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춘이라지만 올해 따라 유난히 날씨가 춥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따스한 날씨가 지속되더니 오늘은 한파의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산과 들, 강, 나무, 저수지… 그 어느 것이나 떵떵 얼어붙어있었다. 신종코라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사람들의 가슴도 차겁게 얼어붙은 것 같다.
고향행은 매번 즐거웠지만 이번 걸음만은 착잡하기만 했다.
“정선생님, 고향 경로원 로인들이 불안해서 정선생님이 오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립니다!”
어저께 고향(룡정시 덕신향) 경로원 리원장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이번 경로원행이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걸음임을 절실히 느꼈다. 20여 년째 고향 경로원에 다니면서 무보수 진찰(義診)봉사를 하고 있지만 이번처럼 로인들이 직접 나를 부르기는 처음인 것 같다. 그래서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였다.
한 시간 푼히 달려서야 연길에서 40여 킬로메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경로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마을어구에 다달았을 때는 이미 촌장과 몇 분의 로인 (젊은 사람들은 모두 한국, 연해 대도시로 일하러 가고 남아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일흔이 넘은 로인들)들이 살을 에이는 칼바람 속에 서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시간째 추위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촌장의 말에 나는 코마루가 찡해났다.
촌장과 리원장이 추운 날씨에 왔다면서 악수를 청했다. 나는 이번만은 악수는 ‘사절’이라면서 눈인사를 보냈다. 촌장은 이미 마을의 로인들과 경로원의 로인들 70여 명을 식당에 집결시켜 놓고 있었다. 그런데 마스크를 낀 분들이 거의 없었다. 나는 우선 내가 준비해간 마스크(모 회사의 후원) 100개를 일인당 하나씩 발급해드리고 나머지는 촌장에게 보관시켜서 필요할 때 쓰도록 했다. 어떤 로인들은 마스크를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껴보고는 밝은 미소를 띠고 어린애마냥 기뻐하셨다. 이어 로인들은 나를 보고 앞 다투어 묻기 시작했다.
“정선생님, 이번 전염병은 로인들이 많이 걸립니까? 로인들은 걸리면 죽습니까?”
“로인들이 한곳에 모여있으면 더 전염되지 않습니까?”
또 어떤 로인들은 엉뚱한 질문도 했다.
“머리가 뗑한데 혈압이 올라간 것 같습니다. 이 전염병에 걸린 것은 아니겠죠?”
“어지럽고 메스꺼운데 이 병과 관련이 없습니까?”
“기침이 심하게 나는데 이 병인 것 같아 걱정돼서 잠 잘 수가 없습니다.”
…
로인들은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30여 년의 심혈관질병을 진료한 나로서는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염증에 면역력이 약한 로인들이 취약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우선 로인들의 불안감부터 해소해주고 싶었다.
“아직 우리 고향마을에는 이번 병에 걸린 사람이 없습니다. 혹시 이번 설에 무한에서 자식들이나 친척들이 오셨다면 원장님께 꼭 말씀해주십시오.”
이어서 나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듣기 쉽게 해석했다.
“이번 병은 예방이 중요합니다. 가장 먼저 감염이 쉬운 부위인 손 위생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손바닥과 손톱 밑을 비누로 꼼꼼하게 씻어야 합니다. 또 기침할 땐 침이 다른 사람에게 튀지 않도록 소매로 가려야 합니다. 바깥으로 나갈 땐 마스크를 꼭 껴야 합니다. 주변에 열이 나거나 기침을 심하게 하는 분이 있으면 접촉을 피해야 합니다…”
내가 말을 할 때 식당 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아까 떠들썩하던 정경과는 사뭇 달랐다. 로인들의 모습은 마치도 갓 학교에 입학한 소학생이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것 같았다.
“어르신들, 제가 다시 한번 말씀해드릴가요?”
“네! 주의사항에 대해 다시 한번 말씀해주십시오!” 로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나는 인내심을 갖고 다시 한번 예방수칙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어 열이 나거나 기침하거나 호흡곤난이 있는 분부터 한 명 한 명씩 진찰을 시작했다.
아까 불안감에 떨고 있던 로인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여러분, 예방을 잘하면 이 병에 걸리지 않고 이 병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다같이 힘냅시다!”
내가 인사를 하고 경로원을 나설 때는 해가 뉘엿뉘엿 서산마루에서 지고 있었다.
“우린 이길 수 있다이…”
“로인들이라고 해서 꼭 병에 걸린다는 법이 없지…”
“땐스에서 보니 무한의 91살 로인도 퇴원하던데 뭐…” 등뒤로부터 경로원 로인들의 희망에 찬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겨울이 아무리 매서운들 어찌 봄을 막을소냐
/정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