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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7/30  정명선
【단편소설】파

1

 

“오늘 저녁은 입맛이 없는데 파예 쌤(파 쌈)이나 냠냠 맛있게 먹기시오.”

아내 로미옥은 남편 구정식을 보며 애교가 달착지근히 흐르는 어조로 말했다.

 

“양, 주방장님의 뜻대로 하소서”

음식을 가리지 않고 다다일식인 구정식은 별로 개의치 않아 하며 배포유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말 하나마나 하군요, 낭군님 동지가 좀 건설적인 의견을 내놓아야 식탁 메뉴를 개선하지요, 아이 그럼까?”

 

로미옥은 보동보동한 손으로 남편의 어깨를 부여잡고 당기며 말했다.

“그럼, 오늘 저녁은 파에 쌤을 잡숫고 내일 저녁엔 삼겹살 쌤을 답새기고 어, 그 다슴(다음)엔 베이징 코야(북경의 구운 오리)….”

구정식은 농조로 자기의 메뉴를 슬슬 풀어 내려갔다.

 

“호…호.,,,당신이 와누르 메뉴 박사군요”

로미옥은 명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남편의 어깨에 북장단을 통통 안겼다.

“어….씨원하다, 무스거 한 것처럼, 허….허….”

구정식의 소탈한 웃음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으응….”

로미옥의 애교가 잔잔히 흐를 때 구정식의 핸드폰이 울렸다.

 

“띠리리…”

“양, 나요, 놀러 오겠다구? 양, 양 오우, 환잉, 환잉, 러레환잉(열렬히 환영)”

구정식은 명쾌한 어조로 전화를 받고서 끊은 다음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내 동미(친구) 류동호가 오늘 저녁에 놀러 오겠다는구만. 준비를 잘 해야지”

“예, 하면 되지요.”

교제에 능란하고 흥성흥성거리는 오락판을 즐기는 로미옥은 남편의 분부를 선뜻이 수락했다.

“그런데 그는 파예(파)와 달리(달래) 다마내기(양파)를 아이 먹는단데, 파예를 식탁에 놓게도 못 하는 별난 사람이오, 그러니 파예를 절대 상우에 놓지 마오.”

구정식은 아내에게 신신당부했다.

 

“예, 예 낭군님의 지시대로 합지요.”

아내 로미옥은 허리까지 굽히며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음, 류동호를 본지도 이젠 7년이 지났구나. 잘 지내고 있었는지? 러시아에 가서 7년동안 고생을 많이 했을 거야)구정식은 친구를 그리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는 방에서 텔레비를 시청하며 여유작작한 심정으로 앉아 있었고 로미옥은 주방에서 정성껏 요리를 볶아내고 있었다.

 

“있소?”

이윽고 귀에 익은 음성과 함께 노크소리가 울렸다.

“양, 양 들어오우.”

구정식은 바지가랭이에 회오리바람을 달고 달려가서 문을 열었다.

 

“야, 이거 참 오래간만이오. 하…하…”

그들은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전우를 만난 듯이 서로 안고 비잉 돌았다.

“자, 내 친한 동미(친구)요”

구정식은 아내를 보며 기꺼운 음성으로 류동호를 소개하였다.

 

“예, 예 반갑습니다.”

로미옥은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며 주방에서 웃으며 나와서 인사를 하였다. 류동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로미옥의 보동보동한 손을 꾹 잡아 힘 있게 흔들었다. 그는 양주 한병과 쵸콜렛 사탕 두 박스를 내어놓았다.

 

“아이, 거저 올게지”

구정식은 면구스러워했다.

 

“모스크바 선물이오. 하..하….맨날 어찌 똥빼주만 먹겠소?”

류동호의 걸걸한 웃음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허…허…하긴 그렇소. 자, 오늘 허리띠를 풀어 놓고 술을 답새기기오.”

구정식은 류동호의 어깨를 탁 치며 통쾌하게 웃었다.

“자, 로 여사님이 서비스를 하지”

구정식은 아내를 넌지시 보며 농조로 말했다.

 

“그럼요, 모처럼 찾아 오셨는데요.”

로미옥은 꽃 살 같은 미소를 살짝 날리며 술병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류동호의 술잔과 남편의 술잔에 술을 조심스레 부었다.

 

“자, 사모님도 해야지”

류동호는 벙시레 미소를 지으며 술병을 넘겨받아 쥐고 로미옥의 술잔에 술을 부었다.

 

“허…허….류 선생의 광림을 위하여!”

구정식은 소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술잔을 들었다. 셋은 얼굴에 함박꽃웃음을 피워 올리며 건배를 했다.

 

“음, 양주가 다르긴 다른데. 모스크바 선물, 하….하….”

이제까지 중국의 흰 술만 마셔왔고 처음으로 양주를 마시는 구정식의 입은 귀가에 걸렸다.

“예, 예 별 맛 이예요.”

로미옥의 달착지근한 애교에 젖은 목소리가 밥상위에서 구운다.

“어허, 우욱….”

안주를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던 류동호는 입을 싸쥐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것 이였다.

 

“당신 안주에 파를 넣지 않았소? 엉?!”

구정식은 눈이 화등잔이 되여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차, 이 정신 봐라. 내 그만 습관이 돼서…”

로미옥의 갸름한 얼굴빛은 홍당무가 되고 말았다. 다년간 주방에서 파, 양파, 달래와 벗으로 사귀여 온 로미옥은 요리를 할 때 손이 기계적으로 나아가며 파를 쥐여 섞는 것이 이젠 굳어진 습관이 되고 말았다.

