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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5/06/27  한민족신문
도전자의 꿈은 아름다워

애심성금 100만원을 선뜻 기부한 심양성보백화 김성순회장의 인생추구

김성순회장 프로필

 

1960년 연변주 연길에서 출생, 청소년시기를 흑룡강성 농촌에서 보내다 1980년 연길로 이주, 1985년 연변대 졸업, 연변주당학교에서 근무, 1993년 연변성보그룹에 스카웃, 총경리, 부회장직 담임, 2007년 파산위기에 직면한 심양북시백화상점을 인수, 성보백화로 개명해 회장, 총경리직 담임. 심양시백화업종 부회장, 화평구정협위원, 3.8붉은기수, 우수기업가, 료녕성한마음애심회 부회장.

 

지난 2010년 2월 18일 오전, 한국 호서대학에서는 해마다 전통적으로 치루는 졸업식을 성대히 치뤘다. 본과 졸업생들의 학위수여식에 이어 석,박사 학위수여식이 있었는데 나이 지긋한 한 녀인이 후배들과 함께 박사모를 쓰고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연변성보그룹 부회장 겸 총경리, 심양성보백화점 회장 겸 총경리 김성순녀사였다. 5년간의 노력끝에 당당히 취득한 박사학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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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중반의 나이에 비해 한참은 젊어보이는 김성순녀사, 언제 보아도 그 모습이나 옷차램새가 수수해 이웃아줌마같은 푸근한 인상을 주었지만 대화를 나누어보면 그 풍부한 지식과 조리있는 표달력에 학자같은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는 세련된 경영인이였다.

 

  1960년생인 김성순녀사는 연변의 출판일군이였던 부친이 50년대에“우파”로, 60년대에“외국특무”로 몰리우는 바람에 어린 나이에 흑룡강성의 편벽한 벽촌에 쫓겨가 갖은 수모를 받으며 불우한 청소년시기를 보내야 했다. 더우기 10년 동란기에 부친이 반란파들에게 투쟁받다가 돌연사하는 바람에 엄청난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1980년에 부친이 명예를 회복해서야 연길에 돌아가 건축공사에 배치를 받았으며 1982년에 각고의 노력끝에 연변대학에 입학, 대학꿈을 이루게 되였다. 대학기간 그는 한어학부 학생회 주석, 교내간행물인 <<봉오리>>잡지의 부주필, <<실버들녀성잡지>>의 주필직을 맡아 조직능력과 문학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기도 하였다.

 

연변대 졸업후 북경대학 심리학부에 가 1년간 연수를 마친 그는 연변주당학교에 배치받아 교편을 잡았는데 재직연구생으로 연변대학 동방철학 중한비교철학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연변과기대 경영학부 CEO석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하였다.

 

  1993년 그는 한국투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해 연변성보중한합자회사를 설립하였으며"성보"의발전을 위해 필사적으로 분투해오며 1등공신으로 거듭났다..

 

  “연변성보”는 다년간 연변지역에서 가장 사랑받는 외자기업으로 해마다 지방재정에 수백만원에 달하는 수익을 보태주고있다. 16층, 2만 8천평방메터에 달하는 성보빌딩은 지하1층과 5층은 한국백화상점이고 6층부터 16층은 호텔, 식당, 예식장, 미용실 등으로 경영되는데 400여명의 업주들이 입주하였으며 1500여명의 임직원들이 근무하고있다.

 

 
지난 2011년 국가상무부 고찰조책임자를 배동해 성보북시농산물상점을 돌아보고있는 김성순회장(왼쪽 첫번째)
 
김성순녀사는“성보”가 연변에서 성공할수 있은 비결을 다음과 같이 귀납했다. 첫째, 정부의 지지를 적극 쟁취하였다.“성보”는 시작부터“연변 개혁개방의 축소판”으로 자리매김해 주정부, 연길시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1998년 9월에 성보백화점의 개업을 앞두고 연길시정부에서는 성보백화점주변의 수백개의 로점상들을 철거해주었고 주차장이 없는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시장거리 공도(公道)를 주차장으로 허가해주었으며 IMF영향으로 건축자금조달이 난관에 부딛쳤을 때 주정부에서 나서 인민페 2천만원을 저리식으로 대출해주도록하였다.“성보”의 성공은 현지정부의 지지와 갈라놓을수 없었다.

 

  둘째,“성보”는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로 정부의 지지에 보답했다.“성보”는 초창기부터 불우이웃돕기, 양로원돕기, 장학활동을 적극 펼쳐왔는데 현재까지“성보”장학금수혜자만 해도 천명이상에 달한다. 해해년년 지역사회에 대한 복지사업으로“성보”는 연변인민들속에 좋은 이미지를 수립해갈수 있었다.

