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서리 내리는 늦가을이면 여름내 푸르청청했던 록색의 바다가 온데간데 없이 자취를 감춘다. 청신하고 아름답던 산과 들이 언제 그랬던가 싶게 볼품없는 벌거숭이로 몰라보게 딴 모습으로 자리 바꿈한다.
각종 과일 나무들도 재산을 송두리채 빼앗긴채 앙상하게 여윈 꼴불견 대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듯" 휑하니 마치 영혼을 빼앗긴 빈 털털이처럼 꼴기가 없다.
유독 감나무만이 황금같은 자기의 재산을 간직하고 주렁주렁 탐스런 열매를 자랑하며 자리를 빛내고 있다. 마치도 한가정의 생존을 위하여 모든 정성 쏟아 붓고 아껴 쓰고 아껴 모은 돈으로 아들딸 출세시킨 어머니처럼 오늘은 기쁨속에 눈부신 결실을 보여주는 마치 드라마의 표현같은 "위대한 어머니"의 풍격을 고스란히 자랑하는 것 같다.
한여름엔 "카멜레온"처럼 색상이 똑같아 열매있는 나무지만 얼핏 보면 열매없는 나무처럼 뽑내지 아니하고 뜻을 간직한채 제 갈길만 열심히 재촉해 오던 감나무가 아니였더냐? 마치 꽃같은 청춘도 다 바쳐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아낌없이 희생하는 어머니의 충성심 아니였더냐!
복잡다단한 과일 나무들처럼 화려하게, 우아스럽게 꽃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말없이 조용히 열매를 잎파리속에 숨겨놓고 돌맹이같이 단단하게 쓸모있는 열매로만 키워나가는 겸손한 감나무였지! 마치 어머니들처럼 언제 한번 화려한 옷 떨쳐 입고 떠들어 대며 야단법석 한적 없었지 언제 편하게 여행 한번 다녀 오신적도 없었고 오로지 일편단심 자식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참고 견디며 굴할줄 몰랐었지! 아, 어머니! 바로 어머니들의 천금같은 희생 정신 있었기에 오늘도 우리에겐 행복과 번영이 있을수 있었다는 것을!
가을의 성공, 풍만한 열매, 한껏 수줍은 듯 숙성되여 만지면 터질 듯 무르익은 노란 감이 어찌 은인의 심오한 진실을 모를 수 있으랴? 꿀같은 단맛과 즙을 자아내는 그 매력이 바로 "어머니 인내와 노력"의 상징 아니겠느냐! 부드럽고 주먹만큼 탐스러운 몸뚱이, 뭇 사람들의 식감을 불러 일으키는 단맛, 이것이 바로 세인을 놀래울 수있는 흡인력이 아닐까 싶다.
이거야 말로 "마를 줄 모르는 어머니 젖 줄기처럼 모든 것이 거덜 났을 때, 다 털어먹고 빈 주머니만 남았을 때" 울상이 된 자식을 위해 피땀으로 번 돈을 가슴 열고 아낌없이 내주는 어머니, 자식의 앞날과 전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겠다는 어머니, 언제 어디서나 자식에게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는 힘의 원천이 바로 어머니 아니였더냐! 자식을 위한 세상 어머니들의 심리상태는 어쩌면 저렇게 똑같은 천방지축이고 천평일류일까?
사막을 거닐던 낙타가 목이 말라 겨불내 나도록 애간장 터질 때 목에 저장한 물이 없었다면 어찌 살 수 있었고 어찌 광활한 사막을 빠져 나올 수 있었겠는가?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우리 어머니가 감나무와 같이 우리를 낳아키웠고 무더운 여름철에도 광풍폭우와 싸우지 않았다면 오늘의 행복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최미숙 어머니, 연길에서 오신 최미숙 어머니가 바로 감나무 화신이고 대표 장본인이다. 일찍 남편 잃고 혼자 대한민국에 와서 억착스레 번 돈으로 외동아들을 대학까지 공부시켰다.
어디 그뿐이냐? 아들 장가도 보냈고 아파트 사주고 직장없는 며느리에겐 식품가게까지 챙겨 주었다. 진짜 그가 벌어놓은 재산 가치는 한가득 넘쳐나게 달린 감나무 열매를 방불케한다. 요즘 최어머니가 매일 손주놈 사진 쳐다보며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며 싱글벙글 좋아한다.
하루 10시간 힘든 식당일 꼬박 밥먹듯 하신다. 인젠 한국에서 일한지 20년 되어간다. 새파란 청춘과부가 어느덧 흰 서리 내린 임자없는 할머니가 되었다. 때론 모진 아픔에 혼자서 쓸쓸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였지만 아들, 며느리, 손주놈 생각하고 참고 참으면서 살았단다. 최어머니 지금은 주방장 일 하다보니 돈도 많이 벌었을 텐데 무엇 때문인지 아직도 욕심이 끝이 없다. 왜냐 했더니 회사 출근하는 아들에게 멋진 차를 사주고 손주놈에게도 반짝바짝 빛나는 자전거 사주고 싶단다. 마치도 "련어가 미래 깨여날 새끼 알을 낳고는 죽음으로 일생을 마감" 하는것과 별다를게 뭐가 있을까?
자기가 아프면 "우제니 그랑데처럼" 땡전 한푼 아끼다가도 새끼에겐 추호의 꺼리낌도 없이 통채로 털어준다. 최어머니 나이 65세 (1957년 생) 인젠 허리 펴고 휴식할 때 되었어도 "좀 더 벌겠다. 좋은 세상 만났을 때 실컷 벌어 챙기겠다"며 마치 가을 감나무처럼 주렁주렁 달린 자기재산을 몽땅 빼앗겨야 시름 덜듯이 최어머니 역시 자기 마지막 생명까지도 헌신하려 하는 같다.
자기 몸이 망가져 무너지리라곤 생각도 못하고 있다. 어머니 뜻인즉 좀 더 풍족하게 벌어가야 나중에 자식들에게 부담 안준다는 뜻이다. 세상 부모란 무엇인지? 새끼를 위해 온갖 고생 다 하고도 나중에 자식에게 부담이 될가 두려워 밑도 끝도 없이 벌려는 욕심, 그 풍격이 바로 "아름다운 감나무의 자유자재하는 소박함이 아닐가 싶다.
결국은 사달이 나고 말았다. 최씨 어머니는 위암이라는 병원측의 판단이 내려 수술 받아야 한단다. 의사선생님의 말씀, "인젠 일하면 절대 안 됩니다. 수술 뒤에 몸이 망가지지 않게 충분히 휴식하셔야 합니다. 앞으로는 음식도 잘 조절해 드시고 꼭 제때에 드셔야 할 겁니다." 부탁이고 명령이다.
천만다행이고 다행중에 다행이다. 그래도 일찍 발견했으니 말이다. 얼마나 슬프고 가슴아픈 일인가! 지나친 피로가 최어머니에게 인생살이의 판단을 내려준 것이다.
"감나무 풍격의 소유자!"는 이렇게 자신의 몸이 망가져서야 일손을 거두었다.
/ 김 지 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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