 

“참 미안해요, 제가 그만 습관이 돼서….”

로미옥은 화장실에서 울적한 기분으로 걸어 나오는 류동호를 보며 갑삭 일어나서 사과를 하였다. 류동호는 너부죽한 얼굴에 선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휘익 저었다가 내리웠다.

“일없소.”

 

“야, 내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당신 무슨 생각을 했길래?”

구정식은 밥을 먹다가 모래알을 씹었을 때처럼 아내를 찔 흘겨보았다.

 

“참 미안해요. 너무 미안합니다.”

로미옥은 첫 대면인 남편의 친구 보기가 너무 민망하여 몸둘바를 몰라했다.

 

“일없소, 일없소.”

류동호는 손사래를 치며 걸걸한 음성으로 말했다.

 

“스돕쁘, 반찬 하나 제까닥 해 올리오.”

구정식은 오른쪽 손바닥을 왼쪽 주먹위에 얹으며 아내에게 분부했다.

 

“예, 예…”

로미옥은 죄수마냥 허리를 굽실거리고 주방에 들어가려고 서둘렀다.

“하…하…스돕쁘!”

류동호는 통쾌하게 웃더니 죄송스러워서 어쩔 바를 모르는 로미옥을 불러 세웠다.

 

“잰내비도 나무우에 오르다가 떨어질 때 있다는데, 됐소, 됐소, 안주를 배달시키면 되지.”

류동호는 배포유한 어조로 말 하고서 어느 식당에 전화를 걸어 요리를 주문하였다.

 

“지금 무슨 세월이라구 집에서 지지고 볶고 하면서 아글타글하겠소? 헐케(쉽게) 살아야지, 아이 그렇소? 허…허….”

류동호는 구정근이와 로미옥을 번갈아 보며 소탈하게 웃었다.

“그라, 그럼 허..허…허….”

구정식은 궁여지책으로 어설픈 웃음을 터뜨렸다.

 

“호오….”

로미옥은 안도의 한숨을 조심스레 뿜었다. 강물에 빠졌던 사람이 나무토막을 부여잡고 대안에 가까스로 오른 심정이었다. 그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남편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류동호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훤칠한 체구에 너부죽하고 혈색 좋은 얼굴, 부리부리한 솔밭 눈썹…. 그녀는 불현듯 가슴 한 쪽 귀퉁이에서 가녀린 설레임이 일어남을 느끼며 은근히 놀랐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알고도 모르겠네)

 

“7년 만에 만났는데 참 아이 됐소, 그 눔 파예 문제란데, 허….허….”

구정식은 너무 창피하고 송구스러워 죄 없는 파를 비난했다.

“파예가 문제 아니라 내가 문제지. 어험…”

 

류동호는 헛기침을 하고 말에 동안을 두고 잠간 생각을 굴리더니 말 끈을 이었다.

“음,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내가 파예를 못 먹는 고질병을 고치려고 파즙을 장물에 넣어 끓였는데 그걸 먹은 내가 몽땅 토하고 말았소. 무슨 원인인지 나 병원에 여러 번 가서 검사를 해 보았는데 모두 정상이라는구만. 내 원참.”

 

“그거 참 이상하오. 당신 몸은 탄탄한데, 일도 잘 하구…”

구정식은 친구를 칭찬하는 것으로 아내의 실수를 뒤늦게나마 미봉하려고 은근히 애를 썼다.

 

“글쎄 말이오, 파예는 정력제라는데 난 그걸 아이 먹어두 매일 구새(굴뚝)처럼 ‘그’게 너무 일어나서 대새(큰일)란데, 핫, 하…하…”

 

류동호는 롱조로 말 하고 통쾌하게 웃었다.

“허…허…허….”

“호…호…호….”

구정식이네 부부는 쾌활하게 웃었다. 그러자 순간이나마 드리웠던 침묵의 안개가 서서히 흩어지고 한 갈래 해빛이 스며드는 듯이 방안에 생기가 어리었다. 한참 지나니 류동호가 주문한 베이징 코야(북경 구운 오리)가 집에 배달되었다. 그걸 보는 로미옥의 입안에서 군침이 소르르 돌았다. (내 저걸 며칠 전부터 먹고 싶어 했는데 월급쟁이들은 아이 되겠구나. 그래도 외국에 가서 벌어야지.) 로미옥의 머리에 느닷없이 갈마드는 생각이었다.

 

“오늘은 까꿀(꺼꾸)로 되었구만, 손님이 칭커를 하다니?...”

구정식은 너무 면구스러워서 두 손을 마주 부비며 서글픈 어조로 말했다.

 

“일없소. 후에 당신이 한 방 쏘면 되지. 수염이 석자라도 잘 먹어야지. 자, 또 답새기기오.”

류동호는 명쾌한 어조로 말하며 로미옥이에게 슬쩍 미소를 날렸다. (왜 저러지?) 로미옥의 얼굴에 엷은 홍조가 어렸다.

 

“음, 거 참 구수하군.”

구정식은 오리 고기를 맛갈스레 씹어 삼키고 중얼거렸다.

 

“당신처럼 맨날 쌍발(출근)만 하다간 언제 번신하겠소? 이제라두 늦지 않으니 정신을 차리고 외국에 나가서 꿍꿍 버오.”

술이 둬 순배 돌자 류동호는 연장자의 어투를 본따서 훈계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건 그런데, 우리 단위에서는 사람을 내여 보내지 않는단 말이오. 후유……”

구정식은 자기 단위의 실정을 말하고서 한숨을 뿜었다.

