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기사스크랩
기사 출력  기사 메일전송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http://www.hmzxinwen.com/news/25016
발행일: 2022/09/13  한민족신문
[단편 소설] 약은 쓰지만…

1

 

“돈을 7천원쯤 꿔 주겠니? 한국에 가려고 하는데 돈이 좀 모자라서….”

우기동은 여동생 우금녀에게 물었다. 다년간 중국 대 도시에서 식당을 경영한적 있는 여동생에게 있어서 7천원쯤은 소 잔등의 털 한 오리 뽑는 격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오빠 우기동이기에 자신감 있게 청구의 입을 열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여동생 우금녀의 입에서 쌀쌀한 말이 톡 튕겨 나왔다.

 

“내가 오빠에게 돈을 꿔 주고 언제 받겠소?”

“엉? 너, 너…”

 

우기동의 머리가 갑자기 뜨거워나며 가슴속에서 방치 같은 것이 불끈 솟구치는 것 같았다. 지나간 이왕지사가 떠오르며 눈물이 핑 도는 눈을 슴벅거리며 우기동은 망연자실한 눈길로 여동생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한 때 버스로 자영업을 할 때 우기동은 여동생의 결혼잔치에 드는 전부 비용을 지불했고 그 후에도 여동생이 입원 치료를 받을 때 치료비를 지불했던 것이다. 아무리 털은 내리 쓸고 내리 사랑이라고 해도 이럴수 야 있겠는가? 그는 여동생의 귀뺨이라도 후려쳐 놓고 싶었지만 진흙땅에 남포질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우기동은 긴 한숨을 뿜으며 일어나서 신발을 신었다.

 

이때 여동생의 딸 오홍화가 입을 빼죽거렸다.

 

“한국에 가서 아무 사람이나 다 돈을 버는 줄 암까?”

 

“무엇이 어찌구 어째?”

 

우기동은 눈을 부라리며 부르튼 소리를 던지고 휭하니 밖에 나갔다. 그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거리를 저벅저벅 걷고 있을 때 친구 서명규가 마주 걸어오고 있었다.

 

“어허, 참 오래간만이구만, 그런데 왜 고양이 낙태한 상이요?”

 

서명규는 우기동의 손을 덥석 잡으며 무등 반가워했다.

 

“허…허..,…음, 그런 일이 있었소.”

 

우기동은 헤식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한 잔 하지”

서명규는 어두운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는 우기동의 어깨를 툭 치며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유…..”

 

이윽고 술좌석에 마주 앉은 우기동은 술 한 잔을 단 모금에 다 마시더니 한숨을 뿜었다.

 

“무슨 속상한 일이라도 있소?”

 

서명규는 측은한 어조로 물었다.

“양, 친 혈육라고 해도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있더군”

 

우기동은 동생에게 돈을 꾸러 갔다가 뿌옇게 면박을 당했던 사연을 터놓았다.

 

“엉? 음…..”

 

방금까지 허여멀쑥하던 서명국의 얼굴에 먹장구름이 덮였다. 소학교시절부터 같은 ‘뽈개지’로 절친하여 오고 있는 서명규는 우기동의 내막을 손금 안에 넣고 있었고 그가 동생 우금녀에게 베푼 배려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음, 이런 속담이 있소. ‘살인죄는 용서해줄지언정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용서하지 말아라’ 들어 보니 당신이 대단히 노엽게 됐구만”

 

서명규의 어조는 무겁게 울렸다.

“글쎄 말이오. 그애 에게 돈이 있는 줄 나 번연히 알고 있는데 너무나 무정히 거절하니 너무 섭섭하단 말이오”

 

우기동은 울적한 어조로 말하고 술 한 잔을 굽 냈다.

 

“너무 상심하지 마오. 내가 돈 7천원을 줄테니 한국에 가서 잘 벌고 와서 술 한 잔 멋지게 하기오”

 

서명규는 진국으로 말하고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서명규의 두 손을 덥석 잡은 우기동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한국에 도착한 우기동은 간병 일을 8년간 열심히 하여 인민폐로 50만 원쯤 벌었다. 그가 지나온 희로애락을 회상하며 일희일비의 복잡한 심정으로 지내고 있는 어느 날 그의 여동생 우금녀가 울상을 짓고 찾아왔다.

 

“오빠, 나 식당을 꾸리고 있는데 자금이 돌지 않아 당장 문을 닫게 되였소. 날 제발 구해 주오, 전번에는 내가 잘 못했지만, 흑…흑… 중국 돈 15만원쯤…”

 

우금녀는 애절한 목소리로 말하다가 종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독기 어린 눈길로 여동생을 쏘아보는 우기동의 심정은 매우 착잡했다. 그는 중국에서 돈을 꾸려다가 동생의 차디찬 거절을 당했을 때 이빨을 뿌드득 갈며 혈육관계를 일도양단하려고 맹세를 했던 것이다. 그는 비를 폭 맞고 떨고 있는 까마귀 같은 우금녀의 뺨을 불이 번쩍 나게 후려쳐주고 싶어지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부끄러운 줄도 알아야 하고….”

