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하늘이 맺어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또한 알고도 모를 것이 인연인 것 같습니다. 군인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의 슬하에서 3남매 집안 큰딸로 자라면서 제 인생에 “청국장제조 전승인”이란 이름이 붙고 제 삶이 청국장에 얽히리라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였습니다.
그것은 제가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저의 청국장인연은 남편을 만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제 나이 27살에 남편을 만나 시집갔습니다. 남편은 위로 형님 두 분이 계셨지만 시어머님은 막내인 저희들과 보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남들에게는 자식들인 저희가 시부모님을 모시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새댁인 제가 너무도 어설퍼서 살림살이를 제대로 하려나 념려하신 시어머니가 저희 집에 오신 것이였습니다.
우리 시어머님을 그냥 가정주부인 것이 아니라 연변병원 외과수술실 호사였습니다. 시어머님은 저희가 일어나기도 전에 벌써 아침밥을 다 지어놓으셨고 밥상까지 다 차려놓으셔서 새 며느리인 저를 매우 난감하게 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매일 밥상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노란 양재기에 보글보글 끓는 청국장이였습니다.
그 청국장양재기는 식탁에서 빠지지 않았는데 항상 시어머님과 시아버지님의 밥그릇 중간에 놓여있었습니다. 아무리 진수성찬의 밥상이 차려지더라도 꼭 시부모님 앞에는 청국장을 담은 양재기가 놓여있었던 것입니다. 살면서 보니 저희 시어머니는 고기붙이는 거의 안 드시고 채식만 드시는 분이셨습니다. 육붙이는 느글느글하고 물고기는 비릿하다면서 평생 동안 오로지 청국장, 김치찌개 이런 음식들로만 식사를 해오셨던 것이였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청국장은 어릴적 가끔 외갓집에 가서 먹었던 것이고 집에서 엄마가 청국장을 만들고 차려 놓는걸 본 기억이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릴때는 모두 살림살이가 변변치 않아 색다른 음식을 많이 나누어 먹던 시기라 가끔은 옆집에서 가져온 것을 먹던 기억이 있기도 하여 별로 거부감은 없었지만 매일 밥상에 마주 앉아도 그쪽으로는 별로 수저가 가지 않았습니다.
결혼해서 한 달쯤 됐을까요. 퇴근해서 문에 들어서는 손간 온 집안에 넘쳐나는 퀴퀴한 청국장 냄새가 그렇게 싫을 수 없었습니다. 항상 며느리를 배려하는 시어머니가 그 순간은 좀 원망스럽더라구요. 왜서 저런 촌음식만 드시는지 하고 한동안은 밥상을 마주하면 자연히 눈살을 찌프리게 되더군요. 거기에 눈에 콩깍지를 담뿍 쓴 우리 남편이 덩달아 이렇게 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엄마, 향순이 썩장냄새 싫다는데.”
그러면 시어머니께선 웃으시며 밥상 중간에 놓여있는 양재기를 살며시 상밑에 내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싫던 청국장 냄새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차츰 거부반응이 없어지고 몇년을 시집식구들과 함께 부대끼다보니 시어머니의 음식에 저의 입맛도 맞추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그 싫던 청국장도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였습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동안 청국장의 매력을 서서히 느끼게 되였던 것입니다. 조금은 중독성도 있어 입맛이 없을때 거뜬히 밥 한 그릇을 뚝딱하게 하는 밥도둑이 돼어 주고 기름진 음식을 먹은 다음이거나 술 마신 뒤끝에도 내 몸의 발란스를 맞추어 개운하게 해줍니다. 또 아무리 많이 먹고 자주 먹어도 전혀 탈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96년도에 한국에 갔다와서 가계를 처음 차릴 때 우리 연성의 대표음식으로 “뚝배기4형제”를 정하면서 우리 시어머님의 대표메뉴인 청국장찌개를 저희 가계 메인메뉴로 입선시켰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 한테 정중히 부탁하였지요. 가계에서 쓸 청국장을 만들어달라고…
순간 시어머니의 얼굴에는 흥분과 불안이 엇갈리는 표정이 어리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저를 보면서 걱정스레 물었습니다.
