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mzxinwen.com/news/28228
발행일: 2026/01/27  전옥선
로총각들 장가 가기

제1회 “청년생활컵” 대상수상작품

내가 어렸을때니 80년대 초가 된다. 50여호가 되는 자그마한 시골인 우리 마을은 태반이 초가집이고 잘살지는 못해도 좋은 일이 있으면 너나없이 나와서 경축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집집이 함께 슬픔을 나누는 정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다.

 

어린 나마저 누구집 숟가락 몇개라는 것까지 손금보듯 하니 비밀이 없는 우리 동네는 좋은일 나쁜일 비일비재이지만 그래도 서로를 삼촌, 형님, 누나 하고 호칭을 나이에 따라 다정하게 부르면서 모두 화목하게 살았다.

 

그때 우리 마을에 로총각 셋이 있는데 부녀대장인 나의 엄마는 이 삼촌들때문에 여간 로심초소하지 않았다. 이 세 삼촌의 공통한점은 여러 형제중 맏이라는것이다. 형제가 셋 넷이 되고 늙으신 부모님 모셔야 되는데 어느 처녀가 호박 쓰고 돼지굴 들어 오겠는가 하면서 모두 거절한다. 넉넉한 살림도 아니니 일단 시집 오면 고생문이 터질게 뻔히 보인다.

 

그러한 조건에도 어느 삼촌이 여자쪽에서 맏이라도 만나보고 결정하겠다고 하면 선보러 가는 삼촌을 어른은 물론 우리 아이들까지 제발 성사되였으면 하고 간절히 빌었다. 그런데 번번히 퇴빵을 맞아서 30살을 넘어가니 명실공히 우리 마을에서 로총각이 되였다. 엄마가 하는 말이 세 삼촌이 장가가지 못하는 원인이 또 제각각이여서 가만히 옆에서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고 하였다.

 

 

홍소병 별명을 가지고 있는 삼촌은 말그대로 키가 작아서 문제였다. 얼굴도 곱살하게 생기고 말재주도 좋아서 녀자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싶다가도 일단 일어서면 녀자들이 입을 하 벌리다 돌아서 버린단다. 오죽 키가 작았으면 홍소병이라 했겠는가!

 

청송삼춘은 이름 그대로 푸르른 소나무처럼 체격이 좋고 인물도 그만하면 농촌사람들속에서 미남이다. 사원대회를 할때면 어찌나 발언을 잘하는지 목소리마저 웅굴져서 모두 삼촌의 얘기에 귀기울이다가 회의가 끝날때가 많다. 그런데 일단 녀자만 만나면 벙어리가 되여 끙끙거리며 한두마디도 못한단다. 그러니 어느 녀자가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남자한테 시집 오겠는가!

 

인물체격도 그만하면 괜찮고 집안 경제실력도 우리 마을에서 알아주는 룡길삼촌은 손재주도 좋아서 일단 목재만 있으면 찬장이랑 옷장이랑 척척 만들어내는 목수이다. 그런데 손재주를 믿고 그러는지 녀자들을 만나면 항상 코방귀를 끼면서 더러워 보인다니 말이 많아 보인다니 하고 제딴에서 자꾸 퇴빵을 놓다보니 어느새 로총각행렬에 들어섰다.

 

삼춘들이 그럭저럭 나이를 먹어가는건 그렇다치고 집집마다 동생들이 안달이 났다. 그때는 꼭 순서대로 결혼해야 한다는것이 법 아닌 법이 되다보니 온 마을 사람들이 일떠나서 삼춘들을 결혼시키느라 사처에 수소문했다. 헌신짝도 짝이 있다고 삼춘들이 결혼 못할 리유가 없었다.

 

끝내 희소식이 날아왔다. 홍소병삼촌이 결혼하게 되였다. 우리 아이들도 신나서 펄쩍펄쩍 뛰여다녔고 로인 젊은이 할것없이 얼굴에 만년의 웃음을 담고 새각시를 마중하였다. 홍소병삼촌은 입이 귀에 걸려 발뒤축이 땅에 닿을새없이 뛰여다녔다. 새각시를 보는 순간 우린 깜짝 놀랐다. 삼촌보다 한뽑은 키가 더 큰것 같다.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기고 어디보나 삼촌보다 나아 보이는데 어떻게 홍소병삼촌을 선택했는지 머리가 갸우뚱해진다. 삼촌보다 나이도 많이 어려서 삼촌이 완전 땡 잡은거다. 온 마을 총각들이 홍소병삼촌을 부러워 한다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와 친해진 새각시가 후에 홍소병삼촌을 선택하게 된 경과를 말해서 모두 한바탕 웃었다.

 

석국이라는 골안에서 태여나고 자라난 새각시는 엄마말이면 다 옳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산골이여서 외계와 별로 접촉이 없고 시집 갈 나이가 되니 여기저기 혼사말이 들어오던차 제일 처음 만난게 홍소병삼촌이다. 그날 엄마와 함께 선보러 가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엄마만 믿겠다 생각했다. 선보는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찰라 마침 정전이 되였다. 항상 있는 일이라 개의치 않고 집안에 들어서는데 그 집에서 등잔불을 켰다. 어둑스레한 등잔불아래에서 정면으로 똑바로 얼굴을 쳐다보아도 누가 뭐라하지 않겠는데 공연히 부끄러워서 힐끔힐끔 곁눈질해보니 참 유순하고 다정스러워 보이더란다. 목소리마저 부드러워 말하는 모습에 은근에 끌려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앉아 있었다.