  셋째,“성보”의 사훈(社訓)“화합으로 부를 창출하며 나눔과 기쁨으로 한께 하는 세상-성보”에서 밝혔다싶이 성보는 경영활동에서 철저하게 호혜호익의 원칙을 견지하였다. 회사의 리익보다 업주들의 리익을 먼저 고려해“성보”에 들어오면 부자가 된다는 리념을 철저하게 심어주고 그대로 실천해 성보의 업주들은 항상 자신들을 성보의 주인으로 간주하게 하였다.

 

  넷째, 직원들에 대해 인성화관리를 실행했다.“성보”는 신입사원들에게 정규적인 훈련을 통해 신입사원들의 자질을 높여주었으며 여러면으로 직원사랑을 실천해오고있다. 싹수가 보이는 직원은 회사돈으로 대학에 보내 진수하게 하였으며 평소에 정기적으로 직원가정을 방문하며 가정형편을 수시로 점검하고 어려운 직원가정은 경제적으로 도와주고있다. 병에 걸린 직원은 회사에서 치료해주고 직원들의 가정에 대사가 있을 때면 꼭 부조해주군 한다. 이런 기업문화로 직원들의 응집력을 강화시키고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키워주어 단체(團隊)의 분발심을 향상시켰다.

 

  지난 2007년 김성순회장은“성보”발전사에서 획기적인 중대한 결책을 하게 되였다. 심양진출을 결단하였던것이다. 북경, 상해진출을 적극 검토해오다가 심양진출을 결책했던것이다. 심양은 동북지역의 최대도시이고 우리 동포들이 많이 거주해 한국상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일면도 있지만 심양시정부와 화평구정부의 적극적인 유치태도가 그들의 마음을 끌었던것이다.

 

지난 2012년 성보백화 중층간부 경선장에서 연설하고있는 김성순회장
 
화평구정부에서는
4차례나 연길에 가“성보”를 고찰, 현지정부 등을 통해 다방면으로“성보”를 료해한후 고찰단을 인솔해간 화평구 구장은 김성순회장 등에게 심양에 특색경제구축의 일환으로“성보”같은 기업이 꼭 필요하다며 심양에 진출해줄것을 진심으로 요청하였다. 김성순부회장은 화평구정부와 여러차례의 담판을 거쳐“성보”가 북시백화점을 인수하기로, 심양시정부와 화평구정부에서는“성보”에 국유기업체제개혁에 관한 우혜정책을 최대한으로 제공해주기로 약속하였으며 다방면으로 우혜조건을 제공해주었다. 연길에서부터 정부지지의 중요성을 깊이 터득한 김성순녀사는 다년간 심양시정부, 화평구정부와 량호한 관계를 유지해오고있다.

 

 심양북시백화상점을 인수할시 건축면적이 3만평방메터에 달했는데 김성순회장은 통크게 건물북켠에 수천평방메터에 달하는 건물을 추가로 건설하였다. 현재 심양성보백화점은 1-4층은 한국상품전문판매장이고 5층은 헬스클럽, 골프연습장, 먹거리타워 등으로 꾸며졌다.“한국을 보고 싶습니까? 성보에 오십시요! 한국에 가고 싶습니까? 성보에 오십시요!”심양성보의 홍보문구처럼 심양성보백화점에는 취급하지 않는 한국상품이 없다. 업주들은 대부분 연길에서 따라온 사람들인데 20여년의 경영노하우로 모두가 한국에 거래처가 있으며 한국에서 상품을 직접 수입해온다.

 

근년래 심양시정부는 북시지역종합개조계획을 세우고 종합건설을 다그쳐 현재 이 지역에는 고층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일떠서 그 옛날 심양시의 주요 상업거리중의 하나였던 모습을 회복하고 있다. 당연히 성보백화는 이 지역의 간판적상가이다.

 

 
지난
2010년이래 심양시정부는 환경을 어지럽히는 길거리시장들을 점차 없애기 위해 규범화된 실내 농부산물상점들을 세울것을 적극 권장, 이를 <<혜민공정>>으로 명명하였다. 김성순회장은 정부의 호소에 적극 호응해 신축한 성보백화건물에다 경영면적이 1,500평방메터에 달하는농부산물상점을 오픈, 타일을 붙인 깨끗한 인테리어에 바닥난방시설과 대형에어컨을 설치하고 공평저울을 두는 등 관리가 규범화되여 심양시정부로부터 <<혜민공정모델>>로 되였다. 전국공상련책임자며 성, 시지도자들이 찾아주었고 청도 등 외지 도시들에서도 견학을 왔댔다. 심양시정부에서는 그후 전 시에 륙속 세워진 55개의 농부산물상점들도 모두 성보의 <<북시농산물상점>>처럼 꾸리도록 요구하였다. 이듬해 김성순회장은 또 북시백화상점을 인수할 때 넘겨받은 1,500평방메터에 달하는 8.1농부산물시장도 새롭게 보수하고 인테리어하여 오픈하였는데  역시 <<심양시혜민공정모델>>로 되였다. 성보의 <<북시농산물상점>>에 대해 료심지역의 10여개에 매체들에서 특별 보도하였다.

