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물드는 계절이다. 한 계절을 살아낸 잎들이 저마다의 빛깔로 물드는 모습이 오래도록 눈에 남는다. 가을바람에 잎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 잎이 지나온 계절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창밖으로 가을빛깔이 서서히 물드는 나무 잎들을 바라보니 문득 오랜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마침 1976년, 고등학교시절 한 책상에 나란히 앉았던 친구에게서 련락이왔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낯선 타국에서 긴 세월을 견디다가 이제야 고향으로 돌아왔다며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마음이 급해진 나는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구수한 음식냄새와 함께 따스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벌써 몇몇 친구들이 모여 부엌에서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문소리에 그가 다리를 절룩이며 걸어나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기억속의 그는 늘 옷맵시가 깔끔했는데 지금은 등이 살짝 굽었고 발목은 퉁퉁 부어 수술자국이 선명했다. 그는 내게 다가와 꼭 안기며 울먹였다.
"이게 몇해만이야… 잘 살아보겠다고 이국땅에서 하루도 쉰적 없었는데, 이제는 몸도 버리고 남편도 저 먼곳에 묻어두고 이렇게 빈 손으로 돌아왔어."
그의 목소리는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락엽처럼 가늘게 떨렸다. 나는 그의 등을 다독이며 "너는 정말 할 만큼 했어"라는 말만 되뇌였다. 그 순간 창밖의 단풍잎 하나가 유리창에 살며시 부딪혔다. 저물어가는 계절처럼 우리의 인생도 어느새 황혼을 지나고 있음을 실감했다.
점심상은 푸짐했다. 고기소를 넣어 빚은 하얀 쌀만두, 상큼한 야채샐러드, 먹음직스러운 닭찜, 노란 호박죽…. 보기만해도 군침이 돌았지만 식사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이가 좋지못해 음식을 우물우물 씹는 친구, 위가 약해 조금만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다며 수저를 내려놓는 친구…. 우리는 서로가 안쓰러워 짧은 한숨을 주고 받았다. 세월은 분명히 우리들의 몸을 지나갔다.
식사를 마치고 내가 타준 따끈한 커피를 홀짝이며 거실에 모여 앉았다. 나는 피식 웃었다. "다리 부러진 노루가 한 자리에 모인다"더니 대부분이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지내는 친구들이였다. 이내 그 녀들의 수다가 시작되였다. 나는 습관처럼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오가는 이야기가 지나간 추억에 대한 아쉬움일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첫마디부터 무게가 느껴졌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부은 발목을 주무르던 그녀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발목과 무릎연골이 닳아없어질 때까지 일했어. 도대체 누구를 위해 그렇게 참고 버텼을까? 이제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너무 허무하고 앞날이 두려워."
그 말에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보면 우리의 삶은 '나'보다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이름표에 가려져 있었다. 결혼과 함께 자신의 이름은 어느새 잊혀졌고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전부를 바쳤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남은 것은 지친 몸과 텅빈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짧은 침묵이 방안을 채웠다.
그녀가 어제 외국에 있는 아들과 영상통화를 했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아들에게 선언했어. 이제나 '영감'을 하겠다고."
우리가 동시에 물었다.
"그래, 넉살좋은 네 아들이 뭐라고 하더냐?"
그녀는 허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 우리 젊은이들도 결혼이 부담스러워 죽겠는데 엄마나이에 무슨 주책이냐? 하더라."
순간 거실에 서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우리는 입안에 맴도는 말을 꿀꺽 삼켰다. 그 한마디에 나는 문득 깨달었다. 젊은 세대에게 결혼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닌 선택이며 '책임'이라는 무게,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커다란 짐으로 느껴지는 시대라는 것을. 그렇기에 엄마의 새로운 시작이 오히려 낯설고 걱정스러운 대상으로 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삼십년 결혼생활동안, 술만보면 눈이 반짝이는 남편에게 단 한번도 불평하지않고 하루 세끼 술상을 차려냈다. 몸이 아파도 티내지 않고 시부모와 가족을 위해 묵묵히 살았다. 남편이 암으로 쓰러진 긴 투병기간에도 한편으로 간병하며 병원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그녀는 정말 할수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그런 그가 이제야 겨우 자신만을 위해 숨쉬고 싶어하는 것이다. 과연 그게 주책일까? 나는 생각했다.
우리도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젊은 날의 반짝이던 꿈과 소중한 '나'라는 존재를 가족과 생계 앞에 내려놓으며 살아왔다. 그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복잡한 계산없이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 수 있는 동반자가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이 생길뿐이다.
우리는 잠시 말을 잇지못하고 식은 커피를 마셨다. 어느새 베란다 창으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창유리에 희미하게 비친 우리의 모습이 서로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때, 조용히 듣고 있던 오십중반에 뒤늦은 첫 결혼을 한 친구가 무거운 침묵을 깼다.
"야, 지금 백세시대라며? 우리 앞에 시간이 아직 이십년은 훌쩍 넘어 있다구.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마음이 끌리는 대로가. 나는 적극 찬성이야. 밥도 둘이 먹으니 그 맛이 꿀맛이더라."
