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 달님과 함께 밤낮 숨바꼭질을 하며 눈코뜰새 없이 또 한 달을 보내고 한 학기를 마무리는 한여름 불볕더위에 들어서노라니 불현듯 길길이 솟은 느티나무와 수양버들로 숲을 이루어 서늘한 천혜의 피서지로 유명한 북국의 사랑하는 나의 고향, 나를 길러준 배움의 요람이 뇌리를 스치며 꿈 많던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워 집니다.
매양 졸업의 칠팔월이 지나 입학의 팔구월에 즈음하면 새 학기, 새 학년을 맞아 새 학교에서 새 스승님을 모시고 새 학우를 사귀고 새 학과를 선택하여 새 꿈, 새 희망으로 부풀고 설레이련만, 그 어느 누구나 그러하듯이 그 설레임 못지않게 이 세상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도시의 그 어느 명문대로 가더라도, 더 멀리 떠나 갈수록 더 높이 날아오를수록 한결같이 한없이 사무치게 그리운 것은 마냥 고향 어머님의 따뜻하고도 드넓은 품과 정, 그리고 아울러 항상 잊지 못할 자애로운 스승님 계신 배움의 요람인 마을학교에 대한 끈질긴 情懷와 思念, 思慕가 아닐까요.
이게 바로 몽매난망으로 망극지은과 反哺之孝 결초보은에 昏定晨省의 망운지정도 있겠거니와 그보다 이것이야말로 忠孝兩全을 기하기 위함과 락엽귀근은 못하더라도 눈물겨운 首丘初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하여 며칠전에 학생은 가슴 절절하고 애틋한 그리움으로 불타는 저녁노을을 벗삼아 죽장망혜로 나서 자라며 철 들고 뜻을 키워 온 고향마을을 찾아보았습니다.
어버이를 일찍 여의고 형제들과 고향 벗들, 갑돌이 갑순이마저 멀리 떠나보낸 동네 사거리에는 멍멍이는 커녕 그 흔한 딱정벌레 한마리도 얼씬 않고 간혹 길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은 몇몇 짝 잃은 로옹과 로파들의 누르께 한 모습과 떠돌이가 되였다는 선글라스 공을기와 洋裝을 한 아Q와도 같은 치들이 언뜻언뜻 보이기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낯모를 장돌뱅이들의 '사구려'소리 뿐이여서 마음이 못내 서운하고 서글프고 허전한데다 더더욱 참담한 즉경이라면, 적막만 가득 찬 학교•庠序 옛터는 마치도 荒城같았고 무덤같은 정원에 우거진 풀숲엔 호랑이가 새끼를 쳐도 모를 지경이였습니다.
참으로 지난 세기 장장 수십년간 동네와 들녘 하늘엔 붉은기 휘날리고 마을마다 거리마다 확성기소리가 울려나고 보람찬 로동과 새 생활로 들끓어 日月을 휘여잡아 기적의 새 소식을 북경으로 모주석께 보내던 살기 좋은 복된 내 고향과는너무나 대조적이였습니다.
에라 萬愁...
하긴 우리 배움의 요람은 하늘나라로 오른지가 어언간 십년하고도 또 오년이 지났으니 주인없는 古墳을 방불케 하기도 마련이죠.
에라 滿數...
자고로 부모님 산소는 물론이요 작고한 스승님이라 하더라도 초상에 이어 삼년 제 오년 제를 지내고 청명 추석이면 효로써 묘소를 찾아 성묘며 벌초를 해야겠건만 하늘나라로 간 우리 고향마을의 학교는 사당도 위패도 산소도 지어는 喪主마저도 없기에 무려 십오년이 지났건만 제는 커녕 아무런 추모행사도 전혀 없이, 폐허는 수선이며 보강은 커녕 손질도 전혀 하지않아 지저분하게 방치된 그대로여서 발길이 끊어진 빈절같은 거지중천엔 거미줄 천지인데다 기둥이며 들보며 서까래에 도리 모두가 곰팡이로 썩어가고, 한때는 하늘로 치솟은 룡마루를 타고 독야청청 감돌던 그 도도한 기강까지도 무너지고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오- 창천 창해여! 창상지변에 魂은 날아 하늘로 높이 오르고 魄은 가라앉아 넓은 땅에 머물러야 할 터인데 묻노니 우리 고향학교의 魂靈이여 그간 어디에서 어떻게 유령으로 헤매이는지?!
