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어머니한테서 들었던 그전날의 일들이 떠오르면 서글픈 생각에 가슴이 알알해나고 눈물이 핑 돈다.
외할아버지는 막내이모가 첫돌이 되기 전에 몹쓸 병에 걸려 돌아갔다. 그 때 외할머니는 35살 젊은 나이였다. 집안의 기둥이였던 남편을 너무나도 일찍 잃은 외할머니는 홀로 벌어서 올망졸망한 여섯 자식을 키우며 살았다. 맏딸인 우리 어머니는 학교를 그만두고 13살 어린 나이에 밭에 나가 집안살림을 도와야 했다.
녀자 둘이서 봄부터 아무리 억척스레 일해도 공수가 많지 않았기에 가을이 되면 다른 집보다 타는 량식이 적었다. 남자로동력이 있는 다른 집들은 마대에 량식을 가득 타오지만 외할머니네는 가마니에 얼마 되지 않는 량식을 타왔다. 아침에 시래기를 넣어 지은 밥을 먹고 나면 점심밥이 부족했다. 그래서 배추와 무우를 섞어 담근 김치를 한사발 떠먹고 오후 일밭으로 향했다. 온종일 일하고 돌아와서는 얼굴이 비치는 묽은 죽 한사발로 저녁을 때우군 했다.
늦여름에 감자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어머니는 점심마다 자류지의 감자밭으로 가서 감자를 캤다. 량식이 부족했기에 감자를 미리 캐다가 삶아먹었다. 그래서 가을철 다른 집에서는 주먹 만한 감자를 가득 캐내지만 외할머니네는 큰 감자가 없이 모두 닭알 만한 작은 감자뿐이였다. 그래도 한알이라도 버릴세라 다 거두어 김치움에 넣고 겨울을 지냈다. 겨울이면 어머니는 방 한구석에 가마니틀을 놓고 온종일 딸깍딸깍 가마니를 짰는데 언제나 하루에 두끼만 먹었다. 그것도 하얀 이밥이 아닌 시래기나 무우, 감자를 가득 섞은 밥 아니면 멀건 죽이였다.
외할머니는 어쩌다 싸래기가 생겨 떡을 하게 되면 혼자 먹는 법이 없이 동네 할머니들에게 나눠주군 하였다. 그래서 떡을 하는 날에는 다음 끼에 떡을 본 적이 없었다. 외할머니는 왜 그랬을가? 하나라도 남겨서 아들딸들에게 더 먹이고 싶지 않았을가?
여름에 일밭에서 돌아오다가 오보호(五保户) 할머니네 참외밭을 지나면서 우리 어머니가 하나만 뜯어먹자고 하면 외할머니는 절대 안된다고 말렸다.
“그 로인이 봄부터 애써 가꾼 참외인데 마음대로 다치면 안된다.”
그래서 어머니는 노랗게 여문 참외를 보고 입맛을 다시면서 참외밭을 지나군 했다. 한두개 쯤 뜯어먹어도 괜찮을 텐데 말이다.
그 날도 외할머니는 6살짜리 둘째딸에게 3살짜리 막내딸을 맡기고 맏딸인 우리 어머니와 함께 일하러 나갔다. 두 이모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학교에 갔다 온 9살 외삼촌이 지붕에 올라가더니 동생들을 내려다보면서 큰소리로 물었다.
“야, 너희들 고기를 먹겠니?”
“뭐, 고기?”
고기라는 소리에 배가죽이 잔등에 붙어있던 이모들은 너무도 기뻐서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인차 대답했다.
“양, 먹겠소.”
그러자 외삼촌이 “야, 옛다, 먹어라!” 하면서 고기를 지붕 아래로 뿌려주었다. 두 이모가 제꺽 주어서 보니 꼬당꼬당 마른 고기쪼각이였다. 둘째이모는 그래도 자기가 언니라고 더 큰 고기를 동생에게 주었다. 둘은 누가 빼앗을세라 제꺽 입에 넣고 질근질근 씹기 시작했다. 돌덩이처럼 딱딱한 것을 씹고 씹었더니 입안의 침에 불어 점점 나른해졌고 찝찌레한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질기고질긴 마른고기는 씹힐수록 나른하고 하얀 고기로 되여 입안에서 이리저리 맴돌다가 목구멍을 꼴깍 넘어가 배속으로 들어갔다. 정말 얼마 만에 먹어보는 고기였을가? 둘은 서로 마주보고 웃으면서 자꾸 입술을 감빨았다.
붉은 해님이 서산으로 꼴깍 넘어갈 즈음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일밭에서 돌아오자 두 이모는 웃으면서 자랑하였다.
“엄마, 엄마, 오늘 우리 둘이 고기 먹었소.”
“언니, 언니, 오늘 우리 고기를 먹었거든.”
“무슨 고기?”
외할머니는 두 눈이 휘둥그래서 물었다.
“오늘 오빠가 지붕에 올라가서 마른고기를 발견하고 우리에게 뿌려주었소. 그래서 우리 온 하루 씹어서 먹었소.”
둘째이모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어이구, 애들두, 그것두 고기라구 먹었니? 그게 뭔 줄두 모르구 참!”
외할머니는 너무나 어이없어서 혀를 끌끌 찼다. 허구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때 돼지를 기르는 집들에서는 새끼돼지가 더 빨리 자라게 거세를 시켰는데 일반 남정네들도 못하는 그 수술을 외할머니는 척척 했다고 한다. 버둥거리는 새끼돼지의 네발을 꼼짝하지 못하게 두 발로 밟고 면도칼로 돼지생식기를 벤 다음 거기에 재를 뿌려주고 돼지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나서는 베여낸 돼지생식기를 지붕에 던져 올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모들이 맛 있게 씹고 씹어 넘긴 마른고기는 글쎄 돼지생식기였던 것이다.
얼마나 고기가 먹고 싶었으면 그것도 고기라고 온종일 씹고 씹었을가? 외삼촌은 동생들에게 얼마나 고기를 먹이고 싶었으면 자기도 먹지 않고 동생들에게 그것을 뿌려주었을가? 외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불쌍한 두 딸을 한품에 꼭 껴안았다. 외할머니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핑 돌았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그 때 마른고기를 먹었던 이모들이 이제는 예순이 넘었다. 지금도 가끔 모여앉아서 맛 있는 음식을 가득 차려놓고 어릴 적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울군 한다.
예전과는 비할 수 없이 좋은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도 그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되뇌는 것은 왜서일가? 너그럽고 자애로운 어머니품이 있었기 때문일가? 마른고기를 나누어먹던 다정한 형제자매들이 있었기 때문일가? 이제 어디에 가 그 마른고기를 다시 맛 볼 수 있을가?
/이계순
— 본 문장은《연변문학》2026년 제9호에 발표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