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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11/08  정명선
우 산

계절이 바뀔 때면 언제나 비가 며칠 내린다. 가을이 깊어가는 오늘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보슬보슬 내리는 가을비는 정오 무렵에도 멈추지 않았다.

 

손자녀석이 하교 할 때라 나는 부랴부랴 우산을 쓰고 일산초등하교로 달려갔다. 벌써 교문밖에는 엄마들이 우산을 쓰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문 밖을 나선 애들은 데리러 온 엄마를 찾느라 바쁘다.

 

이 광경을 보노라니 옛 추억이 떠오른다.

 

나의 초등학교는 우리 동네에서 약 5리 쯤 떨어져 있는데 어린걸음으로 30분 조금 안 걸린다. 소수레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따라 검정 고무신을 싣고 풀잎을 밟고 아침이슬을 마시며 걷고 달리다 보면 어깨에 둘러멘 책보자기가 풀어져 책, 연필 등 길거리에 떨어져 아까운 연필심이 부러지군 하였다.

 

우리 동네 애들 거의 우산 없었다. 우리 집은 대나무로 된 파란 비닐우산인데 그것도 하나 뿐이었다. 비가 오면 나는 비료포대로 비옷을 만들어서 입고 다녔다. 어머님께서 바늘에 굵은 실을 꿰어 비료포대를 붙어서 만든 우비를 조심스레 쓰고 가더라도 학교까지 가다보면 어김없이 옷이 젖고 만다.

 

이른 봄이나 늦은 가을 아침에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학교 가기가 싫어 짜증을 내고 원망을 했다. 학교 갈 때는 날씨가 흐리더라도 아무런 준비 없이 학교에 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학교가 끝날 무렵 어김없이 비가 주룩주룩 내리여 집에 갈 일이 거정 되었는데 언제 오셨는지 교문밖에 우산을 들고 계시는 어머니를 발견 할 때면 그 기쁨이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시냇물이 불어 징검다리를 건널 수 없을 때에 어머니 등에 업혀서 내가를 건너고 질퍽질퍽 들길을 따라 어머니와 우산에 매달러 따스한 품 안에 있는 것 같은 모정을 느끼며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 갈 때 비록 비바람 몰아치는 태풍에도 막아주는 튼튼한 우산이 아닌 작은 비닐우산이지만 하늘처럼 크게 느껴졌고 나의 몸도 마음도 젖지 않게 해주는 어머님 우산 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더 많이 우산을 씌워 주느라 온몸에 젖었고 나는 행복감에 가슴에 젖었다.

 

가을비는 쓸모없는 비가 아니라 무지개를 쫒던 어린 날의 꿈과 젊의 날의 만용을 돌아보게 하는 사색의 비다. 비닐우산 보다 더 좋고 큰 비단 우산을 들고 어린 손자를 앞세우고 행복감에 젖어드는 시간인 것 같다. 육십 줄을 서서 오늘도 어머니 사랑을 돌아보게 할 수 있도록 50년 전 문을 열어주는 고마운 가을비다.

 

“할아버지.”

 

나를 본 손자녀석이 큰소리 지른다.

 

나는 손자의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손자와 얘기꽃을 피우며 걸었다.

/신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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