 

“내들 쓰베. 그까짓 직업을 왈 줴뿌리(버리)고 나와야지, 월급에 딱 매워 사는 게 인젠 새나(질리)지 않소?)

류동호는 너부죽한 얼굴에 경멸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이사 쉽지, 그러다가 혹시 외국에 나가서 못 벌면 멧돼지를 잡으러 갔다가 멧돼지도 못 잡고 집돼지를 잃는 격이 되지 않겠소?”

구정식은 머리를 기웃거리며 반문했다.

 

“얏따, 이 나그네 이게 똥때가(담량) 이리 약하구사 무슨 일을 하겠소? 지독하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오. 남자는 벽을 문이라고 막 밀고 나가야 한단 말이오. 앉아서 오줌을 싸는 앙깐들처럼 맨날 우물쭈물하지 말구.”

 

류동호는 얼굴에 교만한 빛을 띠우며 강물을 건너는 송아지마냥 턱을 건뜩 쳐들고 창밖을 내다 보았다. 순간 구정식은 모멸감을 느꼈고 로미옥은 남편이 가엽게 느껴졌다. 구정근은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났기에 처음엔 반가웠는데 점점 자기를 훈계하니 면구스러운데로부터 나중엔 모욕감을 느꼈다.

 

“음, 그럼 나두 바다에 뛰어든다?”

구정식은 류동호를 보며 농조로 말했다.

 

“그럼, 언녕 뛰어들어야지. 자, 또 한잔 답새기지”

류동호는 술 한 잔을 굽내고 희죽이 웃으며 로미옥을 응시했다. 아미를 살그머니 숙이는 로미옥의 얼굴은 가녀리게 붉어졌다.

 

“띠리리…”

불현듯, 류동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양, 양 거기서 기다리오, 내 이내(인차) 갈게.”

 

류동호는 전화를 받고 구정식을 보며 말했다.

“아이 됐소, 나 일이 좀 있어서 이내 가야겠소.”

“아이, 이리 급히?”

구정근의 놀라움과 아쉬움이 반죽된 어조였다.

 

“양, 그런 일이 있소.”

류동호는 말하며 옷걸이에 걸어 놓은 웃옷을 내리워 입었다.

 

“야, 이거 오래간만에 만났다가….”

구정식은 류동호의 손을 잡으며 아쉬움을 금치 못 했다.

 

“양, 후에 또 마나지”

류동호는 황망히 작별 인사를 하고 밖에 나섰다. 친구를 배웅하고 난 구정식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오늘 저녁 당신 때문에 나 숱한 망신을 했단데. 파예를 넣지 말라고 나 백번이나 말했는데. 에이참…”

구정식은 게슴츠레한 눈을 흡뜨고 아내를 노려보았다. 로미옥의 고운 눈에 더운 이슬이 핑 돌았다.

 

2

 

“동호가 원래는 저렇지 않았는데, 러시아에 가서 장사를 하더니 와누르 달라졌는데…”

이튿날 아침에 구정식은 어제 저녁의 정경을 회상하며 말했다.

 

“돈이 있으면 변하는 게 사람입니다.”

로미옥은 상념에 잠긴 채 중얼거렸다.

 

“그런가? 나두 돈이 있으면 저렇게 될까?”

구정식은 시무룩이 웃으며 아내를 보며 물었다.

 

“거야 사람 나름이지요, 호….호….”

로미옥은 풍향을 따라 도는 바람개비마냥 말머리를 살짝 돌리였다.

 

“당신도 약은 수를 쓰는군. 아무튼 낭군님의 비위를 잘 맞추는 것도 재간이지.”

 

“그러나 사람은 다 좋은 건 아니지요. 돈이 있으니 큰 소릴 탕탕 치지. 파예를 아이 먹지.”

로미옥은 생각을 굴리며 말했다.

“아마 그런 거 같소. 그러나 가난하면 살기 바쁘고 또 남들의 업신을 당하구. 그러니 다 좋은 게 없다는 말두 맞소.”

구정식은 어제 저녁에 있었던 불쾌한 정경을 회상하며 시큰둥한 어조로 말했다.

“아이쿠 배야… 음…음…”

 

한참 동안 한담을 나누던 중 로미옥이가 갑자기 배를 움켜잡더니 허리를 꼬부리고 비지땀을 뚝뚝 떨구는 것 이였다.

 

“엉?!.... 어디 아프오?”

깜짝 놀란 구정식은 아내를 부둥켜안고 어쩔 바를 몰라 했다.

 

“음…음….”

로미옥의 갸름한 얼굴은 일그러졌고 신음소리는 높아만 갔다. 구정식은 핸드폰으로 ‘120’ 에 전화를 걸었다.

 

“당신 쪼꼼만 참소. 쪼꼼만…”

화들짝 놀란 구정근식의 두 눈은 얼음강판에 넘어진 황소의 눈이 되었다. 구호차를 기다리는 그의 심정은 일분이 일년 맞잡이로 지루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구호차가 그의 집 앞에 도착했다.

 

병원에 이르러 로미옥은 진단을 받은 결과 급성위장염과 맹장염이라는 것이었다. 이 진단을 들은 구정식은 하늘이 핑그르르 돌고 땅이 왕창 꺼져 들어가는 환각을 느꼈다. (치료비가 많이 들겠구나)

 

“예약금 2만원을 내야합니다.”

