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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12/12  한민족신문
예의모델의 새 장을 열어가는 사람

연변패션모델회사 총경리, 연변승무학교 최옥금 교장의 이야기

10여년전부터 길림성 연길시에서 처음으로 연변패션모델회사, 연변항공승무학교를 꾸려 예의모델의 새장을 열어가는 여 강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최옥금(49)교장이다.

 

학원들이 제7회 중국연변·두만강지역 국제투자무역 상담회에서 화려한 민족복장모델 패션쇼를 선보이고 있다. /자료사진
 
흑룡강성 밀산시 련주산이 고향인 그녀는 어린 시절 음악예술인이 되는 것이 꿈이였다. 성급우수교사였던 아버지가 '우파'로 몰려 '현행반혁명'가족의 딱지를 붙이고 살아야 했고 가정이 몹시 가난하여 사고 싶은 손풍금하나 마련할 수 없었으며 특히 선천적으로 키가 작아 예술인이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권고를 수없이 들었지만 그녀의 예술에 대한 추구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그녀가 18세 되던 해, 그녀는 음악예술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품고 민족예술의 전당으로 알려진 연변예술학교의 대문을 두드렸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이 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2년간의 피타는 노력을 거쳐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성공적으로 할빈사범대학 예술계에 입학, 하지만 여기의 학과가 자기의 희망과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는 결연히 학교를 떠나 왕청현의 천교령중학교에서 음악교원의 생애를 시작했다.

 

1986년 여름, 그녀는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꾀하여 천교령중학을 떠나 연변예술학원에 들어갔다.3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조직의 분배로 안도에 가 계속 교편을 잡기로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예술가들이 운집한 연길이야말로 자신의 포부를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무대라고 판단, 안도로 갈 기회를 포기하고 연길에 남았다. 정규적인 직업을 잃었으니 사이다공장, 담배공장 등을 돌며 임시공으로 일했고 가정교사 등 일도 하면서 간신히 연길에 발을 붙였다.

 

바로 이렇게 연길로의 정착은 그녀가 성공으로 내디딘 첫 발자국이였다. 여기에서 그녀는 숙련된 한어지식을 쌓았고 교육인으로서의 기본준칙을 터득하였으며 또한 여기에서 31세 로 처녀는 끝내 자신의 사랑을 찾았고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았다.

 

2001년, 포부가 컸던 그녀는 다년간의 교학경험을 바탕으로 결연히 사직하고 연변지역 첫 패션모델회사를 설립했다. 자금이 없어 필요한 시설들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업무가 적어 2004년까지 줄곧 적자상태였다 .게다가 친지들과 외계에서 쏟아지는 조소와 비방은 비수처럼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저 허망하게 물러날 그녀가 아니였다. 개혁개방의 발전으로 새롭게 부상하는 예의모델의 앞날을 누구보다 꿰뚫어본 그녀는 이를 악물고 견지 또 견지, 머리를 쥐여 짜며 하나 또 하나의 아이디어를 발상했고 크고 작은 행사에 참여하며 학원들의 실력을 홍보했다.

 

마침내 그녀의 모델회사는 사회의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크게는 성, 시급 정부차원의 대형 행사로부터 각종 무역상담회,과학기술박람회,부동상투자설명회,헬레비젼방송개최식 등 수많은 대중형 활동에서 사회와 진행(司仪)을 맡았고 지난 중국연변·두만강지역국제투자무역상담회,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60돐기념행사에서 화려한 풍경선으로 자리매김 했다.

 

2005년4월, 패션모델학교가 일정한 성공을 거두자 그녀는 연변지역의 유일한 민영 '연변승무원학교'(조선족운영 민영승무학교 전국유일)를 새롭게 세우기에 이르렀다. 연변지역 조선족들의 자원우세와 인민생활의 향상과 중한교류의 발전으로 항공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고 있지만 조선족 승무원이 부족한 상태이다.

 

학교설립 당시 겨우 20여명의 학생에 16명의 교직원밖에 없는 상황에서 구전한 현대식 교학설비들을 갖추자니 자금상 큰 모험을 해야 했지만 확고한 신념과 앞서가는 시각으로 시설들을 구입하고 교사(校舍)와 교학환경을 개선하여 금후의 학교발전을 위해 튼튼한 기초를 닦아놓았다. 그녀의 예견대로 이듬해인 2006년에는 학생 수가 일약 80명으로 늘어나 야호한 운영궤도에 들어서게 되였으며 지금은 230여명의 규모를 갖춘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항공승무학원으로 입지를 굳혔다.

 

지금까지 그녀는 800여명의 모델인재와 항공승무인재를 배양해 냈는바 전방위 봉페식 관리와 100%취업으로 동북3성은 물론 북경, 신강, 사천 등 전국각지에서 학원들이 모여들고 있다.

 

2007년 8월, 연변영상제작회사를 추가로 설립하고 최근에는 연변상무기공학교, 연길항공유치원 등을 륙속 창립, 운영하고 있는 그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또크에도 모델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최교장은 "여기로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이 초중졸업생이고 90%이상이 부모 일방이 출국했거나 이혼한 가정자녀들입니다. 사립학교를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 나이 아이들은 부모가 그렇게 사랑을 해주어도 부모사랑을 모르는 애가 많습니다. 또한 사춘기에 처한 애들이여서 심리적 관리가 정말로 중요합니다."하고 피력한다.

 

이 학교는 학교운영방침을 아래의 세 가지로 정했다. 첫째는 인간성교육으로 장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추며 필요한 직업도덕과 일상생활상식을 전수, 대방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대방에 도움을 주는 품성을 가르친다.

 

그 다음이 공부이다. 직업적 기초와 전업지식을 전수하며 본 업종에서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취직이다. 영어, 일어, 한국어, 러시아어(러시아강사 초빙) 등 외국어학과를 개설하여 타 지역에 우선되는 언어실력을 갖추어 취업의 기회를 늘이고 있다. 그것은 사립학교특성상 졸업생들의 취직을 보장하지 못하면 초생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옥금교장이 2010년3월 국제 여성의 날 100주년활동에서 연변주위, 연변주정부로부터 '건국 공헌상'을 수여받았다. /자료사진
사업에서 성공한 최 교장은 사회에 대한 봉사와 불우이웃 돕기에도 솔선수범이다. 10여년래 그는 일상적으로 학원들과 함께 경로원 등에 다니며 위문공연을 하였고 학기마다 학원들을 조직하여 연변텔레비젼방송국에서 조직하는 '사랑의 손길보내기'프로에 출연하고 학원들이 모금활동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학원들의 애심을 길러주고 있다. 그 역시 문천지진, 옥수지진, 일본해일 등 재해지구에 적극 사랑의 손길을 보냈는바 헌금액은 30여만원에 달한다.

 

다년간 연변조선족자치주 정협위원, 연변주기업가협회 이사,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이사로 활약하고 있는 최교장은 연변주정부 '건국공헌상(巾帼贡献奖)', 연변주민정국 '사회조직선진사업자', 일본 '중일사쿠라문화발전기금회'감사장 등 많은 영예를 받았다.

/최성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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