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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05/01  한민족신문
겨울나무

사랑하는 어머니를 그리면서

나는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책을 나왔다. 날이 희붐이 밝아오자 삼삼오오 운동하는 사람들이 희미하게 안겨온다. 내가 언덕길에 들어서려는데 휘우듬한 나무 한 그루가 흰 눈을 떠이고 서 있는 모습이 유표하게 보였다.

 

저 나무는 여름철이면 푸른색 옷단장을 하고 사람들한테 시원한 그늘이 되여 주고 시원한 산소를 제공해 주며 매서운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만이 바람에 몸부림을 치면서 혹독한 추위를 맞서야만 하는 강인한 나무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다시 쳐다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나의 어머니를 방불케 하였다. 나의 어머니도 마치 저 나무처럼 흰 머리에 곱사등할머니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났다. 동년을 두메산골 회장촌에서 성장했는데 운명의 조화라 할까 남편을 만나 도외지로 나오신 어머니께서는 한가정의 주부가 되여 위로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는 어린 자식들을 돌보면서 집안 살림에 애를 써야 했다.

 

60~70년대는 먹고살기가 무척 힘든 시기였다. 식량도 량표로 배급 주었기에 식량난에 허덕이기가 일수였다. 어머니께서는 위로는 시부모님을 공양하고 아래로는 네 자식을 키워야 했기에 여덟 식구가 아버지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하루는 어린 자식이 그래도 맏이노라고 초롱초롱한 두 눈을 부릅뜨고 엄마를 마주앉아 (엄마는 왜 배추만 먹어?)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언제 그러했냐는 듯이 (엄마는 배추가 맛 있어서 먹는단다.)하면서 어린 자식 앞에서 량식이 모자라서 먹는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으셨다.

 

또 하루는 옆집 영자할머니가 불 아궁이에 콩깍대를 집어놓고 동네 마실을 나갔는데 그것이 큰불이 되여 줄 집을 홀딱 다 태워버린 눈물겨운 사연도 있었는데 나의 부모님들도 그중 피해자의 한 분이였다. 그 후에 닥친 일들은 물론 말하지 않아도 독자여러분들이 잘 알 것이다.

 

옛 말에 일어설 막대가 있어야 잘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듯 다시 새 살림을 이루려고 아득바득 살아왔으니 그 운명인들 얼마나 기구했으랴!

 

이렇게 나의 부모님들은 생활의 좌절에도 머리를 숙이지 않았으며 자식들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바로 산소를 제공해주고 땔나무가 되어 주는 저 나무처럼 말이다.

 

아버지의 변변치 못한 월급에 매달려 중풍으로 앓고 계시는 시부모님과 네 자녀를 먹여 살리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집 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학교마당의 버려진 재 더미를 헤쳐 가며 콕스를 주어다가 화로불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시부모님들이 중풍 또는 치매증상으로 병환에 계시던 나날에도 빨래는 강변에 가서 해야만 했다. 발전이란 전혀 없는 세상에 세탁기가 어디에 있었고 수돗물은 생각지도 못했다.

 

때론 차디찬 물에 퉁퉁 부어 오른 손을 가마 목에 녹이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이렇게 어머니는 수 십년 세월을 추호의 원망도 없이 묵묵히 가족을 위하여 자신의 청춘을 다 바쳐왔던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 림원춘의 소설 “몽당치마”를 알고 있을 지는 모르지만 당시 어머니의 상황은 마치 그 글속의 주인공 조양천 댁마냥 궂은 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집안을 위하여 헌신하는 현숙한 아내처럼 시부모님한테는 무던한 며느리였고 남편한테는 현숙한 아내였으며 자식한테는 훌륭한 어머니셨다.

 

그러다가 개혁개방의 열조에 휘말려 양복점을 차리셨는데 생활수준이 어지간히 제고되자 나이가 들면서 고생한 후유증으로 몸은 새우등터럼 휘여 지고 말았다. 바로 저기 저 휘여진 겨울나무처럼 말이다.

 

나무는 겨울이면 화로불이 되여 인류를 위해 장작이 되고 여름이면 우산이 되여 비바람을 막아주고, 장마를 막아주는 기능도 한다.

 

나의 어머니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가정을 위하여 마른일 궂은 일 가리지 않고 선뜻 자신을 희생하신 나의 어머니시다.

 

나는 기승을 부리는 칼바람 추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꿋꿋하에 살아가는 저 겨울나무가 더 자랑스럽고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가정의 화목을 위하여 혼신을 다 바친 나의 어머니의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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