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변단풍문필회 십여명의 원로문우들이 연길국제공항경제개발구에 자리잡은 토템문화테마공원인 ‘원융원’을 탐방했다. 탐방 후 일부 회원들이 탐방체험을 담은 수필을 작성했고 또 이 수필들에 대한 독후감들도 썼다.
이 글들은 토템문화를 피상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덕회사와 나 개인의 이야기를 결합하여 깊이와 무게가 있는 작품으로 탄생했다. 작품들이 잇달아 발표되면서 문화계 안팎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지인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내가 실업에 종사하면서 어찌 토템문화와 인연을 맺었는가? 심지어 문화유희를 하거나 풍류를 가장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분도 있다. 이런 의문에 대해 나는 이 기회를 빌어 토템문화와 인연을 맺은 과정, 토템문화공원을 세운 초심과 경위를 간략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토템시인 남영전선생을 소개하려 한다. 내가 남선생을 알게 된 것은 당시 중앙민족대학교 한국계 객좌교수였던 임진철 교수의 소개 덕분이다. 임교수는 남영전 선생이 조선족의 저명한 문학가이자 국제적 영향력을 지닌 뛰어난 시인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나에게 남선생을 함께 찾아뵙자고 권하자 나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마침 중앙민족대학교 황유복 교수님이 대회장을 맡고 내가 집행위원장으로 조직한 제9회 중국조선족학술토론회가 장춘에서 개최되고 있어 시간이 맞아 대회 틈을 타 찾아 뵈였는데, 그때가 2002년초였다.
나는 문화계 종사자는 아니지만 마음속으로 문화인들을 깊이 존중한다. 내 생각에 작가와 학자는 문명사회를 갈망하고 양심을 지키며 마음이 맑은 집단이기에 그들의 추구와 지조는 언제나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남선생의 서재에 들어서자 그가 토템문화의 기원과 깊은 의미를 상세히 설명하고 토템시를 창작한 초심과 걸어온 길을 들려주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토템문화는 인류사회 가장 원초적이고 진실한 신앙문화이며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가 서로 존중하고 의지하며 공영하는 친연 관계를 상징한다는 것이었다. 이 우연한 만남과 교류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토템문화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이러한 인식은 이후 세월 속에서 내 사업 발전에 중대한 영향력을 주었다. 당시 내가 주최한 학술토론회의 주제가 바로 중국조선족 농촌경제가 녹색경제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고, 조선족은 새롭게 거듭나 생태문화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었다. 이 만남으로 인해 나는 토쳄문화를 생태산업의 리론으로 삼았고 또 남선생님과 깊고 오랜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토템문화가 담고 있는 가치를 진심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2006년 8월, 나는 연길 이란진 연화촌에서 연변작가협회와 공동으로 《인류에 대한 토템문화의 계시》를 주제로 학술토론회를 개최했었다. 남영전 선생님이 직접 참석하여 연설을 하며 토템문화는 인류의 정신을 깨우치는 문화의 깃발이 되어야 하고, 사람들이 자연과 사회,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을 경영하고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부를 창출하는 의미가 물질 축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양양과 승화를 포함해야 한다고 줄곧 생각해 왔었다. 사람은 건강한 육신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충실한 정신세계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념으로 회사 앞에 ‘원융원’ 토템문화공원을 세웠다. 기업이 가치를 창출할 때 반드시 사회에 이롭고 소비자의 심신 건강에 도움이 되어야만 오랜 생명력과 지속적인 발전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토템문화가 역사의 긴 세월속에 묻힌 고대 유물이 아니라 인류의 뿌리이자 대대로 전승되는 정신의 혼이라고 굳게 믿는다.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이 고대의 지혜는 여전히 빛나며 우리에게 생명을 경외하고 자연을 지키며 만물의 조화를 추구하라고 일깨워 줄 것이다.
/이동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