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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계획은 새벽에 있다 |
요즘 일본인 의사가 쓴 ‘아침형 인간’이란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신드롬에 가까운 조기(早起)붐이 불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기 운동을 벌이는 커뮤니티가 속속 등장하는가 하면 수 백명의 회원을 거느린 어느 카페에서는 새벽 4시에 회원들이 일제히 글을 올리고 미처 못 일어난 회원들에게는 모닝콜을 해주기도 한단다.
어느 신문에서 쓴대로 “대한민국 전역에 ‘아침형 인간’바람이 불고 있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닌 모양이다.
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은 할아버지시다.
생전 할아버지의 기침시간은 사시사철 어김없이 새벽4시 이전이었다.
봄철과 여름철엔 논물을 보기 위해서,가을엔 추수와 타작을 위해서,겨울엔 소에게 뜨듯한 여물을 끓여 주시느라 새벽같이 일어나셨다. 논물을 보러 가시면서는 길섶에 널린 쇠똥,개똥을 주워다가 우리 논에 던져 넣으시던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아침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셨다.
특히 여름철 농사일은 조반 먹기 전,곧 식전(食前)에 하는 일이 하루 일의 절반이라시면서 새벽이슬에 옷을 흠뻑 적신 채 일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할아버지와 사별하기 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줄곧 사랑채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기거한 나는 집안 사람들로부터 생각이나 행동이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다른 건 몰라도 아침일찍 일어나는 일은 할아버지를 닮고자 애썼다.
말 그대로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셨던 할아버지를 제대로 닮았더라면 오늘의 나는 더한층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었으리라.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 아침만 일찍 일어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이후 영영 일어나지 못하셨다.
새벽치고는 그리 이르다고 할 수 없는 5시 20분에서 30분 사이 152번 시내버스를 타고 정동(貞洞)에 있는 한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한지 2년 여. 매일 빼놓지 않고 되풀이하는 이 순례의 새벽길이 이제는 내가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새벽버스는 은평구 신사동 고개마루에서 서울역사박물관 건너편 시티은행 앞까지 15분 남짓이면 닿는다. 버스에서 내려 경향신문사를 끼고 돌아 정동길을 내닫는다. 목적지인 정동극장 앞 고색창연한 붉은 벽돌집에 이르는 데는 6~7분이 걸린다. 처음엔 중간에 뛰기를 멈추고 한 두 차례 숨을 고른 뒤 다시 뛰어야 했지만 이제는 이 길을 단숨에 내달린다. 6시부터 시작되는 은혜의 시간. 창조주요,절대자인 그 분, 그러나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도록 허락하신 그 분을 만난다.
새벽 어둠 속에 아치형 유리창을 환히 밝히고 있는 모임터의 불빛은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안연한 곳이 있음을, 그리고 아직 이 땅에 평화가 숨쉬고 있음을 알려 준다.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으로의 복귀가 한동안 서먹할 때 나는 이 새벽불빛을 찾아 삶의 리듬을 회복하곤 했다.
이 새벽길은 또 나를 건강으로 인도하는 길이기도 하다. 정동의 새벽을 달리면서부터 할아버지가 생전에 일러 주신 건강한 삶의 삼원칙인 쾌식(快食),쾌면(快眠),쾌설(快泄)의 삼쾌(三快)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에 있고,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一生之計在於幼,一年之計在於春,一日之計在於寅)”는 말이 있다. 공자께서 삼계도(三計圖)에서 이르신 말씀이다.
그러나 일일일생(一日一生), 곧 오늘 하루가 나의 전 생애라는 각오로 살아감이 바람직한 삶의 자세라고 한다면 일년은 물론, 일생의 계획이 새벽에 있음이 분명하다.
‘아침형 인간’은 호들갑스럽게 베스트셀러의 영향을 받아서가 아니라 일찌기 선인들이 보여준 삶의 방식을 따르면 자연스레 되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거의 모두가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던가!
/장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