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있는 이 시각 나는 잠이 든 도시를 뒤로 하고 공항에 들어섰다. 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공항안은 썰렁했다. 몇몇 마중 나온 사람들만 뛰염뛰염 앉아있을뿐이다.
이 시간에 내가 공항에 나와있는 리유는 바로 출장간 남편을 마중하기 위해서이다. 낮에 오늘 밤 11시20분에 도착하니 마중을 나오라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불만이 가득했지만 선물을 사온다는 말에 졸린 눈을 잡아뜯으며 원치않는 걸음을 한 나다.
아직 비행기가 도착하려면 40분이나 있어야 한다. 집에 있다가는 잠들것 같아서 일찍 나와버린것이 조금 후회가 되였다.
(일본비행기가 늦게 도착하면 북경에서 하루밤 자고 이튿날 비행기로 돌아오면 될것을. 집에 보배라도 묻어두었나.)
내가 한창 속으로 투덜대고있을 때 갑자기 국내출구쪽이 북적이면서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먼저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인가보다. 공항은 삽시에 사람냄새로 가득 찼다. 나는 심심하던 차에 사람구경이나 하자 하는 심정으로 출구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모두 늦은 밤이라 얼굴에 피곤의 기색이 력력하다. 하지만 마중나온 사람도 금방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도 모두 얼굴에 웃음꽃을 피운다.
승객들이 거의 다 나왔을즈음 조용해진 공항홀에 갑자기 노란색털의 자그마한 강아지 한마리가 뛰여들어왔다. 멀리서부터 걸어나오는 주인의 모습을 발견하였는지 쏜살같이 달려가 퐁퐁 매달린다. 주인이 허리를 굽히자 기다렸다는듯이 폴싹 주인의 품에 뛰여들어 반갑게 얼굴을 핥아댄다. 주인도 강아지를 꼭 껴안고 눈물을 글썽인다. 내가 시간을 떼우며 구경해온 상봉들 가운데서 제일로 눈물나는 상봉이였다. 뭐가 저렇게 반가울가…
그 모습을 보고있노라니 문득 13년전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13년전, 나와 남편이 모두 20대일 때 우리는 일본후쿠오카시의 한 일본어학교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하였다. 그때 우리는 각각 멀리 떨어져있는 남녀숙소에 기숙하고있었다. 학생끼리 연애를 하면 안된다는 학교규정때문에 낮에 얼굴을 마주쳐도 내색조차 낼수 없었던차라 우리는 밤에 가만히 만나 사랑을 속삭이군 하였다. 그런데 가난한 류학생들한테는 역시 아르바이트가 1순위였다. 학교가 끝나면 그이는 밤 12시까지 남자숙소 근처의 대형슈퍼마켓에서 일했고 나는 여자숙소 근처의 일식집에서 밤 11시까지 일을 했다. 하다보니 매일 먼저 일을 끝난 내가 그이를 만나러 가는수 밖에 없었다.
남자숙소까지는 자전거로 30분거리였는데 불상이 가득 세워져있는 한적한 골목길이며 숲이 수거진 강변길을 지나야 했다. 낮에는 코노래까지 흥얼흥얼 부르며 기분좋게 감상할만한 풍경들이지만 밤이 되자 모든것이 변했다. 불 꺼진 골목길 사이사이 유일하게 불을 밝힌 불상들이 해괴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고 키 넘는 잡초들사이를 비집고 생긴 좁다란 강변길은 시커먼 입을 쩍 벌리고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나는 매일 밤 쭈볏이 곤두서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젖먹던 힘까지 다하여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그이가 일하는 곳을 향해 힘껏 달렸다. 내가 극도의 공포심을 이겨낼수 있었던것은 바로 그이를 만날수 있다는 그 희망 하나뿐이였다.
내가 땀투성이가 되여 그곳에 도착할 즈음이면 그이도 일을 마치고 슈퍼마켓에서 나왔다. 손에 과일들을 챙겨들고 빙그레 웃으며 나오는 그이의 모습을 보는 순간 어느새 쌓였던 피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내 마음속에는 보라색 튤립 한송이가 활짝 피여났다. 낮에도 본 얼굴인데 어찌나 반가운지 한달음에 달려가서 그이의 품에 와락 안겼다. 열렬한 포옹을 마치고 우리는 과일을 먹으며 천천히 녀자숙소로 향했다. 이렇게 남녀숙소사이를 오가느라면 새벽2시가 되여서야 잠이 들었다. 그때는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숨길수도 참을수도 없었던것 같다.
“왕왕!” 강아지의 울음소리에 나는 사색에서 깨여났다.
“언니랑 일주일밖에 안 떨어져있었는데 얘가 이렇게 반가와하네. 이 동생보다 나은것 같아. ”
강아지를 데리고 온 녀자가 입을 비쭉거리며 말을 건네자 강아지 주인도 얼굴에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는다.
“그러게. 우리 붕붕이가 이렇게 반가워하니 나도 피로가 싹 풀리는것 같다.”
강아지는 여전히 주인의 품속에서 꼬리를 휘휘 저으며 반가운 마음을 한껏 표현하고있다. 나는 문득 조금후 남편이 저 출구로 나왔을 때 내가 할 행동들을 머리속에 그려보았다. 아마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담담하게 “왔어요?” 하며 짐을 받아들겠지. 같이 한 세월이 10년을 훌쩍 넘기자 연애시초의 달달하던 사랑표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단물이 쏙 빠진 껌이 되여버렸다.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슴슴하게 간이 빠져버린것일가? 사랑표현에 게을러진 내 자신에 문제가 있는건 아닐가?
내가 한창 자아진단을 내리고있을 때 남편이 탄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는 일찌감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대기선쪽으로 다가섰다. 오늘은 연애시절로 돌아가 좀 더 열정적인 사랑표현을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앞세우고 말이다. 느닫없이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이게 얼마만의 설레임인가… 웬지 좋은 일이 생길것만 같다.
저 멀리에서 리어카를 밀고 나오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13년전처럼 여전히 멋지고 정다운 나의 남편이다. 천천히 걸어나오는 그이를 보고있노라니 내 마음속에는 그때의 그 보라색 튤립이 다시 살펴시 피여났다. 나는 얼른 남편을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남편도 나를 보았는지 환히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어준다. 남편이 출구로 나오자 나는 제꺽 다가가 짐대신 그이의 팔짱을 끼였다.
“우리 여보 수고 많았어요. 보고싶었어요.”
나의 의외의 행동에 남편은 놀란듯 주춤하더니 인츰 내 손을 꼭 잡으며 말을 받는다.
“나도 보고싶었어.”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쑥스러우면서도 참 달콤하다. 이 순간만큼은 그이의 마음속에도 나랑 똑같은 튤립이 피여났으리라 믿으며 나는 그이의 어깨에 살며시 기대였다.
/김국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