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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02/11  박현옥
한줌의 재가되여 고국으로 돌아온 골회함

한줌의 재가되여 고국으로 돌아온 골회함

 오늘은 형부의 골회를 마중하러 공항으로 가는 날이다.

 

새까만 도요다패 승용차 한대가 새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고속도로 위에서 쏜살같이 공항으로 달리고 있었다. 차안에서는 조카들의 깊은 한숨소리와 나지막한 흐느낌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고 있는데 날씨도 형부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듯이 아침부터 낮게드리운 안개는 한결더 사람들의 마음을 갑갑하게하고 차창 밖에서 휙휙 스쳐지나가는 바람소리도 마치  형부의 죽음을 슬퍼서  함께 흐느끼면서 우는 것만 같았다.

 

 몇날 몇일 형부의 죽음으로인해 조카들과 고통속에서 울면서 헤매던 나는 잠시나마라도 아무생각도 하지말고 눈을 붙이려고 등받이에 기대앉았지만  지나간 시간 언니와 형부와 함께했던 모든 일들이 눈앞에 생생이 되살아 나면서 나의 추억은 어느덧 달리는 차보다 더빨리 질주하고 있었다.

 

 나와 언니와 형부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나는 엄무상 관계로 손님들과 자주 밖에서 밥을먹는 편이였다. 쌀쌀한 날씨에 찬바람까지 생쌩 불어치는 어느하루 난 손님 세명을 모시고 내가 자주가던 한국 음식점으로 갔었다. 우린 차에서 내리자마자 자라목처럼 목을 움츠리고  막 뛰여서 음식점에 들어갔다.  안보던 웬 아주머니가 따듯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온돌이 따뜻하니깐 방으로 어서 들어가세요..." 어 안보던 아주머닌데? 어느덧 아주머니는 내심사를 알기라도 한듯이 인츰 "예 온지 몇일 안되였어요  잘부탁해요..."제법 싹싹하고 서글서글한 아주머니였다.  우리는 채 세가지와 아구전골을 시켜먹었다. 아주머니는  왔다갔다하시면서 뜨거운 차물을 부어준다 김치를 더 가져다준다. 빈 그릇들을 말끔이 치워준다하면서 제법 써빙을 잘해 주었다,

 

그날따라 날씨가 많이 춥다보니 우리는 채소는 별로 먹지않고 탕만 먹다보니 요리가 기본상 남게되였다. 식사를 끝내고 내가 계산을 마치고 나오려고 하는데 아주머니가 어느새 먹다남은 반찬 세가지를 도시락 통에 싸가지고와서 내손에 쥐여 주는것이였다. "이 아까운걸... 남기면 아깝잖아요,가져다가 저녁에 전자렌지에 데워서 드세요" 어 오늘 저녁에도 집에서 밥을 못먹을것 같은데... " 예 래일 아침에 데워드셔도 괜찮으니깐, 어서 가져 가세요" 난 아주머니의 호의를 거절 할수가 없어서 도시락 주머니를 받아들고 나왔다, 정말  처음보는 사람치고는 싹싹하고 다정다감한것이 첫 인상이 너무나도 좋았었다.그 후로 자주 그식당으로 밥먹으러 가다보니 우린 자연이 가까워져서 서로가  가정에 대해서 생활에 대해서 많은것들을 허물없이 나누게 되였는데 정말 언니는 사람이 너무나도 순진하고 마음이 맑고 따듯한 분이였다.

 

언니네 가정 식솔은 언니와 형부,딸애 하나와  아들 하나에 모두 네 식솔이였다, 고향은 연변이였다. 내가 언니에게 "언니 그런데 어떻게 연변에서 이 먼곳까지 오시게 되였어요?" 물었더니 어느새 언니의 얼굴이 어둡게 흐려지기 시작했다."휴~ 너 형부가 고향에서 돈을꿔서 무슨 장사를 한다고 하다가 장사가 생각과 같이 잘 되지않아 많은 빚을지고 할수없이 고향에서 나오게 되였였어,그런데  아는 사람이라곤 없고 먼 사돈이 여기에 있어 사돈 따라왔어"  휴 ~ 언니의 말을 듣는 나는 저도모르게  한숨이 새여 나왔다. 언니도 한심하시지 얼마나 의지할데가 없으면 사돈을 다 따라 나왔을까? 

 

집에 조금 쓸만한 물건들은 빚꾼들이 다 가져가고  올때 친척들이 로비에 보태쓰라고 준돈과 손에 조금있던 돈을합쳐 모두1500원을 들고 나왔는데 나오면서 둘이서 려비를하고 와서 간단하게 살림집이라고 차릴라니 돈이 판판 부족이였다. 그렇다고 사돈도 뭐 잘나가는것도 아니고 하다보니 사돈이 도움을 받을수있는 입장도 아니고  아는사람 한사람도 없으니 형부가 일자리 찿기도 힘들고 할수없이 남들이 제일 꺼리는 고기배에 오를수밖에 없었다,

   

배에 올라가서 배에서 하는일에 요령이 없는데다가 산동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다보니 많은 기시와온갖 욕을 먹으면서 20일가량 일하다가 끝내 견디지 못하고 배에서 내려오게 되였다. 그나마 아직까지 그20일동안 일한 봉급마저 받지못했다 고했다. 난  언니네에게는 그돈이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인 돈이라는것을 잘 알기에 난 사람을 찿아서 한번 돈을 받아올생 각을하고 언니에게 형부한테서 배명과 선장과 선주의 전화번호를 알아오라고했다,  

 

언니는 일이  당금 다되기라도 한듯이 연신 고맙다고 난리였다.난 혹 일이안되면 언니네가 크게 실망할가봐 너무 기대는 하지말라고 한번 알아보겠다고했다. 몇일후 선박관리회사의 한친구를 찿아 밥을 사주면서 그친구에게  일의 자초지종과 형부네  처한 상황을말했다. 그친구도 들어보니 언니네 형편이 딱해보였던지  한번 알아보겠다고했다. 일주일후에 선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봉급타러 오라고 형부와 언니에게 이 소식을 알리니 두분 다  연신 고맙다고 난리다. 난 또 형부 혼자가서 결산을 잘받지못할가봐  걱정되여 함게갔었다. 다행이 친구의 힘이컸던 관계로 돈은 일푼도 차질이없이 다 받아왔다. 

 

돈을 받아쥐고 나오면서 형부는 어닌에게 들뜬 목소리로 말햇다 "여보 처제 덕분에 돈을 다 받았어 고생했는데 함께 저녁이라도 해야지... 껄껄껄  형부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처음 들어보는거 같았다. 난 그돈이 어떤 돈이라는것을 잘알고 저녁을 극구 사양했다.그래도 두분은 끝내 식당으로  내손을 잡아 끌었다. 정말 목구멍으로 잘 내려가지않은 저녁이였다.

 

 그후 난 형부에게 화물 포장하는 일을 찿아주었다. 형부가 일하면서 살림은 조금 나아 

언니와 형부는  한국어 지능시험을쳐 성적은 합격되였는데 전산추첨에 들지못해 자나개나 한국에 대한 꿈을 지니고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난 공장에서  고기를 가공하면서 조금씩거져다가 언니에게 주었는데 그 때마다 언니는 너무나도 감동이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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