 

여자엄마도 마음에 들어서 그 자리에서 다음에 만날걸 기약하고 일어났다. 그런데 그만 허둥대며 일어나다보니 등잔불이 어디에 맞혔는지 그만 불이 꺼졌다. 새까만데서 불현듯 따뜻한 남자의 손이 여자의 손을 덥석 잡는다. 잘 가라 인사를 하는데 심장이 튀여나올듯 방망이질했다.난생처음 남자의 손을 잡은걸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려 한참을 가슴을 붙들고 마음을 진정시켜보려고 애쓸만큼 순진한 산골처녀는 다시 만날날을 은근히 기다렸다. 중매서는 아주머니가 산골처녀 마음을 알겠다는듯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대답한걸로 그 시골총각한테 말하겠소. 그래야 다시 보러 오지!”

 

처녀가 동의했다는 말에 홍소병삼촌은 대바람에 달려갔다. 처녀는 깜짝 놀랐다. 처음 만남에 이렇게 키가 작지 않았는데! 아~그러고보니 어둑스레한 등불아래 한번도 일어선적 없지 않은가! 엄마한테 키가 자기보다 더 작아서 싫다고 했더니 부부가 살다보면 키는 전혀 쓸데없는것이고 그리고 이미 대답했는데 어떻게 싫다하냐며 엄마가 안된다고 했다. 산골처녀는 이미 대답하면 안되는줄 알고 서운한대로 홍소병삼촌한테 시집오기로 결정했다. 시집을 오고보니 엄마말을 들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부끄러워하면서도 행복하게 웃는다. 아들딸 낳고 우리 마을에서 제일 먼저 벽돌집 지은 집이 홍소병삼촌이다.

 

홍소병삼촌이 휜칠하고 어여쁜 미인색시를 데려오자 로총각들이 신심이 생겼는지 청송삼촌도 얼마 되지 않아 결혼식을 하게 되였다. 시골로총각이 글쎄 연길시교 녀자를 데려오다니! 마을에서 웬 경사냐고 모두 의아해했는데 물론 우리 엄마가 나서서 모두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언니집에 얹혀 살려니 여러가지로 눈치가 보여 합당한 자리만 있으면 시집가야지 할때 청송삼촌이 나타났다. 말이 무겁고 비록 나이 차이는 좀 나지만 믿음직스러워 보여서 제꺽 대답했단다. 정말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아니고는 믿을수가 없다. 청송삼촌이 얼마나 애처가였는지 온 마을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룡길삼촌이 엉뎅이에 불이 날 정도로 사처에 선보러 다녔다. 자기보다 조건이 못한 그들이 어린 색시와 알콩달콩 사는걸 보면 시샘이 나서 견딜수 없었을것이다. 얼마후 결혼한다는 녀자를 보니 키가 크고 얼굴이 둥그스름하고 여성스럽기보다 억세고 강한 인상을 주는 여자였다. 눈썹우에 까만 짐이 있는데 얼굴을 쳐다보면 너무 유표하게 눈에 띄워서 우리 마을에서 제일 매깝기로 소문난 룡길삼촌이 급하긴 되게 급했나보다 하고 모두 수군거렸다. 새각시가 얼마나 손재주가 좋은지 마을에서 뜨개솜씨를 따를 사람이 없었으니 두 재간둥이가 만나서 정말 잘 살았다.

 

우리 엄마는 로총각삼촌들이 결혼한게 자기 공로나 되는것처럼 항상 자랑하며 다녔다. 아주머니들이 애기를 낳을때도 엄마가 산파와 같이 새벽이고 한밤중이고 가리지 않고 달아다녔으니 우리 엄마는 정말 부녀대장으로서 임무를 잘 완성한셈이다.

 

엄마의 유전자를 제일 많이 이어받은 나는 이런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요즘 장가가지 않은 조카들을 보면서 그때 나의 엄마처럼 로심초소한다. 언니네 아들, 오빠네 아들, 친구조카 모두 30살이 훌쩍 넘었다. 여러번 중매를 섰는데 여태 한사람도 성사되지 못했다. 이제는 만나 보는것조차 제발제발해도 이리저리 핑계를 대면서 쉽게 만나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물체격도 좋고 경제력도 있고 직업도 좋은데 장가갈 생각을 안한다.

 

물어보면 안하는건 아니란다. 맞는 사람 만나지 못해서란다. 맞는 사람을 만나기보다 만나서 맞추며 살면 되겠는데 이건 어디까지 웃세대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그들은 그들대로 여행하고 친구 만나고 술마이고 별 근심없이 살아간다. 부모들이 안달이 나서 자꾸 재촉하는데 먹혀들지 않는다. 잘난 내 조카들이 옛날 우리 마을 삼촌들처럼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만나길 간절히 바란다.

 

나는 조카들이 귀찮아해도 하나하나 장가갈때까지 우리 엄마가 했던것처럼 여기저기 수소문하면서 중매쟁이 역할을 충실히 할가 한다. 나같은 싱거운 사람을 걱정도감이라고 부른다는데 그때 농촌마을이라면 나도 엄마처럼 부녀대장은 하겠는데 말이다.

/전옥선



기사 출력  기사 메일전송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포토뉴스

사진작품

미술작품

한중방송 라디오방송
사진은 진실만 말한다
방습거울

 가정여성 

음악감상
한민족여행사

 동포사회 

TV광고

영상편지

한민족신문 韩民族新闻
 
  l   회사소개   l   광고안내   l   구독신청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