이어서 항상 주변친구들을 세심히 챙기는 지혜로운 친구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남편이 있는 내가 이런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이제와서 새로운 동반자를 찾는 것이 서로에게 짐이 될 수도 있어. 그보다는 이제라도 홀가분하게 자기취미를 즐기며 사는게 낫지않을까? 나는 오히려 글쓰는 저 친구처럼 사는게 표준같아."
그녀가 나를 가리켰다. 그 순간 창밖의 나뭇가지가 바람도 없이 삐걱거렸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표준'이라는 말이 낯설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일까?
문득 지난번 소꿉친구가 건네던 말이 떠올랐다. ‘몇년 동안 너는 글을 쓰며 힘들고 아픈 시간을 견뎌냈어. 이제는 작가로 이름도 알려졌고 훌륭한 단체에서 회장도 했으니 주변에서는 네가 멋지게 산다고 하겠지… 하지만 가끔은 무조건 애쓰는 너를 보면 친구로서 정말 안타까워. 자식과 시댁,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이제라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외롭지 않게 서로 의지하며 살았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켠이 시렸다. 십년하고 오년이 더 지나온 날들을 떠올리려 하니 어느새 눈물이 핑 돌았다. 예고 없이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난 뒤, 나는 오랫동안 부엌에서 밥 한술 뜨는 것조차 죄스러워 하며 살았다. 너무 보고 싶어 숨조차 쉴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문학을 만났고 밤새 글을 쓰며 조각난 기억들을 종이에 붙잡았다. 한편의 작품을 완성해 문학지에 실릴 때마다 슬픔을 달랠수 있었고 오늘까지 버티며 올 수 있었다. 다만 외로움은 여전히 내 몫이었고 그 외로움은 남에게 보여주기엔 너무 무거웠다. 사실 세상에 '표준적인 삶'이란 없는 것이다.
그때 평소 검소한 옷차림에 말수가 적은 친구가 빈 커피잔 언저리만 손 끝으로 빙빙 도리다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나는 요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 나도 십여년동안 타국에서 간병일을 했어. 낯선 환자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밤새 졸음과 싸우며 새우잠을 잤지. 그렇게 번 돈으로 아들에게 집도 사주고 상가도 마련해 줬어. 그런데 정작 그사이 남편은 쓰러져서 혼자 저세상으로 갔어. 몇년전 나도 건강이 나빠져 연길로 돌아왔지. 이제 효도 받으며 편안히 살고 싶었는데… 자식이 눈치를 주진 않아도 마음이 편치않아."
그녀의 시선은 창밖 어딘가에 머물러 있고 초들한 입술이 바르르 떨었다. 친구들이 술렁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네 생각이 짧았어. 로후를 자식에게 맡기는건 미련한 짓이야. 네가 너를 지키고 대접해야 로후가 행복한거야."
그 말에 그녀는 무거운 고개를 끄덕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옆에 친구가 조용히 그녀의 손등을 쓸어주었다.
언제나 듬직하고 속 깊은 친구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나는 사십초반에 남편을 잃었어. 재혼하지 않고 어린 딸들을 키우려고 집을 떠나 외지에서 많이 일을 했지. 딸들에게 돈으로는 보상했을지 몰라도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한게 한스러워. 이제와서 하는 생각인데 남자들에게 곁눈질 한번 하지않은 것도 좀 후회가 된다."
그러면서 그녀의 눈가에 수줍은 미소가 스쳤다. 지금은 손주를 돌보며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로후대비는 어떻게 할거야?"
친구들이 물었다. 그녀는 자세를 고쳐 앉더니 이내 미소짓는 얼굴로 대답했다.
"걱정마. 내 손에 넉넉히 있어. 게다가 사위와 딸이 매달 용돈도 푼푼이 주거든."
"역시 로년에 팔자가 좋아야 진짜 팔자야."
그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는 웃음으로 누군가는 긴 한숨으로 그 말을 받았다.
어느덧 서쪽하늘에 석양이 드리워졌다. 가족에게 조차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마음들을 이렇게 터놓고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아픔을 다독여 주는 하루였다. 각자의 사정이 다르고 상처가 다르듯, 남은 인생에도 정해진 정답은 없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자식의 눈치나 세상의 시선 보다 자신의 진실한 마음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고 아픈 사연은 가슴에 묻고 다시 시작하는 삶은 힘든 만큼이나 아름다울 것이다.
순간순간이 모여 인생이 되듯, 오늘 나눈 수다같은 이야기들이 어쩌면 우리 인생의 전부였음을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단풍잎 하나가 내 어깨에 살포시 내려 앉았다. 손바닥위에 올려 자세히 보니 초록과 주황과 붉은 빛이 뒤섞여 아직 하나의 색으로 물들지 못하고 있었다. 저물어가는 우리 인생에도 정답은 없다. 그러나 그 잎 하나에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듯이 어떤 삶을 선택하든 그 선택이 바로 우리의 운명이자 의미일 것이다.
가을바람이 유난히 포근했다.
/이정림
2026.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