하여 오늘 학생 석주는 고향 하늘을 우러러 두손을 모아 가슴에 얹고 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간곡히 간곡히 비나이다!
河海之澤과도 같은 호천망극의 은혜 어이 잊으리오.
萬口成碑라니 만단정회로 우리 학교와 함께 하늘나라에 가 계신 스승님들과 선인, 선배님들의 명복을 길이 빌며 우리 학교가 이룬 불후의 공적과 거룩한 氣像, 氣槪를 거듭 기리고자 아래 첨부 축문을 뒤늦은 輓歌•挽歌와 만장으로, 제단의 제물로 제례 祭奠의 祭文으로 삼가 올리는 바입니다.
2023년 8월,
폐교되는 모교 앞에서
할빈시 향방구 성고자진에 자리 잡은 우리 동포학교가 문을 닫게 되였다.
슈퍼나 가게가 경영부진으로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 우리 어린이들의 미래를 키우는 학교가, 우리 민족의 래일을 키우는 학교가 문을 닫게 되였다.
예전부터 "굶어죽어도 자식 공부는 꼭 시킨다"는 우리 민족이다.
지난날 우리 동포들은 삶의 터전을 잡아 괭이와 삽을 박을 때 살림집보다도 학교가 우선이였다.
그래서 무릇 동포들이 사는 동네라면 으레 학교가 있기 마련이여서 중국 전역에 많을 때는 무려 수천개소나 헤아리던 우리 동포 학교, 조선족 산재지구 흑룡강성에만 해도 500여개소나 되던 조선족학교가 최근 10여년간에 기하급수로 가뭇없이 사라지고 있다.
웬만한 한 개 시(현)에만 해도 10여개소나 되던 우리 학교가 최근에 와서는 겨우 하나도 있을가 말가 하는 신세로 되여 지금 흑룡강성에 겨우 버티고 있는 동포 소학교가 십자리 수 안이다.
학교가 세워지는 건교식이며 개교식, 학교운영 몇 주년 기념식이면 축하와 축복, 축원으로 하객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꽃다발이며 축의금이 빗발치듯 하고 갖가지 축제행사로 온 거리 온 동네가 흥겨우련만 문을 닫는 학교마당은 싸늘하고 쓸쓸하다 못해 서글프기 짝이 없다.
농경문화의 기틀이 흔들리면서, 해외로 연해도시로, 북경 상해 광주로의 진출로 어쩔 수 없이 학교가 하나씩 문을 닫고 있지만 필자는 어느 학교 하나도폐교식을 가졌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다.
아마도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여서 그냥 마음으로 묵새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나도 우리 학교요, 못나도 우리 학교였는데, 부모와도 같고 자식과도 같은 학교였는데 마지막 길을 그래도 "고마웠습니다!", "부디 잘 가시라!"라고 고이 인사라도 올리고 낡은 문고리라도 한번 더 잡아 보고 싶은 마음 세상사람 한결 같으리라!
새 학기 개학을 앞두고, 아니 지난 학기 마감 긴긴 방학을 고하면서 마련된 할빈시 성고자조선족소학교의 폐교식은 우리들에게 많은 사색과 고민, 반추 내지 애잔한 감수를 주고 있다.
영결식을 련상케하면서도 추모의 정만이 아닌 폐교식에서 력대의 100여명 졸업생들은 석별지정으로 모두 다 사라지는 학교를 가슴에, 마음에 새겨 넣으며 장차 새농촌, 새마을 건설과 함께 머잖아 신형의 새로운 학교를 세우리라 꿈을 무르익히며, 밤을 지세우며, 희붐이 동틀무렵까지 새날을 밝혔다.
