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우리 부모님들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내오셨고 지금 우리 자식들이 보기엔 불가사이한 일들도 많이 겪으셨다. 그중 하나가 우리 엄미의 “신랑감 없는 약혼식”이다.
우리 엄마는 올해(2024년) 85세이다. 세월의 흐름에 머리카락은 은백색으로 하얗게 바랫지만 자그마한 키에 자름자름한 오관 특히 웃으실때면 지금도 두볼에 패이는 볼우물은 귀여운 로인이라는 칭찬처럼 곱게 늙어가신 할머니이다. 그러니 한창 나이인 20대에는 얼마나 이쁘셨을가.
이런 우리 엄마가 당년에 “신랑감이 없는 약혼식”을 치럿다고 한다. 어찌되여 이런 일이 일어났을가. 나는 엄마와 이모님들 한테서 들은 그때 이야기를 여기에 적어보려 한다.
우리 엄마가 쌍태머리를 길게 드리운 꽃같은 나이의 22세 처녀였을 때, 당시 화룡 숭선변방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큰 오빠네 집에서 함께 살았는데 큰 올케의 소개로 큰 오빠의 부하로 있던 한 군인총각을 만났다. 군인총각은 그때 엄마보다 두살 많은 24살,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거기에 1.73메터되는 훨칠한 키에 군복까지 척 받혀 입은 모습은 그야말로 씩씩하고 당당하고 멋진 모습이였다.
엄마는 그때 난생 처음으로 남자를 만나 첫눈에 정이 들었는데 그 군인총각도 이쁘고 정이 많은 엄마에게 반해 두 사람은 대뜸 련애관계를 맺었다. 그후 젊은 두 사람은 두만강기슭을 따라 나란히 산책하고 언덕의 꽃을 꺾어 안겨주며 사랑을 무르익혀나갔다. 그러나 달콤한 만남으로 미래를 함깨 꿈꾸던 날보다 군인으로 항상 변강보위에 바쁜 그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래도 그중 제일 인상 깊었던 기억은 1964년 그가 부대에서 처음 휴가을 맡은 해였다. 젊은 두 사람은 어쩌다 받은 휴가를 놓칠세라 약속을 잡고 연길로 놀러 가기로 하였다. 그가 먼저 연길 인평에 있는 부모집으로 가고 엄마는 뒤따라 갔다. 그때 숭선 시골에 살던 엄마의 기억속에 연길은 엄청 크고 번화한 도시였으며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였다. 더우기 마을사람들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사랑하는 그이와 함께 가까이에서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손잡고 나란히 걸는다는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두사람은 약속한 지점에서 만나 사진관부터 찾아갔다. 엄마는 숱 많은 머리를 량쪽에 두가닥으로 따서 길게 드리우고 이번 걸음에 열심히 차려 입은 힌 적삼을 받쳐 입고 사진사의 분부대로 앞에 앉았다. 부리부리한 두눈에 정기가 흘러넘치고 오관이 큼직큼직하게 생긴 그는 군모에 군복을 받쳐입고 엄마의 뒤에 가지런히 앉았다. 이렇게 찰칵하고 흑백사진 한장을 영원한 기념으로 남겼다.
그날 두 사람은 사진을 찍고 나서 흥성한 연길시내 거리구경도 하고 식사도 함께 하였다. 그날 군인총각은 처녀에게 선물로 이쁜 꽃적삼도 한 견지 사주었다. 엄마는 그날이 두분이 함께 지낸 시간중에서 가장 인상 깊고 즐거운 날이였다고 하셨다.
이렇게 두 사람 사이가 얼마간 무르익어가던 이듬해 여름, 군인총각은 엄마를 보고 연길부근의 인평촌에 계시는 부모님을 뵈러 가자고 하였다. 엄마는 이젠 때가 되였다고 생각하고 대뜸 따라 나섰다. 그러나 처음으로 그의 부모님을 만나려니 어쩐지 긴장해졌다. 그런데 콩당콩당 뛰는 가슴을 안고 뻐스에서 내려 금방 연길 인평의 그의 부모집에 도착하였을 때 그 집에는 그 두사람 먼저 상급의 명령이 내려와 기다리고 있었다.
