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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06/03  초원이
그때 그 정이 그립다

 
아침에 커피한잔 손에 들고 조용히 창턱을 마주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앞뜰에는 새하얀 눈이 소복이 내리고 그 위에서 강아지가 즐겁게 퐁퐁 뛰어다니며 닭들을 쫓기도 하고 뒹굴며 재롱을 피우기도 한다. 너무나도 귀엽다. 백양나무가지 꼭대기에 앉아 깍깍 울어대는 까치는 마치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전해줄 듯하다. 무척 마음이 즐거워진다.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방불케 하는 자연의 멋진 풍경에 도취되어 있노라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부풀어 오르면서 지나온 옛일들이 영화필름처럼 머리에 떠오른다.

 

내가 썩 어릴 적의 일인데 그때 농촌 마을에는 노인들도 많고 코흘리개 어린애들도 많았으며 청장년들도 많이 있어 마을은 늘 흥성흥성하였다. 한가 할 때면 모여앉아 트럼프치기도 하고 구질구질 비 오는 날이면 날궂이를 쇠기도 하였다.

 

특히 겨울철이 되면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옥수수죽을 한 솥 푹 끓여놓고 마을사람들과 나눠 먹으면서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비록 살림형편이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이웃 간에 가고 오는 정은 끈끈하고 각별했다. 또한 명절 때 색다른 음식이 나지면 큼직한 사발에 듬뿍듬뿍 담아서는 애들을 시켜 친척집이거나 가까운 이웃집에 가져갔는데 받은 집에서는 답례로 그 사발에 또 다른 음식을 담아 보냈다.

 

또한 설 명절을 손꼽아 기다린다. 애들은 설 명절이 되여야 새 옷 한 벌이라도 사 입게 되니 (평시에는 형제들이 입던 옷들을 물려 입다보니 막내는 새 옷을 거의 입어보지 못하였음)공연히 들뜬 기분으로 설 명절을 손꼽아 기다린다. 어른들도 명절이 되여야 평시에 그렇게도 마시고 싶었지만 참아왔던 술을 양껏 마시게 되니 애들과 마찬가지로 명절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설날 아침이면 집집마다 일찍 일어나 찰떡을 친다, 두부를 앗는다, 여러 가지 맛 나는 채를 볶는다 하며 분주히 보낸다.

 

설 명절이면 동네 젊은이 일여덟 명이 한패씩 짝을 무어 동네에서 비교적 명망이 높고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 댁을 찾아 세배를 올리는 풍속도 있었다. 젊은이들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앉으세요" 하고 인사 올리면 어르신들은 "부모님 잘 모시고 화목하게 잘 보내세"라거나 "새해에는 하는 일 잘되고 고운 색시를 맞이해오게나"라는 말로 덕담을 나누고는 한바탕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명절 분위기를 한껏 띄웠는데 가끔 구들장이 깨지는 일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그럼데 지금은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을 바로바로 만족시켜주니 설 명절을 기다리는 멋도 없다.

 

연변의 조선족들 대부분이 외국에 가 있다 보니 부모와 같이 있는 애들이 몇 안 되고 명절이 되여도 많이 모여 봤자 일여덟 명뿐이다. 부모들은 애들과 몇 해간 헤어져 있다가 만나면 돈으로 평시에 해주지 못한 사랑을 대체한다. 그러다보니 지금 애들 대부분은 자기밖에 모르고 돈밖에 모른다.

 

그때 그 정이 그립다

 

옛날에는 친척들뿐 아니라 가까운 이웃들도 청하여 한구들에 모여앉아 북적북적 볶았었다. 남정네들은 한쪽에서 지난 한 해 동안에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도하고 새해농사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때론 애들을 데리고 윷놀이도 하면서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다른 한쪽에선 엄마랑 친척집 맏아매랑 아즈마이랑은 가마 목에서 설음식을 갖추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보냈는데 갖춘 음식을 모여온 친척들이 맛나게 잘 먹고 많이 없어지면 대단히 기뻐했다. 그러는 가운데 친척 간의 끈끈한 정도 느끼고 이웃 간의 정도 돈독해 져갔다.

 

한번은 할머니가 동네 잔칫집을 다녀오시더니 손군들에게 개눈깔사탕(알사탕) 하나씩 나누어 주시였다. 손군들은 너무 좋아서 퐁퐁 뛰면서 할머니가 제일이라면서 남자애들은 그 자리에서 먹어 치웠다. 계집애들은 먹기 아까워 종이에 싸서 감춰 두었는데 (그때는 곤난해서 웬만해서는 사탕을 사 먹지 못했음 ) 코흘리개 동생만은 자기 입에 넣었던 사탕을 절반 끊어 "할머니 먹어" 하면서 입에 넣어 주었다. 할머니는 그러는 손군의 행동이 너무나도 기특하고 귀여워서 품에 그러안고 막 뽀뽀랑 해주자 다른 애들도 자기사탕을 할머니에게 준다면서 부산을 떨었다. 부모들은 그러는 애들이 대견스러워 칭찬해주었고 애들은 그 후부터 할머니한테 더 잘하기 위해 애썼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이는 먼 옛날이야기로 남았지만 그때 그 풋풋한 정이 가슴이 찡하게 와 닿는데 정말로 감개무량하다.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밖에서 내리는 눈은 옛날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산과들을 하얗게 덮고 나무에 맺힌 성에꽃은 그렇듯 아름답고 멋질 수가 없지만 마음은 어쩐지 허전해진다.

/길림성 룡정시 지학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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