 

우기동은 쏟아져 나오는 폭언을 가까스로 참으며 동생을 준절히 꾸짖었다.

 

“오빠, 이 못난 동생을 한바탕 시원히 콱 뚜드려 주고 화을 풀어치우오, 어쩌겠소? 못나도 동생이고 잘 나도 동생인데, 한 번만 살려주오, 우린 한 어머니 배속에서 나온 피 줄이 아니오? 뼈대가 끊어져도 힘줄은 이어져 있는 법이오. 흑…흑….”

 

우금녀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우기동 앞에 무릎을 탈싹 꿇고 닭이 모이를 쫒듯이 연해 연송 머리를 조아리었다, 그 궁상을 점도록 내려다보고 있는 우기동의 심정은 착잡하기로 그 무엇이라고 이름 할 수 없게 마치 부글부글 괴여 오르는 오뉴월의 감주 독 같았다. (내가 골난에 처하여 있을 때 너 나를 비렁뱅이를 쫓아버리듯이 냉대하던 것이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울고불고 이 지랄이야? 요사한 네 마음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내 두 번 속힐줄 아니?) 우기동은 이빨을 뿌드득 갈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금녀는 갑자기 우기동의 다리를 부등켜 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엉…엉…죽어가는 이 동생을 한 번만 살려주오, 사람이 살아 있으면 돈을 벌수 있는 거요. 오빠…오빠…”

 

우기동은 동생을 뿌리치려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우금녀는 우기동의 다리를 칡 넝쿨마냥 검질기게 휘감고 파김치마냥 축 늘어져 눈물콧물로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후유…”

 

우기동은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듯이 한숨을 거세게 뿜고서 제 자리에 눌러 앉았다. (개도 안 먹는 돈 때문에 이게 뭐람? 내가 8년 동안 똥을 주물며 간병을 하여 벌어온 돈을 손 쉽게 꿔 주었다가 받을 수 있을까? 지금은 제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이렇게 애걸복걸하지만 일단 돈을 벌고 잘 살게 되면 개구리가 올챙이 때를 잊어버리 듯이 또 이 오빠를 냉대할거야)

 

우기동은 이 궁리 저 궁리하다가 이빨을 악물고 동생의 뒤 덜미를 덥석 잡아 일으켰다. 그러나 동생은 바닥에 찰떡마냥 척 들어붙은 것이 요지부동이었다.

 

“오빠 한 번만 날 살려 주오, 이 고비를 못 넘기면 나 죽소, 흑…흑…”

 

우금녀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순간, 우기동은 가슴이 쓰르르해짐을 느꼈다. 어린 시절의 감미로운 추억들이 영사막의 스크린마냥 눈앞에 펼쳐지는듯했다. (진달래ᅟᅳᆯ 꺾어 들고 상큼상큼 달려와서 코앞에 들이대며 향기를 맡아 보라고 종알거리던 모습, 개암, 머루를 따서 손에 쥐여 주던 기특하던 그 모습) 천진난만하고 순진하던 그 모습은 이젠 온데간데 없어졌구나. 세월 탓이냐? 돈 탓이냐?

 

“음, 그만 울어라, 이 오빠가 네 바쁜 목을 열어줄게”

 

우기동은 무거운 어조로 말하고 돈을 꺼내려고 거리나 와서 은행으로 향하였다.

 

“어허!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었구만”

 

은행에 거의 이를 무렵 우기동은 친구 서명규를 만났다.

 

“허…허…그러니 지구촌이라는 말이 딱 맞는구만”

 

서명규는 우기동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무등 기꺼워했다.

 

“이렇게 불시로 만나니 꿈 같구만. 자 술이나 한 잔 하지”

 

우기동은 서명규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술을 마시니 별 맛이로구만”

 

우기동은 서명규와 건배를 하고서 감개무량한 어조로 말했다.

 

“양, 꿈만 같소.”

 

서명규도 동감을 표시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길이길래?”

서명규는 호기심 어린 어조로 물었다.

 

“양, 은행에 가는 길이오, 동생이 불시로 돈 쓸 일이 생겨서…”

 

우기동은 착잡해졌던 심정을 일소해 버리려고 사연의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우기동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는 서명규의 기색은 정중한 표정으로 변하였다.

 

“음, 혈육끼리 도와주는 건 마땅한 처사인데…”

 

서명규는 말에 동안을 두고 한참 창밖을 내다보다가 말 끈을 이었다.

 

“내 말을 참고로 삼소, 아무리 혈육이라고 해도 돈을 꿔줄 때는 신중해야 하오, 인민폐 15만원이면 적지 않은 돈이오, 잘 생각해 보오, 한 1천 5백원 쯤 되면 더 말하지 않겠소.”

 

“엉?”

 

우기동은 입을 벌리고 서명규를 멍하니 응시하며 잠간 생각을 굴렸다. (혹시 돈을 받지 못 하면 어쩐담? 혹시 친동생이 사기를 칠까?)

 

“그래도 어쩌겠소? 울며불며 간청하는 걸 오빠로서 그저 눈 뜨고 보고만 있을 수 없소, 한 번 큰마음을 먹고 도와주겠소.”

