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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02/07  초원이
한 퇴직교원의 꿈

90세 고령에 이른 오영자선생님은 길림성왕청현제3소학교에서 31년간 교육 사업을 하다가 1984년에 정년퇴직하였다. 퇴직 후 그는 30년을 하루와 같이 아이들과 로인들을 위한 사업에 여생을 바쳐가고 있다.

 

오영자선생님은 퇴직 후 자진하여 왕청현제3소학교의 의무교외보도원사업을 맡았다.

 

시장경제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학부모들이 해외로, 연해도시로 나가는 바람에 홀로 아무렇게나 버려진 애들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그는 자진하여 애들을 맡아 가르쳤다

 

오선생님은 먼저 학교의 요구에 따라 3학년2반의 최정록학생을 교육하는 보도임무를 맡았다. 최정록어린이는 아버지가 일찍 사망되고 어머니마저 장기 환자여서 자주 지각을 하고 학습에 흥취를 잃어 문제아이로 되었다. 집은 비좁은 단칸 방이다보니 공부할환경이 아니였다. 이 정황을 요해한 오영자선생님은 아예 아이를 자기 집에 데려다 공부시켰다. 그는 생활상에서 극진히 관심해주는 한편 그에게 뒤떨어진 과목을 하나하나 보충해 주었으며 배운 과목을 차근차근 복습시켰다.

 

드디어 서광이 비꼈다. 그는 학기말 시험에서 놀랍게도 어문, 수학을 모두 95점 이상을 맞았다. 최정록의 진보는 왕청현텔레비죤에까지 방송된 후 그의 어머니는 오선생님을 찾아와 <<정룡이가 사람이 된 건 오선생님의 덕분>>이라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되여 그의 집은 과외학습기지로 되었다. 그는 언제나 학생들을 내심하게 알 때 까지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기에 학부모들의 애대와 찬양을 받았다. 그는 또 언어장애가 있는 학생을 맡게 되었다. 이 학생은 말을 잘하지 못해 늘 애들의 놀림을 받는 것 이였다. (이대로 말을 못하면 이애는 종신병신이 된다. 이것은 그 애의 인생에 관계되는 일이다) 오선생님은 그 애의 허물을 고쳐내려고 마음먹었다. 날마다 신문을 읽게 하고 받아 읽기를 하게 하였다. 입모양을 교정해서 하루에도 몇 백번씩 따라 번지게 하였다. 드디어 그 애의 입에서 좀씩 정상적인 발음이 흘러 나왔다. 애는 제법 신문을 읽은 내용을 말로 똑똑히 번질 수 있었다. 이렇게 소학교과정의 1,2,3책을 지력이 차한 학생들에게 가르친데서 그들은 어문, 수학, 한어, 주산 등을 모두 정상적인 아이들과 같이 잘할 수 있게 되였다.

 

그는 선후로 연변주교육위원회로부터 <<새일대 관심사업선진일군>>평의 받았으며 1996년9월에는 연변주교육위원회에서 열린 대회에서 <<후대를 위하여 여생을 바친다>>는 제목으로 경험을 소개하였다.

 

후에 오영자선생님은 또 신민지역사회 노년협회보도원을 맡았는데 장장 27년간 견지하여 왔다. 해마다 자기 호주머니의 돈을 털어 노인들에게 <<로년세계>>,<<로인의 벗>>신문과 간행물을 보게 하였는데 지금까지 근 30년이 된다. 오영자선생님은 노인들의 건강을 염두에 두고 노인들을 조직하여 아침 네 시부터 디스코를 추었다. 춤을 보급하고 대회에 나가 표연할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솔선수범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을 동원하여 신체를 단련하게 하였다. 그리고 장기간 병 모으기를 견지하여 그 수입으로 노인환자들을 방문하군 하였다 . 

/리강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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