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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01/21  한민족신문
나의 작은 누나

나에게는 누나 두 분이 있다. 큰 누나는 우리 보다 연령차이가 컸다.

 

내가 소학교 다닐 때 벌써 대학교에 다녔었다. 그 년대에 우리 마을에서 처음 나온 대학생이나 다름없었다. 그때는 아버지가 생전이여서 큰 누나는 부담 없고 근심 없이 대학교 공부를 마쳤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너희들도 커서 공부를 잘해서 꼭 대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정중하게 말씀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께서 심혈관 질병으로 몇 년간 병상에 계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 후 설상가상으로 어머님도 생산대 노동을 하던 중 의외의 사고로 눈을 다쳐 치료를 했는데 돈도 없고 또 집에 어린 아이 둘만 있는 것이 걱정되어 치료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어머님의 눈은 희미하게 보이는 정도로 악화돼 더는 노동에 참가할 수가 없게 되자 우리 집은 오보호로 되였다.

 

그때 어린 작은 누나가 어머님을 대신하여 가정살림을 해야 했다. 속담에 "구차한 집 아이가 먼저 셈이 든다"는 말이 바로 나의 작은 누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작은 누나는 어려서부터 밥을 짓고 집안을 거두고 빨래를 하고~~ 그렇게 바삐 보냈지만 공부를 엄청 잘했다.

 

소학교 1학년부터 6학년 졸업할 때까지 3개 과목(그때는 영어는 없고 어문, 수학, 한어 뿐이였음) 시험마다 100점을 맞았다. 소학교 졸업시 최우등생의 성적으로 졸업하고 외지에 있는 대흥구 중학교에 입학했다.

 

작은 누나가 중학교 2학년 때 문화대혁명운동이 터지면서 전국적으로 "독서무용론"이 판을 치는 바람에 작은 누나는 중학교공부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 후로 어린 나이에 매일 생산대 노동에 참가해 어린 사원으로 되였다. 휴식일이 따로 없이 힘들게 일했지만 년말 분배 때면 원래 있던 빚과 세 사람 양식 값을 결산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고 빚은 그대로였다.

 

그때 나도 작은 누나가 혼자 힘들게 일하는 것이 안타까워 학교를 다니면서 일요일마다 생산대 일에 나갔는데 여름철엔 소도 먹여 80공이나 벌어 누나공수에 보태주었었다.

 

1970년도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자 쉬지 않고 그 이튿날부터 누나와 손잡고 억세게 노동에 참가했는데 연말 종결에서 원래 있던 빚을 다 갚고도 생각 외로 돈이라고 모르고 살아온 우리 집도 700원이 넘는 큰돈을 분배 받게 되었다. 그 후로는 오보호란 모자를 벗어던지게 되었다.

 

어머니도 처음으로 기뻐하셨고 나와 누나는 서로 끌어안고 한참동안 어린 아이마냥 풍풍 뛰였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았다.

 

그때까지 우리는 오막살이 집에서 살았는데 누나는 그 돈으로 집을 마련해야 네가 크면 여자와 사귀고 장가도 가고 가정도 꾸려야 한다면서 새집을 장만하는데 그 돈을 썼다. 그때 누나는 한창 꽃 피는 처녀시절이라 좋은 옷도 사 입고 화장품도 사서 몸치장도 하면서 멋을 자랑할 나이였지만 동생을 생각해 자기 몸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작은 누나 덕분에 우린 새집으로 이사했다.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부러워하면서 이집에서 "새총으로 대포를 바꿨다"고 하면서 함께 기뻐해주었다. 이듬해도 부지런히 일을 했더니 연말에 더 많은 돈을 분배받았다.

 

나는 집도 마련하였고 생활도 많이 좋아 졌으니 인젠 출가할 준비를 하라고 누나한테 말했더니 누나는 “아직 집안에 가정기물 하나도 없는데 누나가 출가하면 집을 크게 관심 할 수 없으니 새해에는 재봉틀, 벽시계, 라디오, 자전거 등 기물을 갖춰 놓아야 한다”며 이듬해에는 억척스레 일하여 이 모든 것들을 사다 놓았다. 그후부터 우리 집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잘 사는 집으로 되었다.

 

어느 날 누나는 조용히 나를 불러놓고 인젠 집 경제정황도 살만하니 어떻게 농촌에서 농사질만 하겠니? 내가 집에서 어머님 돌보며 함께 있겠으니 너는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노력하여 학교 갈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니 저녁마다 놀음에 탐하지 말고 한어학습부터 하라고 말해주었다. 앞으로 사회가 발전하면 특히 남자로서 지식이 있어야만 자기견해를 발표 할 수 있고 한어로 문장도 쓸 줄 알아야 이 사회에 발붙이고 살 수 있다.