아래 폐교식에 드리는 필자의 글은 조상(弔喪) 제전의 제문(祭文)임을 명시하며 사랑하는 모교에 삼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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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8월 김정란교장께서 학교간판을 신성촌 홍남표지부서기께 이전 |
경애하는 고향의 부모형제 여러분,
숭경하는 모교의 선생님 여러분,
친애하는 모교의 선후배 여러분,
존경하는 손님 여러분;
이제 지금 이 행사가 막 끝나면 안개타고, 노을타고, 바람타고, 구름타고 저-멀리 하늘나라를 찾아 떠나게 될 사랑하는 우리 모교가 간판 하나만을 이 땅에 소리없이 남겨놓고 이 고장과 석별을 고하게 되겠지요.
자기 얼굴과도 같고 자기 의상과도 같은 간판에 긴긴 세월의 모든 것을 무겁게 벗어놓고- 힘겹게 실어놓고 홀몸으로 홀가분하게 떠나 가겠지요.
흐릿한 연기마냥 괴로움에 사리고 사려 정다운 학교정원이며 여러 동네로 뻗은 가로세로 오솔길, 흉풍을 모르는 이 고장의 복된 옥토벌을 내려다보며 굽어보며 뒤돌아보며 어디론가 서서히 서서히 흔적도 자취도 종적도 없이 허공으로 사라지겠죠.
사랑하는 모교는 이제 곧 우리와도 헤어져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지만 우리 모두의 축복과 축원을 순풍으로 받아 푸른 하늘 은하수의 하얀 쪽배마냥 저- 멀리, 그 옛날 이 학교를 손수 세우시고, 이 학교를 몸소 키워주시고, 또 이 학교 문을 나오신 우리 동네 고인들이 미리 가 계신 하늘나라 무릉도원으로 서서히 떠나가게 되였습니다.
어쩌면 하늘나라 어디에서 별무리를 모아놓고 샛별학교를 꾸리노라면 해님, 달님이 도와 주시겠죠...
사랑하는 모교- 성고자 우리 학교여 부디- 부디 잘 가시라!
머나 먼 그 옛날, 낯설고 물 선 이 땅을 찾아 삶의 첫 삽으로 거친 이 땅을 개척하신 선인, 선철들의 넋과 뜻으로 세운 모교- 성고자 우리 학교가 어언간 일흔 고개를 훨씬 넘어 수를 다 하게 되였다니 금석지감으로 무량한 감개 금할 수가 없습니다.
칠십여 성상 수많은 꽃봉오리 고이고이 길러 마침내 만천하게 오얏 꽃, 배 꽃향기로 그윽한데 묻노니, 사랑하는 나의 모교여 굳이 어디로 그리도 급히 가시려하나이까?!
초라하고 보잘 것 없던 초가집에 앞뒤방살이의 서당- 글방- 庠序에 불과했던 초창기의 우리 성고자학교는 태여난 그 날부터 오붓한 이 동네, 이 마을의 꿈이였고 희망이였고 씨앗이였고 미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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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7년 할빈시 성고자 신성사 유치원졸업사진 |
너무 가난했기에 부족함이 많았고 너무 부족했기에 째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 그래도 아련한 추억 속에 아름다움만 가득한 그 시절, 아득하게 멀어지고 희미하게 사라지건만 마냥 그 때가 좋았고 항상 그 시절이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긴긴 세월 비록 가난과 함께 자라온 우리 학교였지만 학교는 이 고장의 문명과 문화의 꽃을 떨기 떨기로 피워 복된 우리 삶을 누리도록 하는 필수불가결의 물이였고 공기였으며 우리 생활의 피와 살이였습니다.
