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을 가르칠때 사용하던 책상을 정리하노라니 문득 특별히 깊은 인상을 남긴 녀자애가 떠오르는데 바로 갸름한 얼굴에 몸매가 허약한 김미령이란 애였다. 그 애는 작문시간때면 제일 먼저 와서 이 책상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보았는데 지금쯤은 스무살도 넘어 키도 많이 컸을거고 몸매도 보기 좋아졌을거라는 느낌이 든다.
십년전에 작문을 가르칠때의 어느날 한 할아버지가 손녀를 데리고 우리집에 찾아왔다.
“이 애는 김미령이라고 부르는데 내 외손녀이고 지금 소학교 3학년이라우. 애가 네살때 엄마 아버지가 리혼한후로 원래는 엄마와 살았는데 재작년에 애 엄마가 외국에 가서 재혼하게 되자 나한테 맡기는 바람에 농촌에서 살던 내가 지금 이 애를 돌보러 여기로 오게 되였다우. 애 외할머니만 있어도 괜찮겠는데 한국에 간지 십년이 되여도 해마다 피끗 다녀왔다가 또 돌아가니 어쩔수 없이 나하고 같이 있게 되였구요. 애가 마음이 좀 여린데 많이 부탁합니다.”
미령이 외할아버지는 등이 바나나처럼 휘여져 있었고 년세도 칠십이 훨씬 넘어 돼 보였다.
미령이는 책을 많이 읽어서 아는것이 많았고 작문도 쟁쟁하게 잘도 썼다. 그래서 나는 이 애가 장래 작가감이라고 점찍고 있었다.
미령이는 보통키에 오돌차에 생겼는데 얼굴에 살점이 너무 없어서 길어보였다.
작문을 쓸때면 이따금씩 멍하고 창문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물쩍한 구상을 하고 있는듯한 모습이였다. 그런데 어떤때는 눈에 눈물이 핑 도는것을 몇번이나 보았다. 타국에 있는 엄마가 그리워서인지 아니면 작문의 그 어떤 애잔하고 가슴허비는 구절에 빠져서인지 정확히는 예측치 못했지만 그러나 또 구태여 묻고싶지 않았다.
매번 작문배우는 날이면 그애가 제일 일찍 왔다. 그것은 좋은 표현이다. 하지만 때론 너무 일찍 오는것이 나한테는 싫었다.
어느 한번은 오후 한시에 보는 시간인데 오전 11시에 오기까지 했다.
그날 나는 그 시간에 쇼핑을 계획했는데 미령이때문에 못 가게 되였다.
그런데 더 한심한것은 어느날 오전 10시에 오기까지 했다.
(애두 참. 시계나 보구 다니는지?)
나는 조금은 못 마땅한 눈길로 미령이를 빤히 쳐다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였다.
그날 나는 10시에 밖에 나가서 다른 일을 본후 11시에는 친구의 생일에 참가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 아직도 세시간이 돼야 작문시간을 보는데 너무 일찍 왔구나.”
나의 불만이 조금 섞인 말과 눈에서 그것을 보아냈는지 미령이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는 모기소리로 대답했다.
“할아버지와 같이 있으면 재미없슴다.”
“할아버지와 재미없다고 여기로 오면 재미있니? 이렇게 일찍 오지 말고 집에서 독서하다가 시간되면 올거지”
“독서도 선생님집에서 해야 재미있슴다.”
나는 더는 할말이 없었다. 미령이의 그 거짓이 없는 말에 귀가 달콤해났고 선생님을 그토록 좋아하는 그애의 순진한 마음을 몰라준것이 후회되였다. 그래서 미령이를 책상에 앉게 한후 책을 주었다. 그애는 책을 펼쳐들었다. 방안에 비쳐 들어온 해빛이 그의 웃음어린 얼굴에서 춤 추고 있었다.
“작문시간 될때까지 너 꼬박 세시간동안 책 봐야하는데 얼마나 지루해?”
“괜찮슴다. 선생님 곁에서 책 보노라면 시간 가는줄 모릅니다. ”
(어휴. 내가 막 지루해나는구나. 네가 오는 바람에 내 볼일 못 보게 되였구나. 참 애두. 자기 생각만 하고 어쩜 내 생각은 안 하지?)