 

입원수속을 할 때 담당일군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는데 구정식의 귀전에는 벼락 치듯이 울렸다.

“예? 예…”

 

구정식은 무슨 정신으로 병원문을 나섰는지 몰랐다. 그는 형님과 동생에게 번갈아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후유….제 거르마이(호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이렇구나.”

땅이 꺼지게 한숨을 토한 구정식은 류동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엉? 내 이내 갈게”

류동호는 사연을 듣더니 통쾌하게 말하였다,

“음, 친구가 이래서 좋구나.”

 

구정식의 입에서 부지중 감탄이 나왔다. 이윽고 류동호가 자가용차를 몰고 왔다. 그는 카드를 꺼내어 결제하고 너부죽한 얼굴에 배포유한 미소를 띠였다.

“로류(류동무) 감사하오. 너무 너무 감사하오.”

구정식은 두 손으로 류동호의 손을 꾹 부여잡고 울먹거리는 어조로 감사를 표시하였다.

 

“요만한 일이사 동미(친구)끼리 도바(도와)줘야지. 허…허…”

류동호는 우선우선한 어조로 말하고 소탈하게 웃었다.

(요만한 일? 돈이 양반이란 말이 옳구나)부러운 눈길로 류동호를 응시하는 구정식은 거위앞에 옴추리고 앉아 있는 비 맞은 병아리 신세인 자신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도 언녕 단위에서 나와 외국에 가서 벌었더라면 지금 이런 꼴은 아니겠는데)

 

“어, 앙까이(안해) 호리를 잘 하오.”

류동호는 느긋한 어조로 말 하고 자가용차를 운전하여 스르르 가버렸다. 구정식은 차를 따라 가며 손을 저어 배웅하였다.

 

“이번에 류동호 신세가 대단하오.”

아내의 수술이 끝난 다음 구정식은 병실에서 감개무량한 어조로 말했다.

 

“예, 은인입니디. 호오….”

안도의 한숨을 뿜는 로미옥의 고운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번에 보니 제 손에 돈이 없으니 형제간도 쓸 데 없더군요. 후유….”

맥없이 말 하는 로미옥의 눈에 눈물이 가랑가랑 맺혔다.

“당신이 출원 한 다음 나도 퇴직하고 외국에 나가 꿍꿍 벌겠소. 에익, 죽어 봐 죽겠소?”

구정식은 둥그스름한 얼굴에 도고한 빛을 띠우며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글쎄, 제가 출원한 다음 보기시오.”

로미옥의 어조에는 신심이 없었다.

 

“좀 괜찮소?”

며칠 후의 어느 날 류동호가 식품을 한 구럭 사 들고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병실에 들어 섰다.

 

“예, 예 참 감사합니다.”

로미옥은 병상에서 황망히 상반신을 일으키며 인사를 했다.

 

“누워 쉬오.”

류동호는 우선우선한 어조로 말하고 걸상에 앉았다.

 

“바쁘겠는데 이거 또 이렇게….”

구정식은 송구스러워서 목소리마저 가녀리게 떨렸다.

 

“바쁘기사 뭐, 어디에 뭐 불이 붙었소? 앓는 분이 바쁘지”

류동호는 배포유한 어조로 말했다.

 

“허허 그거사…”

구정식은 어설픈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 로류(류동무)가 도와 주셨길래. 하마터면 큰 일 날 번 했습니다.”

울먹거리며 말 하는 로미옥의 눈에 이슬이 함초롬히 고여 있었다.

 

“그런거사 쑈이쓰(작은 성의)란데, 러시아에 가면 요만한 쑈챈(작은 돈)이사 후닥닥 들어 온단데 하하…”

류동호는 머리를 부쩍 들며 손사래를 홰홰 쳤다.

 

“러시아에 가니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 되지?”

구정식이 물었다.

 

“그거사 편지에 문안이지. 그 마우재(러시아 사람)들의 몸에서 누린내가 어찌나 쎈지. 처음에는 메스껍습데. 그리구 우유와 헐레발(빵)도 매일 먹으니 새나(지겹)더군. 지금은 습관이 돼서 일없소. 모든 게 하라쏘(좋다).”

류동호는 손을 휘두르며 러시아서의 체험을 말했다.

 

“그 곳이 꽤 춥다더구만.”

구정식의 말이였다.

 

“양 웃티(옷)를 한 시간씩이나 입소. 밖에서 침을 탁 뱉으면 얼음알이 또르르 굴러 떨어진단데”

류동호은 동작을 해가며 말했다.

 

“어마나?! 와누르 쌔기 춥구만.”

호들갑스럽게 말 하는 로미옥의 두 눈은 놀란 병아리마냥 올롱해졌다.

 

“그럼요, 중국에서는 남자들이 아무데서나 오줌을 눠도 일없는데 거기서는 그걸 빼들었다가 얼음 꼬재(꼬챙이) 된단데.”

류동호는 너부죽한 얼굴에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로미옥을 힐끗 보았다. 로미옥의 달걀형의 햐얀 얼굴에 홍조가 살짝 어리였다. 류동호는 그녀의 고운 얼굴 표정에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도박쟁이가 마작 판을 본 듯이 쾌활한 미소를 띠였다.

 

한 달 만에 로미옥은 퇴원하여 집에서 위염을 치료를 받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들 부부의 얼굴에 그늘이 비껴 있었다. 류동호에게 진 빚 2만원을 갚자면 여러 달 걸려야하였기 때문이였다. 비록 류동호가 빚 재촉은 하지 않지만 구정식은 길에서 류동호와 간혹 만나도 송구스럽고 미안한 감을 금할 수 없었다.

