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전에 사랑니 두대를 뽑았다. 그중 한대는 뽑을 때 너무 고생해서 아마 영영 잊어질 것 같지 않다.
먼저 왼쪽 아래 사랑니를 뽑았다. 부분 마취제를 맞고 나서 이가 단 몇초만에 뽑혔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오른쪽 아래 사랑니를 뽑으러 갔다. 당연히 잠간이면 "작업"이 끝날 것이라 생각하고 의료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이란 말인가, 이 한대를 뽑는데 좋이 한시간 넘게 걸릴 줄이야. 마취제를 놓고 나서 10여분을 역사해서 이가 뽑히는가 싶었는데 뽑힌게 아니고 끊어졌단다. 끊어진 뿌리를 뽑아야 한다.
조금 남은 이 뿌리를 뽑는 "공사"가 그렇게 번거롭고 고통스럽고 지루할 줄이야. 의료침대에 입을 최대한으로 벌린 주인공이 누워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기구를 번갈아 교체하며 부지런히 주인공의 입안에서 작업을 하고있다 .자그마한 망치같은 것을 넣고 한쪽에 대고 두드리는가 싶더니 뽑기를 시도해본다. 뽑하지 않는다. 또 한번 망치를 넣고 두드리고 나서 집게로 뽑기 시작했다. 또 실패다. 입을 하 벌린채 치과의에게 맡기고 있는데 괴롭기 짝이 없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양악이 아파나기 시작했다. 더구나 참기 힘든건 타액이 쉴새없이 분비되는데 어떤 땐 일어나 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기구를 전기드릴로 바꾸었다. 이 뿌리에 대고 스위치를 넣으니 "윙'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타는 듯한 냄새가 강하게 났다. 집게가 집을 수 있게끔 이 뿌리에 턱을 만든 것 같았다. 전기드릴을 빼내더니 집게로 뽑기 시작했다. 집게가 턱에 걸리는 느낌에 이번엔 뽑히겠지 했는데 또 실패다. 망치로 두드리기를 또 한번, 이어서 집게가 들어가서 이 뿌리를 꽉 집었다. 느낌이 좋았다. 치과의가 힘을 주는 순간 뭔가 쑥 뽑혀나가는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완고한 이 뿌리가 뽑혀나온 것이다. 치과의는 애를 먹이던 이 뿌리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길게 생긴 입쌀알 만 했다. 아마 너무 작아서 애를 먹었나보다.
사랑니, 참말로 예쁜 이름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해석했다. "어금니가 다 난 뒤 성년기에 맨 안쪽 끝에 새로 나는 작은 어금니 ". 그런데 이름처럼 사랑받는 이는 아닌상 싶다. 몇년전에 딸애가 사랑니를 뽑는다고 해서 생니를 뽑아도 되나 싶어서 인터넷을 검색해봤더니 거의 다 뽑으면 좋다고 했다. 내가 사랑니를 뽑기로 한데는 나름대로의 원인이 있다.음식을 씹을 때마다 사랑니와 바깥쪽 이발사이에 음식물이 자꾸 끼여서 너무 귀찮고 짜증스러워났다.그래서 미루고 미루다가 뽑기로 했는데 이렇게 곤욕을 치른 것이다. 그리고 뽑고 보니 두 대 다 뿌리가 짧고 기형으로 휘여져있었다. 뽑기전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기형이라는 말에 속이 시원해났다.
이 뿌리를 뽑는 내내 나의 머리속에선 " 각인, 뿌리, 체질" 세 단어가 엇갈아 맴돌았다. 사람은 뭔가가 각인되어 있고 뿌리내려 있다고 한다. 각인된 것에 따라 응답 받고 뿌린 내린 것에 따라 열매 맺는다고 한다. 그 각인과 뿌리가 체질이 되어 그 체질대로 살다가 죽는다고 한다. 하다면 이 각인과 뿌리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다. 성공도 실패도 다 각인된것 , 뿌리내린 것에 따른 결과라는 말이다. 안 좋은 각인과 뿌리는 꼭 마치 사랑니와도 같은 것 같다. 존재자체가 별 가치가 없을뿐만아니라 오히려 다른 정상적인 존재들이 하는 일들을 방해한다 .때문에 뽑아버려야 한다. 그런데 뽑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럼 각인은 어떻게 되고 뿌리는 어떻게 내리는 걸까? 계속 보고 듣는 것이 나중에 각인이 되고 뿌리가 내린다고 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을 쓰는 가정의 자식이 나중에 장가가서 안해에게 폭력을 쓰는 확률이 일반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보다 높다고 한 것을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보고 듣고 한 것이 은연중에 각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얼마전 어느 선배를 만났었는데 선배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아들애가 어릴 때 남편이 한동안 거의 매일 집에서 마작판을 벌렸는데 어른들이 마작 노는 것을 구경하던 4살짜리 아들이 어느날 마작쪽을 꺼내놓고 배렬하는데 아주 예쁘게 그 것도 아주 절도있게 배열하더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각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이 독서하기를 바란다면 독서를 권고하기 앞서 부모들이 독서하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하다면 잘못된 각인은 어땋게 바꾸고 안 좋은 뿌리는 어떻게 제거할수 있는가?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훈련은 능동적인 훈련과 수동적인 훈련 두가지가 있다.
반복적인 교육과 반복적인 훈련을 거쳐도 잘 안 바뀌고 잘 뽑혀지지 않는 것이 각인이고 뿌리다. 마치 나의 사랑니 뽑기와 같다.
혹은 겉은 많이 뽑한 것 같은데 뿌리가 남아 언제든 치고 올라올 태세다. 더 크게 치고 올라오는 것도 있다. 남편 한 친구의 외삼촌은 이름난 노름군이다. 노름을 놀지 않으려고 스스로 한쪽 손 네 손가락을 끊었는데 현재는 발까지 동원해 더 심하게 놀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습관의 힘"이란 책을 본 적이 있다. 주제는 좋은 습관은 성공을 낳고 나쁜 습관은 실패를 부른다는 것이다. 좋은 습관이 절대적으로 성공을 낳는다고 할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나쁜 습관은 절대 성공을 가져오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한가지 일을 매일 한번씩 연거퍼 스물한번을 하면 그 것이 습관이 된다고 한다. 스물한번을 견지하는 과정이 바로 훈련이다. 능동적인 훈련은 의지력이 필요하다. 훈련을 지속하는 과정이 나쁜 각인이 빠져나가고 좋은 각인이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이다.
비록 과정은 조금 고생스러웠지만 사랑이는 결국엔 속시원히 뽑혀나갔다. 사랑니 뽑기는 눈에 보이는 과정이고 결과이다. 보다 힘든 건 눈에 안보이는 안 좋은 정신, 사상, 이념의 각인, 뿌리, 체질을 뽑아버리는 일이다. 왜냐하면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하다면 나를 지배하는 각인, 뿌리는 어떤 것이고 난 어떤 체질로 살아가고 있을까?
사랑니 뿌리를 빼는 동안 나는 속으로 내내 기도했다 .내 몸에 배여 있는 모든 안 좋은 것들이 오늘 뽑히는 사랑니처럼 송두리채 뽑히게 해달라고.
/방예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