미령이한테 짜증을 낼수 없는 나는 속으로만 이렇게 불만을 토로할 수 밖에 없었다.
부모의 리혼으로 너무 일찍 상처받은 탓인지 미령이는 눈물이 헤펐다. 남자 애들이 조금만 눈을 부릅뜨거나 소리치면 눈물을 흘려서 어떤 애들은 “울보”란 별명도 달아주었다.
어느 한번은 글씨가 좀 미워서 내가 한마디 꾸짖었다고 책상에 엎드려서 한참이나 울었던 것이다. 그후부터 나는 아주 조심했다.
시계가 벌써 11시를 가리켰다. 이 시간이면 친구들이 식당에서 나를 기다릴것이다.
“미령아. 나 지금 밖에 나갔다 올 일이 있는데 어쩔가?”
“선생님 어서 가세요. 제가 집을 지킬게요”
책에서 눈을 뗀 미령이의 얼굴에 해님이 머물었는지 웃음이 생글거렸다.
“ 내 열두시반전에 돌아올테니까 그동안 집 잘 지켜줘”
옷을 주어입은 나는 부랴부랴 문을 나섰다. 층계를 내려 밖을 나선 나는 몇걸음 걷다가 문득 발걸음이 굳어졌다. 말할수 없는 그 무엇이 솟구쳤다.
(미령이가 날 그렇게도 좋아하는데... 내 곁이 좋아서 찾아온 애들 빈 집에 혼자 두다니?)
나는 되돌아 집에 들어갔다. 문 여는 소리에 그애가 방에서 머리를 내밀며 물었다.
“선생님 뭐 두고 가셨습니까?”
“미령아. 어서 나하고 같이 가자구나”
“어디에요?”
“식당에 가자”
“식당은 왜서요?”
미령이의 눈길이 나의 얼굴에 멈추더니 움직일줄 모른다.
그러건말건 나는 무작정 미령이의 손을 이끌었다.
선생님 곁에만 있어도 좋다고하는 미령이는 같이 걷기까지하니 기분이 더없이 좋은지 어느새 저만큼 앞에서 걷고 있었다.
조금후 식당에 도착하니 친구들 다 왔었다. 모두들 이상한 눈길로 미령이를 쳐다보았다.
딸이라면 딸도 아니고 손녀라면 손녀도 아닌란걸 친구들은 다 알고 있다.
“내 작문반에 양딸이 생겼어. 꽤나 여무지게 생겼지?”
나의 말에 친구들은 그제야 알았다는듯 이상한 표정을 접었다.
이어 향기가 몰몰 피여오르는 음식들이 상에 올랐다.
미령이는 벌써부터 군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눈에는 만풍년이였다.
식사가 시작되자 내가 련속부절이 집어주는 고기채를 볼이 미여지게 먹는 미령이를 쳐다보는 나의 눈에서 이슬이 자꾸만 반짝댔다.
평소에 례절이 꽤나 밝은 그는 간식을 보면 내 입에부터 넣어주는데 그날은 내가 먹지않고 자기만 지켜보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한마디 권할줄 모르고 제 입에만 넣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끝내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한창 발육할 나이건만 늙은 외할아버지한테서 여지껏 이런 맛나는 채를 못 먹어보았을것이라는 짐작이 갔다. 그러면서 어느때 미령이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미령이 외할아버지는 다른 채를 할줄 몰라서인지 쩍하면 닭알채를 만든단다. 그렇게도 먹기 싫었지만 그래도 먹는다고 했다. 그러다가 전번달에 자기 생일날이 되자 외할아버지 보고 식당에 가자고 졸랐는데 외할아버지는 듣는체도 않고 집에서 또 그 먹기 싫은 닭알채 하나만 했단다.
생일날 밥상에 앉은 미령이의 눈앞에는 그토록 먹고싶은 돼지고기튀김이 자꾸 얼른거려서 밥을 몇 숟가락만 먹고는 일어섰다고 했다.