 

당시 심양시 관련부문의 김성순회장에 대한 평가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김성순은 심양시, 화평구정부의 지지하에 북시백화를 인수, 백화상점개조에 2억 5,000만원을 투자하였다. 지난 6년사이에 뼈밖에 없던 북시백화점청사를 새롭게 수건하고 원 북시백화의 80만원 부채와 은행대부금 9,000만원을 청리하고 1,500명의 종업원을 배치하였다"

 

1998년 연변성보백화점의 개업초창기의 바쁜 나날에 철학석사공부를 시작한 김성순녀사는 2003년에는 한국 호서대학 벤처경영학부의 경영학학사과정을, 2005년에 석사학위를 획득한후 계속해 박사과정을 밟아 5년후 드디여 박사학위까지 획득하였다.

 

  바쁜 와중에 석박사공부, 더우기 석사학위를 3개나 따내고도 성차지 않아 박사공부까지 기어이 하게 된 동기를 질문하자 김성순녀사는 그 뜻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경영을 하면서 드디여 경영은 결국 인간경영이라는 도리를 깨닫게 되였습니다. 지난날 지도자는 파워가 있으면 무식해도 권력으로 사람을 다룰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관리방식이 통하지가 않습니다. 능력있는 지도자는 대화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경영리념을 대화를 통해 부하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전수해주어야만 경영대오의 자질을 높이고 관리수준을 제고할수 있습니다. 이러자면 지도자자신이 속에 든것이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계속 공부를 하게 된것이지요. 저는 교실에서 교수님들의 강의를 경청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눈앞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지요. 그리고 배운 지식을 실천에 결부하며 배운 보람을 느끼군 하지요”

 

끊임없이 자신을 재충전하는 김성순녀사, 끊임없이 재도전하는 김성순녀사, 이것이 그녀가“성보”를 성공의 대안으로 이끌어온 비결이 아닐가?

 

심양은 김성순회장에게 있어서 생소한 도시였다. 하지만 민족심이 강하고 사회활동능력이 출중한 그는 점차 많은 현지의 조선족유지들과 사귀게 되였으며 조선족사회의 활동에 적극 참석하였다. 료녕성, 나아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정부인가를 취득한 조선족 자선단체인 료녕성한마음애심회를 후원해오며 부회장직을 담임하게 된 그는 박성관회장이 1천만원 등록자금으로 <<애심회>>를 독립법인으로 새롭게 출범시키려고 하자 기타 7명의 부회장들과 함께 각기 100만원을 선뜻 기부해 <<김성순기금>>을 성립하였다. 이 기금의 원금은 영원히 은행에 저축되고 해마다 그 리자로 동포사회의 불우이웃, 빈곤학생후원에 사용하게 될것이다.

 

"저라고 왜 힘들게 번 돈을 내놓기가 아깝지 않겠어요. 하지만 제가 기부한 성금이 우리 민족사회의 화합을 위해 보람있게 쓰여질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깝지가 않아요. 뿌듯하고 자부심도 들구요" 가식없는 김성순회장의 감회토로에서 기자는 한 인간의 깨끗한 심령을 엿볼수 있었다.

                  

김성순회장은 자신은 네들랜드의 철학자인 스피노자의"비록 래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여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명언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항상 일기책이나 사업노트의 첫 장에 적어 놓았다고 하였다. 이 말은 학창시절, 한국 리화녀대 이배용 전임총장이 연변대에 와 특강할 때 처음으로 접했는데 너무도 감명이 깊어 좌우명으로 정하게 되였다고 하였다.

 

인생길은 누구에게나 평탄하지가 않다. 더우기 기업인은 일반 사람들에게 비해 풍파도 더 많이 겪기 마련이고 좌절도 더 많이 당하기 마련이다. 역경과 좌절앞에서 심태(心態)가 중요하다. 사회를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반성해보아야 하고 역경을 헤쳐나가려는 용기를 키워야 한다. 그리고 역경속에서도"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느긋한 마음의 자세를 키워야 할것이라며 김성순회장은 이"명언"을 동포기업인들에게 추천해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리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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