 

구정식은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공장장을 찾아 노동자 적을 보존하고 몇 년간 외국에 가서 일할 의향이 있는데 비준할 수 있는가 고 문의하였다. 공장장은 잠간 생각을 굴리더니 노동자적을 보존해 못 주겠으니 일차성적으로 퇴직하라는 것이였다. 그러면 단번에 퇴직금을 받은 다음 후에 정년 퇴직금을 매월 지급 받을 수 없는 것이였다. 구정식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퇴직을 하여 많은 돈을 벌어 올 자신이 없었다.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집에 돌아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로미옥은 근심조로 물었다.

 

“후유….”

구정식은 긴 한숨을 뿜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아내를 물끄러미 보았다.

 

“왜 이리도 결단성이 없습니까? 이러니 그냥 가난뱅이 신세를 못 면하지, 후유…”

로미옥은 남편을 원망하며 한숨을 길게 뿜었다.

 

“남들은 부부가 맞들고 잘 벌더구만 우리는 이게 무슨 꼴이오. 약한 다리에 침이라구 병에 걸려 통 돈을 빚지다니.”

구정식은 아내의 돌연적인 병의 발생을 원망하는 것으로 자기의 우유부단한 성질과 경제상 무능을 은폐시키려고 시도하였다.

 

“아이 참, 당신두 그래 내라구 아프구 싶어서 앓겠슴까?”

 

“글쎄 우정(일부러)앓은 건 아이지만 너무 가난하여 나두 별로 방법이 없소. 후유….”

 

“있소?”

부부가 한참동안 티격태격 다툴 때 밖에서 갑자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양, 들어오우”

구정식이 문을 열어 주니 류동호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다.

 

“인젠 괜찮소?”

류동호는 로미옥을 보며 상냥한 어조로 인사를 했다.

 

“예, 예.”

로미옥은 허리를 굽신 거리며 연송 머리를 끄덕였다. 류동호가 비록 부드러운 어조로 인사를 했지만 로미옥의 귀에는 (이젠 몸이 괜찮아졌으면 어서 빚이나 갚아라)하는 것으로 들렸다. ‘빚진 놈이 죄를 지은 놈’이라고 구정식의 심정도 긴장해났다.

 

“후유…어지간(웬간)하면 당신의 것을 갚아줘야 하겠는데. 허허…”

 

구정식은 애수에 찬 눈길로 류동호를 보며 어설픈 웃음을 터뜨렸다.

“하라쏘, 하라쏘(좋다) 그런건 쑈이쓰(작은 뜻)란데”

류동호는 상급이 하급을 대하듯이 거만한 어조로 말하며 손사래를 홰홰 쳤다.

자, 로 녀사님의 출원을 축하하여 한 잔 하지”

류동호는 벙글써 웃으며 배포유한 어조로 말했다. 구정식은 불의의 습격을 당한 권투 선수마냥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 전화를 걸고 왔더라면…”

구정식은 두 손을 마주 부비며 기여 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전화사 무슨?”

류동호가 문을 여니 웬 남성이 묵직한 구럭을 건네는 것이였다. 류동호는 그 구럭을 받아들고 문을 닫은 다음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선포하였다.

 

“오늘은 기분이다, 류로반이 쏜다.”

“엉?!”

“예?!”

구정식과 로미옥은 닭알을 물었을 때처럼 입을 딱 벌렸다. 속담에 ‘불 난 집에 도적이 뛰어든다.’더니 이건 또 무엇인가? 설상가상, 빚에 빚을 더해 주는 것이 아닌가?

 

“왜 놀라기는? 돈이사 벌면 되는 게지 그까짓 쑈챈(작은 돈)을 가지고 그러오? 하하…”

류동호는 호탕하게 웃고 술 한 병과 쏘세지와 구운 통닭 한 마리를 구럭에서 꺼내어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걸 보는 로미옥의 입안에서 군침이 소르르 돌았다. (로류는 왜 저리도 통이 클까? 남자들마다 와누르 다른데…) 로미옥의 머리에 느닷없이 갈마드는 생각이였다. 그는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구운 통닭을 먹기 좋게 찢어서 접시에 소복이 담아 식탁에 올려놓았다.

 

“이렇게 술은 불세로(갑자기) 먹어야 제격이지. 자, 또 답새기기오.”

류동호는 너부죽한 얼굴에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허허… 그래두 주(술)동무가 좋구나.”

구정식은 류동호의 성의를 못 이기는척하며 식탁에 마주 앉았다.

 

3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구정식이와 로미옥은 시장에 채소를 사러 나갔다.

 

“오늘은 파김치를 담그고 파예를 폭 넣고 돼지고기를 좀 섞어서 밴새(물만두)를 해 먹읍시다.”

로미옥은 남편의 옆에 꼭 붙어 서서 걸으면서 자기의 계획을 말하였다.

 

“그럼 우리 주방장 동지 말씀대로 합시다.”

구정식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농조로 응대하였다.

“으응…와누르…”

로미옥은 남편의 허리를 살짝 꼬집었다.

 

“음, 큰 암모기 왔는가?”

구정식은 씨익 웃었다. 그들은 시장을 골목을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채소와 돼지고기를 사 들고 담소하며 귀로에 올랐다.

 

“어허, 비둘기 부부로구만, 허…허….”

집에 거의 이를 무렵에 류동호를 만났다.

