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아버지께서는 넙적한 얼굴에 우람진 체구를 지닌 분이시다. 내가 여덟살이 되던 해에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부모와 자식간의 인연으로 삼세대가 우리와 함께 생활하셨다.
여덟식구가 한집에서 살아야 하는 어려운 생활난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한집에서 살면서 흥성흥성한 집안에서 때로는 힘들었겠지만 때로는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면서 끈끈한 사랑과 혈육의 정으로 살아왔다.
철부지자식인 우리들은 나이가 어리여 여간 말썽꾸러기들이 아니였다.
매일같이 할아버지의 두 어깨에 매달리며 막내녀동생은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서 놀군했는데 그럴적마다 할아버지께서는 우리들한테 신문을 읽어주셨다.
시력이 노화되여 안질이 어두운데다 돋보기를 걸고 글을 읽는 폼이 어찌나 우스운지 우리는 배를 끌어안고 웃으며 할아버지의 글을 읽고 계시는 소리를 감상하며
"할아버지 노래를 부르시나요?"
하며 물을 때가 많았다.
그럴때마다 할아버지는 자장가를 불러주는 어머님이나 할머니처럼 웃몸까지 흔들며 열심히 신문만 내리 읽으신다.
어린 나이에 노래도 아니고 글을 읽는 랑송소리도 아닌 곡을 붙여서 읽어주시는 글소리가 얼마나 부드럽고 감미로운지 우리는 매일이다싶이 할아버지의 어깨에 매달려 연변일보를 읽는 소리를 열심히 전념해 들었다.
아마 지금도 계신다면 역시나 또 할아버지와 익살을 부리며 노래를 부르시는가 하며 롱조로 말할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우리 후대들한테 우리 말의 정체성을 전수하기 위하여 신문읽기로 우리 손군들을 유혹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어른들한테서 우리 글의 중요성과 우리 민족의 풍속례의들을 보아가면서 배웠었다.
웃어른들을 공경하고 아래사람을 사랑해주며 식탁문화에서 지켜야 할 례의들을 어른들한테서 전수받으며 살아오니 일상생활은 아주 편했던 것이다.
내가 학교에 가던 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오빠가 다니는 한족학교로 갔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는 아버지더러 조선글을 배워야 한다며 조선족학교에다 붙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웃어른의 말이라면 늘 명령처럼 순응하여 온 아버지께서는 한족학교에 붙이지 않고 조선족학교로 손목잡고 데려다 주었던것이다.
70년대 중반에 학교에 붙은 나는 소학교1학년에 붙은 날부터 벽신문(대자보)을 써서 바치라는 임무가 철썩같이 떨어졌는데 눈앞이 캄캄해났다.
낫놓고 기윽자도 모르는 애들에게 벽신문이라니 어떻게 쓸것이며 무슨 내용의 글을 써야 할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바로 이때 나의 할아버지가 나서서 벽신문 한장을 써주시며 학교에 바치라는것이였다.
비록 년세는 계시지만 우리 글로 된 벽신문을 들고 학교에 바치는 그 기분 애어린 나에게 있어서 참으로 신이 났다.
그 일이 있은후 나는 학교에 가게 되면 이런 신문이랑 써야 한다는 압력이 머리에 생기면서 글을 읽어도 열심히 읽으면서 우리 말과 우리 글들을 익혀갔던 것이다.
광음이 좀 흘러 초중에 들어서니 위학년에 같은 성씨를 가진 언니가 나더러 "소나무"라는 제목을 주며 작문을 써달라고 하면 주저없이 뚝딱 써내여주니 얼마나 기뻐하는지...
글짓기가 오죽 힘들었으면 자기보다 어린 나한테 글지어 달라는 청을 들가 하는 생각이 어린 나이지만 머리속에 감돌며 나라도 글짓기를 열심히 잘해야 겠다는 생각들이 머리속을 맴돌아치며 그 분야에 대한 서적이며 표현이며 늘 머리속에 입력해 넣었고 심지어는 위인들의 선집이며 위인들의 이야기는 얼마나 읽었으랴
모택동의 칠언률시 "장정"은 배운지 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잊지 않고 한글자도 틀림없이 류창하게 읊을수 있음에랴!
오늘의 나한테는 할아버지가 우리들한테 남겨준 우리 말의 중요성과 조선글의 정체성, 조선민족이라면 조선글을 배워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민족숭배정신이 남긴 발자취가 력력히 남아있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우리 말에 대한 집요한 관심덕분으로 오늘의 나는 한점 부끄럼없이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사용해가면서이 자리에 서있을수 있었던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는 우리 할아버지의 우리 말에 대한 영향력, 우리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리듬에 맞춘 글소리의 덕분이라는 것을 가슴깊이 명기하며 할아버지한테 늘 고맙기만 했다.
그런 우리 말과 우리 글의 리듬과 선률은 오염이 되지 않은 우리들 령혼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모국어를 열심히 익혀갔던것이 아닐가
할아버지의 글을 읽는 리듬소리가 아직도 아스라하게 귀가에 들려오는듯한 느낌이다.
지나 온 삶에 대한 오랜 추억과 기억들이 누군가의 필에 의하여 오늘의 아름다운 꽃향기로 피여날수 있는것도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풍속과 문화발전의 자취가 아닐가
우리 말과 우리 글도 세세대대를 넘어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오기에는 우리 조상님들의 무수한 노력과 피땀으로 슴배인 분투정신으로 끈끈히 이어져 있는것이다.
꽃떨기같고 주옥같은 우리 글들이 앞으로도 천추만대를 이어 영원토록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마 나의 할아버지도 저 세상에서 우리 말과 우리 글의 정체를 아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시랴만은... ...
/ 素恩 김순희
http://www.hmzxinwen.com/news/27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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