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시대의 노래를 넘어, 한 시대의 문학을 재발견하다
장석주 작가의 「한영남 시인의 회상록으로 본 한윤호 선생」은 단순한 인물 소개나 추모의 글이 아니다.
이 글은 오랫동안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 있으면서도 정작 창작자의 이름은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던 한 편의 노래를 통해, 예술의 창작 과정과 문학적 공로, 그리고 한 시대를 살아간 예술인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의미 있는 평론이다.
한때 중국 전역에서 널리 불렸던 〈붉은해 변강 비추네〉와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는 연변 조선족 사회의 문화적 기억을 대표하는 노래들이다.
특히 김봉호 작곡가의 이름은 익숙하게 회자되었지만, 그 노랫말을 창작한 한윤호 작가의 생애와 문학적 성취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었다.
장석주 작가의 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대중의 귀에는 선율이 오래 남지만, 그 선율에 사상과 정서, 서사의 방향을 부여한 작사가의 이름 때때로 역사의 뒤편에 머문다.
장 작가는 이러한 기억의 불균형을 바로잡고자 한윤호라는 인물을 문학과 음악의 역사 속으로 다시 불러낸다.
이는 한 작가의 명예를 회복하는 작업인 동시에, 집단의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고 또 누구의 이름을 기억에서 누락시키는가를 되묻는 문화적 성찰이라 할 수 있다.
2. 장석주 작가의 탁견 ― 가사와 선율의 예술적 관계를 밝히다
이 글에서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의 창작 과정을 설명하면서 제시한 ‘선사후곡(先詞後曲)’의 관점이다.
장석주 작가는 가사가 먼저 노래의 주제와 정서를 형성하고, 작곡가의 선율이 그 언어에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가사는 노래의 방향을 제시하고, 곡은 그 노래에 날개를 달아준다.
이러한 해석은 음악을 단순히 작곡가 한 사람의 창조적 산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작사와 작곡이 어떻게 서로의 예술적 가능성을 완성하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노래의 선율은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고 기억을 지속시키지만, 가사는 그 감정이 향할 대상과 의미를 구체화한다. 무엇을 노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언어적 설계가 없다면 선율은 일정한 정서에 머물 수 있으며, 그 언어를 대중의 마음에 전달할 음악적 형식이 없다면 가사의 생명력 또한 제한될 수 있다.
물론 모든 노래가 반드시 가사부터 창작되는 것은 아니다. 작곡이 먼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작사와 작곡이 상호작용하며 완성되는 작품도 있다. 그러므로 ‘선사후곡’은 모든 음악 창작에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이라기보다, 이 작품의 창작 의의를 해명하는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장 작가가 가사와 선율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통해 한윤호 작가의 공로를 부각한 것은 탁월한 문제 제기다.
익숙한 노래를 다시 듣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노래가 탄생하기까지의 문학적 기여를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장석주 작가의 글이 지닌 비평적 가치다. 이미 알려진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내고, 대중의 기억 속에 가려져 있던 창작자의 존재를 역사적 조명의 대상으로 전환한다.
3. 한영남 시인의 회상록 ― 위대한 작가를 인간의 얼굴로 만나다
장석주 작가의 평론이 한윤호의 문학적 위상을 재조명하는 글이라면, 조카 한영남 시인의 회상록은 그 위대한 이름 뒤에 숨겨진 한 인간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하는 기록이다.
회상록의 문학적 매력은 거창한 업적의 나열보다 일상의 구체적인 장면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젊은 시절 문예공연단에서 활동하던 형제, 아들들의 예술 활동을 못마땅해했던 할머니, 집을 떠나 화룡현 문공단에서 자신의 길을 이어간 작은아버지, 그리고 어린 조카가 처음 만난 키 큰 삼촌의 모습은 한 편의 가족사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의 문화사다.
특히 소학교 5학년 무렵 작은아버지를 처음 만난 장면은 인상적이다. 어린 조카에게 삼촌은 처음에는 그저 낯설고 힘이 센 사람이었다.
