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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12/16  진유
행복념주

거위털같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 안해는 메주를 쑨다고 콩을 삶았다.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는 순간 콩삶은 구수한 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히며 온몸에 그대로 퍼져왔다. 저녁술을 놓고 메주를 하는 안해를 도와 삶은 콩을 믹스기로 보드랍게 가노라니 저도 모르게 지나간 옛일들이 파라노마로 펼쳐지면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우리가 자라던 어린 시절은 참으로 지지리도 가난하던 시기라 군입질할것이라고는 오직 누룽지뿐이였는데 쌀이 귀하다보니 그것조차 흔치 않았다. 그때는 눈도 많이 내려 마을의 길량켠과 나무가리, 집가리에 항상 무릎넘어 오게 눈들이 덮여있었으며 입은 옷이 변변치 않아서인지 추위도 지금보다 훨씬 더 혹독하였었다.

 

일년중 가장 즐거운 날이 물론 설이였지만 설이외에도 즐거운 날이 있었는데 그런날을 꼽는다면 김장을 하는 날과 메주를 쑤는 날이다. 김장을 하는 날과 메주를 쑤는 날이 즐거운 까닭이라면 그날이 설날과 마찬가지로 여느날보다 먹을거리가 있기때문이며 따끈한 집에서 온집식구가 북적일수가 있어서이기도 하였다.

 

메주를 쑤는 날이면 어머니는 전날저녁부터 잘 다듬은 콩을 깨끗이 씻어 물에 담근다. 그렇게 담근 콩은 이튿날 점심무렵까지면 퍼질대로 푹퍼지게 되는데 그 콩을 가마에 넣고 부엌아궁이에 장작불을 피워서 몇시간을 들여 삶는다. 그때 당시 우리가 살고있던 집은 낮다란 토벽에 초가이영집이라 벽이 엷어 한기가 배여들어왔었는데 아궁이에 불을 피워 가마가 끓어번지면 인차 김이 뽀얗게 서리게 된다.

 

그러면 그 서려오르는 김에 토벽이 부실부실 떨어져 잘못될가봐 아궁이에 불을 피워서 김이 서리면 인차 화로에 장작이 탄 불덩이를 퍼담아놓아 김이 서리는걸 막아야 했다. 그렇게 화로에 이글거리는 불덩이를 퍼담아놓으면 우리는 인차 김치움에서 감자를 꺼내와 이글거리는 화로불에 파묻어놓는데 좀만 지나면 감자가 노랗게 익었었다. 그렇게 익은 감자를 꺼내여 까맣게 된 껍질을 바르고 호호 불면서 먹을때면 정말 진수성찬이 울고갈 정도로, 셋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였으니 지금 그날을 그려보는 이 순간에도 입에서 군침이 스르르 도는건 어쩔수가 없다.

 

그렇게 몇시간을 두고 장작불을 피워서 콩을 삶노라면 콩가마가 끓어올라 넘치는 수가 있었는데 그것을 막기 위하여 어머니는 된장을 몇숟가락쯤되게 꺼내여 풀어서는 콩가마에 넣는데 참으로 이상하리만치 콩가마가 끓어넘치는 일이 없게 되는것이였다.

 

어머니가 푹 익은 콩을 가마에서 꺼내 메주를 할 때면 우리는 바늘에 실을 꿰여서는 푹익은 콩을 한알한알씩 그 실에다 꿰는데 다 꿰여놓으면 마치 구슬을 꿰여놓은듯, 념주를 꿰여놓은듯한것이 보기만해도 장한 일을 한것같아 스스로도 어깨가 으쓱해나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그렇게 실에 꿰여놓은 콩을 나무가리나 짚가리우에 쌓인 눈을 파헤쳐 묻어놓고는 집으로 들어와 어머니가 만들어놓은 메주를 하나하나 날라다 방웃목에 펴놓은 벼짚우에 줄지어 세워놓는것으로 어머니의 일손을 방조해주었다.

 

메주가 다 만들어지면 시간도 한참지나 눈에 파묻어놓은 콩을 꺼내는데 그사이 추운 날씨로 눈속에 파묻힌 콩은 꼬당꼬당 얼어있는데다 그우에 눈까지 새햐얗에 묻어 참으로 보기만 해도 군침이 스르르 돌았다. 그런 콩을 한알씩 입에 넣을때면 콩에 묻은 눈이 먼저 사르르 녹은다음 언콩알이 이발에 닿이는데 그때의 그 시원한 감각은 참으로 무어라 형용할수 없었다.

 

그렇게 한알한알 빼여먹노라면 재미도 재미지만 맛이 일품인것으로 하여 마치도 천하를 독차지한듯한 느낌이였다. 그렇게 만든 메주로 간장을 달이는 날에는 또 파잎을 그채로 뜯어서 그안에 금방 달여 식힌 간장을 넣고는 그 간장을 조금씩 빨아먹는 맛은 몇십년이 흘러간 오늘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믹스기로 콩을 갈다말고 아들애와 함께 그제날처럼 바늘에 실을 꿰여 그 실에다 메주콩을 한알한알 꿰기 시작하였다. 한알한알의 구슬을 꿰듯, 한알한알의 념주를 꿰듯 정성들여 꿰였지만 아빠트다보니 그 옛날 짚가리나 나무가리에 쌓인 눈에다 파묻던것처럼 파묻을수가 없어 결국은 베란다의 창을 열고 걸어놓는수밖에 없었다.

 

한식경이 지나 메주를 다 만들고 창밖에 걸어놓은 콩뀀을 들여와서 안해와 아들애 셋이서 한알한알 뽑아 먹게 되였는데 비록 눈이 묻지 않았지만 언콩이 이발에 대일때의 그 찡한 맛은 여전하였었다. 처음으로 그런 콩을 먹어보는 아들애는 너무나 신기하다는듯이 냠냠 맛나게 먹으면서 정말 별미라고 연신 외우는것이였다. 그러는 아들애를 바라보면서 나와 안해도 얼굴에 웃음을 올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나와 안해 그리고 아들애가 먹는것이 어찌 한낱 평범한 메주콩에 비기랴. 전에도 그랬거니와 오늘도 그것은 한알한알의 행복의 념주라면 가장 적절할것 같다. 전에는 어머니가 삶아준 콩을 한알한알 꿰여서 먹었다면 오늘은 안해가 삶아놓은 콩을 나와 아들애가 한알한알 꿰여서 세식구가 단란히 앉아서 먹고있지 않는가. 한알한알의 콩은 한올한올의 사랑의 마음이며 그 사랑의 마음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마음으로 새기였으니 그 사랑의 마음을 새기는 순간만큼은 너무나 행복했었다.

 

사랑의 마음은 한겹한겹 쌓여 이루어져야 감동을 줄수 있고 또 그 감동이 행복을 안겨주게 된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한줄에 꿰였으니 그것은 곧 행복의 념주가 아니겠는가.

 

지천명의 나이가 다 되여가는 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안해가 메주를 쑬때마다 행복의 념주를 한알한알 꿰면서 참사랑의 맛을 진정으로 음미하리라 나름대로 작심하였다.

/남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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