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기사스크랩
기사 출력  기사 메일전송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http://www.hmzxinwen.com/news/28907
발행일: 2026/10/16  한민족신문
붉은 벽 앞에서 만난 두 겨레의 혼

남영전의 토템문화와 오덕 된장 술 문화의 절묘한 결합

한가로운 마음의 여유 속에서 추석을 보내고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어느 날, 우리는 '조선족단풍문필회' 김창석회장님의 인솔 아래 오덕된장술공장 리동춘사장이 "신개발산업단지"에 일구어 세운 토템공원을 참관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

 

연길 서역에서 곧바로 서쪽으로 2키로미터 떨어진 거리, 내 고향 태양향의 제일 동쪽대문인 원중평촌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산업단지는 그 규모가 대단하였다. 그 웅장한 규모로부터 리동춘 사장님의 바다처럼 깊은 웅심과 원대한 계획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분투하고 노력하는 꿈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꿈만이 아니었다. 이미 그 꿈을 실천해 나아가고 있는 리동춘 사장님은 공장 울안에 우뚝 솟은 솟대처럼 우러러 보였고, 맑고 푸른 하늘처럼 희망으로 넘쳐 보였다.

 

칠십 고개에 올라선 분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는 끼끗하고 훗훗한 형상, 소위 문학인들의 방문이랍시고 깎듯이 대접하고 공경하는 그 모습에서 그의 인간미를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그 자신이 바로 여러권의 무게 있는 책을 세상에 내어놓은 철두철미 문학인이었다. <성공할 수 있는 자의 모습이란 응당 그러한 것이구나!> 나는 속으로 수많은 감탄 부호를 찍으면서 공장의 이모저모를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붉은 벽 앞에서 만난 두 겨레의 혼

 

남영전(南永前)의 시 세계를 떠올리면 늘 붉은 빛이 먼저 눈앞에 어린다. 그가 평생 천착해온 토템문화는 단순한 원시 신앙의 복원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그리고 겨레와 겨레 사이를 잇는 원형적 언어였다. 곰과 호랑이, 까마귀와 사슴이 그의 시 속에서 신화적 존재로 살아 숨 쉬는 것은, 그가 그 민족의 집단 무의식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영혼의 지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토록 웅숭깊은 토템의 세계가 오덕(五德) 된장술 앞에 놓이면 묘하게도 따스한 인간의 냄새가 풍긴다. 오덕의 장 담그기는 겨울이 시작될 무렵 메주를 띄우고, 정월에 장을 가르며 삼월에 술을 빚는 오랜 세월의 리듬을 품고 있다. 콩이라는 땅의 열매가 메주가 되고, 메주가 장이 되고, 장이 다시 술로 익어가는 과정은 어쩌면 또 하나의 토템적 순환이다. 죽은 콩이 다시 살아나 겨레의 밥상과 잔을 채우는 것, 그것은 곰이 여인이 되고 여인이 다시 겨레의 어머니가 되는 신화의 문법과 다르지 않다.

 

남영전의 시가 하늘과 땅을 잇는 수직의 상상력이라면, 오덕의 된장술은 흙과 사람을 잇는 수평의 상상력이다. 하나는 신화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다른 하나는 된장독의 뚜껑을 열어 오늘의 밥상을 차린다. 그러나 이 둘은 결국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겨레의 혼은 늘 밥상 위에서, 잔을 기울이는 손끝에서, 그리고 붉은 벽 앞에서 읊조리는 시구절 속에서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남영전의 토템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이다. 오덕의 된장술이 우리에게 건네는 것은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이다. 그 물음과 건넴이 한 상 위에 놓일 때, 비로소 우리는 신화와 일상이 따로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곰의 혼이 장독에 스며들고, 호랑이의 기운이 술잔에 어리는 순간, 겨레의 시간은 오늘 저녁 밥상에서 조용히 이어진다.

 

붉은 벽 앞에서 나는 오래된 시 한 줄을 읊조린다. 그리고 그 옆에서 된장술 한 잔이 천천히 익어간다. 이것이 남영전의 토템문화와 오덕 된장술이 절묘하게 결합되는 방식이다. 거창한 의식이 아니라, 다만 한 잔의 술과 한 그릇의 밥으로 겨레의 혼을 되살리는 일. 그 조용한 결합이 오늘도 어딘가의 장독대에서, 그리고 어딘가의 시집 속에서 묵묵히 이어지고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번 토템공원 참관은 단순한 견학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잊고 지냈던 내 안의 원형을 다시 불러내는 의식과도 같았다. 공장 울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졌고, 붉은 벽 앞에 서서 남영전 시인의 시구를 떠올릴 때에는 마치 겨레의 긴 시간이 내 몸을 통과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리동춘 사장님이 일구어 놓은 이 터전은 콩을 심고 장을 담그고 술을 빚는 일상의 터전이면서, 동시에 곰과 호랑이와 까마귀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신화의 터전이었다. 일상과 신화가 이처럼 한자리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그저 신기하고 또 감사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차창 밖으로 스러지는 서역의 들녘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콩밭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실려 오는 흙내음은 어쩐지 오덕의 장독대 냄새 같았고, 저녁노을에 물든 하늘은 남영전 시집의 붉은 표지 같았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그 여운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나는 장독대 앞에 오래 서서 익어가는 장내음을 맡으며, 오늘 만난 두 겨레의 혼이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임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 시인의 물음과, 우리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를 건네는 장인의 잔은 결국 같은 대답에 이르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겨레의 혼은 일상 속에서 조용히 이어져 온다는 사실이었다. 그 조용한 진실이 나는 참으로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이렇게 글로 적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남옥란

 


기사 출력  기사 메일전송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포토뉴스

사진작품

미술작품

한중방송 라디오방송
음악감상
사진은 진실만 말한다
방습거울

 가정여성 

한민족여행사

 동포사회 

TV광고

영상편지

한민족신문 韩民族新闻
 
  l   회사소개   l   광고안내   l   구독신청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