 

우기동은 비장한 결심을 내린 듯이 어금이를 지긋이 악물었다.

 

“음, 정 그렇다면 나두 당신을 더 말릴 방법이 없소, 그런데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속담이 있소.”

 

서명규는 둥그스름한 얼굴에 신중한 표정을 짓고서 말했다.

 

“음, 오늘 좋은 말만 하기오, 그래도 혈육인데…”

화제를 홱 돌리는 우기동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양, 그러기오.”

 

서명규는 우선우선한 표정으로 두 잔에 술을 붓고서 희죽이 웃었다. 그러나 그는 불길한 예감이 들면서 가슴이 갑갑해 남을 느꼈다. 그는 친구 우기동을 더 권면하려고 혀끝까지 나온 말을 삼켜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딱 친구라고 해도 충언을 오해하면 악언이 되는거야 괜히 긁어서 부스름을 만들거 있나?)

 

“당신이 도와주었기에 나도 때벗이를 했소, 그 은공 잊을 수 없소, 조금 후 한화 2백만원을 줄게”

 

우기동은 감개무량하여 축축해지는 눈을 슴벅거리며 감개무량한 어조로 말하였다.

 

“고만한 일이사 새발에 피지, 당신도 손에 쥔 게 있었으면 날 도와주었을거요, 하…하…”

 

서명규는 우선우선한 어조로 말하고서 소탈하게 웃었다.

 

“허….허…”

 

우기동은 술 한 잔을 맛갈스레 마시고서 덩달아 통쾌하게 웃었다. 그는 커다란 눈을 슴벅거리며 잠간 생각을 굴리더니 추억에 잠기는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돈이란 별란 물건이요, 돈이 있어도 쓰지 않는 사람이 있고 없어도 남에게서 꾸어서도 도와주는 사람이 있소. 우리 젊었을 때 보니깐 당신이 다른 사림을 잘 도와주더구만, 그때 당신의 단위의 성구라는 사람이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 당신이 그 사람의 치료비를 선대해 주지 않았소? 성구는 나를 만날 때마다 늘 당신을 칭찬하며 엄지손가락을 뽑아들더구만”

 

“양, 그 때 일을, 나 이젠 잊은 지도 옛날인데, 하…하… 그 친구 아직도 기억하고 있네”

 

서명규는 둥그스름한 얼굴에 화색을 띠우며 명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남을 도와주문사 낭패 되는 일이 없지”

 

우기동은 머리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렸다.

 

“그건 그런데…”

서명규는 머리를 끄덕이며 무얼 궁리하는지 눈을 슴벅거리다가 우기동을 유심히 응시했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소?”

우기동은 일부러 얼굴을 쓱 만지며 우스개조로 물었다.

 

“아이…”

서명규는 외마디 어조로 응대하고 눈을 살풋이 감으며 잠간 생각을 굴렸다. (친구가 실수를 저지르려고 할 때 그래 수수방관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더 권면하면 이 친구가 불쾌해할걸 음 어쩐다? 그래도 권면해주는 게 옳겠구나) 서명규는 생각을 거듭 굴리고 나서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들으면 물론 기분이 나쁘겠지만 지금 돈 때문에 부모 자식간 형제간에 말썽이 많아지고 때로는 사고까지 생기는거요. 그러니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보는 게 좋겠소.”

 

“음, 도리는 있으나 우린 친 혈육인데….”

 

서명규의 말을 유심히 듣던 우기동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서명규는 납덩이마냥 무거워지는 심정으로 우기동을 물끄러미 응시할 뿐 함구무언이었다.

 

2

 

“오빠, 나 그만 밑졌소, 미안하오, 이걸로 천천히 빚을 갚으면 되겠소?”

몇달 후 우금녀는 우기동을 찾아와서 퇴직금 통장을 내여 놓으며 고양이 낙태한 상을 지었다, 우기동은 집이 와르르 무너지는 환각을 느끼며 눈앞에 먹장구름이 감도는 것 같았다.

 

(친구 명규의 말이 옳았구나. 고집불통인 내가 머저리였구나, 머저리) 우기동은 태산이라도 밀어버릴 듯이 깊은 한숨을 토하며 커다란 주먹으로 자기의 뒤통수를 쿡 쥐여 박았다.

 

“이 저금통장으로? 그래 15만원을 통 돈으로 가져가고 이렇게 야금야금 갚을 작정이냐? 네 월급으로 빚을 갚자면 한 5년은 걸릴거야, 그 동안 내가 무사하면 괜찮아도 만약 중병에 걸려 드러눕게 되면?....”

 

우기동은 솟구치는 울분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아이유 오빠두 무슨 말씀을 이렇게 하오? 오빤 몸이 튼튼하길래 백살까지 문제없소, 내 빚을 얼마든지 갚을 수 있소, 너무 근심하지 마오”

 

우금녀는 눈웃음을 살살 치며 살갑게 말을 했다.

“후유… 너 이 오빠를 속을 싹 태우는구나, 언제 헴이 들겠는지?”