부대로 급히 복귀하라는 긴급통지였던 것이다. 그는 처음 뵙는 부모님들에게 데리고 온 처녀를 간단히 소개하고 긴장해 어쩔바를 모르는 엄마를 홀로 남겨두고 부랴부랴 부대로 되돌아 갔다.
그때 엄마는 어쩔수 없이 그 집에 그냥 눌러 앉을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총각의 부모님들은 아들이 데리고 온 쳐녀를 열정적으로 맞이하면서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곧장 온 동네 친척친구들을 다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상하좌우 여러 사람들에게 인사시키는데 후에 들은 말에 의하면 아버님은 이 마을에서 제일 끝자락에 있는 1대까지 다 들으라고 우리집 둘째아들이 색시감을 데려왔다고 자랑하셨다고 한다. 아마 연변제일고중을 졸업하고 곧 선생님이 될 처녀를 둘째며느리로 맞아들이게 되는 것이 큰 기쁨이고 자랑이였나보다.
이렇게 두서없이 인사를 끝내고 보니 부모님께서는 친척들과 함께 부엌에서 무척 바삐 보내셨다. 쌀을 씻어 앉히고 찰떡을 치고 나물을 버무리고 지짐을 지지고… 갖가지 음식을 갖추느라고 분주하였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영문도 모르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엄마는 당황하기만 하였다.
엄마는 뒤늦게 나마 상황파악을 하게 되였는데 총각부모님은 그날 둘째 아들이 색시감을 데려온 김에 약혼식을 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부대의 명령을 받고 떠나간 아들이 바로 되돌아올수 없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크게 일을 벌린 것이다.
이렇게 한바탕 잔치를 치르고 나서 총각부모님은 대뜸 친척들과 함께 준비한 음식을 챙겨지고 엄마를 앞세워 엄마의 어머니네집으로 길을 떠나섰다. 연길 인평촌에서 삼봉동을 지나 룡정 룡지촌으로 그것도 그 무거운 짐들을 메고 지고 3시간넘는 고개길을 걸어서 가셨다.
아무 준비없이 문뜩 뛰여든 손님들때문에 엄마네 부모님들은 무척 당황하셨고 입을 딱 벌린채로 그자리에 굳어지였다. 그럴만도 하다, 총각집에서 아무 기별도 없이 무턱대고 사돈보기라고 찾아왔다고 하니... 그것도 신랑감없는 사돈보기를...
우리 엄마의 아버지, 어머니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매우 서운한 표정이셨다. 그러나 말거나 총각아버지는 사람을 시켜 온 동네 분들을 모두 불러오라 하시고 열심히 챙겨온 음식들을 잘 대접시키시고 사돈보기를 번쩍 마치셨다. 이렇게 “신랑감 없는 약혼식”이 번개불에 콩 닦아 먹듯이 후다닥 치뤄졌다. 물론 그후 임무를 완성한 총각군인이 몇일후에 등장하여 우리 엄마네 부모님들한테 다시 인사를 정중하게 올렸지만 말이다.
1966년 5월 16일, 그날은 날씨가 굉장히 좋았다. 푸른 하늘에는 몇송이 흰구름이 바람따라 두둥실 흘러가면서 손저어 축복을 보낸다. 창문너머 담장 앞에 핀 연분홍빛 꽃향기가 봄바람에 실려 방안에 가득 풍겨온다. 처마밑에 둥지를 곱게 틀고 자리잡은 제비들의 노래소리가 정답게 들려온다.
엄마는 우유빛 바탕에 우유빛 색상의 꽃무늬가 찍힌 이쁜 유동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연지곤지를 살짝 찍고 그를 따라 큰 오빠네 부대판공실로 향했다. 그는 그날 군복을 벗고 양복을 차려입고 있었는데 군복차림에 익숙했던 모습과 다른 멋진 모습이다.
그때는 상급조직에서 결혼식을 간단하게 하라고 지시하였기에 두집 부모님들과 마을의 가까운 몇분만 오빠네 부대판공실에 모셨다. 여러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간결한 결혼식이 올려졌고 그때로부터 엄마는 아버지를 맞이하여 두 사람 사이에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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