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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06/10  한민족신문
손녀의 계발식 대화에 말려들었다

겨울의 어느 하루, 나는 다섯 살 손녀를 데리고 과일상점에 갔다. 겨울이지만 진열대에는 10여 가지 과일들이 듬뿍듬뿍 담겨 있었다.

 

어느 과일을 살까 하고 살펴보는데 손녀는 불쑥 뚱딴지같은 물음을 던졌다.

 

"할아버지 제가 무슨 띤가요?"

 

"엉? 네가 2004년생이니 원숭이띠지."

 

"원숭이는 어떤 과일을 제일 좋아하나요?"

 

"엉? 복숭아를 제일 좋아하지."

 

"그럼 저는 어느 과일을 제일 좋아할까요?"

 

"엉? 복숭아를 제일 좋아하지."

 

나는 딴 과일을 더 살펴보지 않고 복숭아에 눈길을 돌렸다. 주먹보다 좀 더 큰 복숭아는 한 개에 50원이다.

 

가을에 싸던 복숭아는 엄청나게 비싸졌다. 그래도 손녀가 보고 있는지라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들고 간 50원권 두 장을 꺼내 복숭아 구개를 사 서 비닐주머니에 담아 손녀한테 주었다.

 

그걸 받아든 손녀는 산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서 집으로 갔다.

 

손녀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책을 보는 나를 유심히 보더니 불쑥 물었다.

 

"할아버지의 눈이 왜 그렇게 작나요?"

 

"엉? 왜 작냐구? 바람 부는 날에 밖에 나가면 큰 눈에 먼지가 잘 들어가니 작은 눈에 잘 들어가니?"

 

"큰 눈에."

 

"그럼 큰 눈이 좋니 작은 눈이 좋니?"

 

그러자 손녀는 머리를 갸우뚱 거리며 자기 방으로 가더니 사진 한 장을 들고 와 나한테 넘겼다. 나와 아내가 손녀를 안고 찍은 사진이었다.

 

"할아버지의 작은 눈이 보기 좋나요? 할머니의 큰 눈이 보기 좋나요?"

 

"할머니의 큰 눈이 보기 좋아."

 

나의 대답에 손녀는 까르르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얼마 후에 내가 집안에서 오가는데 손녀가 또 불쑥 물었다.

 

"아버지와 삼촌은 키가 큰데 할아버지의 키는 왜 작나요?"

 

"교실에서 공부할 때 지진이 발생하면 어디로 피신하니?"

 

"책상 밑으로 피신해요."

 

"키 큰 사람이 피신하기 쉽니? 키 작은 사람이 피신하기 쉽니?"

 

"키 작은 사람이 쉬워요?"

 

"그럼 큰 키가 좋니 작은 키가 좋니?"

 

그러자 손녀는 또 머리를 갸우뚱 거리더니 벽에 걸려있는 자기의 모자를 벗겨 달란다.

 

내가 벗기려면 걸상이 있어야 한다. 내가 걸상을 찾자 손녀는 또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지와 삼촌은 걸상 없이 벗기던데요. 그런데도 작은 키가 좋아요? "

 

내가 큰 키가 좋다고 하자 손녀는 또 까르르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그 후 내가 한국에 와서 늘 손녀한테 전화를 걸어 키가 얼마나 컸는가고 물었다. 자기 엄마 키를 초과했단다.

 

그러니 160Cm 넘는단다. 별로 큰 키가 아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 한국에 온 손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손녀를 쳐다보면서 말해야 했다. 열한 살에 키가 1미터 68이다.

 

"할아버지 저의 큰 키가 좋나요? 작은 키가 좋나요?"

 

"엉 너의 큰 키가 좋다."

 

내가 허허 흐뭇한 웃음을 짓자 손녀의 얼굴에는 함박꽃이 피어올랐다.

 

얼마 전에 손녀한테 전화를 걸어 키가 더 컸는가고 물으니 키가 1미터 72란다.

 

올해 열일곱 살이니 더 자랄 수도 있다. 우리 가문 여자들 중 키가 제일 크다. 웃음이 절로 나는 걸 어쩔 수 없다.

/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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