그래. 오국장도 리경리 함께 감옥에 갔댔잖았니?"

"이 최국장이 다리를 놓아 감옥에서 스리슬쩍 빼내왔지. 허허허.”

“재간있구나.”

 

“그래. 고만한 일이야 염낭취물이지.”

저쪽에서 미녀로봇은 그 말을 다 똑똑히 들었다. 그녀는 최정호 국장이 무슨 은밀한 말을 하자고 자기를 보내는가 의심한 후 자기 장착된 록음장치를 작동했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최정호는 어깨 으쓱해 자랑을 늘여놓았다.

 

“법정에서는 어쩔 수 없지. 지은 죄에 따라 판결하니까. 그러나 감옥에 들어간 다음에야 좀 변통할 수 있지. 개조표현이 좋다든지. 정신병자처럼 양병한다든지. ㅋㅋㅋ.”

 

문걸은 머리를 끄덕였다.

 

“넌 진짜 송강처럼 의리 깊은 '호한'이구나.”

“그래, 세상은 둥글둥글해. 서로 도와주면서 살아야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 굉팔은 오청룡 국장을 등에 업고 퇴직해서도 10년 동안이나 광고공사 총경리 하면서 숱한 돈 뜯어먹구. 심지어 아파트까지 가졌다던데 어떻게 1년도 안돼 감옥에서 나올 수 있니?”

 

“넌 너무 천진해. 세상 하늘이 그저 푸르르고 맑게만 보이니? 정치를 개뿔도 모르는 놈, 소 귀에 경 읽기야.”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감옥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감옥에 들어갔다가 인차 나올 수 있니?”

 

“그래. 저 굉팔과 오국장은 너무 미움깨를 많이 싸서 나오기 힘들었다. 특히 검찰원 부검찰장이자 반탐오회뢰국 국장인 최혜경한테 걸려 꼼짝달싹 못했어. 최국장이 누구냐? 로시장 외동딸이야. 아직도 시집가지 않고 전문 쥐새끼들을 잡아내는 매고양이야.“

문걸은 무릎을 탁 쳤다.

 

“최국장이란 녀자 성호 첫사랑 아니냐?”

“맞다. 그런데 성호는 최국장을 친조카한테 빼앗겼지. 성호 조카는 에이즈병에 걸려 죽었다더라.”

 

정호는 미녀로봇이 저쪽에서 록음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흥이 도도해 옛말이나 하듯 했다.

“다행히 감옥 의사는 내 가시아버지 제발시킨 분이야. 그래서 그 법의하구 짜고들어 겨우 구해냈다. 지은 죄야 감면할 수 없지. 내 변통해서 굉팔은 암에 걸렸다고 보석치료받게 감옥에서 꺼냈다.”

 

“저 오국장은?”

“너와 친구니깐 말하지만, 이런 말 누구와도 하지 말라.”

문걸은 머리를 끄덕였다.

 

“저 오국장은 송강처럼 감옥에서 똥이랑 처먹으면서 정신병자처럼 놀았지. 법의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확진해 보석치료받게 꺼냈다. ㅎㅎㅎ.”

 

“참 대단하구나. 두 놈이나 감옥에서 꺼내주고 톡톡히 얻어먹었겠구나.”

“그거야. 지금 세월에 어디 공게 있니? ㅎㅎㅎ.”

 

그러나 정호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여지를 두었다. 아무리 짜개바지친구라고 해도 공간을 두고 사는 것이 생존법칙이 아닌가.

“내야 의리심으로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와줬을 뿐이야. 친구끼리 얻어먹자고 구해주면 되니?”

“쳇.”

 

문걸은 미녀모델을 소개해주고 수고비를 얻어먹던 정호를 떠올라 콧방귀를 뀌였다.

“너덜거리다가 이제 지옥에 가지 않는가 봐라.”

 

“얘, 재수없이 방정 떨지 말라. 저 두놈은 완전히 감옥에서 발을 뻬지 못했어. 그런데 굉팔은 눈치 없이 장기를 땅땅 논단 말이야. 오국장을 봐라. 숱한 사람들 앞에서 오줌까지 처 먹으면서 연극 노는 거. ㅎㅎㅎ.”

 

정호는 장기판 쪽을 돌아보았다.

“됐다. 믿고 너무 숱한 말 했구나. 절대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 그럼 후에 다시 보자.”

문걸은 정자 쪽으로 떠나가는 정호 뒤모습을 보면서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미녀로봇이 살그머니 다가와 금방 대화를 록음한 일을 알려주었다.

 

문걸은 머리를 끄덕였다.

(빨리 성호한테 알려야지. 성호는 최혜영과 잘 아는 사이 아닌가.)

사실 성호와 최혜영은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에서 등장한 주인공이였다. 그들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관계였다.

 

(정의감이 있는 성호와 최혜영 국장은 굉팔과 오청룡을 절대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정호가 아직도 이 세상에서 마음대로 횡행하다니?)

문걸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피뜩 이상한 생각이 머리를 쳤다. 이전에 망아산에서 사자머리들한테 브래지어바람에 쫓기던 영희가 떠올랐다,

(혹시 그때 영희가 그 놈들한테 당하진 않았을가?)

상상하기조차 싫은 가정적인 일이였다.

 

순간 문걸은 새로운 의혹과 함께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고통의 한 수렁에서 겨우 기여나와 또 새로운 고민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영희 때문에 진짜 속이 다 타다 못해 재가루 될 지경이였다.

 

문걸은 먹장구름이 떠가는 흐리멍텅한 하늘을 우러러 피눈물을 흘리며 연기가 쏟아져나오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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