 

우기동은 내키지 않은 심정으로 동생이 내여 놓은 퇴직금 저축통장을 호주머니에 넣고 앙앙불락한 심정으로 거리에 나가서 거닐다가 친구 서명규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좋은 일, 궂은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이 나는 친구가 바로 50년 동안 사귀여 오고 있는 서명규인 것이다.

 

“어허, 오늘은 쉬오? 나도 오늘 휴식하는데, 마침 잘 되였구만, 허……허……”

서명규는 우기동을 보더니 무등 반가워하며 걸걸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주동무가 있어야 제 격이지, 하…하…”

우기동은 사들고 간 ‘참 이슬’을 내여 놓으며 소탈하게 웃었다.

 

“아니, 우리 집에 주동무가 없을까봐? 허…허…”

 

서명규는 냉장고 문을 열더니 손에 잡히는대로 땅콩, 명태 생회, 돼지고기 장졸임, 김치를 주섬주섬 꺼내 식탁에 올렸다.

 

“어허! 좋구만, 옛날 같으면 이거면 잔치상이라도 차리겠구만”

우기동은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우선우선한 어조로 말했다.

 

“그라, 옛날 같으면…”

 

서명규는 동감을 표시하며 두 잔에 술을 붓고 희죽이 웃었다.

 

“아무 때나 변하지 않는 게 술맛이로구만, 그런데…”

술 한잔을 쭈욱 낸 우기동은 술의 감칠맛을 음미하다가 말에 동안을 두었다.

 

“또 새로운 형세 정신이 있슴둥?”

 

서명규는 일부러 농조로 물었다.

“어, 음, 이건 국제 형세가 아니라 우리 가문의 형세네, 흐…흐…”

우기동도 농조로 응대하고 서글픈 웃음을 터뜨렸다.

 

“엉?”

서명규는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고 우기동을 응시했다.

“후유…이제 보니깐 당신 느낌이 맞는구만, 친 혈육도 믿을게 못되더구만…”

우기동은 여동생에게 뭉칫돈을 꿔 주고 퇴직금 통장을 받은 사연을 맥없이 말했다.

 

“엉? 후유…”

서명규는 우기동을 한바탕 꾸지람하고 닦아 세우고 싶어졌으나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지독한 짓을 하는 것같아서 분수마냥 솟구쳐오르는 매서운 말을 삼켜 버리고 봄바람마냥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지금은 이전과 달라서 믿을만한 사람이 점점 적어지고 있소,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거요, 일이 이렇게 된 바에는 너무 상심하지 말고 인내성 있게 기다려 볼판이지”

 

“후유…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소. 그때 나 당신의 말을 귀담아 듣고 돈을 꿔 주지 않았던 걸 그랬소. 그런데 그가 울고불고 하니. 에 참 눈물 앞에서 약한 것이 남자의 마음이란데”

 

우기동은 가랑잎이라도 날려 보낼 듯이 한숨을 길게 뿜고 머리를 끄덕이었다.

 

“중국 속담에 ‘재물을 없애고 액운을 막는다.”라는 말이 있소, 후에 좋은 일이 생길거요.”

서명규는 두 잔에 술을 부어 놓고 위안조로 말했다.

 

“그래, 사람이 돈이 좀 없어 못 살겠소? 사람이 살아 있으면 돈은 있는 법이오. 자, 건배!”

 

우기동은 미꾸라지를 먹고 룡 트림을 하듯이 밋밋한 배를 쑤욱 내밀었다.

“낙관적인 것은 좋은데 후에 여동생이 소 동작을 할 가봐 좀 근심이 되는구만”

 

서명규는 우기동의 기색을 살피며 조용히 귀띔조로 말했다.

 

“음, 소 동작이라니?”

우기동은 커다란 눈을 슴벅거리며 서명규를 응시했다.

 

“음, 당신이 들으면 기분이 그리 좋지 않겠지만, 모든 일은 기분대로 되는게 아니오, 음, 내 느낌에 당신 동생이 그 빚을 갚기 아까워서 약은 수를 쓸 것 같구만.”

 

서명규는 우기동의 기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말했다.

“엉? 약은 수라니?”

 

우기동의 얼굴빛은 약간 흐릿해졌다.

“저, 물론 내 느낌이 딱 맞는 건 아니지만, 그저 당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오. 내 말을 참고로 하오. 어쩐지 당신의 동생이 돈을 꾸어간 다음부터 내 느낌이 계속 좋지 않은 거요,

 

이 핑게 저 핑게 대면서 당신의 빚을 시원히 갚지 않을 것 같구만”

 

서명규는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후유… 사람의 한번 실수를 용서할 줄도 알아야지, 동생의 퇴직금 통장이 내 손에 있는데…”

 

우기동은 호주머니에서 동생의 통장을 꺼내 서명규의 눈앞에 한 번 휘익 젓고서 호주머니에 슬쩍 넣었다.

 

“누구나 일생에 몇 번의 실수는 피면하기 어려우니 말이오. 때론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될 때도 있는 거요. 내 친구의 삼촌이 겪은 사실인데 들어 보우, 국제 무역을 하는 그 삼촌은 어느 날 공항에서 비행기 표와 서류가 들어 있는 가방을 도적맞았소. 비행기는 떠났고 제때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그 삼촌은 얼마나 마음이 조급해났고 격분했겠소?

