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때로는 두 손에 마치 신이 들은 거처럼 키보드를 빨리 두드리며, 진도가 팍팍 나가고 다 쓰고나서도 수정할 곳도 거의 없다. 반대로 때로는 아무리 글을 쓰려고 노력해도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고 무기력하고 머리는 공백에서 헤쳐나오지 못한다.
이때는 억지를 쓰지 말고 글쟁이 대문호들의 책을 읽으면, 금방 무기력 중에서 헤쳐 나올 수 있다고 한다. ㅎㅎㅎ.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오전 10시부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기 시작하였다. 2년 전에 대문호의 3권 모두 읽어본 적이 있다. 소설 쓰는 사람이 <안나 카레니나>를 읽지 않으면 소설 쓸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톨스토이가 5년 동안 집필한 소설.....
와아, 톨스토이는 정말 천재이다. 그저 감탄만 연발할 뿐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걸작은 영어권 유명 작가 125명이 정성 들여 뽑은, 544개 작품 가운데, 당당하게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세 번째 역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라고 한다.
이 소설이 탄생하던 데는 기막힌 우연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우연히 <콜라 신문>에서 화사하고 멋진 옷차림한 신원 불명의 여인이 모스크바~쿠르스크산의 야센키역에서 화물차가 지나갈 때, 성호를 긋고 기차 아래로 몸을 던졌고 그녀의 몸은 두 동강이 났다고 한다. 이 기사의 여인은 마침, 톨스토이가 아는 여자였다. 1872년 발생한 이 사건이 작가의 뇌리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무려 5년이 걸쳐 집필된 소설이다.
"나는 그 사람이 그냥 좋아요. 사랑스러워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냥’이라고 말하는 감정이 어쩌면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어느 한순간 느닷없이 불륜에 빠진 젊은 두 사람, 부유한 미남 청년과 아름다운 귀부인 안나 카레니나 사이에 급작스레 휘몰아친 격정적인 사랑은 평온하게 살아온 두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잘나가던 주위의 인간관계도 급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파생된 온갖 불가피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톨스토이는 어쩌면 이토록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톨스토이 자신이 도저히 그런 경험했을 리도 없을 건데…….
그리고 고통과 기쁨이 함께 뒤섞인 안나의 모습은 너무나 생생하면서도 현실적이다. 그녀가 아무리 기를 쓰고 발 부덩을 쳐도 도저히 다른 길을 찾을 수 없으리라는 거를, 묘한 작법으로 그려낸다. 사실 안나 카레니나는 솔직하고 용기가 있고 지성을 갖춘 여자이다.
그렇게 많은 일이 발생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등장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결혼과 가정>이라는 테두리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정의 소설"이라고도 한다.
톨스토이는 스스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 평생 끊임없이 성찰한 인물이다. 즉, 세계를 움직이는 "제 일 원인"을 찾고자 평생 노력한 작가이다.심지어 도스토옙스키조차 "안나 카레니나" 걸작을 <이것은 전대미문의 걸작이라고 했을까.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어쩐지 안나가 불륜을 저지르고 늘 불안정한 삶을 살아 가고있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죽음엔 왠지 모르게 진한 아쉬움과 묘한 여운을 남긴다.
사람은 정서 속에서 살아가는 "느낌"의 존재이다. 좋은 작품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감정 묘사가 뛰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감정 묘사로 등장인물의 움직임과 대화를 풀어내며, 사건을 이끌어 간다.
만약 감정 묘사가 없다면 등장인물의 삶은 싱거워지고 서사의 긴장감은 온데간데없어진다. 톨스토이의 가장 두드러지게 묘사를 잘했던 부분은 심리묘사 즉 감정 묘사였다. 특히나 안나 카레니나>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 서서히 변질되어 가는 내면 심리묘사는 기가 막히게 잘 표현되었다. 어쩌면 사람의 본능, 바로 위에 있는 그 의식 부분을, 그렇게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신이 아니면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거 같다. 걸작을 읽고 나니 또 새힘이 생긴다.
/ 남태일