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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6/16  옥필
내 추억속의 볏짚

청국장을 잘 발효시키는 데는 볏짚이 제일이라고 해서 해마다 초겨울이면 볏짚을 구해 와야 하는데 지난해도 논밭에서 가져왔다. 이전에는 농촌마을에서 겨울을 지내던 볏짚이 인제는 버림을 받아 논밭에 자리를 틀게 되였다.

 

샛노랗고 부드러운 볏짚을 보노라니 어릴 떄 일이 떠올랐다.

 

어릴 때 나는 겨울방학만 되면 시골에서 사는 외갓집으로 놀러간다. 배급생활을 하는 우리 집은 이밥이 그렇게도 그리웠던 것이다.

 

그때 외갓집에서는 매일 마다 볏짚으로 가마니를 만들고 있었다.

 

볏짚은 밀짚이나 보릿짚 같이 빳빳하지도 않고 부드러워 무엇을 만들기에도 적당했다.

 

가마니를 만들려면 온 집 식구가 동원되다시피 했다. 어떤 사람은 새끼를 꼬아야했고 어떤 사람은 가마니를 짜야했는데 한사람이 너무 오래 짜노라면 힘겨워 다른 사람이 바꿔 앉기도 했다.

 

가마니 짜는 기계는 나무로 만든 것인데 발판을 디디면서 짚 한 오리씩 물릴 때마다 “덜커덩ㅡ”하고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그 소음이 귀찮았지만 그러나 습관이 되니 괜찮았다.

 

그렇게 짚 한 오리씩 한 오리씩 걸려들면서 만든 가마니를 가져다 팔면 돈이 생겼는데 돈 버는 기분으로 해서 외할머니는 열심히 새끼를 꼬았고 외숙모와 이모는 아침부터 밤중까지 가마니 기계 앞에 앉아서 힘 드는 줄도 모르고 가마니를 짰다.

 

밑바닥을 깊게 짜 마주 붙인 가마니는 멍석을 만들 듯이 엮어 일일이 곡식을 말로 되지 않아도 알 수 있도록 대강 용량을 가늠하여 만들어 말이나 소등에 얹어 운반하기 좋게 했고, 특히 곡식을 담은 후 바람이 잘 통해 벌레가 생길 염려가 없었고 좁은 장소에도 차곡차곡 쌓으면 많이 포개 놓을 수 있었다.

 

또한 가을이면 벼이삭을 털어 낸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덮은 샛노란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 아득한 평화로움으로 다가왔다.

 

직선의 웅장함보다 곡선의 부드러움을 사랑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이 밖에도 짚신, 즉 볏짚으로 만든 짚신에서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외할머니는 쩍하면 볏짚 몇 오리에 재를 묻혀서는 놋숟가락들을 닦으셨다. 그러면 숟가락들이 반짝반짝 윤기가 났다. 볏짚은 이렇게 청결작용도 했다.

 

내가 사는 마을은 스무 호가 조금 넘는 마을 이였는데 우리 집을 제외하고는 다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탈곡장에 볏짚이 산처럼 쌓여있었는데 여름이면 저녁에 탈곡장에 쌓여놓은 짚 속에서 숨바꼭질을 놀 때가 많았다.

 

볏짚냄새를 맡으면서 꽁꽁 숨느라고 짚 속에 깊이 들어갔다가 붙잡히면 볏짚위에서 뒹굴며 깔깔 웃어댔다. 그러다가 누워 잘 시간이 돼서 집에 들어서면 엄마가 “너 또 볏짚 속에서 놀았구나.”하시면서 머리에 묻은 짚 오리를 털어주시던 일이 새삼스럽다. 볏짚 무지는 이렇게 동년을 즐기는 놀이터였고 천진난만을 만들어내는 보금자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겨울방학이면 동네 애들과 함께 볏짚에 불을 달고는 거기에 감자를 구우면서 시리어드는 손도 쬐이던 일이 머리 속에 또렷하다.

 

수수한 볏짚은 오랜 세월 후에도 이같이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었다.

 

또한 그 시절에 흔히 운반용으로 널리 쓰이던 지게의 어깨 끈과 등받이도 짚으로 만들어 썼다. 물건을 묶기 위해 밤이면 어른들이 사랑방에 모여 담배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이야기꽃을 피우며 짚을 엮어 새끼를 꼬았었는데 이젠 농촌 어디를 가도 새끼를 꼬는 노인들을 찾아볼 수 없다.

 

짚으로 만든 것보다 편리한 살림살이들이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대 조류에 따라 둥근 초가지붕이 주는 멋스러움이 사라져 버린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전에는 그렇게도 용도가 많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농촌 집집마다 뜨락에 수두룩이 쌓여있던 짚이 지금은 온 겨울 논밭에서 지내다가 봄이면 사라져버린다.

 

볏짚은 사라져가지만 볏짚이 나에게 남긴 추억은 영원할 것이리라.

/박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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