 

그러나 이튿날 뉴스를 들은 그 삼촌은 ‘만세’를 불렀다오, 왜서인가구? 뉴스에서 들을 라니 그 비행기가 사고로 추락하여 여객들이 몽땅 숨졌다는 거요”

 

서명규는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후유…그거야 천만다행이구만, 하늘이 그 삼촌을 도와주었네”

 

서명규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던 우기동은 마치 자기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나 한 듯이 안도의 한숨을 길게 뿜었다.

 

“허…허… 그러니 때로는 ‘퍼차이 맨자이’라는 한족들의 속담이 맞는구만”

 

서명규는 소탈게 웃었다. 그들은 담소하며 술을 마시다가 헤여졌다. 몇달 후 서명규와 우기동은 휴식하려고 5년 만에 귀국하여 고향에서 나날을 보내게 되였다. 어느 날 우기동의 여동생 우금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 우리 단위에서 퇴직금 저축통장을 바꾸어 준다니 한국에 나올 때 내 저축통장을 가지고 나오우”

 

“응”

우기동은 선뜻이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공교롭게도 우기동 집에 마실을 왔던 서명규는 전화내용을 알고 머리를 기웃거리며 생각을 굴렸다. (퇴직금 통장은 사회보험공사에서 통일적으로 관리하는 것인데 왜서 우금녀네 단위에서만 통장을 바꾼다고 할까? 그런데 내가 의심되는 점을 말하면 이 친구가 좋아할까?) 한참 우유부단하며 망설이던 서명규는 결심이나 내린 듯이 목청을 가다듬어 말꼭지를 떼였다.

“내가 알건대 퇴직금 저축통장은 사회보험회사에서 통일적으로 관리하기에 어느 단위에서 개별적으로 바꿀 수 없는거요.”

 

“음, 그 말이 옳은 것 같구만, 우리 오늘 사회보험공사에서 가서 물어 보기오.”

 

우기동도 동감을 표시하였다. 그들은 엎드린 바에 절하는 격으로 내킨 걸음으로 거리에 나가 사회보험공사에 들어가서 통장을 바꾸는가고 문의하였다. 사무일군은 바꾸지 않는다고 했다. 화가 울컥 솟구친 우기동은 전화를 걸어 여동생을 꾸지람하였다.

 

“너 전문 거짓말을 하며 세월을 보내는구나, 내가 알아보았는데 통장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더라, 너 빚을 갚지 않으려고 허튼 수작 작작해라, 이놈, 정신을 차려라, 정신을”

 

“아잇 오빠두, 우리는 단위에서 우리를 강제로 퇴직시켰고 또 월급이 적길래 우리 단위의 공인들이 성로동국에 기소를 했소. 그러니 통장을 먼저 돌려주오, 우리가 한 기소의 결과가 나오는 대로 내가 통장을 돌려주겠으니 내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오빠 그 통장을 갖고 있소. 이래도 안 되오?”

 

우금녀는 울먹거리며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음, 한 번 더 너를 믿어 볼게”

우기동은 시큰둥한 어조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후유…..애꾼을 만났네, 그 잘난 개도 안 먹는 돈 때문에 이게 뭐람, 친 혈육끼리…”

 

우기동은 미풍 앞의 나뭇가지 마냥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지금은 돈이 참 사달이란데, 당신네 뿐만 아니오, 러시아에 간 내 친구의 매형은 돈을 더 가지려고 자기의 처남을 몽치로 뒤통수를 쳐서 지하에 처넣었는데 그 처남이 살아 돌아왔다네. 그 매형은 그만 놀라서 자살하고 말았다오.”

 

서명규는 비감에 잠긴 어조로 말했다.

“엉? 그런 끔찍한 일도 다 있었다오?”

 

우기동의 두 눈은 얼음 강판에 넘어진 황소의 눈 마냥 휘둥그레졌다.

 

“양, 이보다 더 험한 일도 있는거요, 외국의 한 녀인은 보험금에 눈이 어두워서 자기의 어머니를 살해하였다오.”

 

서명규는 울적한 어조로 말했다.

“엉? 돈 때문에 모두 쌔를 쓰는구만, 에익 무슨 놈의 세월인지…”

 

우기동은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당신 동생이 월급이 낮아서 동료들과 같이 성로동국에 기소하여 이긴다면 월급이 오르면 되는거지, 통장을 바꾼다는 말이 옳은 것 같소?”

 

서명규는 불현듯 화제를 돌려 본문제를 질문했다.

“글쎄,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러나 친오빠를 얼리겠소? 아직 그럴만한 담량이 있는 애가 아니오.”

 

우기동은 확신 있게 대답을 했다.

 

“음, ‘지금은 엄마 외에는 다 가짜’라는 현대 속담도 나왔소, 그러니 ‘익은 게도 다리를 떼여 놓고 먹으라’는 속담을 잘 이해하고 삶에 옮겼으면 하오.”