광복과 해방을 맞고 새 농촌 건설을 맞아 우리 학교는 제법 규모를 갖추어 린근에 소문난 명문학교로 자라 멀리 ‘막니까’, ‘싼쟈즈’, ‘싸리툰’, 훗날에는 ‘석조’를 비롯한 이 넓은 지역의 문화, 교육의 중심이 되여 수천, 수만을 헤아리는 중학생, 대학생의 싹을 키웠고 또한 고향건설의 문화역군을 키우는 배움의 요람으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교정에서 랑랑하게 울려오는 ‘1, 2, 3, 4...’는 우리에게 셈과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었고 ‘아, 야, 어, 여...’는 우리에게 겨레의 말로 인생과 인성의 눈을 뜨게 해 주었으며 동포와 겨레-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고 바른 기강을 세워 그 피와 혼과 얼이 대를 이어 세세대대를 이어가도록 가르쳐 주었고 가리켜 주었습니다.
우리 학교가 있음으로 하여 우리는 망망창해의 등대와도 같은 목표가 있게 되였고,
우리 학교가 있음으로 하여 이 고장 어제 날 농부의 아들딸들이 오늘은 민족사업가, 행정관리자, 교육자, 과학가, 예술가, 기업가, 의사, 변호사, 법관, 기자, 학자, 교수, 전문가, 경찰, 군인, 장교, 영웅으로 자라났고 더 많은 이 고장의 아들딸들이 성고자의 자랑을 떨치며 떳떳이 세계를 주름잡을 꿈을 키울 수 있게 되였습니다.
우리 학교가 있음으로 하여 뭇별과도 같은 불씨들이 모여 모닥불이 되고 그 모닥불이 피여 올라 우리 동네의 모든분들의 마음을 밝혀주는 횃불이 지펴지고 마침내 그 횃불이 꺼질줄 모르는 거화 봉화로 활활 타올라 장장 칠십여년간 이 동네, 이 고장을 ‘살기 좋은 성고자’라는 무형의 재부로 만들어 세상에 우리 성고자를 자랑함을 무상의 긍지로, ‘성고자 정신’을 고양함을 사명을 넘어 숙명으로 여기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성고자 학교가 오랜 세월 너무너무 지쳐서 도저히 팔십에 가까운 로구로 더는 홀로 지탱키가 어려워 푹 쉬고자, 기나긴잠을 청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학교가 비록 오복중의 마감인 고종명으로 편히 우리 곁을 떠나고 있지만 우리 모든 학생들은 뼈를 깍는 아픔으로 모교의 마감을 지키며 삼가 그 명복을 빌고자 오늘 구름같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 나의 사랑하는 모교여 ㅡㅡ
그 옛날 아물아물 아지랑이 감싼 학교정원 수양버들 안팎둘레에 활짝 피여난 갖가지 붉고 푸르고 노오란 꽃들, 그 꽃밭 위를 자유자재로 한가로이 노니는 잠자리와 나비들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교실마다 꽉꽉 차넘치는 붉은 넥타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그립습니다.
단발머리에 고무줄놀이와 가위바위보, 자치기에 딱지놀이 군사놀이도 그립습니다.
햇살 아롱진 냇물의 천진란만한 애송이 개구쟁이 물장구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학습의 긴장을 풀어주는 중간체조시간 종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고 ‘싸포자’, ‘구지보’, ‘탕창보’, ‘아스하강변’ 으로 산보가고 원족가던 그 시절, 너는 삶은 닭알 한두개에 나는 소고기장졸임- 도시락자랑으로 오구구 들떠 삼삼오오 모여앉던 그 때, 보배찾기로 숨바꼭질로 즐기던 그시절이 눈에 선하고 그립습니다.
