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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02/03  이정림
미역국 한 그릇

 

계절이 바뀌며 성급한 가을바람이 지는 락엽을 재촉한다. 몸이 춥고 마음이 스산하다. 어제 언니가 병원에 입원하였다. 한해에도 몇차례씩 병원신세를 지는데 올해에만 벌써 세번째이다. 나는 언니의 입원소식을 듣고 전처럼 집밥이나 몇번 날라가면 되겠지 하고 궁리하며 별생각이 없이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저녁 무렵에 돌아왔다. 손을 씻는데 웃방의 유선전화벨이 울린다. 가끔 내가 핸드폰을 받지 않으면 언니가 집전화를 걸어왔다. 수건으로 손에 묻은 물을 닦으며 전화기를 드니 언니의 가냘픈 목소리가 가느다란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다.

 

“왜 핸드폰을 안 받니? 나 많이 아프다.”

 

바삐 핸드폰을 열어보니 언니에게서 온 부재중전화가 네통이나 있었다. 친구와 이야기하느라 핸드폰을 무음상태로 설정해놓았던 것이 너무나 후회되였다.

 

언니는 앞서 50대 초반에 느닷없이 ‘류마티스’에 걸렸다. 불치병이라 일컷는 이 병은 면역체계 이상으로 생기는 자각면역질환으로 손발 관절이 모두 변형되여 보기만해도 끔찍하다. 여태까지 그런 고통도 참고 견뎌오던 언니가 많이 아프다는 말까지 꺼내자 나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밤이 깊어도 병원은 조용하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여기저기 살피며 가는데 응급실창구 앞에서 휠체어에 앉은 한 로인에게 가족이 어디 있는가고 묻는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때 옆집 사람이라며 한 남자가 나섰다. 나는 그분들의 옆을 스쳐지나 다급히 병동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병동입구를 지키는 보안인원이 ‘길상코드’를 제시하라고 한다. 어제 핵산검사를 받아 문제 없을 줄 알았는데 환자를 방문하려면 24시간내의 검사결과가 있어야 했다. 시간을 보니 이미 40분이 초과되여 핵산검사를 다시 받으러 가야 했다.

 

사람은 일만 생기면 나쁜 쪽으로 생각이 기울게 되고 일은 늘 소홀하는데서 생긴다. 제때에 언니 전화를 받지 못한 내 자신이 미워나며 가슴은 까많게 타들어갔다. 기다리는 1 ~ 2 분이 마치 몇시간 같았다. 그사이 책임간호사와 통화해서 언니의 상세한 병증세를 알게되였다. 기관지 확장때문에 치료과정에서 약물과민반응이 있어 응급조치를 했단다. 지금 위험고비는 넘겼지만 환자가 옆에 가족이 없어 많이 불안해 한단다. 삶과 죽음의 중간지대에서 자식 하나 없는 언니, 언니에게 형부와 내가 전부이다. 그러나 형부는 언니를 시중들 형편이 못되였다. 몇년전부터 몸 전체에 서서히 마비가 오면서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수 없는 희귀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핵산검측결과가 나오자면 네댓시간이 걸려야 함므로 나는 할수없이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서글픈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언니가 래일 정신을 차리면 아침식사로 무엇을 대접시킬가? 한참 궁리하다가 뜨끈뜨끈한 국물이 좋을 것 같아 찬장에서 미역 한줌을 꺼내 찬물에 담그었다.

 

새벽 1시가 가까워오자 ‘길상코드’를 확인했으나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한숨도 눈을 못 붙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밤중에 미역국을 끓였다. 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먹기 좋게 가위로 자른 미역을 달달 볶다가 쌀뜨물을 붓고 돼지고기 살고기를 가늘게 썰어 같이 넣고 한 20분을 푹 끓이다가 새우젓과 간장으로 간을 맞췄다. 식을세라 미역국을 휴대용보온병에 담아두었다.

 

밖은 아직도 어둑하고 장밤 쏟아지던 가을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다시 ‘길상코드’를 확인해서 음성으로 결과가 나온 것을 보자마자 나는 준비한 도시락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병원으로 향했다.

언니가 들어있는 호흡내과 708 병실문이 삐죽히 열려있었다. 언니의 코에는 산소호흡기줄이 꼳혀있었고 머리맡에 놓인 의료기기의 형광막에서는 알 수 없는 수자들이 분주히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내가 가까이 가자 그 때까지 정신줄을 다잡고 있던 언니가 “하마트면 너를 보지 못하고 갈 번했구나.”라고 하며 내 손을 꼭 잡는다. 언니의 피기 한점 없는 가느다란 손은 차가웠다.

 

밤새도록 그 아픈 시간을 홀로 보냈을 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고개를 돌리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는데 옆 침대의 환자가 카텐을 걷으며 나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분은 언니가 병실문도 못 닫게 하고 온밤 동생을 기다렸다고 알려주었다. 그분은 언니와 년세가 비슷한데 흐릿한 눈빛에 눈확이 푹 꺼져들어갔고 손등에는 피줄이 아롱아롱하였다.  

 

아침 여덟시가 되자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에 들어와 이것저것 체크하고는 오늘은 언니에게 새로운 치료방안을 쓰겠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언니는 침대에서 겨우 일어나 앉으며 내가 건네준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간단히 양치질도 했다. 나는 보온병에서 미역국을 조금 덜어내고 밥을 한술 말아서 언니 앞에 놓았다.

 

옆 침대의 환자는 그제야 간신히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다 말고 줄기침을 하며 가쁜숨을 몰아쉬였다. 그러다 숨결이 좀 잦아들자 간단히 세수하고 어제 자시다 남은 것 같은 식은 찬밥과 반찬을 간이밥상에 올려놓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그분이 따뜻한 국물이라도 넘기면 기침이 좀 나아질 것 같아 미역국을 한그릇 담아드렸다.