공연장에서 환등기를 조작하는 모습을 보며 평범한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야 그가 공연의 극본을 새로 쓰고 무대의 흐름을 직접 지휘하는 창작자였음을 알게 된다.
이 장면에는 예술가의 진면목이 겉으로 드러난 직함이나 역할만으로는 판단될 수 없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무대 위에서 주목받는 배우만이 예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작품의 구조를 설계하고, 장면의 흐름을 조직하며, 관객에게 전달될 의미를 고민하는 사람 역시 예술의 중심에 서 있다.
한영남 시인의 회상은 이처럼 어린 시절의 오해가 존경으로 바뀌는 과정을 통해 한윤호라는 인물의 다층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독자는 유명 작사가의 이름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사랑하고 후배의 글을 지도하며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지켜나간 한 인간을 만나게 된다.
4. 문학적 유산은 작품뿐 아니라 가르침으로도 이어진다
회상록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대목은 한윤호가 조카의 창작 노트를 읽고 들려준 문학적 조언이다.
같은 주제를 쓰더라도 다른 사람과 다르게 써야 하며, 모방을 넘어 자기만의 문체와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어디에 내놓더라도 사람들이 ‘이것은 한영남의 글이다’라고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문학의 본질을 정확히 짚는다.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글을 많이 쓰는 능력이 아니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자신만의 언어로 그 세계를 표현하며, 마침내 자기 이름에 걸맞은 문학적 개성을 획득하는 일이다.
한윤호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노래의 작사가였을 뿐 아니라, 후배 문인에게 창작의 독립성과 개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스승이기도 했다.
그의 문학적 유산은 노랫말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한영남 시인의 창작 정신 속에도 이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이 점에서 회상록은 단순한 추억의 기록을 넘어선다. 한 예술가가 남긴 작품과 정신이 어떻게 다음 세대의 창작자에게 전승되는지를 보여주는 문학적 증언이다.
5. 어머니의 심장에 담긴 인간애 ― 작가의 내면을 비추는 일화
회상록에 등장하는 러시아 이야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사랑하는 처녀의 요구를 받아들인 총각이 어머니의 심장을 꺼내 들고 길을 나선다.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아들을 향한 걱정이다. “얘야, 넘어지겠다. 천천히 가려무나.”
이 짧은 이야기는 인간의 이기심과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극적으로 대비한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아들조차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인간애의 가장 근원적인 형태를 드러낸다.
한윤호가 이 이야기를 조카에게 들려주었다는 사실은 그의 문학적 관심이 단지 대중을 위한 노랫말의 창작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인간의 본성, 사랑의 본질, 도덕적 판단과 감정의 모순을 함께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 일화 하나만으로 작가의 내면 전체를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한영남 시인이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기억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삼촌이 전하고자 했던 인간에 대한 성찰이 조카의 마음속에 깊이 남았음을 보여준다.
훌륭한 문학인은 작품으로만 가르치지 않는다.
때로는 이야기 한 편으로, 때로는 짧은 충고 한마디로 타인의 삶에 오래 지속되는 흔적을 남긴다.
6. 명성과 보상의 간극 ― 예술가의 삶을 돌아보다
회상록에서 가슴을 무겁게 하는 장면은 한윤호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얼마나 많은 원고료를 받았는지 조카가 묻는 대목이다.
조카는 당시의 원고료 수준을 근거로 그 보상이 많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한윤호는 먼 하늘만 바라볼 뿐 구체적인 금액을 말하지 않는다.
그 침묵은 여러 방향으로 읽힐 수 있다.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한이었을 수도 있고, 자신의 작품이 얻은 명성과 실제 보상 사이의 간극을 떠올린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그가 어떤 심정으로 침묵했는지는 기록만으로 확정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한 작품의 사회적 영향력과 창작자가 실제로 누리는 경제적 보상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그 선율을 기억하더라도, 그 노랫말을 만든 사람의 이름과 삶은 충분히 조명받지 못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은 한윤호 개인의 사연을 넘어 예술가의 사회적 가치와 창작 노동의 정당한 평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예술의 가치는 원고료나 상패의 숫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예술가의 헌신을 이유로 정당한 보상과 사회적 인정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작품의 가치를 존중한다면 그 작품을 창조한 사람의 삶과 권리 역시 함께 존중해야 한다.