 

서명규는 사색에 잠기며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양, 당신의 말에 도리는 있는 것 같소, 그러나 너무 공식적로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소, 그래도 사기는 아니겠지, 하….하…”

 

우기동은 반신반의하는 어조로 말하고서 어설픈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서명규도 별수 없어 덩달아 웃고 말았다.

그날 밤 서명규는 이상한 꿈을 꾸고 소스라쳐 놀라 깨여났다. 꿈에 그는 우기동과 여동생 우금녀와 함께 산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퍼부었다. 그들이 황급히 동굴에 달려 들어가서 비를 피하고 나와 보니 글쎄 우금녀가 한 마리의 여우로 변하여 그들 앞에서 날뛰고 있었던 것이다.

 

서명규는 온몸에 돋은 식은땀을 닦고 한참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머리 속에 복잡한 생각이 갈마들었다. (나 미신을 믿지 않지만 어쩐지 이 꿈이 불길한 징조 같구나, 여우는 교활한 동물이니 우금녀가 오빠와 사기 칠 가능성이 있어. 그러나 내가 자꾸 권면하면 그가 좋아할까?)고민의 수렁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서명규는 드디여 결심을 내리고 우기동네 집에 찾아 가서 꿈 이야기와 더불어 자신의 느낌을 말했다.

 

“글쎄 꿈이 딱 맞는 건 아니지만 금녀가 당신을 속이는 것 같구만, 그러니 한국에 가서 통장을 내여 놓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구만”

 

“엉? 꿈이 뭐 맞는다고 그러오? 우린 친 혈육이란 말이오.”

우기동은 얼굴을 흐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 음…”

서명규는 혀끝까지 나온 말을 가까스로 삼켜버렸다. (나 이러다가 공연히 친구네 형제지간에 이간을 놓겠구나 그러나 친구의 실수를 보면서도 수수방관한단 말인가? 귀뺨을 맞을 섬하고 말해 보자) 서명규는 마음을 도슬러 먹고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 워낙 말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말하오, 당신의 동생이 열두살 때에 거짓말로 우리 집에 와서 돈 4원을 꿔간 적 있고 아직까지 갚지 않았고 또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더구만,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바늘 도적이 송곳 도적이 되고 송곳 도적이 소 도적이 된다)는 속담이 있소, 그러니 아무리 동생이라고 해도 너무 믿어서는 안 되는거요.”

 

“엉? 됐소, 됐소”

우기동은 갑자기 얼굴빛을 흐리며 모기를 쫓아버리듯이 손을 홰홰 저었다. 서명규는 떡을 주러갔다가 냉대를 받고 나오는 사람마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3

 

“어머니 그래 킄 아버지의 빚을 다 갚을 생각입니까?”

어느 날 우금녀의 딸 오홍화가 물었다.

 

“그래 갚지 않구….”

우금녀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잇 어머니두 고지식하기는 서서 똥을 누겠네”

오홍화는 눈을 할기죽 거리며 얄팍한 얼굴에 간사한 웃음을 게발랐다.

 

“그럼 네게 무슨 묘한 방법이라두 있니?”

우금녀는 호기심 어린 어조로 물었다.

 

“있구 말구요”

오홍화는 얄팍한 얼굴에 앙큼한 미소를 띠우며 한 쪽 눈을 살짝 감았다가 떴다.

“무슨 방법이길래?”

 

우금녀는 마치 사냥군에게 쫓기는 노루가 동굴이라도 만난 듯이 눈에 일루의 희망이 담긴 빛을 띠우며 물었다.

 

“음, 어머니 이래 보시오, 어머니가 중국에 나갔을 때 은행에 가서 통장을 잃어버렸다고 신고 한 다음 새로 통장을 내고 그 낡은 통장을 큰 아버지에게 주시오”

오홍화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자기가 며칠 동안 고안해 낸 ‘금낭묘계’를 알려주었다.

 

“엉? 야 이게 통골을 쓰는구나, 그런데 큰 아버지가 머저리 아닌 게 그 낡은 통장을 가지고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갔다가 내가 새 통장을 낸 것이 탄로날 때는 어쩌겠니?”

우금녀는 근심조로 물었다.

 

“내게 방법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집을 따로 잡고 나가시오, 한국판에서 나만 비밀을 잘 지키면 큰 아버지는 죽어 변성을 해도 어머니를 찾을 수 없을겝니다.”

 

오홍화는 이미 생각해 둔 방법이기에 얼음 강판에 표주박 밀듯이 술술 말했다.

 

“음 좋은 방법인 것 같구나, 너 참 골이 좋구나”

 

우금녀는 무등 기꺼워했다. 그는 며칠 후에 중국에 돌아가서 딸이 시켜준 대로 저축통장 분실 신고를 하고 새 통장을 내였다. 그리고 이미 작폐된 낡은 저축통장을 오빠 우기동에게 주었다. 내막을 모르는 우기동은 한국에서 일을 하다가 인젠 귀국하여 정착 생활을 하려고 고향에 돌아갔다. 어느 날 은행에 간 우기동은 자기가 갖고 있는 저축통장이 이미 작폐된 것임을 알고 펄쩍 뛰였다. 그는 옆에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망각한 듯이 욕설을 퍼부었다.

