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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01/16  한민족신문
동포노래방으로 하여 배운 한국어

동포노래방은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도록 이끌어 준 스승이다.

 

1995년 10월 20일, 내가 7세 때 부른 “오리 동동” 동요가 한민족방송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동포노래방에서 주장원이란 영예를 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행운아였다.

 

보그방송에서 동포노래방을 시작하자 어른들은 라디오에서 노래를 녹음하여 열심히 따라 부르며 배웠다.

 

그때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엔 조선족초등학교가 없었으므로 나는 한족학교로 다녀야 했다.

 

아동락원에 다닌 나는 한족 애들과 다를바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동요를 배워 불러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쾌히 승낙하자 어머니께서는 “오리동동” 동요를 배워주셨다.

 

그런데 우리 말과 글을 모르니 기억하기 쉽지 않았다. 연 며칠 연습하였지만 혼자서 부르기 어려웠다.

 

그래서 녹음하던 날 나는 어머니의 입 모양을 보며 불러 끝내 녹음을 마쳤다.

 

이렇게 부른 노래가 보그 방송 선생님들께서 반주 입혀 방송하시니 너무 듣기 좋았다.

 

동포노래방에서 주 장원이란 영예까지 주시니 나는 기쁘고도 신심이 생겼다. 한족 학교에 다니면서도 우리 노래를 배우며 우리글을 익힐 수 있었다.

 

그 덕분에 23세때 한국에 나와서도 막힘없이 일할 수 있었다.

 

면허증도 단번에 딸 수 있었다. 차 몰고 출퇴근할 때면 계속 우리 노래만 들으며 우리말을 익혔다.

 

한번은 회사에서 회식후 노래방에 가게 되었다. 그때 내가 “화장을 지우는 여자”노래를 부를때였다. 옆방의 손님들이 노래를 잘 부른다며 우르르 몰려와 합류하기도 했다.

 

회사에서도 중어와 한국어를 겸비한 인재로 중용 받을 수 있었다. 중국의 기술자가 오면 통역에 나서기도 하고 작업일지도 잘 쓴다고 칭찬받았다.

 

칭찬 받을 때마다 이것 모두가 동포노래방 덕분이라고 나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는 동포노래방을 사랑한다.

그래서 오늘도 “동포노래방 만세!”를 외친다.

/마소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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