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할아버지와 오누이가 한집에서 살았습니다.
집에는 할아버지가 심어놓은 단호박이 있었습니다.
살랑살랑 봄바람에 잎사귀들이 잘 자라면서 제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울바자나무가지로 여느때처럼 애호박으로 된 호박꽃의 열매들을 노끈으로 잘 묶어 보호대를 만들었습니다.
호박은 여러모로 보호대의 수호속에서 무럭무럭 커갔습니다.
지나가던 바람도 스쳐가는 향기에 머물다가 비껴갑니다.
꽃들은 풍겨나는 향기에 취해 더욱 분발하며 발아했습니다. 꿀벌도 잠자리도 꽃향기에 도취되여 잠간 쉬다가 날아옙니다.
호박꽃은 부지런한 꿀벌마냥 쉬임없이 화분을 받아 열매를 맺습니다.
비바람도 얼굴을 스치며 반가이 쓰다듬으며 어서어서 자라라 손짓을 합니다.
하늘이 내린 축복에 호박은 알차게 여물어 갔습니다.
오돌찬 꿈도 지니고 열심히 커갔습니다.
노랑꽃도 이젠 세파에 시달려 누런 수염으로 시들해졌습니다.
이슬을 머금고 자라 서리를 맞으며 익어가는 호박도 이젠 호박티를 내며 통통 여물어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조심스레 호박을 따다가 해볕에 모여놓고 며칠간 볕을 보이더니 작은 칼로 엷게 깎아서 호박 말랭이를 만들었습니다.
해볕에서 붉은 태양의 세례를 받으며 꼬장꼬장 마른 호박은 단즙에 눅눅해지며 꽈배기모양으로 잘도 말랐습니다. 할아버지의 뛰여난 가공솜씨에 호박은 쫀득쫀득한 맛으로 세상별미였습니다.
할아버지의 농사솜씨로 식탁에 오른 떡호박-- 호박말랭이반찬은 참으로 진수성찬이 따로 없는 별미중의 별미였습니다.
지금은 할아버지의 호박말랭이반찬도 이제는 아득히 먼 옛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조상들의 음식문화가 색바래가고 있는 오늘날, 호박꽃들이 여전히 꽃을 피우는 그 열성에 못내 탄복해집니다.
호박꽃이여!
모양이나 색상이나 그 누구보다도 화려하지도 요염하지도 않지만 너의 겸손함에 내 숙연히 머리숙여 지누나.
너의 그 소박함과 겸손함을 영원토록 간직하고 해해년년 꽃피우라.
/김순희
http://www.hmzxinwen.com/news/27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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