 

"쌍눔, 이놈이 감히 개수작을 피우고 세월을 보내는구나!...."

뭇사람들은 괴이한 눈길로 우기동을 흘끔흘끔 보았다. 우기동은 동생 우금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번호는 공백이라는 신호가 귀청을 따갑게 때렸다. 우기동은 한숨을 쉬고서 외조카 오홍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공백이라는 신호가 귀청을 때렸다.

 

"후유....빌어먹을 쌍간나새끼들이 짜고 들었구나"

우기동은 욕설을 퍼부으며 스마트폰을 동댕이치려다가 손을 멈추었다. 그는 친구 서명규의 호의로 충만된 권면을 귓등으로 흘려보낸 자신을 회되게 꾸짖었다. 술에 취한 사람마냥 비칠거리며 서명규에 집에 갔다.

 

"후유.... 당신의 말을 듣지 않은 내가 머저리였지...."

우기동은 서명규의 손을 덥석 잡으며 백양나무라도 쓰러뜨릴 듯이 한숨을 맹렬하게 뿜었다. 서명규는 눈물이 흥건한 눈길로 우기동을 응시하며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었다.

 

"음,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너무 조급해 말고 방법을 생각해야지"

서명규는 잠간 생각을 굴리고 나서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무슨 방법을?"

 

우기동은 강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물었다. 서명규는 안쓰러운 눈길로 성질이 급한 우기동을 응시하며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내 느낌에는 당신의 녀동생과 외조카가 언녕 짜고든 것 같구만, 당신의 돈을 돌려주지 않으려고 궤계를 꾸미고 그 저축 통장을 달라고 한 것 같구만, 음...."

 

"그런 눈치를 알았다면 언녕 알려줘야지. 그래 친구가 잘 못 되는걸 보고 가만히 있었소?"

우기동은 불평을 늘여놓았다.

 

"내 이미 권면을 했는데 당신이 화를 내니 더 말하지 않은거요."

서명규의 어조도 불쾌했다.

"그래두 그렇지, 장기 훈수는 귀통을 맞으면서라도 한다고, 친구를 구하자면 결사적으로 방조해야지".

 

우기동은 여전히 툴툴거렸다.

"말 이사 쉽지, 당신네는 친 혈육이 아니오?"

 

서명규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후유.... 고집이 센 내가 머저리였지...."

우기동은 눈물이 글썽한 눈길로 서명규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순간 서명규는 가슴이 스르르해지며 옭노에 걸린 토끼를 보는 것처럼 우기동이 매우 가련해 보였다. (이러다간 이 친구가 병에 걸리겠네 사람을 구하고 봐야지) 한참 동안 생각을 굴리던 서명규는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리 내일 한국에 들어가서 금녀네 집에 찾아가기오. 하지만 금녀는 집에 있을 것 같지 않구만"

 

"그럼, 우리 한국에 가서 무얼 하오?"

우기동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두 가 봐야지, 범의 굴에 들어가야 범의 새끼를 잡는다구...."

서명규는 얼굴에 장엄한 빛을 띠우며 말했다.

"음, 그럼 가봐야지"

우기동은 별로 신심이 없어 하면서 마지못해 응하는 태도였다. 그들은 며칠 후에 한국에 들어갔다. 서명규는 개인적으로 볼일이 있었다. 우기동이 동생네 집에 들어서니 금녀는 없고 외조카 오홍화가 심드렁한 기색을 짓고 맞아주었다.

 

"네 엄마는 어디로 갔니?"

마음이 초조해난 우기동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도 모릅니다."

오홍화는 얄팍한 얼굴에 새침한 기색을 지으며 시큰둥한 어조로 대답했다.

"엉? 네가 모른다구?"

우기동의 어조는 격해졌다.

 

"이걸 보시오"

오홍화는 우금녀가 남긴 쪽지를 꺼내 보였다. 우기동은 착잡한 기분으로 외 조카가 내매는 쪽지를 받아 펼쳤다. 거기에는 우금녀가 쓴 글씨가 적혀 있었다. (홍화야 엄마는 따로 집을 잡고 나가니 이젠 이 모자라는 엄마를 찾지 말고 너나 잘 살아라) 쪽지를 연속 세번 읽어 본 우기동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이게 무슨 감투끈이린 말인가? 그래 모녀간이 다투었단 말인가?) 우기동은 잠간 궁리를 굴리더니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래 너네 에미 딸이 다투었니?"

"예, 제 신랑과 엄마가 맞지 않아서, 됐습니다. 더 묻지 마시오, 나도 인젠 엄마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오홍화는 짜증이 묻은 어조로 말하며 코를 쨍그렸다.

"아무리 그래도 엄마가 어디 있는지 너 모른단 말이냐?"

우기동은 의혹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물었다.

"알려주지 않으면 모르는 게지, 에잇 시끄럽네"

 

오홍화는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리고 침대에 훌렁 드러누워 눈을 딱 감았다. 무언의 축객령이였다.

 

"후유....."