장석주 작가가 한윤호의 이름을 다시 불러낸 작업은 이러한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노래와 그 노래를 만든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7. 역사적 맥락을 넘어 문화적 기억으로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는 특정한 시대의 정치적 분위기와 사회적 언어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가사에는 당시의 지도자에 대한 찬양, 생산과 풍요에 대한 기대, 연변 지역의 자연과 생활환경에 대한 묘사가 함께 나타난다.
오늘날 이 노래를 평가할 때는 두 가지 시각을 균형 있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작품이 탄생한 시대의 역사적·정치적 맥락을 이해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그 시대의 이념적 표현을 넘어 노래가 실제로 사람들의 기억과 정서 속에서 어떤 문화적 의미를 형성했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작품을 무조건 찬양하는 것도 온전한 평가가 아니며, 오늘날의 관점만으로 과거의 작품을 단순하게 재단하는 것 역시 충분한 이해라 하기 어렵다.
한윤호의 작사 활동을 조명한다는 것은 특정한 정치적 표현을 무비판적으로 반복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어떤 시대적 환경 속에서 작품을 창작했으며, 그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널리 불리고 기억되었는지를 문학사와 문화사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일이다.
이러한 접근은 작품의 역사적 성격과 예술적 구성, 그리고 창작자의 인간적 삶을 서로 분리하지 않으면서도 각각의 의미를 정확하게 살펴보게 한다.
8. 잊힌 이름을 되찾는 것이 문화의 품격이다
장석주 작가의 「한영남 시인의 회상록으로 본 한윤호 선생」은 한 작가의 생애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의 탄생과 전승, 예술가의 공로와 기억의 문제를 함께 성찰하게 하는 글이다.
특히 작사와 작곡의 관계를 통해 한윤호의 문학적 기여를 새롭게 조명한 점은 이 글의 중요한 성과다.
김봉호의 선율이 노래에 널리 퍼질 수 있는 생명력을 부여했다면, 한윤호의 가사는 그 선율이 담아낼 주제와 정서의 방향을 형성했다.
두 사람의 예술적 기여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 안에서 상호보완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에 한영남 시인의 회상록이 더해지면서 한윤호는 유명한 노래의 작사가를 넘어 가족의 일원이며, 후배의 창작을 이끌었던 문학인이자 자신의 예술적 길을 묵묵히 걸어간 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나는 이 글의 가장 큰 미덕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장석주 작가는 역사 속에 남은 노래를 통해 잊혀진 창작자의 이름을 찾아냈고, 한영남 시인은 가족의 기억을 통해 그 이름에 인간의 온기를 불어넣었다.
한 사람은 비평의 언어로, 다른 한 사람은 회상의 언어로 한윤호의 삶과 예술을 복원한 것이다.
문화의 품격은 유명한 작품을 얼마나 자주 기념하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그 작품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의 이름과 수고까지 얼마나 공정하게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
노래는 세월이 흘러도 불릴 수 있다. 그러나 그 노래를 만든 사람의 이름은 누군가 다시 불러주지 않으면 역사 속에서 희미해질 수 있다.
장석주 작가의 글은 바로 그 이름을 다시 부르는 작업이다. 그리고 한영남 시인의 회상록은 그 이름이 한 시대의 노랫말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 가족의 사랑과 한 문인의 가르침 속에서도 살아 있었음을 증언한다.
한 시대의 노래를 기억하는 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노래를 만든 사람의 삶까지 기억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예술에 대한 진정한 예우이며, 문학이 역사에 바칠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도 품격 있는 헌사일 것이다.
평논 / 강호논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