 

“이렇게 만난 바에 우리 집에 들어가서 한 잔 하기오.”

구정식은 무등 반가워하며 류동호의 손을 잡았다.

 

“아이. 나 오늘 볼 일이 있어서. 후에 보기오.”

류동호는 손사래를 치며 총망히 걸어갔다.

 

“로류는 무슨 일이 저리두 많길래?”

로미옥은 걸음을 잠간 멈추고 그의 뒷모습에 눈길을 주었다.

 

“또 어디 가서 술놀이나 하겠지. 저 나그네는 먹고 노는 게 직업이란데. 상팔자.”

구정식의 말을 들어 보면 류동호를 부러워하는지 야유하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지금은 돈이 양반입니다.”

로미옥의 어조에는 부자에 대한 부러움이 짙게 흐르고 있었다.

 

“부재(부자) 불부오?(부럽소)”

구정식의 어조에는 가벼운 질투심이 묻어있었다.

 

“돈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슴까? 특히 여자들은 아글타글 살림살이를 하길래.”

로미옥은 고운 눈을 할기죽거렸다. 그들은 한담을 나누며 집에 이르렀다.

 

로미옥은 파를 깨끗이 씻어 송당송당 썰어서 파김치를 하여 놓고 교자를 빚으려고 파와 돼지고기를 함께 넣고 탕탕 보드랍게 썰었다. 파의 싱그러운 내음이 주방에 그윽하여 로미옥의 기분은 번화한 도시에 있다가 산속에 들어간 사람마냥 상쾌하여졌다. (내가 만약 자금이 있으면 농촌에 가서 큰 밭을 사서 파 농장을 꾸릴거야. 나도 몇 달 후에 외국에가 가서 일해야지. 한 뉘 어떻게 가난하게 살겠는가?) 로미옥의 머리에 느닷없이 갈마드는 생각이였다.

 

“있소?”

불현듯 귀에 익은 목소리가 느닷없이 들려 왔다.

 

“양, 들어오우.”

텔레비를 시청하던 구정식은 우쭐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류동호가 벙글써 웃으며 들어왔다.

 

“양, 날래(어서) 들어오우”

구정식은 류동호의 손을 잡으며 열정적으로 말했다.

 

“아까 들어오랄 때 올게지.”

류동호가 구들에 앉기 바쁘게 구정식은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구 파예 냄새야. 아이구…”

갑자기 류동호는 코를 싸쥐며 웩웩거렸다.

 

“빨리, 빨리…”

구정식은 주방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손을 홰홰 저었다. 로미옥은 치맛자락에 회오리바람을 달고 달아다니며 파를 냉장고에 넣고 주방을 말끔히 청소하고 향수를 구석구석에 쭉쭉 쏘았다. 아직도 파의 여미가 남아 있어 구정식은 창문과 출입문을 활짝 열고 파리를 쫓아 버리듯이 수건을 두 손에 쥐고 훠이 훠이 휘저었다.

 

“아취… 아취…”

갑자기 류동호가 재채기를 했다. 구정식은 매우 송구스러워하며 창문과 출입문을 꽁꽁 닫았다.

 

“로류, 참 미안합니다. 아까 들어오시지 않겠다고 하시니… 이렇게 오실 줄을 알았더라면…”

 

로미옥은 도적질을 하다가 당장에서 덜미를 잡힌 도적놈마냥 안절부절 못했다.

 

“음, 하라쏘, 하라쏘(좋다.)”

류동호는 손을 홰홰 저으며 거만한 어조로 말했다.

 

“파예가 무섭긴 무섭지? 하…하….”

구정식은 어색한 국면을 돌려세우려고 롱조로 말하고 어설프게 웃었다.

 

“양, 당신두 내 같으루 하면 이 집에서 못 살겠네. 허…허…”

류동호는 농조로 말하며 로미옥을 슬쩍 곁눈질해 보았다. 로미옥의 닭알형 얼굴에 홍조가 가녀리게 어리였다. 그녀는 주방에서 두부로 소절을 구웠고 닭알로 지짐을 지졌다. 이윽고 간소한 주안상이 차려졌다. 로미옥은 매우 민망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레 말했다.

“초라한 음식이지만 천천히 드세요.”

 

“음, 이러하면 옛날 같으문사 잔체(잔치)지 잔체 하…하…하…”

류동호는 대범하게 말하고 소탈하게 웃었다.

 

“허.,..허….허…”

구정식은 덩달아 웃는 것으로 이 궁색한 처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로미옥은 하얗고 보동보동한 손으로 술병을 잡고 술잔에 술을 따랐다.

 

“부인동지도 마셔야지”

류동호가 롱조로 말하며 술병을 들었다.

 

“아, 아이, 아이 전 위가 아파서….”

로미옥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아직두 병환에 계시지요?”

류동호는 술병을 내리워 놓더니 핸드폰을 꺼내어 상점에 전화를 걸어 콜라 두 병을 배달시켰다.

 

“어, 이거 올 때마다….”

구정식의 어조는 가녀리게 떨렸다.

“허….허…이런 건 쑈이쓰란데, 쑈이쓰(작은 뜻) 자, 하라쏘, 하라쏘”

 

류동호는 술잔을 들어 한 모금 쭈욱 했다.

“카…. 똥빼주가 틀렸네.”

류동호는 이마 살을 찌푸렸다.

 

“제가 가서 피주(맥주)를 사 오지요.”

로미옥은 갑삭 일어났다.