“내 같은 늙은이나 좋아할 음식을 식당에서 해서 되겠소.”
하지만 제가 한국에서 음식을 배울때부터 이미 메뉴를 정해놓은 것이니 잘 될꺼라 자신 있게 말씀 올렸더니 좋아하시며 꼭 청국장을 잘 해 줄테니깐 걱정 말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청국장은 온도보장과 깨끗한 환경에서 해야 한다면서 이불장에서 손님이 올 때 만 쓰던 새 솜이불을 꺼내여 다시 소쿠리에 꽁꽁 여며놓는 것이였습니다. 청국장발효에 쓸 이불 두 개를 쉬지 않고 밤 늦게까지 정성들여 꾸며주셨던 것이였습니다.
그후 남편이 단위에서 새집을 타게 되면서 시부모님곁을 떠나 분가해 따로 살기 시작했지만 주말만 되면 아들 3형제는 식구들을 거느리고 시어머니집에 향했습니다. 그러면 시 어머님도 늦가을에 장독밑에 묻어놓은 가을걷이 고추며 가지며 양배추며 어른들 손가락만큼한 당근이며를 꺼내 맑은 물에 담궈 염분을 빼고 소고기와 함께 졸이고 녹두나물에 전분국수냉채를 무치고 닭고기와 감자당근국수볶음 등 다양한 음식들을 만들어 자식들과 손주 손녀들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이것은 시어머니께서 우리들이 출근하여 제대로 못 끓여 먹는다고 걱정하면서 정성들여 준비한 사랑의 음식이지요. 근데 거기에 무언가 빠져있는 느낌이 들었죠. 그래요. 노란 양재기의 엄마표 청국장은 항상 제자리를 지키듯 하였는데 그것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였습니다. 아무리 진수성찬이라도 식사의 마무리는 그래도 두부와 고추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끓인 노란양재기의 청국장이야만 개운하게 먹은 듯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그리운 엄마손맛,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긴 엄마표음식에 많이 호강을 누렸습니다.
가끔 시형식구들이 오셔서 시어머니네 온 집안에 청국장이 발효하면서 나는 냄새 때문에 코끝을 찡긋거리며 짜증을 내시면 시어머님은 막내네가 열심히 사는데 당연히 곁에서 도와줘야지 하면서 면박을 주기까지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시어머니의 변함없는 사랑이 슴배인 지지와 노력이 오늘날 제가 “청국장 전승인”으로 될 수 있는 디딤돌이었던 것입니다.
청국장 주재료인 콩의 단백질은 육류와 곡물류를 다 합해도 으뜸이고 거기에 또 식이섬유와 미네랄도 풍부합니다. 그리고 청국장은 발효과정에 사포닌함량이 대량 함유하는 까닭에 건강음식으로도 널리 알려져 앞으로 장수식품으로 보건식품으로 많이 연구되고 개발될 것입니다. 청국장은 또한 우리 민족의 몇 천년의 력사가 담겨있는 까닭에 우리민족의 입맛을 굳혀 놓아 우리 민족이라면 남녀노소가 청국장을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숙성된 깊은 맛 때문일가요? 입맛이 떨어지거나 술에 절었을 때 그리고 체했을 때 청국장을 드시면 배꼽까지 쑥 파고 내리는 구수한 향과 개운한 맛에 구곡간장이 훈훈해 지며 그야말로 사치를 누립니다. 그래서 먼 여행 끝에 고향에 돌아오면 먼저 찾는 것이 청국장이요 이국만리에서 손님이 찾아오면 민족의 음식이라고 먼저 내놓고 싶은 것도 역시 이 청국장이랍니다.
지금은 저 멀리 하늘나라에 가셨지만 저의 기억 속에 아련이 남아있는 시어머니 손맛 나는 청국장은 저의 시어머니의 특허메뉴일뿐더러 저희 “연성뚝배기”가 오늘처럼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준 “뚝배기 4형제” 중에서도 맏이메뉴임을 가슴 깊이 새겨둡니다. 청국장인연, 참으로 아련한 추억을 불러주는 귀중하고 정다운 인연입니다.
/허향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