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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02/03  전옥선
일본에서 오신 소설가

요즈음 몇 편의 글들이 발표되고 여기저기서 칭찬도 많이 받으면서 어줍잖게 작가의 길이 내 길이 아닐까 하고 가만히 나만의 꿈을 꿔보았다. 하지만 식당경영이란 현실적인 문제에서 주춤거려진다. 가게에 나오면 아카데미 공부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공부방에 나가면 가게 일이 신경 쓰이면서 이러다가는 내가 식당을 경영하는 경영인으로도, 글을 쓰는 작가로도 아닌 어정쩡한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은근히 짜증나기도 한다.

 

이럴 때쯤 어느 날, 선생님의 목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반갑게 들려온다. 문학에 어섯눈을 뜬 나한테 아낌없는 고무와 격려를 해주는 선생님이시다. 존경하는 석화선생님, 선생님이 우리 식당에 찾아 오실 때면 언제나 기분이 붕~ 뜬다. 이번에는 연길에 오신 일본 소설가 한분을 모시고 연변전통의 랭면 맛을 보여드리러 오시겠단다. 일본에서 오신 소설가를 모시고 오신다니 무척 반가웠다.

 

이윽하여 선생님과 함께 작달만한 키에 부드러운 눈빛을 가진 로인 한분이 우리 식당에 들어오셨다. 흰머리와 흰수염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깨끗한 피부에 얼기설기 간 주름살은 흘러간 세월을 비추듯 고스란히 패여있다. 처음 오는 곳에 대한 신비감과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친절함을 얼굴 전체에 그대로 드러내며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신다. 간단한 수인사와 서로의 소개가 오가는 내내 그 일본 손님이 조선말을 류창하게 하시기에 일본에 사시는 한국인인가 생각했다. 자리를 잡고 직접 나의 느낌을 말씀드렸더니 아니라면서 본인의 명함을 건네주신다. 주소와 전화번호가 한줄씩 그리고“爱沢 革(아이자와 가크)”라는 이름자만 간단히 적혀있는 깔끔한 명함이다. 어떻게 조선말을 이렇게 잘하시냐고 의아해하는 나한테 아이자와 카크선생님은 본인이 조선말을 배우게 된 계기를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선생님은 조선말과의 첫 인연은 젊었을 때 식민지시대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인을 선생님으로 모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인연으로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형제 두분을 알게 되였고 이 한국인 형제 두분과 친구가 되여 우정의 소중함을 깊이 쌓아갈 때 그 두 친구가 서울대학에 붙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였단다. 그런데 열혈청년의 꿈을 안고 고국으로 온 이 두 친구가 당시 전제정권의 모략으로 일본간첩이란 루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될 줄 어찌 알았으랴! 늦게야 이 소식을 알게 된 선생님은 친구들의 석방을 위해 바다를 건너 수차례 한국에 다녀갔으며 그때부터 한국에 대해 더 깊은 리해를 가지게 되셨단다.

 

그리고 46세 곤혹의 중년나이에 선생님은 안해의 반대도 무릅쓰고 결연히 한국 연세대학의 유학길에 오르셨단다. 연세대교정에서 연변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 윤동주를 알게 되여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게 되였고 자연스럽게 이것이 또 다른 새로운 인연이 되였단다. 그리고 이 인연으로 연변에도 여러번 다녀오셨고 오실 때마다 윤동주 생가를 돌아보시면서 시인의 발자취를 더듬으셨단다.

 

 

아이자와 가크 선생님은 이어 김학철 소설가, 윤동주 시인 그리고 선친이 모두 1910년대에 출생한 한 시대 사람으로서 격정의 그 시대, 암흑의 그 시대, 변혁의 그 시대를 걸어온 그들 선인들의 발자취를 력사적 안목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더구나 전쟁을 몸소 겪은 아버지가 갈등과 고뇌 속에서 일찍 세상을 떠나실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이번 중국행에서 꼭 거쳐야 할 곳들을 차근차근 이야기 하신다. 

 

그 가운데는 선친께서 전쟁기간 일본군에 끌려 중국에서 전투를 치렀던 산서성 석가장 근처 지역을 꼭 돌아보고 싶단다. 인생 자체가 한편의 소설이라며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인생을 살아오신 자신의 지난날을 간략하게 이야기하시는 일본 소설가 선생님이 참 존경스러웠다. 조선말을 길게 하시려니 좀 힘드신지 가담가담 일본말을 하시는데 석화선생님이 옆에서 우리말로 자상하게 번역까지 해주셨다.

 

아이자와 가크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른 내용도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46세에 결연히 새로운 공부의 길로 나가셨다는 게 특별히 귀에 들어왔다. 46세에 배움에 대한 갈망을 삭힐 수 없어 이런 결정을 하시다니 나는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그것은 선생님의 당시 나이가 지금 내 나이이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주메뉴로 연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자부심을 갖고 정성들여 말아드린 랭면을 정중히 대접했더니 아이자와 가크 선생님은 한 그릇 뚝딱하시고는 정말 맛있다면서 엄지를 척 내시며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내가 만든 랭면이 일본에서 오신 소설가선생님의 입맛까지 사로잡다니! 기분이 또 한번 붕~ 뜬다 

 

식당 문 앞에서 일본에서 오신 소설가, 아이자와 가크선생님이랑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고 차로 호텔까지 두 선생님을 바래다드리고 돌아오면서 문뜩 이런 생각이 든다. 소설을 쓴답시고 골방에 틀어박혀 있기보다 이렇게 소설 같은 인생을 사느라면 그 어느 날엔가 멋진 소설이 씌여지지 않을가? 식당을 경영하면서 이렇게 멋있는 분들이 오고가고 하면서 나한테 많은 가르침을 준다. 천지대교를 넘어오면서 해빛이 화사하게 앞길을 비추고 내 얼굴에 간만에 웃음꽃이 활짝 핀다.

/전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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