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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10/15  신호순
석냥불 처럼 타오른 집들이

화창한 10월의 어느 날, 길가에 핀 코스모스 꽃들이 한들한들 춤을 추며 길 손을 반기던 날이었다. 우리는 작은 선물 꾸러미를 들고 친구의 새 집들이에 나섰다.

친구 부부는 환한 웃음꽃을 피우며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 웃음 속에는 지난 세월의 땀방울이 맺혀 있었고 마침내 결실을 거둔 벅찬 감동이 배어 있었다.


반지하 단칸방의 눅눅한 기억을 뒤로한 집 안에는 주방과 거실, 침실 두 개가 아담하게 꾸며져 있었고, 햇살에 반짝이는 새 가구와 전자제품들은 주인의 손길을 닮아 정갈했다. 창문을 열자 바람결에 한들한들 춤을추는 단지 내 코스모스들은  "이제는 웃으며 살라"는 축복을 건네는 듯했다. 우리의 마음에도 덩달아 기쁨이 번졌다.


친구의 대견스러운 모습은 단순한 새집들이 가 아니라, 부지런함과 강인한 생활력으로 삶을 일구어가는 우리 민족의 품성이 은은히 베여있었다.

친구 부부는 벌써 식당에 예약을 한 상태라 값진 요리로 성의껏 대접했다. 맛있는 료리를 먹으며 저마다 한국 생활에서의 웃기는 얘기를 주고받고 하면서 덕담을 건넸다. 음식상이 끝나자 빠질 수 없는 것이 노래방이었다. 노래와 춤으로 기분도 내고 일할 때 받은 스트레스도 풀고 분위기는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문득 90년대 말, 어느 가을에 있었던 나의 집들이가 기억속을 스쳤다.


부부가 함께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면서 나는 시장에서 마른 해산물 장사를 하였다.


우리가 살던 고향은 길이 515미터 대교가 절반은  북한 땅이고 절반은 중국 땅인 국경지역이다. 대교의 양 끝에서는 각국의 세관 직원들이 오고가는 물건들을 검사하곤 했다. 그 시절 북한을 넘나드는 상인들이 많아 자연산 해산물이 풍부했고 덕분에 전국에서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좋은 물건으로 신뢰를 쌓았다. 하여 단골들은 물건을 보지도 않고 주문을 하여 기차역 수화물 직원들과 친숙할 정도로 부지런히 물건을 이곳저곳 붙여보냈다. 이렇게 성실히 일한 덕에, 98년 가을에 우리는 시장 가까이에 창고도 크고 울안이 널찍한 80평방 정도의 단독 온돌 집을 마련하게 되었다.

집들이는 무려 사흘간 이어졌다. 첫날은 친척과 친구들, 그 뒤로는 시장 상인들이 줄지어 찾아왔다. 음식 솜씨가 좋은 몇몇 시장 아줌마들과 힘 장수 아저씨들은 발 벗고 나서서 직접 찰떡을 치고 순대를 만들고 막걸리도 손수 빚었다. 고기와 해산물, 야채 아까운 것 없이 지지고 볶아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정성껏 차렸다. 술상이 오르자 건배 소리와 함께 흥은 무르익고, 젓가락 장단에 맞춰 춤과 노래가 밤새 이어졌다. 심지어 온돌이 세 칸이나 깨져 다시 고쳐 할 정도였다.

우리가 결혼 후 처음으로 마련한 집이었으니 모두에게 축하의 의미가 더 컸던 것 같았다. 옆 가계 한 씨 아줌마는 목이 쉬어서 물건을 팔 때 말도 겨우 하였고, 서씨 아줌마는 춤(딴스)를 너무 춰 절룩거리며 울상이었으며, 덩치 큰 박씨 아저씨는 술에 얼큰해서 춤을 추다가 바가지를 엎어놓은 물 함지에 곤두박질하기도 하였다.연 며칠 시장에서 각자의 버전으로 엮어가는 우리 집 새집들이 이야기는 웃음 폭소를 터뜨리군 하였다.


그때의 집들이는 지금처럼 돈 봉투가 오가는 자리가 아니었다. 불길처럼 훨훨 타올라 잘 살라며 성냥을 들고 왔었다. 그 성냥이 얼마나 많았던지, 10년을 두고 써도 남아서 아파트로 이사할 때 담배 파는 시장 상인에게 "장사가 잘 되라"는 의미에서 덕담과 함께 나누어 주었다.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식구 같았다. 남자들은 뒤에서 심부름하고 여자들이 앞에서 장사를 맡았다. 하여 서로 간의 집안 사정도 속속들이 알았다. 뉘집에 어려운 일 있으며 발 벗고 나서 도왔고, 또 경조사가 있으면 함께 기뻐하며 정을 나누었다. 봄과 가을이면 가게 문을 닫고 부부동반으로 들놀이도 다니며 그렇게들 정을 뜸북뜸북 주고받으며 지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바쁜 일정 속에서 이웃끼리 얼굴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물질은 풍부해졌지만 인간관계는 메말라 가는 듯하다.


오늘 나는 큰 대야에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 놓고 젓가락 장단에 맞춰 웃고 노래하고 춤추던 얼굴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그러면서 흥겨운 그 노랫소리가 더욱 또렷이 귀에 맴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니
화무는 십일 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 나니나.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세월은 흘러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날의 진심 어린 축복의 웃음과 정만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서 따뜻한 불빛처럼 타오르고 있다. 부디 그 시절 함께 하였던 모든 이들이 어디서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오늘도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빌어본다.

/신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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