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숲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영상 30c'~40c'를 웃도는 고온의 고비사막에서, 1년 내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대신 뜨거운 모래바람이 세차기 불어치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기 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지만 언제 보아도 등에다 주인을 태우고 또 주인의 필수품인 무거운 짐짝까지 한가득 싣고 씩씩거리며 콧김을 내뿜으면서 고비사막을 힘들게 걷는 낙타의 모습이 나의 여린 가슴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낙타의 실물을 보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 년 전, 그러니까 내가 불혹의 나의를 먹던 그해 여름이다. 나와 또 다른 일행 3명이 공무차로 몽골 남부에 있는 고비사막으로 갔을 때, 나는 여직껏 Tv나 영화에서, 화면이나 풍경으로만 보아왔던 낙타의 실물을 직접 보게 되었다.
그날 우룬벨트시에서 짚차를 세내어 3시간 넘게 타고 우리들의 목적지인 20여호 몽골 원주민이 살고 있는 한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서쪽하늘에서 붉다못해 빨간 불덩이 같은 저녁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황혼의 저녁 무렵이었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무리의 낙타들이 마치 신기루처럼 저 멀리 지평선에 나타났다.
꼭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한 장면을 방불케 했는데 너무나도 아름답고 감동적이었고 내 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에는 처음이어서 나는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눈 한 번 깜박이는 시간조차 아까워 오래오래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치 낙타무리들이 나를 위해 일부러 나타난 것 같았고 그 낙타무리들은 마치 부모 형제, 처자식과 몇 십 년동안 소식도 없이 갈라져 살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곳에서 극적으로 만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낙타무리들을 바라보면 볼 수록 그 륜곽이 점점 커지며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고 맟침내 내가 있는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는데 그 무리를 자세히 세어보니 총 20마리가 되었다. 낙타들은 저마다 등에다 남자 주인과 무거운 짐짝을 싣고 씩씩거리며 입에는 콧김을 내 뿜고 있었다. 나는 이마을 원주민촌장으로부터 나는 이 마을 원주민들은 지금도 자동차가 아닌 낙타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쓰며 이렇게 몇일에 한 번씩 마을과 150여리 떨어져 있는 시내에 가서 생필품을 구입해다 생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과 정신문명, 물질이 고도로 발전된 현대사회에서, 홍수처럼 밀려드는 자동차에 밀리지 않고 여전히 몽골의 고비사막에서 자기의 일익을 톡톡히 하고 있는 낙타의 당당한 모습을 실물로 보노라니 저도 모르게 불혹의 나의를 먹기까지 내 삶의 뒤안길을 뒤돌아 보게 되면서 문뜩 나의 모습이 락타에 비해 너무도 초라하고 부끄러운 존재로 보였다.
내가 어머니의 자궁에 있었을 때 당시 39세던 아버지가 논밭일을 하다가 급성뇌졸중으로 논두렁에 쓰어지고 그길로 저 세상 고인으로 되면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와 이별하는 슬픔의 짐과 질병의 무서운 짐을 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고 그 때 35세의 꽃다운 나의에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는 우리 8남매를 먹여 살리느라고 밤낮이 따로 없이 아득바득 일을 했지만 우리 집은 늘 가난에 허덕이다보니 나는 어려서부터 가난의 짐을 알게 되었다.