우기동은 오만무례한 외 조카의 태도에 가까스로 참았다. (어떻게 하나? 얘를 얼려서 금녀의 행방을 알아내야 되겠는데) 우기동은 솟구치는 울분을 요행 짓누르며 생각을 굴렸다.

 

오홍화는 안하무인격으로 코를 드렁드렁 고르면서 잠을 자고 있었다. 우기동은 더 앉아 있기 짜증나서 거리에 나왔다. 갑자기 서명규의 조언이 시급히 수요 됨을 느낀 우기동은 그와 전화로 연락하고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이 시각 우기동에게는 서명규의 존재가 길 잃은 사람 앞의 나침판이였고 가물에 단 비었다. (명규의 권면을 듣지 않은 내가 등신이였지)그는 속으로 자신을 호되게 꾸짖었다.

 

이윽고 그들 둘은 식당에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당신의 말을 듣지 않은 내가 머저리였지, 후유..."

 

우기동은 한탄조로 말하며 벽이라도 무너뜨릴 듯이 한숨을 길게 뿜었다. 서명규의 가슴은 너럭바위에 짓눌린 듯이 무거워졌다. (내가 더 끈질기게 권면했더라면.....) 서명규는 한참 생각을 굴리더니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딸이 자기 엄마의 거주지를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오? 세 살짜리 아이나 얼리우겠는지..."

 

"글쎄 나두 그렇게 생각하오, 그런데 조카까지 시치미를 뚝 떼니 낸들 무슨 방법이 있겠소?"

 

우기동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길로 서명규를 점도록 응시했다. 혹시 그의 두툼한 입술에서 명답이라도 나올 것처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신이 동생과 외 조카의 꼬임에 들고 있는거요. 그들은 지금 당신의 돈을 돌려주지 않으려고 연극을 꾸미고 있는거요. 그러니 외 조카를 잘 설복하여 동생의 거처를 알아내 저축통장을 찾아야 하오."

 

서명규는 조리 정연한 어조로 말했다.

 

"양? 양......"

우기동의 외마디 대답에는 자신감이 결여되었다. 이튿날 우기동은 또 외조카네 집에 찾아갔다.

 

"너 정말 모르니? 네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우기동은 오홍화를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모른다는데 왜 이럼까?"

오홍화는 얄팍한 얼굴에 서리 발을 띠우며 빽 소리를 질렀다.

 

"너 정말 이 큰 아버지를 보기는 머저린가 하는구나, 엄마의 거처를 모르는 딸이 어디 있니? 후에 미래도 알겠는데..."

 

"난 정말 모름다, 정 알겠으면 파출소에 가서 신고를 하시오."

오홍화는 얼굴에 냉소를 띠우며 명령조로 말했다.

 

"이 놈아, 무슨 개소리 그리두 많니? 네 어미 어디 있는지 정말 모르니?"

단가에 오른 개미 마냥 초조해 나고 놀란 황소마냥 성이 난 우기동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펄쩍 뛰며 오홍화의 멱살을 와락 잡았다. 이때 이미 대기하고 있던 오홍화의 남편이 밖에서 쑥 들어와서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제꺽 찍고 당당한 어조로 말했다.

 

"주택 침입, 폭력죄로 기소하겠으니 다시는 오지 마시오!"

 

"엉?!....."

얼음 강판에 넘어진 황소마냥 눈이 휘둥그레진 우기동은 억세게 잡았던 홍화의 멱살을 스르르 풀었다. 오홍화는 얼굴에 도고한 빛을 띠고 위협조로 말했다.

 

"주택 침입, 폭력, 성추행, 세 가지 죄면 감옥에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으니 정신을 차리시오!"

 

"후유...."

우기동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뿜고 잔치 집에서 쫓겨 나오는 문둥병환자마냥 외 조카네 집에서 비슬비슬 물러나왔다. 밖을 나온 그는 하늘이 핑그르르 돌고 땅이 푸욱 꺼져 들어가는 환각을 느꼈다. (망했다, 망했어. 너에게 망했다) 우기동은 술 취한 사람마냥 비척거리며 발이 가는대로 거리를 거닐었다. 이 시각 그는 그저 대중없이 걷고만 싶어졌다.

"어디로 가오?"

문득 서명규가 앞에서 마주 오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우기동은 이젠 서명규를 보기도 부끄러워졌다. 그들은 스적스적 걸어 거리의 한적한 골목에 이르렀다. 한참동안 신세타령을 하던 우기동은 서명규를 부둥켜안고 비 내리듯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내가 권면을 좀 더 했더라면....) 어깨를 들먹거리며 우는 우기동의 어깨를 쓸어주는 서명규는 자책감에 모대기었다.

 

"그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 빨리 파출소에 가서 신고를 하오."

서명규는 우기동의 손을 부여잡으며 무거운 어조로 귀띔해주었다.

/허경수



기사 출력  기사 메일전송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포토뉴스

사진작품

미술작품

방습거울
음악감상
한중방송 라디오방송
사진은 진실만 말한다

 가정여성 

한민족여행사

 동포사회 

TV광고

영상편지

한민족신문 韩民族新闻
 
  l   회사소개   l   광고안내   l   구독신청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