 

“나는 때를 잘못 만나고 여자로서 가정 부담이 많아 책 볼 시간이 없지만 너는 저녁 먹고 나면 시간도 많은데 왜 공부를 하지 못하니?” 누나의 말을 들어보니 정말 옳은 말이였다.

 

이튿날 바로 서점에 달려가서 자전을 사고 동시에 한문 장편소설 "红雨" 그리고 조선글로 번역한 "홍우"란 책을 함께 샀다. 그러면 내용을 더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부터 낮에는 생산대 노동에 참가하고 저녁에는 책을 읽었는데 가방끈이 짧아서 곤난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일하고 저녁을 먹고 나니 졸리고 한 페지 한 페지씩 읽어 볼라니 모를 글자가 너무 많아 그만 손을 들고 말았다.

 

다음날 저녁, 누나와 말도 없이 친구 집에 놀러갔다. 늦게 집으로 돌아오니 누나는 그때까지 도 자지 않고 뜨개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를 기다린 것 같았다.

 

누나는 웃으며 "오늘은 일이 있었구나. 책을 처음 보려면 힘들지? 무슨 일이나 크게 결심내리고 하자고만 마음먹으면 하늘의 별은 딸 수 없어도 그 외의 것들은 노력하면 성공의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남들은 날마다 자전의 글도 하루 한 장씩 뜯어버리며 자전 책도 외우고 있다는데 소설책 한권 볼 결심도 없으면 남자 성격이 못된다고 일깨워 주고는 또 학습방면에 관해 함께 토론하고 방법도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또 책을 읽을 때 모르는 글자가 있으면 꼭 자전을 찾고 필기장에 적어두고 알 때까지 써보면 그 글은 영원히 잊혀 지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누나의 말을 듣고 큰 결심 내리고는 또 다시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모르는 글이 있으면 자전을 찾고 필기 책에 적에 가면서 밤늦게까지 공부하였더니 누나도 나를 동무해 뜨개바느질 하면서 내가 잠들어야 자기도 잠을 청하군 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처음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결과 그 책에 모르는 글자가 거의 없다 싶이 되어 뒤 부분의 내용은 쉽게 읽을 수가 있었다.

 

생산대 노동에 나가서도 휴식 시간이면 전날 저녁에 적어놓은 모를 글자를 땅에다 써보면서 익히 군 했는데 그날그날 배운 글자를 알고 지나다보니 독서에 취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맑은 하늘", "붉은 바위" 등 여러 편의 한문(汉文)서적들을 읽었다.

 

이처럼 노력한 덕분에 힘들지 않게 한자로 된 책을 볼 수 있었으며 신문도 한문 신문을 주문해 보게 되였다. 동시에 적극적으로 생산대 노동에 참가하고 각종 정치 활동, 청년 활동에도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런 연고로 하여 단지부서기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때로부터 청년들의 문화생활을 꾸려하기 위해 생산대장과 토론하고 집을 하나 내여 유일하게 우리 생산대만의 도서실을 꾸려 청년활동을 활발하게 조직했다. 이렇게 청년들은 저녁마다 도서실에 와서 책도 읽고 서로 배우며 저마다 많은 지식을 배우게 되었다.

 

이렇게 노력한 보람으로 군중들에게 위신을 얻게 되니 학교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때는 학교로 가려면 생산대에서 추천받아야 하는데 대부분 사원들은 동의하나 일부 사원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원인은 집에 남자가 없으면 땔나무도 큰 문제고 또 호주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 이 관건적 시각에 나의 누나가 선뜻 나서 나는 시집 안가고 대리 사위할 사람 데려 온다면서 우리 집은 근심 말고 나의 동생을 추천해 학교로 보내줄 것을 견결하게 요구했다.

 

그때 누나의 그 한마디에 나는 얼마나 감동되고 격동되었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동생 의 전도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며 시집도 안 간다는 말에 감동되였는지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나를 추천했다.

 

그때로부터 나는 새로운 인생의 길을 시작하게 되었다.

 

훌륭한 누나가 있었기에 아버지 생전에 대학교까지 다니라던 소원도 이루게 되였다. 큰 누나와 나는 대학문을 나왔지만 오직 작은 누나만은 혼자 대학문을 나오지 못했으니 누나에게 정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작은 누나는 나의 더 나은 인생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켰다. 작은 누나의 헌신과 배려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작은 누님, 전순금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전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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