 

그분은 “언니에게나 더 대접시킬 것이지...”라고 말씀하면서도 두 손으로 국그릇을 받아들었다. 한참 미역국을 들여다 보던 그분은 국그릇을 밥상에 내려 놓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고 허구픈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였다.

 

“사실 오늘이 내 일흔살 생일이요.”

 

그분은 하얀 김이 보일락 말락 피여오르는 미역국을 한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예전에도 생일날을 특별이 쇠지 않았지만 올해는 병원에 있으니 미역국 같은 것은 생각도 못 했소. 살면서 이렇게 구수한 미역국을 처음 먹어보오. 오랜만에 생일다운 생일을 쇠는 것 같소.”

 

담담하게 전하는 그분의 말씀은 서글픔도 원망도 없었다. 다만 얼굴에 어떤 무늬인지 모를 그림자가 비껴있었다. 짐작컨대 그리움 같은 것이리라.

 

이렇게 훈훈한 아침식사시간이 지나고 간호사들이 들어와 분주한 손놀림으로 언니와 그분에게 점적주사를 놓았다. 약물이 한방울 두방울 혈관에 흘러들면서 고통을 무마시켰다. 오전 내내 나는 침대맡에 앉아 언니와 옆침대의 아주머니가 조곤조곤 주고받는 대화를 조용히 들었다.

 

그분은 한참 멍하니 천정을 초점 없이 올려다보다가 말씀을 이어갔다. 남편을 일찍이 보내고 홀로 어린 두 자식을 키우느라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였단다. 지금 아들은 외국에 가있고 딸애는 상해에 있는데 모두 멀리 있다보니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라며 한숨을 풀 내쉬였다.

 

“그래도 자식이 있는게 얼마나 든든함둥?”

 

평생 아이를 낳지 못해서 자식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언니 그리고 자식이 있어도 같이 할수 없어 서운해하면서 남편이 곁에 있는 언니를 부러워 하는 그분, 두 70대 로인네가 주고받는 이야기가 내 마음 한구석을 쓸며 정답을 찾느라 서성인다. 자식들이 자기네들의 삶을 찾아 둥지를 떠나면 부모들은 텅 빈 집을 홀로 지키게 된다. 몸이 아파도 옆에서 물 한모금 떠줄 가족이 없으면 얼마나 안타까울가. 어제밤 응급실 앞에서 로인환자의 가족을 찾던 의사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자꾸 귀가에 들려왔다.

 

“이제 저승에 가면 령감을 찾아 내가 이승에서 고생한 값을 받아 내겠수다.”

 

이렇게 말하며 언니와 눈길을 맞추던 그분은 어디에서 걸려온 전화인지 받자마자 강마른 몸을 휘청이며 바삐 병실문을 나선다. 언니는 그분이 병실을 나가자 나에게 이렇게 알려준다.

 

“저분은 남편과 사별한 지 몇십년이 됐고 아이들까지도 멀리 보내서 지금은 홀로 지낸단다. 그나저나 저리도 몸쓸 병에 걸렸다니 어쩌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놀랐다. 그렇게 많이 아프면서도 어쩌면 저렇게 미소를 잃지않고 한담을 나눌 수 있을가? 한창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분이 생화 한 묶음을 안고 병실에 들어섰다. 하얀 백합과 빨간 장미가 섞인 꽃다발이였다. 그분은 또 한참 기침을 하며 헐떡이다가 만개한 꽃봉오리 사이에 끼여있는 하트 모양의 핑크색 카드를 뽑아보더니 수줍게 웃었다.

 

“어느 령감에게서 생일선물을 받았습둥?”

 

언니가 우스개로 이렇게 묻자 그분은 밝게 웃으며 친구에게서 받은거라며 얼버무렸다. 머리에 털이 돋아 칠십 평생 살면서 처음이라며 어쩔줄 몰라한다. 녀자친구에게서 받으면 어떻고 남자친구에게서 받으면 어떠랴. 꽃보다 더 진한 그분의 웃음이 오래가기를 나는 희망했다.

그분은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챙피하지만 이 나이 먹도록 누구의 손에서 생일미역국을 받아먹은 것도 처음이고 생일꽃다발을 받은 것도 처음이라고 한다.

 

어느덧 점심 시간이 다가왔다. 정각 12시에 “리선생우육면”에서 국수 세그릇과 무침채 한접시가 병실로 배달되였다.  아마 그분의 어느 자식이 배달을 시켰을 것이다. 덕분에 언니와 나는 점심을 푸집하게 먹었다. 그러나 그분은 우육면을 절반도 들지 못했고 무침채는 한젓가락도 짚지 않았다. 이를 보며 마음이 쓰리고 서글펐다.

 

세월 그리고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가고 있다. 오늘도 어느덧 지친 해가 저물며 병실 창턱에 쓸쓸한 저녁노을이 내려 앉는다.

 

미역국은 평소 언제라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그런 평범한 미역국 한그릇이 오늘 우연하게도 한사람의 70세 생일선물이 되였다. 그것도 변변찮은 병원의 일회용 용기에 담아드렸는데 그분은 오늘 그 어떤 생일선물보다 더 귀한 선물을 받았다며 고마워하였다. 오늘 하루가 마음 따뜻하고 잊을 수 없는 날이라며 헐렁한 환자복 차림을 한 채 나른하게 웃었다. 가을락엽이 부드럽게 지는 모습도 이와 같을가...

/이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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