그후 대학입시를 치렀지만 2번 다 락방의 짐을 지게 되었고 한 마을의 순이와 3 년 간의 연애를 했지만 결국 쓰디쓴 실연의 짐을 져야 했고 몇 번의 창업을 시작했다가 모두 실패하여 고통과 실패의 짐도 지게 되었다. 그후 장가를 들면서 나는 또 한 가정의 가장의 짐, 남편의 짐, 아버지의 짐까지 동시에 지게 되었다. 인생을 살면 살 수록, 나의를 먹으면 먹을 수록 내 등의 짐은 줄어들거나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짐, 짐, 짐, 그리고 또 짐, 그 짐은 어쩌면 내 나의에 따라 더 많아지고 더 무거워져 힘에 겨워 때론 숨도 제데로 쉬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내 입에서는 '왜 하필 내 등의 짐이 남들보다 많고 무거운가' 고 한탄과 불만, 불평의 소리가 밥 먹듯 터져 나왔고 때론 그 짐이 징그럽고 힘에 버겨워 회피도 해보고 벗어도 버리고 던져도 버리려고 무지무지 발버둥도 쳐 보았지만 그 짐은 내 등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악머구리같이 내 등에 붙어 되려 나를 더 힘들게 하고 불행과 고통만을 가져다 준다.
불혹의 나의가 되어 몽골의 고비사막에서 낙타의 당당한 모습을 실물로 직접 보는 순간 사람의 일생도 어쩌면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등에 무거운 심을 지고 멀고도 험난한 고비사막을 걷는 낙타의 인생과 똑 같다는 도리를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낙타는 일생을 사는 동안 등에 짐을 지고 사는 것을 자기의 운명과 숙명으로, 인내와 순응으로 받아들이고 살지만 나는 불혹의 나의를 먹기까지 나에게 지워진 짐을 운명이나 숙명으로, 또는 인내와 순응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 짐들은 나에게는 운명의 불평등한 조화와 불행의 짐으로 받아 들였으니 결국 나만 힘들고 불행해지고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인간들이라면 어느 누구나 자기 등에 크거나 작은 짐, 가볍거나 바위처럼 무거운 짐을 지지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내 등에 짊어진 짐이 무겁다고 다른 사람이 대신 좀 지고 갔으면 하고 바라지만 내가 아플 때 어느 누가 대신 아파 줄 수 없듯 나에게 주어진 삶의 짐은 내가 짊어지고 갈 수 밖에 없으며 무거워 벗어놓고 싶어도 그 짐은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 벗어 놓을 수 없는 짐이며 응당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다.
불혹의 나의에 이르러서야 내 등에 지워진 짐의 의미와 도리를 깨닳고 나니 그후부터 나는 더는 내 등의 짐을 불평등한 운명의 조화나 열등감에서 오는 부담과 고통으로 생각지 않고 내 등의 짐은 내 운명과 숙명으로, 인내와 순응으로 , 감사와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생각을 바꾸니 더는 내 삶이 힘들거나 고통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내 등의 짐의 많음과 무게에서 참다운 인간의 도리를 터득하게 되었고 내 하루하루의 삶이 한결 거볍고 즐겁고 행복했다.
그렇다고 내 삶이 매일 즐겁고 행복한 날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론 내가 하는 일에 힘들어 지치고 방황하고 좌절하며 4거리에서 주저않고 십을 때도 많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 등의 짐은 내 몸의 중심을 바로 잡아주며 나를 다시 일어나도록 다독거려도 주고 때론 꿈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무서운 회초리를 안겨 주기도 한다.
지천명의 나의를 먹은 오늘 날, 내 등에 그 많은 짐과 무거운 짐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 세상을 바르게 살지 못했을 것이고 그 짐 때문에 나는 늘 조심하면서 성실하게 살아 왔고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가 되어 오늘날 한 가정의 가장으로, 남편으로, 아버지로서의 당당한 모습으로 살 수 있었다. 만약 내 등의 짐이 가벼웠거나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가을날의 빈 죽쩡이, 또는 깃털같은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고 나를 성숙된 인간으로 살게 만든 내 인생에 소중하고도 귀한 최고의 선물이다.
오늘도 낙타는 등에 무거운 짐을 싣고 험난하고도 열악한 고비사막을 걷는다. 나도 내 생이 마감하는 날까지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가벼운 짐, 무거운 짐을 모두 등에 지고 웃으면서 살아 갈 것이다.
/허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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