다른 애들보다 좀 일찍이 헴이 든 미령이는 외할아버지의 고충을 알고 있는듯했다. 외할아버지는 몇년전에 걸린 뇌혈전병으로해서 행동이 민첩하지 못하고 머리도 아파서 늘 약을 입에 대고 있다. 때론 이런 외할아버지라도 함께 사는것도 좋았다. 인제 외할아버지께서 들어누우시면 큰 일이 아닐수 없었다. 친척들이 다 외국에 가서 있을 집이 없단다. 그렇다고 전탁집에 가면 돈이 많이 든다고 엄마가 알려주면서 힘든대로 그냥 외할아버지와 같이 있으라고 하더란다.
“호ㅡ외할머니만 돌아오셔도 얼마나 좋을가요?”
그 쬐꼬만 입에서 이런 탄식이 흘러나온걸 몇번이나 들은적 있었다.
어느한번 친구한테 올리는 편지란 제목으로 글 쓸때 그애는 나보고 자기는 외할머니한테 편지 올려도 되는가하고 묻는것이였다. 허락을 받은 그는 외할머니보고 인제는 년세도 많은데 외국에서 고생하지 말고 빨리 돌아와서 함께 살고싶다는 그 마음을 절절하게 써냈다.
부모가 외국에 갔지만 할머니손에서 먹고싶은걸 실컷 먹으면서 자라는 애들을 보면 그렇게도 부럽다고 했다.
“미령아. 인제부터 작문배우는 날에 맛나는 음식을 만들어놓을테니까 일찍이 오거라.”
나는 그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나지막히 이렇게 말했더니 그의 눈은 별처럼 반짝댔고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동반된 웃음이 푹 어려있었다.
그 다음 주말 열한시가 되는데 미령이가 오지 않았다. 혹시 내 부탁을 잊었을가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이런 대답을 하는것이였다.
“선생님, 저는 그냥 집에서 점심 먹고 가겠습니다. 선생님을 힘들게 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어서 와야해. 맛나는 명태무침과 감자전을 만들었는데 그래 안 먹고 싶어?기다릴거니 곧 와줘”
나의 명령이나 다름없는 말에 미령이는 더는 고집을 못 세우고 왔다. 밥상에 마주 앉아 맛나게 먹는 미령이의 얼굴에 부끄러움과 미안감이 서려 있었다. 체면을 모르는 애가 아닌데 얼마나 먹고 싶었고 또 날 좋아했으면 왔을가? 그런데 몇번을 먹지 못하고 떠나가게 될줄이야!
그날도 토요일이라 나는 오전에 미령이가 좋아하는 물만두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인젠 미령이가 올 시간이 되였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점심이 거의 가까워 올 무렵 전화소리가 울렸다. 미령이였다.
"미령아, 왜 오지 않지? 오늘 미령이 좋아하는 물만두를 빚었는데...."
"선생님, 오늘부터 더는 선생님집에 못 가게 되였습니다.그 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어느한번 저는 꿈속에서 절 자식처럼 생각해주시는 선생님을 엄마라고 불러보았습니다. 전 요즘 인차 어머니한테로 가게 되는데 떠나기전에 선생님을 만나고싶지만 막 소리내여 울것같아서 이렇게 전화로 작별인사를 합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미령의 나지막한 흐느낌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사랑에 고갈된 미령이의 슬픔의 눈물인지 기쁨의 눈물인지 종잡기 어려운 흐느낌 소기가 들려왔다.
"잘 되였구나. 엄마한테로 가면 그 이상 더 좋은 일이 어데 있어? 엄마가 이 세상에서 제일이지...."
나는 위안의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서운함에 갈마들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날 물만두를 먹는 나는 무슨 맛인지 느낄 수가 없었다. 눈앞에는 눈물이 갈쌍거리는 미령의 모습만 떠올랐다...
그래, 미령이는 엄마와 같이 살아야 했다. 그애가 떠나간후 나는 가끔씩 그애가 자꾸 상기되였다. 갸름한 얼굴, 오돌찬 모습...아마도 다른애들보다 작문배우는 날이면 시간전에 찾아와서 특별히 인상 깊었던 리유일가!
그애가 인제는 그 누굴 부러울것없이 엄마곁에서 잘 자라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박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