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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12/16  정명선
인생의 '38선'에 서서

연초에 새 달력을 사서 벽에 걸었을 때만해도 곧 출산을 며칠 앞둔 임산부의 배처럼 불룩하였었는데 오늘 보니 꼭 며칠 굶은 승냥이의 뱃가죽처럼 훌쭉하다. 추한 모습이다. 이제 몇 장 남지 않은 달력장을 마저 떼어내면 내 나이도 60이다.

 

그저 먼 날의 이야기나 남의 몫으로만 생각하였고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제 그 앞에 내가 서 있을 줄이야!

 

지금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60세 전에 자의든 타의든 반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을 숙명처럼 받아드리고 또 60세를 넘기면 너 나 할 것 없이 노인축에 속한다. 이로 볼 때 우리네 인생을 크게 구분하면 60세 전이 인생의 전반생이고 60세 후가 인생의 후반생이라 고해도 틀리지 않는 말인 것 같다. 금년에 59세인 나는 지금 인생의 전반생과 후반생사이인 '38선'에 서 있다.

 

세월은 무정하다. 전반생에서는 막무가내로 내 등을 떠밀고 후반생에서는 나에게 반갑다고 손을 내민다. 참으로 참담하고 억울하고 더럭 겁도 난다. 곧 60세의 문턱에 선 내가 여태껏 앞만 보고 나름대로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왔건만 이제 와서 내 인생의 전반생을 뒤돌아보니 어느 것 하나 떳떳이 내 놓을 게 없다. 꼭 마치 무를 뽑고 난 자리 같다. 게다가 60세 이후 노후를 위해 지금까지 아무런 계책이나 준비도 계획도 없으니 그런 내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나 내 주변을 살펴보면 반평생을 다니던 직장에서 60이후 노후의 인생을 위해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객관조건 등등 다방면에서 나처럼 아무런 대책이나 계획도 없이 퇴직을 하거나 나이 60줄에 들어서면 노후 인생에 스스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이젠 내 인생에 종을 쳤다고 단정 짓는 사람들이 참 많다. 다시 말해서 성 쌓고 남은 돌의 신세가 되었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집에서 허구한 날 무료한 나날을 보내는가 하면, 고독과 외로움에 빠져 매일같이 술과 마작판을 전전하며 저축통장과 몸과 건강을 잃으면서 하루하루 허무하고 무의미한 후반생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회나 주변과 가정에 무거운 짐까지 주는 추한 노인의 후반생을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러나 모든 노인들이 다 이런 삶을 산다는 것은 아니다. 이와 반면에 퇴직을 앞두거나 퇴직 후 그리고 60세 이후 노후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부류의 노인들의 삶은 다르다. 그들은 여태껏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버지로, 어머니로서 가정의 생계와 생활유지를 위해 직장과 가정에서 다람쥐 채 바퀴 굴리듯 뒤돌아볼 새 없이 줄곧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다면 이젠 직장이나 가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퇴직과 함께 60세 이후 후반생을 내 인생의 제2의 인생의 시발점으로, 재도약과 황금의 적기로 삼고 젊어서부터 이루려고 했던 꿈과 자기 적성에 알맞은 여러 가지 취미생활, 이를테면 서예나 미술, 독서와 글쓰기, 운동 겸 등산을 다니고 재취업과 창업을 해서 쏠쏠한 수입도 올린다. 그리고 여유를 만들어 산수 좋고 경치가 좋은 국내는 물론 외국 나들이까지 다녀오는 여유까지 부리며 사회나 주변사람들과 자식들에게 존경받고 대접받으면서 당당하게, 즐겁게, 행복하게 아름다운 노인의 후반생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퇴직을 코앞에 두고, 또는 퇴직을 했거나 60세 후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 중의 한사람이다. 그런데 후자를 선택하자면 말은 쉽고 그런 삶을 나의 현실로 만들자면 당연이 주관과 객관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된다.

 

우선 뭐니뭐니해도 건강이 최적의 기초다. 건강이 따라주어야 취업을 하던지 창업을 하던지 다양한 취미생활도 할 것인데 건강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한중방송
다음으로 경제적 여건이 있어야 한다. 돈이 일체를 해결하고 좌우지하는 오늘의 사회현실에서 손에 일전 한 푼 없다면 제아무리 제갈량이라고 해도 기회가 있어도 그림의 떡이다.

 

마지막으로 가정환경이 따라주어야 한다. 집에 늙으신 부모가 계시고 부부 둘 중 한쪽이 장기병환에 있고 과년한 아들과 딸이 성가를 못해 가슴이 숱이 되어 까맣게 타들어 가는데 무엇을 하고 무슨 일이 손에 잡히겠는가?

 

나는 내 인생의 '38선'에 서서 60세 이후 후반생을 두고 요즘 매일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감나무 밑에서 죽치고 누워서 감이 언제 떨어져 내입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키가 모자라면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서라도 감을 따 입에 넣어야 한다.

 

봄꽃은 다음해 봄에 또 피고 여름 꽃도 졌다가 내년 여름에 다시 피지만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 조각처럼 흘러가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60세 전에 내 인생의 제1의 꽃을 피우고 졌다면 60세 이후를 내 인생의 제2의 인생이라 생각하고 내 몸과 마음과 정신에 새로운 기를 불어넣고 이젠 희미하거나 가물가물거리는, 젊었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꿈을 되찾고 자기에게 알맞은 아주 작은 사소한 것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준비하고 행한다면 분명히 제2의 인생에도 화사한 봄꽃이 피어날 것을 확신하면서 저도 모르게 조바심이 바짝 고개를 쳐든다.

 

때마침 아침밥을 지으면서 마누라가 틀어 놓은 카세트에서 한국 탤런트이자 가수인 김성환 씨의 '인생' 노래가 흘러나온다.

 

"세상에 올 때 내 맘대로 오는 건 아니지만은 이 가슴에 꿈도 많았지, 내 손에 없는 내 것을 찾아 낮이나 밤이나 뒤볼 새 없이 나는 뛰었지, 이제 와서 생각하니 꿈만 같은데 두 번 살수 없는 인생 후회도 많아, 스쳐간 세월 아쉬워한들 돌릴 수 없으니, 남은 세월이나 잘해 봐 야지 돌아본 인생 부끄러워도 지을 수 없으니, 나머지 인생 잘 해봐야지,"

 

그 노랫말이 오늘따라 절절히 내 가슴을 치고 뭉클하게 한다.

/허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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