방과후면 정적이 깃든 사랑하는 나의 모교 앞뜰의 귀뚜라미며 매미 우는 소리, 뒷울안 늪가의 개구리 우는 소리, 하늘과 처마에서의 지지배배 지저귐소리, 멀고가까운 곳에서 울려퍼지는 영각소리, 검은 땅 갈아엎는 경운기소리에, 이집저집에서 몰몰 피여오르는 밥짓는 연기와 구수하게 풍기는 된장국 냄새에, "철이야 옥이야 밥먹어라"는 부름소리와 장돌뱅이 사구려 외침이 한데 어울려 거창한 교향곡마냥 울리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드넓은 학교운동장은 농한기면 어김없이 사방 이삼십리의 홍선, 신향방, 동과수를 비롯하여 할빈시 동측 여러 행정구의 동포동네 종합 운동회를 계기로 풍작과 단합을 기원하는 축제의 장이였죠.
하늘땅에 울리는 북 장고 응원에 축구며 배구 륙상경기에다 널뛰기 그네에 노래와 춤자랑까지 넣어 이삼일간의 만남의 장, 화합의 장, 민족민속 대잔치의 장이였엇고 그때면 누구보다 분망하신 분들로는 학교 선생님들이였고 그 누구보다 즐거운이들로는 학교의 책걸상을 날라다닌다 시원한 뽐프물을 선수들께 나누어드린다 상품이며 기념품을 나누어드리는 우리 어린이 꼬마들이였습니다.
그 꼬마들이 오늘 지금 모두 어디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눈물나게 그립습니다.
선생님의 따끔하고 자애로운 꾸중소리, 사랑가마냥 사락사락 흑판에 쓰시는 분필소리, 놀음에 지쳐 숙제를 못한 날의 나머지공부까지도 그립고, 동심을 울리는 발풍금, 손풍금소리가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저 뭉게구름 아래 산들바람에 실려 넘실넘실 스쳐지나는 잔물결은 마냥 악보이런가 엊그제 부르고 또 불렀던 우리 동요가락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 심금을 울립니다.
꼬불꼬불 꼬불길 학교가는 길 ---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자유의 강산에서 우리 자라고 ---
우리 고향 성고자 거리마다엔 ---
찡하게 귀전에서 맴돌며 눈시울을 적시며 가슴이 뭉클해나도록 그리운 동년의 요람이여ㅡ 배움의 전당이여 ㅡ
교무실 창살과 바람벽에 비낀 우리 선생님의 영상이 너무나 정답고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소학교 1-2학년 담임 리복순선생님, 3-4-5학년 담임 김기숙선생님, 음악에 하부록선생님, 체육에 김재동선생님 ---
기나긴 칠십여 성상, 저 넓은 품으로 누구라 없이 하나하나 포근히 껴안아 키워준 우리 모교여- 작별의 눈물 샘솟듯 하고 애련한 석별의 정으로, 고별과 영결로 저린 가슴 갈가리 허비니 바싹 메마른 혓바닥에 무어라고 더 여쭈어드릴 말씀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자고로 칠십고래희라고 우리 성고자 학교도 칠십성상을 마무리하고, 나이 칠순에 력사적 사명을 안고 이제 가야 할 곳으로 곧 가게 되는가 봅니다.
필히 떠나야 할 성고자 학교는 이제 갈 곳으로 가더라도 지금껏 학교와 함께 고향을 지켜온 우리 성고자의 부모형제분들께서는 짝을 잃은 외로움과 괴로움이 오죽하랴만 슬픔과 그리움을 힘으로 바꾸어 고향산천을 상전벽해로, 새로운 창의력과 궐기로 천지개벽을 안아온다면 언젠가는 신형의 우리 성고자학교가 다시 이 땅에 뿌리 내리리라 굳게 믿어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각까지 성고자 우리 학교의 마감을 지켜온, 최후를 지켜온 성고자조선족소학교 전체 선생님들에게 머리 숙여 삼가 숭고한 경의를 드립니다!
고향을 지켜 오신, 또 앞으로도 지켜 가실 고향 여러분들의 강녕, 수복과 행복을 길이길이 기원합니다!
/학생 장석주 올림
2008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