 

“앉소, 앉소 다리 긴 당신이 갔다 와야지”

류동호는 구정식을 보며 농조로 말했다.

 

“이 정신 봐라”

구정식은 대나무에 튕긴 듯이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 밖에 나갔다. 구정식의 발걸음 소리가 저벅저벅 멀리 사라지자 류동호는 너부죽한 얼굴에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로미옥의 보동보동한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로미옥은 전갈에게라도 쏘인 듯이 화들짝 놀랐다.

 

“어머나?! 왜 이러나요?”

 

“곱게 생겼구만. 허…..허…”

류동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로미옥의 풍만한 유방에 큼직한 손을 슬며시 얹었다.

 

“아잇 참, 우리 나그네 오면 어찜까?”

로미옥은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류동호는 미동도 없이 느긋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 말을 잘 들으면 그 돈을 아이 받겠소.”

 

“예?! 양만원이나?”

로미옥의 눈은 놀란 병아리마냥 올롱해졌고 가슴은 콩닥콩닥 뛰였다. (양만원이면 우리에게는 큰돈인데 한 번 눈을 질끈 감고 들어준다? 그러나 우리 나그내 알면 야단이겠는데)

 

“무얼 그리 우물쭈물하오? 그래, 계속 이렇게 가난뱅이로 살겠소? 자, 전화번호를 알려 주오.”

류동호는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전화번호를?”

로미옥은 조금 망설이다가 자기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음, 잘 고려해 보오. 후에 전화로 연락을 하기오.”

류동호는 로미옥의 전화번호를 자기의 스마트폰에 입력을 하고서 배포유한 음성으로 말했다.

 

“글쎄요, 호오….”

로미옥은 애매한 반응을 보이고 가녀린 한숨을 뿜었다. 이윽고 콜라 배달이 왔다가 돌아갔고 밖에서 저벅저벅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구정식이 맥주 한 구럭을 들고 집에 들어섰다.

 

“답답했지?”

구정식은 민망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 고운 아가씨가 옆에 있는데. 핫, 하…하…”

류동호는 롱조로 말하고 소탈하게 웃었다.

 

“아가씨 엄마, 호…호….호….”

로미옥은 농조로 맞장구를 치고 호들갑스럽게 웃었다.

 

“로아가씨, 하…하…”

구정식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 시원히 맥주나 답새기지”

구정식은 맥주를 컵에 부어 놓았다.

 

“어, 하라쏘, 하라쏘.”

류동호는 만면에 미소를 피워 올렸다.

 

4

 

“날래 들어오시오.”

 

어느 날, 로미옥이 홀로 집에 있을 때 류동호가 놀러왔다.

 

“잘 있었소?”

류동호는 벙글써 웃으며 로미옥의 보동보동한 손을 슬며시 잡았다. 로미옥은 방시레 미소를 지으며 류동호의 거쿨진 손에 자기의 부드러운 손을 고즈넉이 맡긴 채 고개를 끄덕이었다. 류동호는 로미옥을 보듬어 안았다.

 

“우리 나그네는 출장을 갔는데 모레 옵니다.”

로미옥은 속삭이듯이 말했다.

 

“음, 우리의 잔칫날이군, 허…허….”

류동호는 즐겁게 웃었다.

 

“잔칫날이라구요? 으응….”

로미옥은 고양이마냥 류동호의 펑퍼짐한 품에 안겨들며 아양을 떨었다.

 

“그럼. 나 어제 이혼수속을 했소.”

“예?! 참 빠릅니다. 우린 아직…”

로미옥의 우유부단한 말이었다.

 

“음, 쾌속 이혼 비법이 있소.”

류동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예?”

로미옥의 어조는 어정쩡했다.

“음, 내 말을 들어 보오. 그가 모레 온다지? 그럼 우리 모레 저녁까지 같이 있기오.”

류동호의 노련한 난봉군의 말투였다.

 

“엉?!”

로미옥은 화들짝 놀랐다.

 

“놀라기는? 그래, 쇠(소)게 물린 것처럼 이혼을 질질 끌겠소?”

류동호의 말은 위압적이었다.

 

“후유… 그럼, 그렇게 해봅시다.”

로미옥은 마음을 도슬러 먹고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럼 그렇지, 나의 깜찍한 각시….”

류동호는 로미옥을 건뜩 들어 침대에 눕혔다.

 

“으응….살랑 살랑…”

로미옥은 침대에 누운 채 허리를 비비 꼬며 응석을 부렸다.

류동호는 옷을 활활 벗어 버리고 침대에 닁큼 올라 로미옥을 껴안았다.

“으응….”

로미옥은 고양이마냥 류동호의 푸근한 품에 기어들었다.

 

“요거, 내 사랑아….”

그들은 선풍을 일으키며 서로 부둥켜안고 뒹굴었다. 찰흙 속에 억센 나무뿌리가 박힌 듯 칡 넌출이 칭칭 감긴 듯 그들은 삽시간에 무아지경, 희열의 도가니에 빠지고 말았다.

 

어느 때가 되었는지 그들은 물참봉이 된 몸으로 서로 밀착시키고 나란히 누운 채 정담을 나누었다.

 

구정식이 돌아오는 날이다. 대낮인데도 류동호와 로미옥은 일부러 속옷차림으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집에 들어선 구정식이 ‘참경’을 보더니 눈이 화등잔이 되었다.

“엉?! 이게 무슨 짓들이오?”

 

구정식은 펄쩍 뛰며 소리 질렀다.

