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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09/04  이화실
새로 온 베트남 이웃

올 3월의 어느 날, 고요하던 이웃이 갑자기 왁자그르르 시끄러워졌다. “새 세입자가 들어왔나?” 

 

친정엄마같던 이웃집 이모님이 이사를 간 후 몇 달간 비어있던 집이라 조만간 새 세입자가 들어 올 거란 예감을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새 이웃이 생긴 것이다. 세종대학교에 다니는 1남 3여 베트남 유학생들이었다. 

 

20대 초반의 학생들이라 생기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까르르', ‘깔깔'~ 날파람나게 웃고 떠드는 그들은 조용하던 이전의 이웃과는 극과 극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12시가 지나 자리에 누웠는데 이웃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에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휴~우, 오늘은 또 언제쯤 조용해지려나?”  잠귀가 밝은 나는 새 이웃이 온 후부터 밤12시 전에는 거의 자 본 적이 없었다. 이웃 학생들은 가끔 한밤중에 무슨 열렬한 토론을 벌리는 것 같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보았다. 1시가 넘었는데도 강한 톤의 말소리가 짜증나게 귀를 때렸다. 밤 12시가 지나면 자는 시간이니까 떠들면 안 된다고 한국말이 서툰 그들에게 손짓  발짓 해가면서 전에도 타일렀건만~  

 

 “확 신고해 버릴까?” 나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가 다시 옷을 주어 입고 이웃으로 건너갔다. 

 

노크하고 들여다 보니 자그마한 원탁위에 둥그런 케익 하나가 있고 과일 세 접시가 놓여 있었는데 대여섯명의 학생들이 베트남어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 누구 생일인가봐. 생일 축하 해.” 나는 먼저 생일 축하를 하고 나서 지금 몇시인가고 시계를 가리켰다. “죄송해요. 이제 말 안 할게요.” 하이얜이라는 여자애가 짧은 한국말로 미안해 하며 말했다. 

 

그 후로 한동안 잠잠했다. 그러던 어느날 또 왁작대기 시작했다. 오늘도 이대로 가다간 새벽까지 떠들 것 같다는 직감에 11시가 지나자 이웃으로 건너갔다. 큰 산낙지 다섯마리에 전복 여러개를 손질하고 있었는데 산낙지 손질이 안 되어  야단법석이고 있었던 것이다. 낙지손질은 밀가루로 해야 한다고 알려 줬더니 밀가루가 없단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밀가루 한 공기 담아가지고 건너가서 낙지 손질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당연히 밤중에는 조용해야 한다는 도리도 일깨워 주면서. 

 

그후부터 이웃은 확실히 조용해 졌다. 어쩌다 한밤중에 큰소리가 한번씩 났다가도 금방 사그러 들었다. 

 

6월도 막가는 어느날부터 연며칠 옆집은 너무나 고요했다. 오픈형 복도 안쪽을 꽉 채운, 그들이 스치로폼 상자에다 심어 놓은 채소도 말라 시들고 있었다. 보다못해 나는 양푼에 물을 담아가지고 컵으로 떠서 바짝 말라가는 채소에 듬뿍듬뿍 주었다. 해갈 된 호박, 강낭콩, 부추, 그리고 이름 모를  채소들이 기지개를 쭉쭉 펴며 하루가 다르게 푸르싱싱해졌다. 그 중 호박 넝쿨과 강낭콩 넝쿨은 너무 빨리 자라서 다른 채소를 심어 놓은 상자위로 무작정 뻗어가고 있었다. “지주를 세워줘야는데~~” 하지만 도시 한복판에서 나무 꼬챙이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침 어린이대공원에 운동 갔는데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나무 곁가지를 잘나 내고 있었다. 나는 그중 큰 걸로 두개 얻어다가 벽에 기대 세우고 밑부분은 호박과 줄당콩 상자에 꽂아서 넝쿨이 나무가지 타고 올라 가게끔 강아지풀로 살짝 매어 놓았다. 

 

근데 아쉽게도 강낭콩은 영문 모르게 죽어 버리고 남은 호박 넝쿨에는 탐스러운 노란 꽃들이 주렁지게 피어나 아침 햇살에 환하게 빛났다. 

 

두주일 후, 이웃 학생들이 돌아왔다. 외지에 실습갔던 거란다. 그들은 자기들이 없는 사이 무럭무럭 자란 채소와 지지대를 따라 키높이 자란 호박넝쿨을 보고 감격해마지 않았다.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몹시 뿌듯해 났다. “그래, 그들에게 엄마 같은 존재가 돼 주자.” 나는 이사 간 친정엄마같던 이웃의 이모님을 떠올렸다. 내가 출근 가면 널어 놓은 빨래를 챙겨주고 말리는 나물도 소쿠리 가져다 널어 주고---”. “나도 그땐 저렇게 감격해 했었지.”  

 

떠들고 팔딱거려 웬수같던 이웃이 이제는 내 자식같다고 생각하자 나의 정서도 차분해지고 그들의 풋풋하고 싱싱한 청춘이 오히려 나에게 젊음과 활력을 주는 것 같았다. 

 

한번은 세종대학교 앞을 지나는데 이색적인 복장을 곱게 차려 입은 여학생들이 사진을 찍느라 한창이었다. “참 예쁘다.” 생각하며 지나가는데 “안녕하세요!”라는 소리와 함께 다가 오는 걸 보니 그중 한명이 바로 옆집의 여학생이었다. 베트남 전통복장을 차려 입은 그들은 황홀하게 예뻤다. 내가 예쁘다고하자 같이 사진  찍자고 했다. 나는 흔쾌히 다가가 베트남 여학생들속에 묻혀 “찰칵" 하고 영원한 기념을 남겼다.  

 

이웃사촌이라고 나는 항상 마음 쓰이는 베트남 이웃과 더불어 살며 한국생활을 즐기고 있다. 

 

/이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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