“미안하오, 내 그 빚을 아이 받겠으니 우리 둘이 살게 놔두오.”

류동호는 장사를 할 때 흥정을 하듯이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돈이 있으면 다야? 너두 동미야?”

구정식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류동호의 귀뺨을 후려 쳤다. 류동호가 슬쩍 피하니 구정식은 그 서슬에 나가 넘어졌다. 구정식이 재차 일어나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류동호가 쥐여 비틀자 구정식은 또 쓰러졌다. 로미옥은 이미 작성한 이혼협의서를 침대우에 놓고 겉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고 류동호를 따라 나가버렸다.

 

“에익, 개 쌍년! 개새끼!”

구정식은 그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으나 힘이 역부족이었다. 이 시각 그의 손에 총이 있었더라면 한바탕 연발하여 그들의 더러운 몸뚱아리에 벌집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그는 장밤을 지새우며 고민의 수렁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사랑이 없는 결혼은 불이 없는 난로와 같은거야. 빈 몸뚱아리만 해선 무얼해)그는 로민옥과 이혼을 할 결심을 내리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로미옥은 입던 옷만 가지고 류동호의 호화로운 아파트에 건너갔다.

 

한달이 지나니 류동호의 열정은 거의 영도로 하강했다. 말투가 점점 거칠어졌고 집에 늦게 돌아올 때가 잦아졌다. 그는 남편에게 잘 보이려고 그렇게 좋아하던 파, 달래, 양파를 끊으려고까지 결심을 내렸다.

 

어느 날 저녁, 류동호는 약속이 있어 친구와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으니 아내더러 혼자 저녁밥을 먹으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로미옥은 좋은 기회라고 속으로 쾌자를 부르며 시장에 가서 파 한 묶음을 사들고 들어왔다. 한 달 넘어 못 먹었던 파 맛 군을 뚝 떼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가 파를 씻어 잘 다듬어서 식탁 우에 놓고 다른 반찬도 놓고 밥을 한창 먹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류동호가 들어서는 것이었다.

 

“어마나? 아이 온다던게…”

로미옥은 한입 물었던 파를 대충 씹어 꿀꺽 삼켰다.

 

“양, 약속이 갑자기 변해서…”

식탁을 힐끗 보던 류동호의 낯빛은 대번에 비 내리기전 하늘이 되고 말았다.

 

“파예를 떼겠다던 게?”

류동호는 아내를 찔 흘겨보았다.

 

“예, 예 너무 메께바서…(먹고 싶어서)”

로미옥의 얼굴은 붉어졌다.

 

“무엇이 이 잘난 걸 걷어 채우고 어떻게 나와 섹스를 하나?”

류동호는 꽥 소리 지르더니 밥상을 훌 뒤집어 버렸다. 그릇들이 왱강뎅강 부딪치며 깨여졌다.

아이 당신 정신 있슴까?”

로미옥은 깜짝 놀랐다.

 

“무엇이 어찌고 어째?”

류동호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아내의 귀뺨을 후려 쳤다.

 

“앗. 흐윽… 흐윽. 우린 이혼합시다. 이혼을…”

로미옥은 앙칼진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안 돼. 넌 죽어도 내 귀신이야. 집에서 조용히 밥이나 해. 네 건 인젠 새났어 (질려)”

류동호는 모욕적인 언사를 마구 던졌다..

 

“흑…흑….”

로미옥은 침대에 엎드려 구슬프게 흐느꼈다. 류동호는 한참동안 서서 서성거리다가 구럭에서 새여 나가는 게마냥 슬그머니 밖에 나가버렸다.

 

한참 울고 난 로미옥은 세수를 대충 하고 쏘파에 앉아 있었다. 창문을 여니 밤바람이 서늘하게 불어 들어왔다. 불현듯 본남편과 함께 달래를 캐러 들판으로 갔던 정경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봄바람이 시원히 불어오는 전야에서 구정식이 삽으로 달래를 푹 파내면 로미옥은 달래에 묻은 흙을 톡톡 털어서 광주리에 담았다. 구수한 흙냄새와 향긋한 달래 내음에 노래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봄이 왔네/ 봄이 왔네/ 숫처녀의 가슴에도/ 봄은 찾아왔다고/ 아장 아장….) 점심때가 되면 둘이서 샘물가에 앉아 달래를 고추장에 푹 찍어 맛갈스레 밥을 먹던 정경이 아름다운 화폭마냥 눈앞에 펼쳐졌다. 달래를 캐서 집에 돌아 온 날이면 무를 송당송당 썰어 달래를 섞어 물김치를 담가 먹군하였다. 들판에서 돌아다녀 피곤한데다 맛 좋은 달래 김치에 밥을 먹는 그 맛은 천하 별미였다. 실로 싸구려 ‘고급 생활 개선’이었다. 그의 서글서글한 눈에서 비 내리 듯이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후유….내가 눈이 멀었어. 이혼을 괜히 했구나….”

로미옥은 후회막급이었다.

 

며칠 후의 어느 날, 로미옥은 채소를 사려고 시장에 나갔다. 그가 채소를 한 구럭 사들고 나오는데 앞에서 걸어가는 남성의 뒷모습이 눈에 익어 보였다. 유심히 보니 자기의 본남편 구정식이였다. 그 옆에 웬 여인이 파 한 묶음을 들고 구정식의 곁에 꼭 붙어 걸어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한참 동안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 로미옥의 커다란 눈에서 처마 끝의 고드름이 녹아떨어질 때처럼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허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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